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안녕하세요. 여전히 평소와 다를게 없게 지내는 HNRY입니다.
해외 뉴스들 중 서아시아 뉴스들을 요즘 자주 접하는데 뭐랄까, 제목 그대로 혼돈 그 자체네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풀어놔 보고 싶습니다.
1. 레반트 전국시대
갑작스럽게, 허나 그 싹은 확실히 움트고 있었고 이슬람권의 혼란을 틈타 싹을 틔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 줄이면 ISIL인데 좀 더 줄이면 IS죠.(본인들도 앞부분을 떼고 이슬람 국가라 자칭했었고.) 아랍인권에선 이들을 다에시(Da?esh/????)라고 비칭하죠.
거대한 사이비 이슬람 제국을 꿈꾸던 IS도 결국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IS의 소굴도 모조리 소탕되어 모조리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허나, 다에시가 몰락했지만 시리아에서 전쟁의 불씨는 전혀 꺼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IS가 고개를 든 배경인, 시리아 내전의 당사자들인 시리아 정부와 자유 시리아군(시리아 반군)의 갈등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거든요. 잠시 IS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서 다시 내전이 발발할 위기가 발생하였는데.....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가 끼어들었습니다. 바로 터키지요.
터키는 이전부터 쿠르드 독립주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최근들어서 조금씩 당근도 줘보긴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론 채찍으로 억누르고 있었지요. 사실, 한편으로 터키는 오래전부터 쿠르드인들을 터키인의 일부로 여기고, 또 쿠르드인들의 땅을 자국의 영토로 여겨왔습니다. 당연하지만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에 걸쳐있는 쿠르드의 영역(이하 쿠르디스탄)을 수복해야 할 고토로 여기고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터키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시리아가 내전과 IS 소탕에 힘을 다 소진했다고 여겼는지 이윽고 시리아 영토로 침략을 시작하였습니다. 정확히는 시리아 쿠르디스탄, 그러니까 시리아 쿠르드족의 자치기구인 로자바가 통치하는 영역을 침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리아 정부에 적대적인 반군 일부가 터키군을 지원하는데 가담해버렸지요. 로자바는 인민방위대가 무장 조직으로 있지만 당연하지만 터키 정규군에게 이들은 상당히 벅찬 존재입니다. 옆동네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무장 조직인 페쉬메르가는 이라크 정부의 눈치를 보는 모양인지 터키와 터키 지원 반군을 비난하는 것 외에 직접적인 개입은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시리아 쿠르디스탄을 짓밟으며 시리아에 입성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만......고의인지 실수인지 지나치게 깊숙히 들어와 쿠르드의 영역을 넘어서 시리아 정부가 통제하는 구역까지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러시아의 경고 사격을 받고 말았죠. 시리아 정부는 아직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중이고 터키에게 러시아는 중요한 파트너이기에 순순히 물러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러나던 도중 또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누구냐, IS의 잔당들이었습니다.
일단 지도부가 와해되긴 했습니다만 아직 잔당들이 산발적인 저항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터키는 여기에 말려든 것이지요. 그 외에 시리아 정부는 쿠르드를 지원할 것을 선언했고 시리아군을 그곳으로 이동시키는 중입니다.
요약하자면 터키/시리아 반군 vs 시리아/쿠르드(+러시아)vs Is 잔당이라는 3파전이라는 구도가 성립되어버린 것입니다. 정말로 시리아엔 언제쯤 평화가 찾아올까요. 이젠 누구도 그것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2. 예멘 삼국지
한편, 레반트 지역의 반대편, 아라비아 반도 남쪽의 예멘 역시 혼란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북쪽의 시리아와 이라크가 내전을 겪고 있을 때 사우디 아라비아를 경계로 이곳 역시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요. 갈등의 시작은 아랍의 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예멘 민주화 운동 당시에 독재자 살레 대통령에 반대하는 세력으로서 본격적으로 무력활동을 시작했던 것이지요.(후티의 창설 자체는 좀 더 과거의 일) 일단 살레 대통령은 여론을 못이기고 후티와 동맹을 맺고 후계자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에게 정권이양을 하긴 했는데 여전히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으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후티를 처리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다 반군에게 암살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북예멘 시절부터 무려 33년을 지배해왔던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였지요.
허나 후티 반군은 죽은 살레의 후계인 하디의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시아파 신정국가 건립을 목표로 내전을 일으켰습니다. 이란같은 국가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몰래 이란의 후원을 받고 있기도 하였습니다.(일단 이란은 부인하고 있으나 후티의 무장 수준이 도무지 일개 반군이라곤 믿기지 않는데다 후티 정부를 정식으로 인정한 시점에서.....) 그리고 예멘 정부는 이들을 제압하는데 실패하고 수도인 사나를 이들에게 내줘야 했고 결국 아덴으로 피신을 가서 그곳에 임시정부를 차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가뜩이나 페르시아 만을 사이에 두고 서로 으르렁 대는 시아파 국가인 이란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새로운 시아파 국가의 설립을 두고 볼 수 없는 사우디 아라비아는 예멘 정부를 지원하기로 하고 군사를 투입합니다. 진짜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멘 정부가 맥을 못추는 사이에, 또 다른 반군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남예멘 분리독립자들이었습니다.
교과서로 배우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예멘은 한국이나 과거의 독일처럼 이념에 의해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통일의 과정은 결코 독일처럼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최초 통일 당시엔 합의에 의한 것이 맞았으나 남예멘은 이에 반발하였고 아랍 사회주의의 남예멘과 이슬람 공화주의의 북예멘이 내전을 벌였습니다. 이 내전에서 북예멘이 승리함으로서 완전히 흡수 통일당했던 것이지요. 반공의 색안경을 끼고 보면 자유주의의 승리 같은데.......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사실 남예멘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아랍에서 굉장히 세속적인 국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국교로 이슬람을 택하고 있었긴 하지만 그 수준은 서방권 기독교 국가 수준의 영향력이었죠. 소련의 영향을 굉장히 짙게 받았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전성기의 소련과 비슷했습니다. 여성들은 히잡을 쓸 필요가 없었고 남성들과 함께 똑같은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일부다처제는 금지되어 있었고 이혼도 가능했습니다. 여러 부분에서 서방권 세속주의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예멘이 흡수 합병당하며 모든 것이 반전되었습니다. 북예멘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은 철권 샤리아 통치 국가였고 통일 즉시 남예멘에 샤리아를 강요하였습니다. 세속적인 삶을 살던 남예멘 주민들에겐 지옥이 펼쳐졌던 것이지요. 그리고 통일 이후 긴 세월을 억눌려 지내고 있었는데.......드디어 기회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예멘 정부, 그러니까 구 북예멘의 후예들이 후티에 의해 수도에서 쫓겨나 임시정부를 차린 아덴은 하필 구 남예멘의 수도였습니다. 거기에 하디 대통령은 사우디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려 자리를 비운 상태였던데다 결정적으로 UAE, 그러니까 아랍 에미리트가 이 분리주의자들을 부추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하필이면 왜 남예멘이냐 따져보자면 애초에 페르시아 만 주변 국가들이 죄다 사이가 안좋은지라(...) 시아파인 후티 반군도 싫지만 에멘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도 싫으니 독자적으로 남예멘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그 동안 억눌려 있던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났고 예멘 임시정부는 꼼짝없이 아덴에 갖히고 말았습니다. 사우디로 피신해 있던 하디 대통령을 제외하고 말이죠. 에멘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반군들에게 당하고 있고 본 수도인 사나를 장악한 후티가 북예멘을, 임시 수도인 아덴을 장악한 분리주의자들이 남예멘을 통제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정리해서, 좁게 보면 시아파 vs 수니파 vs 이슬람 세속주의라는 이념적 갈등으로 인한 내전이기도 하지만 이란 vs 사우디 아라비아 vs 아랍 에미리트의 대리전이기도 한 상태지요. 다만 사우디 아라비아는 남예멘엔 그리 큰 관심을 안보이고 후티 반군을 박멸하는데에 신경쓰고 있는데 후티는 이란의 지원을 야금야금 받아먹고 있긴 하지만 영공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의해 막혀있고 영해는 이란측이 페르시아만을 통과해야 해서 제해권이 불안정하기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 일단은 사우디군을 상대하는데만 집중하는 중입니다. 남예멘 역시 제1의 주적은 예멘 정부(=구 북예멘 정부)이기에 후티와 직접적인 갈등을 빚고 있지는 않지만 단순히 구 남예멘의 영역만 차지하는 것에서 끝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요 후원자인 아랍 에미리트도 시아파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지라...
여기까지. 아랍의 소식을 들고 와봤습니다. 중동은 예전부터 세계의 화약고로 지목받은 곳이었죠. 일단 중동전쟁 이후로는 국가간 전면전은 피하는 듯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전쟁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양상은 그 때의 국가간 전면전 보다는 종파간, 부족간 갈등을 빌미로 한 대리전의 양상을 띄는 모양새입니다. 어느쪽이건 이곳에서 사는 주민들에겐 다 같은 지옥이지만.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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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마드리갈
2018-02-03 20:01:32
말씀하신 것처럼, 레반트 지역은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혼란과 난맥상에 앞날이 불투명하죠.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 레반트의 로마자 표기는 Levant이다 보니 그 지역에 이런 백크로님(Backronym - 역 두문자어)도 가능하다 싶었어요. Lost, Eradicated, Void of Any Natural Tranquility...즉, 무주공산이고 박살이 나서 어떠한 자연적인 평화도 기대할 수 없는 지역이랄까요. 대체 무엇이 그 지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는 것인지...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네요.
게다가 터키의 개입은 나토(NATO)와 러시아의 정면대결로 이어질 것이고, 답이 안 나오네요.
예멘 문제는 군사장비의 운용 측면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고가의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규군이 예멘의 게릴라세력에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상황에 경악 반 납득 반...이러고 있어요. 미국의 에이브람스 전차, F-15 전투기, 영국-독일-이탈리아 공동개발의 토네이도 전폭기 등이 열악한 예멘 반군의 무기에 피격되는 사례도 있는 걸 보니,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운용주체의 숙련도가 낮으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제대로 보여요.
게다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승인한 미국의 방침이 어떻게 작용할지...
개인적으로는 무슬림 월드 측에서 이스라엘을 제대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그 문제에 왈가왈부하는 게 불만이지만, 그건 그거고 국제정세는 국제정세이니...
HNRY
2018-02-04 18:18:54
일단 NATO 구성국들이 이라크나 리비아의 사레처럼 함부로 개입하다 더 엉망이 되고 군사비는 군사비대로 빠져나가는 걸 꺼리는 추세인데다 러시아는 아무리 그래도 터키는 NATO이면서 과거와 다르게 에르도안 정부에 들어서 러시아와 가까워지기 시작한지라 아마 쉬이 정면전으로 돌입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변수가 많긴 하지만....현재로선 그리 보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실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그럴싸한 근현대화를 이룩하긴 했지만 내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죠.
SiteOwner
2018-02-06 21:38:22
터키의 위치는 역시 조용해질 수 없는 위치인가 싶습니다.
19세기 외교사에서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대치하는 최전선이었고, 20세기 후반은 냉전의 최전선, 그리고 오늘날은 혼란상이 가중되어 한때 IS의 영향력에 빠졌던 레반트 지역과 인접하고 있고, 그래서 여러모로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멘은 실패한 국가의 3대장 중의 하나이죠. 다른 둘은 북한 및 소말리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예멘인들은 과연 이 땅이 희망이 말라죽은 전쟁터로 변할지 예측이나 했을지 싶습니다. 무역항으로 번성해 온 아덴, 커피의 이름에도 붙을 만큼 유서깊은 커피무역항 모카 등은 이미 쇠락한 지 오래 되었고, 국민들 대다수는 까트(Khat) 중독에, 이제는 온전한 농경지도 수자원도 없는데다 국민생활마저 극도로 황폐화된 예멘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고를 반복해서 누구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어야 평화가 깃들 것인지...
가장 무서운 싸움은 이방인들끼리가 아니라 같은 문화권 내의 사람들끼리 벌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