아래에 마드리갈님이 공유한 글(링크)을 보니, 문득 최근에 본 글 중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황당하고 우려되는 상황이 있어서 따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페이스북 지인이 공유한 포스트(링크)에서 봤는데, 대다수의 중학생들이 이젠 한자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단어를 몰라서 수업을 못 알아듣는다고 하더군요. 난(亂), 장인(결혼 관련), 변질, 가제(假題), 양분, 위화감, 보모, 변호, 출납원(cashier)... 물론 단어라는 것은 한국어라고 해도, 외국어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후맥락을 파악하면 대강 유추할 수 있는 것이긴 합니다. 그런데 몇몇 장면을 보면 그런 정보를 주어도 못 알아듣는 것 같단 말이죠. 학교 가서 대체 뭘 배우는 건지, 나중에 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참 걱정입니다.
물론 나중이라도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금방 이해하고 통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원래 교육열이나 그런 걸로는 워낙 유명(악명?)높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켜서 하는 공부는 금방 잊어버리고 막상 필요할 때는 생각나지 않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 어휘라는 건 작게는 본인의 선택을 돕고, 크게는 본인의 사회적 위상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저 사진 속에서야 학교니까 이해가 되죠. 학생이라는 배우는 삶, 학교라는 배우는 곳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에서는? 거기서도 '모른다'는 게 받아들여질까요? 받아들여지기는 할 겁니다.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 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진 않겠죠?
그리고 저 포스트를 보면서 '어쩌면 평균적인 지식 수준이 미국 수준으로 정상화(?)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인들은 무식하기로 유명하죠. 맨날 K-POP을 찾으면서 정작 코리아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건 이젠 흔해빠진 농담일 정도로. 그럼에도 미국이 세계의 최강대국이란 사실은 전세계 사람 모두가 알고, 그 무식함 역시 미국인들이 특별히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당당합니다. 강대국이라서가 아니라 '몰라도 돼'라는 사회적 인식, 그리고 사회적 "존중(respect)"이 박혀 있기 때문이죠. 다만 이 이야기는 어휘보다는 보편적인 지식에 대한 소리라 본문의 주제와는 굉장히 결이 다르다는 게 문제지만요.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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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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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9 20:05:49
미국 공교육 시스템과 한국 공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예산’입니다. 공교육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국가의 예산, 다시 말해 세금으로 운영합니다. 문제는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강력한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각 지방 정부가 공교육 예산을 부담하게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태다 보니 소위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공교육 질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위 무식한 동네는 점점 무식해지고, 똑똑한 동네는 점점 똑똑해지는 셈이지요. 한국인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이런 시스템이 생긴 건, 과거 서부 개척 시대의 유산 때문입니다. 그 시절에 지방 정부의 세금을 중앙으로 옮기려면 열차를 사용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열차 강도에게 당해 세금을 모두 분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어지간한 것은 지방 예산으로 하다 보니, 이런 꼴이 난 셈입니다.
만약 한국처럼 영토가 작은 국가였다면 이는 집단 간의 사회적 교류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나라라는 점이며, 대다수는 평생 ‘비슷한 동네’에서 산다는 점입니다. 이러다 보니 각 도시 간의 교류는 할 사람만 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가 평범한 거다’라는 인식을 하게 되지요. 이는 단순히 지식만이 아닌 정치, 사회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애틀처럼 다인종이 섞여 사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여길 것입니다. 거기에 기본적일 교육 수준이 높은 만큼 환경 문제도 심각하게 여기겠지요. 그런데 소위 ‘힐 빌리’라고 부르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그럴까요? 이 사람들이 만나는 건 대부분 같은 인종, 요컨대 백인입니다. 그렇기에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죠. 오히려 ‘백인만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환경 문제 역시 마찬가지. 집 근처에 보면 산과 숲이 보이는 이 사람들에게는 ‘환경 파괴’라는 것이 그다지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구호를 외치며 광업, 임업 같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엘리트들을 증오하겠죠. 이런 괴리를 읽어내 정치적인 입지를 얻은 것이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현 상황 역시 미국과 같은 계층화 현상이 일어나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미국이 ‘공교육의 붕괴’로 이런 결과 나왔다면, 한국은 ‘능력지상주의’, ‘기술 발달과 문화 지체’, ‘경제적 불평등’의 앙상블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뿐이죠. 이 이상은 좀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아서, 이만 말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Lester
2021-06-09 22:56:46
구체적인 설명과 반례 감사합니다. 제가 좀 미국을 우호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지라 잠시 착각을 했는데 덕분에 확실히 깨달았네요.
마드리갈
2021-06-10 12:52:00
일단, 의문문 제목에 대해서 제가 나름대로 답을 제시해 볼께요.
"무식이 죄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민사법에서의 행위능력 문제로 작용할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즉 그런 것이죠. 민법, 상법 등이 규제하는 영역인 각종 상거래, 금전대차 등의 것을 저런 형편없는 어휘력으로 제대로 해낼 수가 없고, 적어도 열에 아홉 이상은 손해를 보게 되어요. 분쟁으로 가면 공권력에 합법적으로 얻어맞게 되고, 그들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사회가 나쁘다, 가진 자가 도둑놈이다 운운하는 헛소리밖에 없어요. 물론 상대를 죽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에 기다리는 결말은, 오늘만 사는 인생이겠죠.
링크된 페이스북 페이지를 읽어보고 정말 기겁했어요.
대체 저 학생들의 언어생활은 얼마나 처참하기 짝없는 건지, 일상생활이 가능하긴 한 걸까요? 흔히 말하는 0개국어 구사자라는 게 바로 저런 건가 싶네요. 게다가, 저 학생들은 어휘력도 빈약하지만, 그 이전에 의욕이고 뭐고 없는 것 같네요. 시작부터 못할 게 거의 확정이라 할까, 드래곤사쿠라에서 사쿠라기 켄지가 말하는 "의욕없는 놈들", "똥같이 냄새 풀풀 풍기는 새끼는 어른 돼봤자 썩어있을 뿐", "그러니까 아새끼라도 멋지게 시궁창물같은 눈깔 하고있어!!" 에 딱 부합하는 부류로 보이네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이 더욱 안좋아요.
그나마 미국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사실상의 국제공용어인 영어인데다 각 분야에서 유용한 지식은 영어로 기술되어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아요. 게다가 미국은 단일국가로서는 시장규모가 가장 크고, 그래서 생활범위가 주 안이라도 그렇게 문제되지는 않아요. 인구도 많고, 그에 비례해서 무식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게다가 자본시장에는 눈먼 돈도 많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아이템이나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다면 정말 인생역전이 가능한 곳이 미국이죠. 이런 점에서는 미국은 확실히 출발선 자체가 매우 앞당겨져 있는 셈이죠.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좁은데다 자본시장은 매우 보수적이라서 사실상 뭔가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아요. 게다가 언어의 장벽, 고질적으로 높은 생활상의 베이스로드 등, 소득의 기대값은 매우 낮은데 지출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정된, 어떻게 보면 미국보다도 더욱 계층분화 및 고정의 양상이 심해지는 것이죠. 게다가 작고 좁은 나라라서 저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요.
Lester
2021-06-10 18:33:49
유튜브 돌아다니면서 재한 외국인들이 한국어 하는 영상(ex. 비정상회담)들을 보면 종종 "저 외국인이 나보다 한국말을 잘 함" 같은 댓글을 보고 농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게 진심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오싹하더라고요. 국어를 모르는 국민이라니,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건지 하고 말이죠.
말씀하신 대로 언어는 사용자가 많아져야 그만큼 수요와 가치가 증명받는데, 막상 외국인들은 한국말을 배우려고 하면서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말을 못하는 '꼬라지'를 보면, 진짜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려나 싶습니다. 제가 번역을 해도 "이거 못 알아듣겠으니 이 번역은 썩었다" 하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사람이 있을까봐 무섭기도 하고요.
SiteOwner
2021-06-14 19:25:46
소개해 주신 저 페이스북 페이지의 사례, 솔직히 일부러 무식한 컨셉트라도 구현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게 실제상황이군요. 도대체 저 학생들은 평소에 무슨 언어를 구사하는 것인지...상상 이상으로 처참하군요. 저런 국어구사력으로 뭘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무식이 죄는 안될 겁니다. 하지만 자부심의 원천이나 가문의 영광 같은 게 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저런 무식이 학교 안에 있을 때에는 무식한 것으로 끝나지만, 학생일 때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지옥이 펼쳐질 겁니다. 당장 스마트폰 구매를 한다단지 하는 상황에서, 문해력이 떨어져서 불리한 조건인 것도 모르고 계약하고 나중에 정말 거금의 생돈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안 벌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그나마 호구라도 돈 많은 호구는 낸 금액만큼 최소한의 대우는 받을 수 있겠습니다만, 돈 없는 호구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합니다.
국제기구에 남미나 아프리카 출신이 상당히 많은 이유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물론 그 지역의 국가들이 대체로 가난하다고 해서 개인까지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가난한 것도 아니고, 그런 나라들의 부자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부자는 상대도 안될만큼의 수퍼리치도 많습니다. 물론 그 남미나 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유럽이나 북미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긴 한데,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또 그만큼, 우리나라의 영세한 가정보다 더 못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국제법 등의 분야에 유독 재능이 좋아서일까요?
사실, 그 지역은 오랫동안 열강들이 휘젓고 다닌 영역이다 보니 국제적인 것을 몰라서 당한 역사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글을 아는 사람들은 국제관계 방면으로 상당히 많이 집착하고, 그래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국제관계학 관련으로 우수한 인재가 의외로 많이 배출됩니다. 지식이 힘이라는 게 이래서입니다. 이것이 이미 반세기도 더 전에 비동맹주의 등으로 나타났고, 지금도 국제기구에 남미나 아프리카 출신이 많은 것은 그런 저력의 소산입니다. 간절함이 없으니까 저런, 존재의 이유조차 모를 저런 학생들이 양산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Lester
2021-06-15 09:15:12
'간절함이 없으니까 저런 존재의 이유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양산된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만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하기야 요즘에는 유튜브다 뭐다 해서 대리만족부터 대리조사까지 다 해주니까요. 필요할 때만 찾아보고 평상시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마치 중독자 상태인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