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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되다" 와 "키요우(器用)"

마드리갈, 2025-02-16 23:42:02

조회 수
38

상당히 껄끄럽게 여겨서 사용을 피하는 단어 중에 "그릇되다" 가 있어요.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유교적 개념에 내재된 폭력성을 강하게 느끼다 보니 거부감이 들거든요.
조금 더 들여다 보면, 군자는 특정한 형태나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이고, 그 이외의, 즉 특정한 형태를 지니거나 특정한 분야에 종사하는 형이하학적인 존재는 군자 아닌 존재인 소인(小人)이 되어 버려요. 유교이념에서 군자와 소인을 대비하여 군자가 바람직한 인격체이고 소인은 그렇지 않다고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거야 더 말해서 뭐할까 싶을 정도로 고질적이니 더 말할 것도 없을 거예요. 

한편으로, 일본어 단어 키요우(器用)는 유능함이나 요령이 좋음을 가리키는 말. "그릇으로 쓸만하다" 라는 한자어의 그 의미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것이 보이죠. 일본의 제조업 역량 및 세계적인 영향력이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다 매출, 영업이익 및 시가총액에서 실적이 사상최대를 갱신하는 등 부활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어요. 게다가 고질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던 저금 및 생산성 문제를 발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어요. 

전 이 두 어휘를 대비해 보면서 무서움도 느끼고 있어요.
한국 제조업이 몇몇 종목에서 일본의 실적을 앞섰다고 일본을 무시하는 풍조가 각계에 정착한 듯 한데, 글쎄요. 전문분야 및 종사를 소인배의 것으로 여기는 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무비판적으로 통용되는 상황에 의문 같은 건 가질 필요가 없거나 가져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미래가 우리나라에 언제까지나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는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지하상가에서 본 광고문구가 여전히 생각나네요.
"그릇된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Lester

2025-02-17 00:15:59

뒤틀린 유교 사상 때문에 잘못된 게 한두가지가 아니죠. '사농공상'이 대표적인데, 사대부나 양반을 제외한 나머지 직업군은 요즘 말로 '미만잡' 취급하는 세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농부는 식량을 만들어서 바쳐야 하니까 바로 다음 순위로 두고, 그 다음이 이것저것 만들어서 납품하는 공인이고, 상인은 딱히 접점이 없다는 이유로 없는 셈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공격한 게 아닌지... 우리역사넷에서는 아예 대놓고 "겉으로는 농사보다 편해 보여서, 순박한 농민에 비해 타산적이어서, 상업으로 시작해서 상업으로 망한 고려를 배격하기 위해서"라고 적혀 있네요. 유교 자체로도 장점이 없진 않으니 어느 정도 중립을 취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습니다.


반면 일본의 '그릇'이란 단어는 훨씬 긍정적이죠. 작게는 찻잔에서, 크게는 사람을 가리키니까요(ex. 器量). 얘기가 좀 새는데 -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본 다기에는 "킨츠기(金継ぎ)"라고 해서, 깨진 것들을 감쪽같이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데도 일부러 금이 간 자국을 따라 금박을 입혀서 파손조차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례가 있습니다. 더욱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와비사비(侘・寂)"라고 한다는데 이건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데다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일본 불교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조선의 '그릇' 이야기하고는 많이 다르구나 싶기도 합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저도 좀 많이 헷갈립니다만;;; 확실히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도 군자불기 운운하는 세태는 무조건 버려야 할 듯합니다. 심지어 일본을 앞섰다고 하는 그 제조업조차 그렇게 얕잡아보는 '그릇'들이 해낸 것이지 '군자'가 해냈겠습니까. 조선 후기에는 그 '군자'들이 먹고 살 방도가 없어지자 괭이를 쥐고 밭일을 하거나 그 귀한 양반 가문 족보까지 팔아넘겨야 했다는데, 오늘날의 '군자'들 또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p.s. 군자불기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는 이 글이 그나마 중립적이고 정확한 듯합니다.

마드리갈

2025-02-17 00:44:53

뭐랄까, 유교이념은 뭐가 좋아서 서열을 따지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사농공상 운운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든 차별받아야 할 존재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냥 강요하면 반발할 게 뻔하니까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헛소리로 점철된 궤변으로 윽박지르는 행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요. "농사보다 편해 보여서"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상업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모르고 막연히 공격한 것에 지나지 않네요.

말씀하신 킨츠기, 정말 감명깊죠. 손상되어 효용을 잃을 뻔한 그릇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줬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없던 새로운 아름다움도 얻었으니...


오늘날의 군자들이 팔 수 있는 건 없을 듯하네요.

예의 글을 읽어보니 그다지 공감은 안되네요. 결국 외연이 있으면 한계가 있고 그런 것은 열등하다는 소리를 미사여구로 포장한 것이니까요. 저런 논리의 건전성은 더 논할 필요도 없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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