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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에서 보이는 모종의 고정관념

SiteOwner, 2013-11-12 20:15:14

조회 수
506

안녕하십니까. 사이트오너입니다.

이번에는 급식 관련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람은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으며 따라서 식사는 삶과 건강의 유지에 필수불가결합니다. 그래서 음식은 맛있고, 영양가가 높고, 깨끗해야 합니다. 또한 식사시간은 즐거우면서 또한 절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이 상당부분 무시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간혹 위험한 상황을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풍토도 있어서 우려를 안 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학교, 단체활동, 군대, 항공기, 직장 등지에서 접하는 각종 급식을 보면서, 농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풍족해진 현대사회에서조차 모종의 고정관념이 심각하게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지를 생각해 보니 대략 이런 게 나왔습니다. 압축해 보니 2가지가 됩니다.

  • 젊은 사람은 좋은 식사를 해서는 안된다
  • 먹고 안 죽으면 약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타파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젊은 사람은 좋은 식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부터 보겠습니다.

전근대사회와 같이 농업생산력이 낮은 사회에서는 가장 좋은 음식을 차지할 계층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계층으로는 양반, 성별로는 남성, 연령대로는 장년, 노년층. 즉 힘 있는 사람이 좋은 음식을 독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보리의 발음과 모양이 여성의 생식기와 형태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보리를 먹게 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이러한 풍조는 근대화와 농업생산력의 증가에 의해 표면적으로는 많이 해소되었지만 교육현장에는 여전히 있습니다.

각급학교의 수학여행 때 좋은 식사보다는 열악한 식사를 강요당한 적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흔히 교사들은 무력으로 윽박지르거나 그럴듯한 말로 회유하는 식으로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지만, 그런 뒤에서는 학부모들로부터 상납받은 호화로운 식사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숙취가 해소되지 않아서 술냄새를 풍기고 눈이 벌건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도시락 세대인 저의 경우는 학교측에서 검소한 식생활을 강조하다 못해 강요하는 풍조도 겪었고, 특정 고급 식재료에 대한 험담을 하여 그 학생이 도시락을 제대로 먹지 못하게 하는 식의 폭거도 횡행했습니다. 이전 세대에서 혼분식장려정책으로 인해 쌀밥 도시락을 싸 가면 혼나거나 아예 도시락을 압수당하기까지 한 것보다는 낫겠지만요.

그런데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이런 생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성장기라서 영양공급에 특별히 배려가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열악한 급식은 건강과 성장을 해치는 적이자 미래세대의 신체적 특징을 열화시키는 문제인데, 이에 대한 불만은 그냥 밥투정으로 폄하되거나, 커서 돈 벌어서 좋은 것을 먹으라는 말이나 자신이 어릴 때는 그런 것은 상상도 못했다는 식으로 타박주기로 덮어지기 마련입니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청결에 대한 인식부족입니다.

뉴스에서는 어린이집, 유치원, 각급학교, 군대, 직장 등의 단체급식에서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자재 사용, 주방의 비위생, 식자재 공급업체의 생산라인 비위생, 식자재의 원산지위조 및 오염,  대량 식중독 사태 등, 잊을만하면 이런 문제가 반복되어 정기행사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수산물을 기피하는 풍조가 대폭으로 늘어나는 것과 예의 문제를 대조해서 보니 뭐랄까 중요한 것 하나를 잊고 사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라느니, 끓이면 된다든지, 아니면 시원한 날씨면 음식이 상할 리가 없다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엄밀히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물론 인체가 어느 정도의 미생물 오염이나 변질에 대해 내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들을 마냥 기대하면 안됩니다. 변질되어 화학적으로 안정된 독성물질이 생성된다면 이미 끓이거나 굽는 차원으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으며, 극지방이 아닌 이상 방치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변패의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콜드체인이라는 시스템이 고안된 게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건조, 염장, 당장, 액침밀봉 등의 방법이 있더라도 그렇게 가공한 식품이 콜드체인을 통해 유통의 시간과 거리를 대폭 늘린 신선식품만은 못합니다. 그리고 선도가 충분히 유지된 신선식품을 각 채널에서 가공하여 급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기성품을 유통시키는 것보다는 더 좋으니 선도의 유지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무조건 지켜야 하는 사항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고 있으니 어떻게 청결이 확보되겠습니까. 급식에서의 문제는 어디서 다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을 통해 선진국이 되었고, 아직 일부 계층의 경우 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있지만 일단 대부분의 계층이 보릿고개를 넘은지도 한 세대 이상이 지났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슬람교의 교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가지 참고할 만한 정신은 있습니다.

먹는 것이 그 사람을 형성하며, 따라서 문명인이라면 아무거나 먹기 보다는 먹어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 이것만큼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생과 급식, 식문화 관련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식문화에 대해서 말은 많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항상 잊을만하면 먹는 문제로 말썽이 나는 일이 구조화되지 않고 있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들의 급식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6 댓글

대왕고래

2013-11-12 20:47:01

여러가지로 정신나간 사상이었군요, 그건. 사람은 누구나 잘 먹어야 하는 건 상식. 청결에 대해서 가능하면 단단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 그런 것도 없이 그냥 급식을 운영하겠다는 건 "나 아니니까 죽어라" 정도죠.

그나저나 전 급식운이 좋았던 거 같네요...

일단 초등학교때는 학부모분들이 직접 급식을 배식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있는 날이면 엄청 기분이 좋았죠.

말 그대로, 학부모분들이, 자신의 자녀의 식사를 만드는 것이다보니, 가능하면 질이 좋게 만드려고 할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한 것이었죠.

뭐어... 중고등학교때도 무사히 잘 먹었던 거 같고 말이죠. 제가 만족에 대한 역치가 낮은 건 있습니다만... (다른 얘들은 가끔 벌레가 나왔다는 보고를 하기도 했어요. 전 그런 게 없었던 걸 보면 그냥 제가 럭키가이였던 모양입니다.)


아, 하나 기억나는 건 있어요. 좀 역겨울 수 있습니다만...

초등학교때는 무조건 다 먹게끔 지도했었는데, 그거 때문에 아마 제가 어느 날 꾸역꾸역 먹다가, 새벽 3시에 토했던가...

(정작 저는 그걸로 혼난 기억이 한번이 있었나... 없었나... 애매합니다만. 그냥 혼나기 싫어서 먹었던 모양입니다.)

요즘 어머니도 저에게 말씀하시지만, 못 먹겠으면, 남기는 걸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남기는 게 좋은 거에요.

(남기는 게 아깝다고 생각한 건 급식 때문에 생긴 버릇은 아니지만요... 이건 그냥 뭐라고 해야하나, 음식 하나하나가 다 귀중한 거라고 생각해서요. 먹으면 맛있고 생존에 필수적이고 그걸 만든 사람에 대해 생각해야하고... 물론 신선한 음식 한정입니다.)

SiteOwner

2013-11-15 18:57:22

맞습니다. 이제 전근대적이고 잘못된 통념은 버려야 합니다.

게다가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게 해서 식사시간이 고통이 되고 버리는 부분이 많게 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맛있는 음식으로 즐겁게 먹을 수 있게 할 수 있어야 그게 제대로 된 교육입니다.

말씀하신 그 급식방식은 좋기는 한데 제약조건이 꽤 있습니다. 이를테면 재학생의 가정이 주로 맞벌이부부라든지 통학거리가 긴 지역이 많은 경우에는 선택하기가 매우 곤란하거나 아예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호랑이

2013-11-12 23:58:34

먹고 안죽으면 된다, 젊을 때는 뭐든 먹어도 된다는 말 너무 싫어요.

우선 젊을 때는 좋은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말, 그러면 그 좋은 음식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나이많은 높으신 분들? 이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젊은 사람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겨요. 젊은 세대에게 돈 쓰기 아깝다는 뉘앙스도 풍기고요.

먹어도 안 죽는다는 말도 똑같아요. 우선 구매한 식자재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철저한 계획 및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이 없었더는 건데,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음식점이나 카페. 바는 곧 망하기 십상이지요. 이건 절대 망할 수 없는 독과점 위치에 선 급식업체의 나태함이라고 봐요.

또한, 예산이 넉넉하면 문제가 발생한 식재료들 전부 폐기하고 새로 구매해도 되거든요. 그러지 않는다는 건 급식 자체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걸로 볼 수 있겠네요.

 

뱀발 : 젊은 것들은 좋은 걸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은, 카페나 바 등에도 무의식적으로 뿌리내린거 같아요. 와인이나 칵테일, 싱글몰트 등을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가끔 저보고 돈 많냐면서 비꼬는 인간들이 몇몇 보이네요.

SiteOwner

2013-11-15 19:03:53

젊을 때 뭐든 먹어도 된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사실 젊어서 잘 먹지 못하면 사실 늙어서도 잘 먹지 못합니다. 식사는 일종의 사회화과정이기도 하고, 게다가 젊을 때에 제대로 먹지 못하면 늙어서 뭔가를 잘 먹으려고 하기 전에 높은 확률로 병으로 죽고 말아버리기에, 거친 말로 하자면 이런 헛소리는 자식의 제사상을 어서 차려주고 싶다는 소리로밖에 안 들립니다.

식자재는 생체에서 나온 것이므로 무기한 장기보관할 수 없고 따라서 항상 면밀한 준비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먹고 안 죽으면 약이니 운운하는 것은 식품관련 직업에서 종사할 자격이 없다는 선언에 다름아닙니다.


끝에 말씀하신 것, 정말 동의합니다. 간혹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자들에 대해서는, "카페나 레스토랑에 총기난사를 할 용기가 없다면 그런 헛소리는 그만 하라" 라고 대꾸해 줍니다.

안샤르베인

2013-11-13 00:31:05

음...아직도 이런 전근대적인 발상을 한다는게 무섭네요.

SiteOwner

2013-11-15 19:08:30

이러한 전근대적인 발상은 의외로 많습니다.

수도권 등지에서는 그나마 약화되어 가고 있지만, 지방이나 고령층에서는 식품 대한 잘못된 통념으로 인해 문제가 양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국을 잘 먹어야 덕이 있다든지, 마른 반찬을 좋아하면 성격결함이니 하는 등의 것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를 출판사의 이익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사안의 선후를 뒤집고 인과관계를 억지로 붙이는 오류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재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물 재료를 담은 플라스틱 망에 담아서 그것을 통째로 끓여 국물을 낸다든지, 뜨거운 국물을 플라스틱 바가지로 퍼는 것에는 기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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