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소녀, 섬뜩하면서도 신비로운 매력이 있는 수수께끼의 소녀 엔마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원한을 품은 상대를 지옥으로 보내준다는 지옥통신을 주 소재로 삼아 속세의 인과와 원한, 인간의 증오와 욕망과 그로 인한 인간 사회의 이런저런 어두운 면들을 풀어내는 수작이죠.
작화도 붕괴되는 일이 거의 없어 우수한 편이고, 유명한 성우들이 많이 출연하고 삽입곡과 배경음악도 좋아서 귀도 즐거운 애니메이션입니다. 특히 엔마 아이의 성우 노토 마미코가 부른 곡을 꼭 엔딩곡으로 사용해서 엔딩곡은 꼭 한 번씩 듣고 넘어가게 되더군요.
2008년에 3기가 나온 이후, 긴 공백기를 가졌다가 2년 전에 4기가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시간이 날 때 한 번 찾아서 봤습니다만...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3기까지만 해도 총 26화로 구성되었고, 초반에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하다 중반에 스토리의 핵심이 되는 주역을 등장시켜 지옥소녀와 얽히게 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는데, 4기는 총 12화 중 6화만이 본편이었고 나머지 6화는 3기까지의 에피소드 중 몇 개를 재방영한 거라 사실상 분량 늘리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옥소녀의 고질적인 문제인 후반부에 메인 스토리를 급격하게 진행한다는 단점이 극대화되어, 4기는 스토리 전개에 설명이 많이 부족했고 캐릭터의 행동 변화에도 납득이 가지 않아 날림으로 진행했다는 느낌이 무척 강했습니다. 작화가 수시로 붕괴되었던 것은 덤이구요.
찾아보니 지옥소녀 파칭코가 오랫동안 운영중이고, 파칭코의 수입이 좋으면 그 수입을 바탕으로 후속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 봐서는 긴 공백기를 깨고 갑자기 4기가 나왔던 점, 그럼에도 분량이 이전과 달리 지나칠 정도로 짧았던 점, 이전에 비하면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하락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요.
지옥소녀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두운 문제를 다루는 애니메이션인데, 역설적이게도 작품 자체도 돈과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망가져버린 것 같아서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원환과 법희와 기적의 이름으로, 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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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19-04-18 15:11:43
아이고...지옥소녀 애니에 그런 사정이 있었네요.
간만에 나온 4기 애니는 여러 분야에서 퀄리티 폭락을 노정하다니,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게 돈을 내버리려면 아예 만들지를 말든가 하는 생각부터 들고 그렇네요.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일본 속담을 곱씹어 보기도 하고...
현실이 창작물을 능가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입증되네요. 이런 입증은 반갑지 않고, 더 없으면 좋겠지만...
그러고 보니, 미나미가는 2기가 망할 뻔 했죠. 당시의 제작사 아스리드가 배경 캐릭터 처리를 굉장히 이상하게 하고, 게다가 오리지널 캐릭터를 등장시키긴 했는데 스토리와의 점점이 사실상 없고...
실제 스틸컷을 보면 굉장히 이상한 건 물론이고 꽤 공포스러워요. 재가공을 거치지 않은 캡처 자체가 이 모양이니...
그래서 제작사 아스리드는 크게 비난받았고, 3기를 제작할 때에는 1기에 거의 준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원작을 최대한 충실히 반영하는 방식으러 전환했어요. 그래도 색채설계능력에 문제가 있는지 렌즈 앞에 얇은 흰 막을 친 것같은 희멀건 색채는 어쩔 수 없었고, 4기 제작사가 feel.로 바뀌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어요. 이렇다 보니 전 아스리드를 굉장히 싫어해서 그 회사의 제작 애니를 피하기까지 해요.
앨매리
2019-04-18 17:06:01
사실 지옥소녀는 2기 마지막 부분에서 후속작을 암시하는 장면을 넣었기는 해도, 2기까지의 스토리만 보면 마무리가 나름 깔끔한 편이었습니다. 3기는 새로운 주역인 미카게 유즈키의 과거를 막바지에 가서 짠하게 연출하며 호평을 받았기는 하지만, 엔마 아이를 억지로 다시 등장시키려고 했는지 스토리의 당위성이 어색해서 호불호가 갈렸거든요. 거기다 3기의 결말은 사람에 따라 2기의 결말로 받은 감동과 여운을 다 날려버리는 결말이라고 생각될 여지가 있는지라...
미나미가는 2기의 스크린샷만 봐도 전에 나온 1기나 후에 나온 3기와도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이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제작사가 잘못했네요. 비슷하게 원펀맨도 1기에서는 매드하우스가 맡아서 잘 만들었는데, 2기에서는 액션씬의 질이 들쑥날쑥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J.C STAFF가 맡아서 불안합니다...
SiteOwner
2019-04-20 23:59:00
끝내야 할 때 확실히 끝내지 않고 질질 끌거나, 완급조절을 해야 할 때 못하고 폭주하거나 정체하면 그 결과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그 지옥소녀라는 작품이 바로 그 나쁜 선례가 되었군요.
시청한 작품이 아니라서 어떻게 평가는 못하겠지만, 그 지옥소녀는 결국 현실세계의 욕망과 이해관계로 인해 4기 애니가 만들어지면서 창작물로서의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결말을 지은 것 같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난외의 이야기입니다만, 지옥소녀라는 작품명을 듣고 지옥선생 누베와 잠깐 혼동했습니다. 그래서 지옥소녀 누베를 검색하고 그러기도 했습니다.앨매리
2019-04-23 23:18:31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돈에 눈이 멀어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작품을 망친 것 같아 속이 매우 쓰립니다.
지옥선생 누베... 요괴 관련 창작물 중에서는 다양한 요괴를 다룬 것도 있거니와 그 시절의 점프를 지탱했던 명작으로 유명하고 또 스핀오프 작품도 연재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정작 볼 기회는 없었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