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는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꽤 많아요.
그리고 지금의 이 순간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게 느껴지거나 그냥 대수롭지 않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고 있어요. 과연 지금의 일상이 일상이 아니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장거리열차를 타기 전에 대기시간을 이용해서 KFC에서 수퍼박스 메뉴를 구입해서 먹는 경우가 있어요.
일례로 징거박스에는 징거버거, 후렌치후라이, 음료와 더불어 치킨과 에그타르트도 들어 있는데, 그것들을 별 생각없이 먹고 있다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가 특히 AI가 대유행중이라서 닭을 대량 살처분하는 뉴스 그리고 계란 가격의 폭등 뉴스가 자주 들렸다 보니, 이렇게 당연하게 먹고 있는 것들이 어느 시점에서는 당연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그리고 지금 이렇게 누리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사치일 수도 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게 되네요.
패스트푸드 관련으로 또 하나.
어느 패스트푸드 체인이든지간에 판매하는 음식은 미리 레시피가 결정되어 생산되고 있고, 그래서 각 매장의 인력의 대다수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상식. 그러니 패스트푸드점에 레스토랑의 주방장같은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한 상식이예요. 그런데 끊임없이 사람들이 탈출하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이게 상식이 아니라고 하네요. 특히 꿈이 맥도날드 주방장이라는 난민도 있다고 하네요. 저개발국에서 그런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음식은 아주 비싸고, 그래서 방문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기에 우리에게 당연한 상식이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이렇게 입증되고 있어요.
이번에는 편의점 관련으로 하나.
담배갑에 온갖 혐오이미지가 인쇄되어 있는 것을 직접 보고 기겁했어요.
저는 매주 로또를 구매하고 있고, 많은 경우 편의점에서 사고 있어요. 그런데 편의점에 따라서는 로또발매기와 담배매대가 가까운 경우가 있고 오늘 방문한 편의점도 그 구조예요. 그런 곳에서 로또를 구매하게 될 때는 싫든 좋든 담배매대가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보고 나니 확실히 속이 좋지 않네요. 특히나 그런 데에 내성이 별로 없다 보니...
담배갑에 혐오이미지를 인쇄해 놓으면 구매욕구가 낮아질 것이고 그래서 금연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별로 검증되지 않은 일상이론(Alltagstheorie)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생겨요. 어차피 흡연자들이 담배의 해악을 몰라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닐텐데 그런 건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당장 비흡연자인 제가 그 혐오이미지와 눈이 마주치면서 기분이 나빠졌고, 카운터의 직원은 그걸 볼 때마다 정말 괴로울텐데...
이렇게 몇 가지 스치고 지나가기 쉬운 몇 가지를 요즘 들어 다시금 생각하게 되어요.
반년동안 문제였던 발끝통증이 해소되다 보니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 여유도 나는 건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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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댓글
안샤르베인
2017-01-31 21:10:52
전 닭고기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 AI 유행이란 말 볼때마다 닭고기 비싸지는거 아닐까 마음을 많이 졸이는 편입니다. 이번에 계란 한판에 만원 넘어가는걸 보고있자니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무서웠어요.
마드리갈
2017-01-31 21:18:23
그다지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치킨이 어느 순간 선택지에도 넣을 수 없게 될 수 있는 상황은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그래도 일반소비자로서는 좀 덜 먹으면 되는 문제라고 치죠. 그런데, 양계산업 각 분야가 받을 타격과 현장 대량살처분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겪을 트라우마는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찍해져요. 한번 그렇게 병이 돌고 나면 신뢰를 다시 얻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멀쩡한 가금류들을 그렇게 죽여서 파묻는 것은 정말 못할 일이니까요. 그것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도 들었어요.
Exocet
2017-01-31 22:04:31
자신의 일상속에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일상속에서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되는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계란이라던가 세끼 식사라던가... 저희집은 계란 가격이 올라도 그냥 평소대로 먹었기에 별 문제를 못 느꼈지만 식당이라던지에서는 큰 문제였을테니까요.
저개발국에서는 맥도날드등의 패스트푸드가 우리의 시선보다는 고급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지 않을까(편견같지만요) 생각해요. 그래서 주방장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을거라 생각해요. 우리가 고급레스토랑등을 보듯이 말이죠.
그리고 담배... 애매하죠.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는 막아야 하지만 중요한 세금 공급원이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고 있다는 척하기 위해 그런 조치를 한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마드리갈
2017-02-01 19:17:07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전환이라는 거대담론까지 동원하지는 않더라도, 역시 중요성이 느껴져요, 자신의 일상만을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저개발국에서 그런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예요. 생일파티 같은 행사를 맥도날드같은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점 체인에서 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1990년대만 하더라도 그런 분위기가 저개발국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꽤 있었다고 해요.
담배라는 게 참 기묘해요. 분명 좋은 건 아닌데 그래도 대마초나 마약 같은 것보다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해악이 적고, 게다가 중독성이 강해서 사회적으로 허용할 수준이면서 꾸준한 세금수입원이 될 수 있으니 항상 딜레마의 중심에 놓이게 되어요.
HNRY
2017-02-01 00:03:49
뭐어 아주 간단한, 물을 사먹는다는 개념이 정착한 것도 인류 역사상 얼마 되지도 않았죠. 그러나 물마저도 사먹을 수 없는 곳은 물보다 싼 음료수, 그마저도 안되면 오염된 물이라도 마셔야 하지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또는 상식이라고 생각하던 것들 중 과거엔 아니었던 것도 있고 설령 같은 시간대라도 다른 어딘가에선 그게 상식이 아닌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죠.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섬뜩할 지도 모르겠지만 미래에 사는 누군가에겐 그것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굉장히 미묘한 기분이 들긴 합니다.
담배에 관해서 개인적으론 관점이 다릅니다. 분명 필 사람은 다 피겠지만 반대로 끊을 사람은 다 끊을 것입니다. 흡연자라고 무조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어린 시절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가 담배를 끊고 10년 이상을 피지 않으신 점에서 말이죠. 그리고 마드리갈님이 느끼신 그 혐오감은 현 흡연자에겐 효과가 미미할지 몰라도 신규 흡연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되어줄 수도 있죠. 어차피 인류가 담배의 해악성을 깨달은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얼마 되지 않고 그렇기에 단기간에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해도 그건 어려운 일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규 유입자의 장벽을 높이는 편이 흡연 인구를 줄이기 보단 더 쉬울지도 모르지요.
Exocet님의 의견이 보이니 덧붙입니다. 비록 현 시국이 혼란스럽긴 하지만 이런 것조차 음모론으로 치부하기에 금연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고 어떻게든 담배를 근절하기 위해 뭐라도 하려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행 주체가 찝찝하긴 해도 좋든 싫든 언젠간 이런 날이 오리란 것 정도는 개인적으로 염두해 두긴 했었습니다. 제 비위가 강한 것도 있겠고(일정 수준 이상이면 본인도 못버티지만...) 개인적으로 담배를 정말 싫어하던 입장에선 차라리 잘됐다 생각되네요.
Exocet
2017-02-01 00:10:57
뭐 제 의견은 별 근거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까요. 절대 사실은 아닐겁니다.
마드리갈
2017-02-01 19:28:33
그렇죠. 말씀하신 물을 사먹는다는 개념도 정착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우리의 신변에서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닌데다 비록 동시대라고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역시 상대적인 관점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확실히 피울 사람은 피울 것이고 끊을 사람은 끊겠죠. 물론 저도 금연에 성공한 사례를 주변에서 봐 왔기에 그건 부정할 생각이 없어요. 게다가 분명 신규 흡연자의 유입에 제동을 거는 수단으로서 그 혐오이미지가 기능할 수도 있을 거예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 상정하지 못했던 역효과도 간과해서도 안된다는 것이예요. 만일 매대의 구조가 카운터가 있는 벽에 걸려 담배갑 표면의 혐오이미지가 누구에게나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카운터 위에 걸려 있어서 담배갑 표면이 점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보이지 않는 형태라면 그 효과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직원이 그 담배갑을 보았을 때의 고통 또한 고려해야 할 거예요.
Papillon
2017-02-01 01:08:05
담배갑의 혐오스런 이미지를 넣는 것이 의외로 꽤 효과를 보고 있다고는 합니다. 마드리갈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 흡연자가 금연을 하게 될 확률은 낮은 편이지만 HNRY 님이 말씀하셨듯이 신규 흡연자가 늘어나는 것을 줄일 수 있다더군요.
마드리갈
2017-02-01 19:37:54
북미, 서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담배 소비량이 점차 줄고 있는데, 역시 그 혐오이미지도 한 축을 담당하는 건가 봐요. 그것 이외에도 판매가격 높이기, 일본의 taspo와 같이 구입 방법을 까다롭게 만들기, 흡연 가능한 장소를 최대한 없애기 같은 방법이 여러모로 강구되고 있고, 그러면 신규 흡연자로서는 여러모로 장벽이 늘어나니 흡연에의 욕구가 많이 좌절될 거예요. 그렇지만 기존 흡연자들에게는 결국 자신의 의지만이 관건으로 남아있을테고, 참 어렵네요. 결국 신규 흡연자의 증가를 억제하여 점진적으로 담배를 추방하는 게 가장 나은 대안 같네요.
콘스탄티노스XI
2017-02-01 22:32:36
마드리갈
2017-02-02 18:25:28
그래서 한번 잃은 신뢰라는 게 회복하기 힘든 법이예요.
대법원 판례에도 비슷한 게 있어요. 타인이 사용하는 커피잔에 소변을 본 것도 손괴죄에 해당한다고. 이유는, 실제로 물리적인 손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사용자가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그것도 손괴의 개념에 해당한다는 것이라네요.
Bad ass형 캐릭터의 흡연장면이 멋있게 보인다...그렇군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하긴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술, 담배를 안하면 사나이가 아니라는 인식도 있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어요.
대왕고래
2017-02-02 02:09:20
전부 생각해볼 수 있었을법도 한데, 그냥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들이네요.
담배에 대해서는 "좀 그렇지 않나"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뭐 무슨 방지책? 뭐 그런거라니까 넘어가자" 했는데, 닭에 대해서, 패스트푸드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좀 생뚱맞지만, 그런 시야를 갖는 것도 어쩌면 발상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거 같고요. 남들이 놓치는 것에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죠.
마드리갈
2017-02-02 18:38:58
이 기회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사고의 폭이 좁았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고 있어요.
요즘 확실히 그런 것들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다른 발상으로 보면 세계의 여러 단면이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세하게 보이고, 그것들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 제 글이 그 단초가 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것 등을.
마키
2017-02-02 09:20:42
본문하고는 좀 벗어난 이야기인듯 싶지만 아라이 케이이치의 만화 '일상'에선 이런 대사가 나오죠.
"우리가 하루하루 보내는 일상이란 실은 기적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마드리갈
2017-02-02 19:14:04
인용하신 대사,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예요.
우리의 일상이라는 게 하나하나 뜯어보면 정말 놀라운 것들이 많죠. 가령 길을 다니는 데에는 몇십 cm 정도만 잘못 서 있어도 대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알면 역시 매 순간이 소중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져요.
본문과 벗어난 건 아니니 걱정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