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1. 게임과 공시생과 사교육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2. "여자 몇 분?" 과 열정페이
간만에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시리즈를 재개합니다.
1990년대를 돌아보면, 지금처럼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유행이 삽시간에 전국을 휩쓰는 현상이 일어난 점이 참 놀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당대 인기최정상을 달렸던 여자연예인이 사용했던 액세서리가 TV방송, 패션잡지 등을 타고 전국적인 제식 아이템 비슷하게 정착했다가, 이 유행이 끝날 때쯤 되면 또 다른 아이템이 그 뒤를 따라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현상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를테면 이승연 머리핀이라든지 김남주 목걸이라든지. 이런 현상은 요즘은 다소 약해진 듯 하지만, 그래도 간혹 천송이 코트라든지 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든지, 학력위조 파동을 몰고 온 신정아가 애용한 브랜드 돌체&가바나가 한국에 본격 진출하게 된 이른바 블레임룩(Blame Look) 등으로 명맥을 잇기도 합니다.
대학진학 후, 연예인 액세서리의 대유행에 대해서 동기나 선배 여학생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꽤 의외여서 놀랐던 게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당시의 대답은 대략 이렇게 압축되었습니다.
첫번째는, 개성이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 개성이라는 어휘가 대체 어떻게 정의되었는지, 유행을 따르는 게 개성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건 그런대로 그렇다고 치지요. 그런데 두번째가 아주 예상 밖입니다.
두번째는, 남자가 여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니, 성도착증이나 그런 거 아니냐, 혹시 트랜스베스타이트(Transvestite, 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 특히 여장을 즐기는 남성, 유의어로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가 있음)가 되려는 것이냐 하는 대답. 이렇게 질문자를 변태성욕자 취급하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고, 당시의 저는 그런 사람을 없는 취급하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때 도출한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패션아이템의 유행 추종과 개성 추구라는 구별되는 개념을 구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유행을 따르는 그 자체가 개성이라고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그러한 사안에 대한 의문이나 특정인의 외적한계를 넘어서는 질문은 금기시된다는 것. 그래서, 이렇게 획일화된 행동양식과 성역할 고정은 그냥 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여러 지역과 계층 출신의 청년들이 모인 대학에서조차 이렇다면 과연 대학을 지성인의 전당으로 불러도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의가 저의 청년기의 체험에만 한정되었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동일한 문제가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환경에서도 나타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액티브X, 익스플로러 이외의 브라우저가 아니면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한국의 웹사이트. 그나마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꽤 많이 해소되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내의 IT환경은 윈도우즈 기반, 익스플로러, 액티브X 플러그인 등이 우선이고 리눅스, 맥OS 등의 다른 운영체제나 파이어폭스나 크롬 등의 다른 브라우저에 불친절한 경우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21세기초의 산업 판도를 보면,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는 IT 기자재의 제조판매가 급증해서 새로운 전자산업 강국으로 떠올랐는데다 대내적으로는 초고속 인터넷회선 보급에서 경이적인 확장률을 기록하여 세계속의 IT강국이 되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만 그 그늘에는 플랫폼 다양성 결여, 국제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폐쇄적인 환경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건 그냥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대세 추종경향 및 배타적인 의식이 만들어 낸 필연의 소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국내 사회가 굉장히 혼탁합니다.
정파별로 싸우고, 정파 내에서도 특정인물 추종여부에 따라 당장에라도 상대를 죽일 기세로 싸우고 있습니다.
지역, 계층은 물론이고 요즘은 성별로도 싸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호간 이해는 아예 불가능한 것이나 해서는 안될 것으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냥 사회가 각박해져서, 경쟁위주라서 이렇게 발생한 것일까요? 흔히 이렇게들 설명하지만, 예의 설명들은 물이 축축한 이유는 물이니까라는 순환논리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무비판적으로 대세를 따르는 행동양식, 그리고 개인을 개인으로 보기보다 특정 집단의 일원으로 구분하여 그 집단의 안과 밖으로 구별하여 역할고정을 강요하는 세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보니 이렇게 사회 이곳저곳에서 편가르기와 증오가 횡행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약간 표현을 바꾸자면, 예의 병리현상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이 사회의 소산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이러한 것들도 극복될 것이고 또한 그래야만 하지만 근미래에 가능할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군요.
일단 지금은 그렇게 보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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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8-05-20 23:46:48
다들 바꾸자고 하는데 아주 바꾸지를 않는 대표적인 녀석, 액티브 엑쑤... 없앴다면서 그와 다를 바 없는 설치파일로 대체하기도... 영 좋지가 않아요.
유행이 개성이다... 죄다 같으면 그게 어디가 개성인지 모르겠네요. 그냥 개성이 뭔지를 모르는 거 같아요. 두번째 대답은 그냥 사람으로서 할 대답이 아니니 패스하는 게 좋겠어요.
SiteOwner
2018-05-22 15:19:10
그렇게 액티브X를 전세계에서 유독 한국만 좋아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에 이런 게 있습니다.
일단 그 기술의 실질적인 유용성 이전에, "나는 책임을 다 했으니까 그리 알아라" 하는 권위주의가 그 중의 하나. 그것이 설치되지 않으면 아예 사이트가 실행되지 않게 만들고, 강요된 동의하에 모두 설치하면 그때부터는 사용가능하게 되니까 할 일은 다 했다라고 생색내기. 그런 관행이 쌓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웹표준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한참 뒤떨어지게 된 것이지요.
그때 이미 그런 사고방식이 팽배했고 그때의 젊은이가 별 비판 없이 중년층으로 되었으니, 그 때의 문제가 제대로 극복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사회갈등은 그래서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돌연변이가 아닌 필연의 소산 같습니다. 그 두번째 대답같은 의견이 요즘 많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단 포럼만이라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언제나 마음을 다잡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