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년 스테판 프르보벤차니가 사망한 이후 사바 네마니치는 세르비아 대주교의 자격으로 스테판의 큰아들이자 공동통치자였던 스테판 라도슬라브에게 왕위를 수여했다. 라도슬라브는 에브도키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비잔틴의 영향하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다. 이후 그는 비잔틴 황제 테오도르 1세 안젤로(Tedor I Andjelo)의 딸 아나와 결혼했다. 수도승이자 작가였던 테오도시예의 말에 따르면 세르비아의 왕 스테판 라도슬라브는 처음에는 <훌륭한 통치자>였으나 이후 자기 아내의 <나쁜 영향>아래 빠져들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에 '두카'(Duka)라는 비잔틴 황제의 성을 덧붙였으며, 그리스어로 결제 사인을 했다. 두카라는 이름은 그가 발행한 동전에도 등장한다.(중략)
1233년, 래쉬카의 귀족들은 라도슬라브를 왕위에서 축출하고 그의 동생 블라디슬라브를 옹립했다. 라도슬라브는 잠시 두브로보니크와 드라츠에 머물렀으며, 이후 세르비아로 돌아와서는 요반이라는 이름으로 수도승이 되었다. 스투데니짜 수도원에 묻허있다.
-'세르비아 역사', 두샨 바타코비치 지음.
고유명사는 책에 나온대로 적었습니다.
우선 해당책에서 테오도르 1세 안젤로는 에페이로스 군주였던 테오도로스 1세 콤네노스 두카스로 보입니다.(그의 이복형 미하일이 콤네노스 두카스를 칭하기 전까진 그의 성 역시 앙겔로스였기에...)이후 불가리아 차르 이반 2세 아센에게 격파당했다는 묘사로 보아 확실합니다.(사실 찾아보기전까진 테오도로스 1세 라스카리스로 알았습니다...반성 또 반성.)
그리고 스테판 라도슬라브가 썼다는 성씨인 두카도 두카스가 거의 확실한데, 이로 인해 한가지 추측해볼게, 당시 비잔티움제국이 박살나고 수많은 계승국으로 나뉘었던걸 생각해봤을때, 라도슬라브는 두카스라는 옛날 비잔티움이 잘나갔을(물론 내부로 곯아간 때지만...)때의 성씨를 사용해 새로운 비잔티움 제국의 계승국을 세르비아에 세우려한게 아닐까?싶습니다. 실제로 에페이로스의 군주들이 자신들이 본래쓰던 앙겔로스의 성씨를 버리고 '콤네노스 두카스'라는 성씨를 쓴것처럼요.
뭐, 그 결말은 그의 후손인 스테판두샨처럼 확실한 군공을 세운것도 아니라서 토착귀족들의 불만을 사 축출당한 거지만요.
도시가 무너져 가는데, 나는 여전히 살아있구나!-1453, 콘스탄티노플에서. 유언.
https://en.wikipedia.org/wiki/Constantine_XI_Palaiologos-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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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17-06-12 12:21:45
역시 정통성 확보의 수단으로 손쉽게 쓸 수 있는 게 과거의 거대한 유산에 기대는 건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결국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어내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고, 결국 라도슬라브 왕은 왕위에서 밀려나고 말았네요. 그래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인 걸까요?
라도슬라브가 폐위된 뒤에 머물렀던 곳에 오늘날 관광지로 유명한 두브로브니크가 있네요.
나중에 동유럽 여행을 하게 된다면, 두브로브니크에서 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어요.
콘스탄티노스XI
2017-06-12 16:26:15
아무래도 정통성을 얻으려면 외부의 후광에서 얻는게 좋긴 하죠. 다만 이경우엔 그 외부세력이 쇠퇴하거나 지도자 본인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말짱도루묵이지만요.
SiteOwner
2017-06-12 19:41:14
좀처럼 접하기 힘든 세르비아사의 여러 단면을 소개해 주시는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러모로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역시 비잔틴 제국의 후광이 참으로 지대했던 것 같습니다. 정통성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과거의 대제국의 계승을 내세우는 것은 그야말로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는데, 잘 되면 다행이지만 잘못되면 나라의 운명은 물론이고 자신의 일생도 망치기 십상입니다. 위대한 군주가 될 수 있었지만 결국 실각해 버리고 만 라도슬라브 왕의 운명이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콘스탄티노스XI
2017-06-12 19:58:40
아무래도 중세 동유럽에서 비잔티움의 위상은 같은 시기 중국, 아니 그이상이었으니깐요. 무너지기 직전인 15세기에서도 정교회국가들의 명목상 중심지역할을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