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에 선물이고 모임이고 뭐고 그냥 혼자 오락실이 있는 거리를 떠도는 망령이 되었다가 집에 와서 푹 자고, 크리스마스인 오늘에는 빨간날이라 조용한 것을 이용해 번역 작업을 최대한 했습니다. 이제 대사만 번역하고 그간 이래저래 말 많았던 불일치consistencies나 고유명사 오류들만 바로잡으면 대규모 작업도 끝날 듯합니다. 이것도 예고했던 마감을 넘겨서인지 조선x이냐, 돈 받고 하는 주제에 이 따위냐 하고 여론이 격화될 조짐이 보이는데... 주변에 동료 번역가나 게임번역이 어떤 일인지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번뇌와 괴로움을 속으로 삼키고 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닙니다만, 슬슬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제는 눈이 오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입니다. 어제 같은 경우에는 눈이 오진 않았으나 귀가할 때 칼바람이 불어서 죽는 줄 알았네요. 나름대로 목티를 입었는데도 목으로 바람이 고스란히 들어와서... 그래서 바에서 혼자 두세잔 하다 걸어서 귀가하려던 걸 포기하고 곧바로 집에 왔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같은 술이라면 그냥 따뜻한 방에서 마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바에서 마셔도 바텐더한테 말 걸지 않고 혼자 인터넷 보면서 홀짝이는 게 다니까요.
그리고... 없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게임번역인데 갑자기 재미있던 포인트를 놓쳐서 그런가 힘에 부치고, 여론은 잘한 부분보다 실수한 부분에 포인트를 맞춰서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니 확인하기가 무서울 정도네요. 그나마 끝나간다는 게 다행이고, 외화로 받으니까 요즘 환율 높은 것을 감안해서 두둑하게 받는다는 기분으로 즐거워하면 되겠지만... 지금의 공허함은 물질로 채울 수 있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도 전혀 모르겠어요. 원래 재미없게 살다 보니...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겠죠. 25일이고 빨간날이니까. 그러합니다. 노래 하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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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24-12-25 21:22:39
메리 크리스마스!!
소개해 주신 사카모토 류이치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들으면서 코멘트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 음악은 정말 좋군요. 얼마전에는 NHK에서도 들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야마하의 피아노를 사용했군요. 아티스트들마다 좋아하는 피아노 브랜드가 다른 것도 알아보면 꽤 묘미가 있습니다. 보통은 스타인웨이 제품이 가장 많이 쓰입니다만, 요시키는 카와이, 안드라스 쉬프는 뵈젠도르퍼 제품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추운 게 아니겠습니까. 여러모로 힘든 순간이 이어지고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도 기쁨과 만족에의 기대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답을 찾는 데에는 적든 많든간에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시길 당부드리겠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마드리갈
2024-12-25 23:10:13
안녕하세요, 레스터님.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셨군요. 잘 판단하셨어요. 술은 안전한 상황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 게 좋아요.
간혹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있어요. 그런데 그 감각을 억지로 채우려고 하면 더 안 좋아지더라구요. 그러니 그런 경우는 마음을 놓는 게 중요해요. 흔들리는 수면을 진정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냥 두고 기다리는 것이든.
소개해 주신 음악은 역시 참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있어요. 올해도 이렇게 듣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예요.
시어하트어택
2024-12-25 23:26:52
메리 크리스마스.
소개해 주신 음악은 정말 잘 들었습니다. 밤에 들어서 그런지 더 애잔한 감상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시선에 너무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게 중요하니까요.
마키
2024-12-26 21:08:22
조금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올해만큼 크리스마스 기분 안나는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었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어릴때부터 늘 들었고 늘 좋아하던 음악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