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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즈 앤 판처에 대한 단상

마키, 2017-01-09 17:17:35

조회 수
209

(이하 애니메이션/극장판/OVA등을 포함한 걸즈 앤 판처의 내용에 대한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걸즈 앤 판처에서 오아라이 여학원은 20년만에 급조한 전차도부와 전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오합지졸 부원들, 그리고 각국의 전차들이 섞여있다는 부실한 전력으로도 전통의 강호들을 꺾고 제63화 전국 전차도 대회에서 우승까지 거머쥐게 되는데, 이 과정이 애니메이션 적 허용을 과장해도 꽤나 작위적인 느낌이 들 정도라 아쉬움이 많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론 스포츠 물에서 주인공이 역경에 굴하지 않고 승리를 쟁취하는건 스포츠 물의 왕도나 다름없는 전개이지만 역으로 그걸 위해서 상대팀 학교들은 나름대로 전통의 강호라는데도 불구하고 작중에선 꽤나 자잘한 실수나 판단미스, 심하게는 아예 전황에 악영향을 끼칠 정도의 실수를 저지르는 바보들이 되버렸죠. 여기서는 어째서 오아라이를 이기게 하기위해 이렇게 까지 해야 했는지, 어째서 상대팀 학교들이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했는지를 나름대로 정리해본 글입니다.

 

 

친선경기 - 세인트 글로리아나 여학원

비록 친선경기였지만 이 학교, 의외로 그 오아라이 여학원에게서 유일하게 승리(그것도 2전 전승)를 따낸 학교입니다. 다질링의 상황 판단력은 상당히 날카로운 편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 TVA 초반부의 친선경기에서도 마지막에 니시즈미 미호가 전차를 급선회 시켜서 최후의 일격을 먹이려는걸 순간적으로 간파해 처칠의 포탑을 돌려 포화를 주고받고, 결과는 4호 전차의 격파 및 오아라이 전력 전멸에 의한 세인트 글로리아나의 승리. 이후 오아라이의 시합에 꼬박꼬박 참석하는데, 선더스 전에서도 아리사의 행동을 '지옥의 핫라인' 운운하며 결과적으로 아리사가 선더스 패배의 원흉이 될거라 꿰뚫어봤고, 프라우다 전에서도 플래그 차량을 미끼로 돌격시키는 행동을 보고 직감적으로 함정임을 간파하는 수준입니다.

 

세인트 글로리아나와의 대결은 친선경기이기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분위기이기도 했고, TVA 시작 시점에서 완전히 햇병아리인 오아라이 전차도부는 사실상 미호 하나만 믿고 싸운 만큼 당연한 결과이기는 했지만 반대로 순간적인 기습공격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대처한 다질링의 실력도 돋보인 경기였습니다. 극장판의 제2차 친선경기에서도 결승전에서 썼던 적팀을 시가지에 밀어넣어 각개격파한다는 전술에 대해 다질링은 "쿠로모리미네한테라면 몰라도 우리한텐 안먹힌다"고 하면서 여유롭게 대응하죠.

 

 

제63회 전차도 전국대회 1회전 - 선더스 대학 부속 고교

 

한줄정리 : 적을 함정에 빠트리려다 역으로 스스로가 함정에 빠져 자멸

 

룰에는 명시되어 있진 않지만 통신방수기로 적의 통신을 도청한 아리사의 술수에 대응해 거짓 정보를 태연하게 통신기를 통해 보내 아리사를 함정에 빠트리고 역으로 지휘는 사오리의 휴대전화를 통한 중계로 대응하는 미호의 임기응변이 포인트였던 경기. 룰에는 사용 금지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사용해도 상관은 없으나, 스포츠라는 전차도의 특성과 무선 통신이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무선 통신을 도청하는 술수는 비매너로 취급하여 암묵적으로 사용치 않는걸로 묘사되는데 처음부터 상대가 자신들의 움직임을 너무나도 잘 안다는 사실과 하늘에 띄운 통신방수기를 통해 도청사실을 알게된 미호는 가짜 정보를 통신기를 통해 흘리고, 진짜 정보는 휴대전화를 통해 주고받으며 대응하게 되죠.

 

결국 반칙을 저지른 대가로 함정에 제대로 걸려든 아리사는 버리는 패로 정찰에 투입한 집오리팀의 89식 중전차에게 발견되었고, 호위 따위 필요없다고 큰소리 뻥뻥 치다가 정말로 플래그 차량 셔먼을 아무런 호위 병력도 없이 고립된 상태로 떡하니 적의 본대에 돌격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며 스스로 선더스를 패배로 몰고갔으며 결과적으로 아리사의 이 치명적인 실수에 의해 선더스는 패배합니다. 심지어 이때 89식이 아니라 다른 차량이었으면 플래그 차량이 발견된 시점에서 선더스는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였으니 아리사가 얼마나 상황판단이 부족한지가 드러나죠.

 

일단 통신방수기 사용에 따른 무전설비 증설로 전차 내부 공간이 좁아드는데다 통신을 감청하려면 항상 어딘가에 정차해 있어야 하므로 사실상 전차 1량을 전력에서 열외시켜야 하는 패널티가 뒤따른다고는 합니다. 물론 적의 통신을 도청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 알아듣고 그걸 아군에게 전송하는 시점에서 패널티인가도 의심스럽지만... 솔직히 이것도 케이가 정정당당한 승부를 최우선으로 삼는 스포츠맨십을 가진 인물이어서 미호에게 먼저 반칙을 저질러서 미안하다고 사과한거지 무조건 이기면 장땡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니시즈미류나 프라우다 고교였으면 통신방수기를 썼다는걸 알았어도 어쨌거나 이겼으니 됐다고 넘겼을 가능성도 농후.

 

 

제63회 전차도 전국대회 2회전 - 안치오 고교

 

한줄정리 : 마음만 먹으면 잘 싸운다! 마음만 먹으면...

 

본편(이하 OVA 이것이 진짜 안치오 전입니다!의 내용)에서는 그다지 부각되지 못했지만 일단 그럴 마음만 먹으면 실력발휘를 한다는 학교. 본편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기동력이 뛰어난 탱켓 CV-33으로 먼저 선두를 치고 나가 가짜 판자(디코이)를 세워 전력을 속이고, 상대가 우왕자왕 하는 사이에 CV-33과 세모벤테 자주포, 중전차 P40으로 포위섬멸 한다'는게 안치오 고교의 기본 전술인 이른바 마카로니 작전. 다만 전력의 절반이 전차조차 아닌 탱켓인 만큼, 숫적 우위도 그렇게 믿을만한게 못되서 실상 마카로니 작전이 먹히느냐 마느냐가 승리의 관건.

 

작중에서는 페퍼로니가 마카로니 작전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예비까지 판자 11개를 전부 배치하는 바람에 보고에 따른 정보로는 차량 숫자가 안맞는다는 이스즈 하나의 지적과 동시에 시작하자마자 마카로니 작전이 간파당해버리죠. 물론 세모벤테 자주포와 P40의 화력, CV-33을 통한 숫적 우위, 아직 기량이 높지 않았던 오아라이의 실력이라면 잘하면 안치오(1)도 어떻게든 이길수는 있는 경기였으나, 전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C-V33과 주력인 세모벤테 자주포들이 잇따라 오아라이 팀원들에게 각개격파당하며 숫적 우위마저 상실해버리고, P40도 끝까지 저항해보지만 결국 격파당하며 패배.

 

안초비의 전술과 판단은 정확했으나 작전 자체를 잘못 이해했던(2) 페퍼로니의 실수, 그리고 오아라이도 친선경기에서 겪었던 전력 자체의 문제가 패배의 가장 큰 원인. 포는 고사하고 기관총이 주무기인 CV-33의 전투력은 말할 것도 없고,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차량이 고작 세모벤테 자주포 3량과 비밀병기라는 P40 중전차 뿐인 전력으로서는 오아라이 까지는 어떻게든 이기거나 무승부를 낼 수는 있어도 프라우다나 쿠로모리미네에겐 택도 없는 전투력.

 

극장판에서는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 예산 문제로 수리하지 못한 세모벤테나 P40 대신 CV-33만 들고나와 연합팀의 일원으로 참전. 탱켓의 경쾌하고도 빠른 기동력을 살려 전장을 종횡무진 달려다녔고 롤러코스터의 트랙을 통한 고지대 정찰로 미호에게 전장의 상황을 중계해주는 대활약을 펼쳐 마음만 먹으면 실력이 오른다는 안치오의 저력을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1 1회전에서는 마지노 여학원을 꺾고 올라왔다는데, 중장갑 전차 위주의 편제를 상대로 안치오의 전력은 CV-33과 세모벤테 뿐. 화력이 낮은 안치오로서는 부담스러운 전력이었지만 무전기가 부실해 단차간 연계가 안되는 점을 노려, 기동력으로 상대에게 혼란을 주어 고립된 적들을 각개격파하는 식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즉 그럴 마음만 먹으면 기본은 한다는 소리.)

 

(2 나중에 극장판에서 드러난 바로는 아군의 전력이 상대보다 더 많아 보이도록 속인다. 라고 이해하고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제63회 전차도 전국대회 준결승전 - 프라우다 고교

 

한줄정리 : 경직된 지휘체계와 지휘관에 대한 무절제한 신용이 모든걸 망쳤다

 

여기도 사실상 카츄샤와 논나가 다 해먹는 팀으로 나머지 다른 팀원들의 전술적 판단력이나 실력은 그저 그렇다고 묘사됩니다. 미리 플래그 차량을 포함한 미끼부대를 보내 오아라이를 함정에 몰아넣었던 카츄샤의 판단력이나, 명중률이 낮다는 IS-2로 백발백중 오아라이 팀원들을 차근차근 섬멸하던 논나의 실력(1) 자체는 인정할만하지만 그밖의 면모에서는 그다지 강팀이라는 사실이 부각되지 못합니다.

 

거기에 지휘계통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본편이나 공식 코믹스에서도 카츄샤의 지휘 능력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고 묘사되는데다 그걸 서포트하고 보완해야할 논나마저 나중에 지적을 할지언정 당장의 판단은 무조건 카츄샤의 판단을 신용한다는게 문제. 최고 지휘관의 지휘 능력이 별로인데다 그걸 해결해야할 부관마저 저 모양이니 프라우다는 제대로된 판단 능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오아라이가 일부러 가장 포위망이 두꺼운 곳으로 정면돌격하고,거북이팀의 38(t)가 단독으로 적진을 휘젓고 다니면서 전열이 붕괴되자 팀원들의 실력 문제도 겹치는 바람에 패배하게 되죠.

 

본편 및 극장판에서 KV-2의 장전수로 등장한 니나와 아리사는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자칭' 선배들(카에사르와 아키야마 유카리)한테 자기 학교의 전력과 배치상황 등을 술술 불어버리며 프라우다가 패배하는데 일조했고, 그 이전에 최고 지휘관 두명이 저런 모양인 이상 이름도 나오지 않는 엑스트라 학생들이 알아서 잘 싸울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작품 외적인 면으로 프라우다 고교의 이런 면모는 설정상 모티브가 구 소련이기 때문에 소련 특유의 경직된 지휘 체계를 그대로 옮겨와서 그런 것이라는게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1 극장판 친선경기에서도 논나의 실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토끼팀이 결승전에서 야크트티거를 격파할때 썼던 상대 전차의 포신 부앙각 안으로 들어가 공격을 막는다는 전술을 논나는 보자마자 즉각 눈치채고는 IS-2의 궤도로 토끼팀의 M3 리를 튕겨낸뒤에 포격 각도가 잡히자 그대로 영거리 직사격으로 너무나도 손쉽게 파훼합니다.)

 

 

제63회 전차도 전국대회 결승전 - 쿠로모리미네 여학원

 

한줄 정리 : 독이 된 최종보스 보정 + 니시즈미류의 이름값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설정상 니시즈미 미호가 재학중이던 시절에는 전국대회 9회 우승을 자랑하는 전통의 강호. 허나 본편에서는 정말 강호가 맞기는 한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바보군단으로 묘사되는데, 본편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문제점은 전열을 구축해 포격하는 훈련은 쌓았지만, 역으로 매뉴얼에 너무 익숙하다보니 임기응변에는 곧잘 대응하질 못한다는 점. 상대가 자기들보다 확연히 약해빠진데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휘둘리다보니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감정을 우선시하다보니 머리에 피가 몰려 판단력을 상실했다는 점, 그리고 은연중에 언급되는 니시즈미 마호 혼자서 다 해먹는 지휘체계가 지적됩니다.

 

 

상세하게 보자면, 처음부터 압도적인 물량과 기동력으로 속전속결로 해결을 보던 초반부에는 나름대로 강호답게 깔끔하게 전열을 갖추고 적의 사소한 저항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 포격전으로 오아라이를 압박하고 오아라이가 둔덕에 진지를 구축해 서로 포격을 주고받을때는 포탄을 낭비하기만 하고 도리어 상대에게 격파당하는 팀원들에 비해 니시즈미 마호는 '가장 장갑이 두껍고 가장 화력이 강한 야크트티거를 방패로 내세우는' 대처로 단숨에 오아라이의 저항을 틀어막고 포위망을 좁히죠.

 

하지만 이것이 게릴라 전술을 위해 따로 빠졌던 거북이팀의 헤처가 난입하면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는데, 덩치가 큰 중전차들이 뒤섞인 상황에서는 본래가 경전차 기반 구축전차라 차체가 낮은 헤처를 제대로 공격하는게 불가능한데다, 상정 외의 상황이던 헤처의 난입에 당황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전열이 붕괴됩니다. 이 틈에 오아라이는 그나마 가장 튼튼한 포르셰 티거를 방패삼아 앞세워 포위망을 돌파하고 시가지로 이동하게 되죠. 이때도 헤처의 존재 자체에 당황해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팀원들에 비해 마호는 헤처의 존재를 눈치채자마자 '바로 근처 차량을 지목해 헤처를 공격하게 하여 거북이팀의 기습을 틀어막는' 판단능력과 대응을 보여줍니다.

 

여기서도 마호는 미호가 시가지에 자신들을 끌어들일 것이라는걸 이미 예측해둔 상태였고 오아라이는 이내 쿠로모리미네 최강의 전력이자 결승전의 중간보스, 초중전차 마우스와 맞닥뜨립니다. 순식간에 하마팀의 3호 돌격포와 오리팀의 샤르 B1 bis가 일체의 저항도 용납없이 박살나고 이후 마우스의 서포터였던 3호 전차를 어떻게 운좋게 처치한 뒤에 혼자 남은 마우스를 사오리의 한탄에서 얻은 힌트로 즉석에서 마우스 공략전을 벌여 중간보스 마우스를 처치하지만, 마우스는 마지막까지 헤처를 길동무로 끌고가면서 오아라이의 발을 묶는다는 임무를 완수하고 퇴장. 덤으로 이 마우스의 합계 3량 격파가 쿠로모리미네가 취득한 가장 높은 전적...

 

그리고 최후에는 각자 분산해서 적을 상대하며 플래그 차량을 고립시킨다는 최후의 작전을 시동. 니시즈미류의 마음가짐에 따라 반드시 언니인 마호가 따라올거라 생각한 미호는 4호 전차를 폐교로 몰고가 플래그 차량 티거를 고립시키고 유일한 입구마저 레오폰팀의 포르셰 티거로 봉쇄시키며 1:1 진검승부의 상황에 몰아넣는데 성공합니다. 이 와중 토끼팀은 혼자서 엘레판트를 격파시키고 야크트티거를 동귀어진으로 끌고가면서 장렬히 퇴장, 레오폰팀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호가 승부를 결판짓는 끝까지 입구를 막는 방패가 되어줬으며 집오리팀도 상대를 분산시킨다는 목적은 어떻게든 완수하며 퇴장. 제63회 전차도 전국대회는 오아라이의 승리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일단 대장인 니시즈미 마호는 동생이 어떻게 행동할지 한 수 앞서서 수를 읽고, 헤처의 기습에도 늦게나마 대처하는 등, 판단 능력이나 전략적 역량은 최고 수준으로 묘사됩니다. "플래그 차량을 노려라"는 명령을 던져주고 자신은 동생을 추격하며 왕자로서의 싸움에 임한건 나머지 팀원들이 자신이 없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목표에 대처하길 바란거겠죠. 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휘하 팀원 개개의 판단능력은 참으로 처참할 정도인데, 부관이라는 이츠미 에리카는 지휘는 커녕 계속 마호에게 지적 받는다던지 감정에 휩쓸리기만 하여 도저히 부관으로서의 자질은 빵점. 대장은 독단 행동에, 대장이 부재중이더라도 전장의 상황을 읽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지휘를 내려야 할 부관은 눈 뜬 장님. 지휘관들이 이 모양이니(1) 휘하 팀원들은 헤처가 난입하자마자 당황하며 어쩔줄 모르다가 각개격파 당하고 시가지에서도 목표를 상실한채 감정에 휩쓸려 단독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엘레판트는 고정식 포탑을 가진 구축전차 주제에 회피기동도 못하는 죽음의 함정에 알아서 발을 들이밀었고 야크트티거도 자기 전차의 포신 길이와 제동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포신의 부앙각 문제로 적이 접근하자 어쩔줄 몰라하고, 적을 잡는데 성공하자마자 자기 자신도 도랑으로 곤두박질 치며 동귀어진. 게다가 냉정하게 판단하자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89식의 포격에 분노하며 감정에 휘둘리는 쾨니히스티거의 전차장도 포인트. 

 

거기에 원래는 마호의 지휘와 판단을 미호가 다른 팀원들에게 중계해주면서 유기적인 합동 전투를 구축해 싸우는게 쿠로모리미네의 본래 모습이라는데, 이미 미호가 떠난 지금 상황에서는 결국 마호 혼자서 모든걸 해결하다보니 자연히 지휘체계는 경직되게 마련이고, '왕자 다운 싸움'을 강요하는 니시즈미류의 가풍(2) 등의 중압감이 겹치는 바람에 니시즈미 마호는 결국 질 위험이 큰 싸움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다가 동생에게 패배하게 됐죠. 공식 스핀오프 리본의 무사에서도 완고하고 권위에 약한데다, 니시즈미류와 니시즈미 자매에게 모든걸 믿고 맡기면 된다는 생각이 퍼졌고, 니시즈미류의 대한 이해도 부족한 상태로 9연패까지 했다보니 이렇게까지 실력이 처참하게 약해졌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작품 외적으로 쿠로모리미네가 이정도로 오합지졸 바보군단이 된건 결국 쿠로모리미네가 TVA의 최종보스이기 때문입니다. 스탭들도 사실 처음에는 오아라이가 패배하는 쪽으로 설정했으나, 그럼 어떤 이유를 붙여봐도 해피엔딩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오아라이가 이기는 걸로 방향을 잡고 어떻게 하면 이 강팀을 꺾을 수 있는지를 고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3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숫적 우위(8:20), 초중전차 마우스를 필두로 한 독일 후기 중전차 편제의 압도적인 전투력(실상 오아라이 정도는 손쉽게 박살내고도 남는 수준), 애니메이션 적 허용에 의한 스펙 보정에 의해 정상적으로라면 오아라이가 결코 이길 수가 없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이기게 하기위해 쿠로모리미네는 결국 저 세가지 이외에는 도통 다른 학교보다 나은 것이 없는 학교가 되고 말았고 도대체 그간 어떻게 9회전이나 이긴건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이후 극장판에서 연합팀으로 참전, 니시즈미 자매의 장기인 마호의 지휘와 판단 + 미호의 중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자 다양한 학교들이 모인 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지휘하고 명령하면서 대학생팀과 혈투를 벌여 승리하며 간신히 체면치례.

 

종합적으로는 작품 외적으론: 최종보스라는 포지션의 한계 + 작품 내적으론: 팀워크의 부재 + 지휘관에서 비롯된 지휘체계의 강직 + 매뉴얼에는 익숙하지만 그만큼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와 임기응변 미흡 + 항상 왕자다운 싸움을 고집하는 니시즈미류의 가풍과 거기서 비롯된 심리적인 중압감이 쿠로모리미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고 그 약점이 제대로 부각된게 바로 TVA 결승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1 위쪽에서 똑같이 지휘능력을 지적받은 카츄샤도 플래그 차량의 경거망동을 삼가게 하고, 최소한의 호위(KV-2)는 붙여줬으며 선더스의 케이 역시 아리사가 위기에 처했다는걸 파악하자 즉각 파이어플라이의 포격을 지시, 17파운더의 포성을 통해 아리사에겐 원군의 지원을 알림과 동시에, 오아라이에겐 적의 본대가 온다는 심리전을 벌이는 식으로 상대 팀 학교들의 지휘관 캐릭터들은 기본적인 상황판단과 지휘능력 자체는 최소한 기본은 하는 걸로 묘사됩니다. 안치오 역시 마찬가지로 안초비에 지시에 따른 고급 전술로 상대적으로 모자란 차량 스펙을 보완하는게 주 전법이라고. 또 세인트 글로리아나의 오렌지페코나 안치오의 카르파초같은 부관 캐릭터들도 최소한 이츠미 에리카같은 눈 뜬 장님은 아니었죠.)

 

(2 이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 중의 하나가 항상 선두에서 돌격했던 플래그 차량 티거의 모습. 오아라이를 비롯한 다른 학교는 플래그 차량의 단독행동을 최대한 방지하고 프라우다처럼 최소한의 호위는 붙여주거나 안치오 처럼 항상 소수의 아군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쿠로모리미네의 플래그 차량은 니시즈미류의 이름값 때문에 항상 선두에 나서야 싸워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혀버립니다.)

마키
東京タワーコレクターズ
ありったけの東京タワーグッズを集めるだけの変人。

6 댓글

마드리갈

2017-01-10 14:45:25

사실 현실의 스포츠도, 실책이 하나하나 쌓이고 나면 정말 어이없는 결과가 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그렇다 보니 전통의 강호가 만년약체라고 평가되던 그런 팀에 역전패를 당한다든지 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그리고 그런 게 없으면 처음부터 정해진 승패인데 스포츠를 즐겨야 할 이유가 생기지도 않을테니까요.


역시 잘 요약해 주셨어요.

특히 공통적으로 잘 보이는 것이 프라우다와 쿠로모리미네의 경직성. 프라우다에서 카츄사의 말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것과, 쿠로모리미네에서 마호의 명령에 의심없이 따르는 것은 묘하게 다르면서도 상당부분 겹치죠.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프라우다의 팀원은 카츄샤의, 그리고 쿠로모리미네의 팀원은 마호의 장기말에 불과한 것이죠. 장기말은 누가 손으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해요. 이미 이런 데서 한계는 노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 장기말을 움직이는 손이 묶이면 그때부터는 배드엔딩 확정이예요. 쿠로모리미네가 바보 오합지졸군단이라기보다는, 이전의 경기에서는 마호의 지휘스타일이 초기에 상대팀을 궁지에 몰아넣는 데에 성공했기에 약점이 드러날 리가 없었다고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고 보니 세인트 글로리아나의 다질링이 이런 말을 했죠.

"영국인은 연애와 전쟁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즉, 어떤 상황이 오든간에 대처하고, 그리고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고야 만다는 것. 생각해 볼수록 꽤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어요. 오오아라이의 시가전으로 이어가는 전술을 평가하는 그 말과 겹쳐 보니 더더욱.

마키

2017-01-11 14:03:35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때도, 아무리 상대가 전통의 강호 독일 전차군단이라지만 상대인 브라질 대표팀도 FIFA 소속 팀 중 가장 월드컵 우승을 많이 한 카나리아 군단에,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갖는 만큼 누가 이기고 지던 승패 상관없이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줄거라 사람들은 생각하고 믿었지만 결과는 브라질 1 : 7 독일 이라는 말도 안되게 경악스러운 결과로 브라질은 굴욕적인 대패와 함께 격침... 우리나라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고 그의 지시를 존중하고 따라와준 결과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가는 기적을 일으켜보였죠.

 

사실 본문은 좀 악의적으로 쓴 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실상 본편에서 서술한 약점이 드러나지 않은건 순전히 이번 경기의 상대가 니시즈미류 직계인 니시즈미 미호였으니까요. 그 이전까진 결국 약점이 드러날 새도 없이 상대를 압도적으로 격파했다는거니 약점이 드러날수가 없었고 결국 니시즈미류를 적으로 상대하고서야 약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거라 생각합니다. 뭐 이런 속사정을 접어두고 보면 바보군단까진 너무 갔다 해도 오합지졸이라는 말이 딱이죠.

 

다질링이 또 굉장한게 오아라이도 꽤나 늦게서야 눈치챈 통신 방수기와 통신감청을 사실상 전장의 상황 중계(오아라이의 움직임을 너무나도 잘 보고 이해하는 선더스)만 보고 짐작으로 아리사가 통신을 도청하고 있다는걸 눈치챌 정도고, 프라우다 전에서도 플래그 차량을 미끼로 돌격시키는 강수를 보고 직감적으로 함정임을 파악하기도. 극장판에서도 어디 가지 않아서 로즈힙의 크루세이더와 포격의 연막에 의해 시야 확보도 안된 상태에서 크루세이더의 포탄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만 듣고 바로 크루세이더의 포탄이 먹히지 않는 전차(= T28 초중전차)가 출격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로즈힙에게 후퇴를 명령할 정도니 완전히 전장의 상황을 손바닥 안에서 놀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듯하네요.

SiteOwner

2017-01-14 15:14:51

꽤 긴 글이지만 단숨에 잘 읽혔습니다.

그런데 코멘트를 한참 작성하고 있다가 갑자기 에러로 쓰고 있던 것들이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생각나는대로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서명은 2행 이내로 조정해 주십시오. 현재 상태로는 사이트 레이아웃이 변형되어 버립니다.

마키

2017-01-15 08:05:55

괜찮습니다. 급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단상이라면서 이렇게 내용이 무시무시하게 증가해서 도리어 읽기 귀찮으면 어떡하나 하고있네요.


서명은 일단 고쳐뒀습니다.

블로그 걸 그대로 들고오니 뭐가 어긋나는 모양이네요.

SiteOwner

2017-01-17 20:11:56

이제야 마음을 추스려서 다시 코멘트를 합니다.


맛있는 먹이에는 독이나 낚시바늘이 들어있기 마련이고, 사슴을 쫓는 자는 그 사슴에 정신이 팔려 숲이 있는 것을 못 보고 말아 버립니다. 그것이 여러모로 잘 보이는 게 바로 걸즈 운트 판처에서의 각 팀원의 행동이지요.

그런 점에서 다질링은 그것들을 정말 잘 보고 있는, 적으로 돌려서는 안되는 최우선순위의 인물입니다. 게다가 성우가 상당히 고고하고 기품있는 연기가 출중한 키타무라 에리이다 보니 더욱 그런 점이 잘 느껴집니다.

그리고 뛰어난 지휘관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들만으로 모든 것들이 잘 풀리지만은 않습니다. 개별 팀원의 자질도 그만큼 중요하기 마련이고, 지휘관의 지휘를 잘 해석하여 실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갑자기 예측불허의 상황에 빠졌을 때 최대한 빠른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철저히 일신전속적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갑자기 엄청난 정보가 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게 역정보일 것임을 판단못한 선더스의 아리사, 생면부지의 자칭 선배들에게 고급정보를 아무 의심없이 늘어놓는 프라우다의 팀원들, 감정이 폭주한 나머지 막나가는 쿠로모리미네의 에리카 모두 개별 팀원의 자질이 지휘관의 역량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쿠로모리미네가 어떻게 그 실력으로 작중의 최종보스인 것일까에 대해서 위에서 동생이 말한 게 있지요. 이전의 역대 대회에서는 마호의 지휘스타일이 초기에 상대팀을 궁지에 몰아넣었기에 고유의 약점이 드러날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 볼 까 합니다.

자, 걸즈 운트 판처 세계관에서 니시즈미류 전차도가 어떻습니까? 사실상 전차도의 신이자 교범으로 일컬어지는 뭔가 절대강자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호는 전차도가 싫어서 전차도가 없는 학교인 오오아라이로 전학, 그런데 거기서도 역시 언니 마호의 존재가 거론되며 니시즈미류 전차도가 자신에게 덧씌워지고 말아 버립니다. 그런데 마호가 아무리 쿠로모리미네의 대장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마호는 미호의 언니일 뿐이지요. 즉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밖에서 엄청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집안에서는 한 가족, 그러니 미호에게는 외부인이 마호에게 가지는 그런 중압감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쿠로모리미네의 전술로 돌아와 볼까요?

처음부터 대장이 진두지휘하면, 다른 팀은 니시즈미류 전차도의 네임밸류에다 대장이 앞장선다고 그러니 그 자체가 공포스러울 것입니다. 플래그 차량이 최대한 발각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칙인 전차도에서 마호의 지휘스타일은 확실히 파격적이고 그래서 대응하기 까다롭겠지요. 그러니 다른 팀에게 쿠로모리미네는 처음부터 전격전으로 나서는 공포의 군단일테고, 그렇다면 이미 멘탈이 박살난 상대팀은 쿠로모리미네의 약점 따위는 찾아내지도 못하고 패하고 말아 버립니다. 이런 효과가 여동생 미호에게는 통할 리가 없지요. 마호가 파격적인 것처럼 미호도 파격적인 것은 자매가 닮았고, 그 방식이 마호는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기동전, 미호는 온갖 기지를 발휘하여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유리하게 바꾸는 것으로 달랐을 뿐입니다. 이렇다면 쿠로모리미네의 실력과 오오아라이의 기막힌 승수쌓기가 모두 설명되기 마련입니다.

마키

2017-01-22 12:04:45

전쟁도 일선 부대가 아무리 잘 싸워 전투에서 이겨봐야 그걸 통제하는 수뇌부가 바보면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치도록 많고, 스포츠에서도 아무리 뛰어난 감독, 아무리 뛰어난 선수를 영입한다 하더라도, 팀워크나 팀원 개개의 자질 문제가 겹치면 제아무리 월드컵 우승 5회에 빛나는 전통의 명가 카나리아 군단이라도 홈그라운드에서 전차군단에게 무참히 짓밟히기 마련이죠.

 

걸즈 앤 판처도 마찬가지로, 세인트 글로리아나는 다질링이나 오렌지 페코 등을 포함해 시종일관 우아하고도 아름답기까지 했다면 안치오는 아예 승패 같은건 신경쓰지 않고 그냥 한바탕 신나게 치고박고 싸우는 그 자체를 즐기는 느낌이라 이기건 지건간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죠. 페퍼로니야 그렇다 치더라도 안초비의 전술은 당시의 안치오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었고, 카르파치오 같은 경우도 자신과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싸운 덕분에 동귀어진으로 체면치례는 했지만 프라우다나 쿠로모리미네는 먼저 갖춰진 작전대로 대열을 이루어 싸우는데엔 익숙하지만, 막상 그 작전이 붕괴되면 어쩔줄 몰라한다는게 문제죠. 여기에 본문이나 코멘트로 지적한 대로 지휘관들의 지휘 문제까지 겹치면 아무리 강호라도 패배하는게 당연해보일 정도...

 

뭐 반쯤은 마드리갈님의 코멘트에 단 대로 어느정도 악의나 조롱이라고 할만한게 섞이긴 했습니다만(특히 에리카), 뭐 대체로는 두분이 말씀하신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약점이 드러나지 않게 속전속결로 해치웠지만, 하필 이번에는 상대가 니시즈미류 직계라는 예상 외의 적이었으니... 또 극장판 등의 언급을 보면 의외로 오아라이에 와서도 미호의 스타일, 그리고 니시즈미류의 정석인 '전열유지와 한발 빠른 기동, 플래그 차에 대한 기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즉, 쓸만한 차량이 없으니까 정석을 베이스로 오아라이의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꾼다는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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