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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처음으로 중고교과정을 통합한 6년제의 특성화학교가 문을 연다고 하네요.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기사에 있으니 참조를 부탁드려요.
경기 첫 중고교 6년 통합학교 부천·의왕에 2024년 개교, 2021년 5월 4일 연합뉴스 기사
이 학교의 커리큘럼에 대해 일단 언론보도에 소개된 것만을 보면, 객관식시험이 없고 감점형이 아닌 가점형평가가 도입될 예정이라는데, 글쎄요, 의문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예요.
우선은 객관식시험에 대해서 논해 볼께요.
교육과정에서 익혀야 하는 지식은 어느 정도는 주입이 필요해요. 그리고 이해하는 대상은 "왜(Why)" 가 아니라 "어째서(How)" 가 주종이 되어야 하죠. 이유는 간단해요. 어차피 아는 게 별로 없는 상태에서 "왜" 만 묻다가는 둘 다 안되거든요. 무엇이 어째서 이렇고 저렇게 되는가를 최소한으로 알아야 그 다음의 단계인 "왜" 를 알 길이 열리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진전없는 전자보다는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후자가 낫다는 건 더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으니까요.
그리고, 객관식시험은 글자 그대로 누가 검증해도 결과가 동일하게 나오니 수험자에게는 사안의 이해정도나 주의력을 평가하기에도 좋고 평가자에게는 수험자가 무엇을 공부하는 것이 좋은지를 지시할 수 있어요. 물론 운영상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도 있어요. 비용문제를 제외하고 논할 수 있는 사안이 얼마나 될까요?
이를테면 미국의 고교생 대상의 객관식 수학시험.
미국에서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수학시험으로서 1950년 이래로 여러 제도가 운영되어 오고 있어요.
첫째는 1950년에서 1972년 사이에 시행된 연례고교시험(Annual High School Contest, AHSC), 둘째는 1973년에서 1999년 사이에 시행된 미국고교수학시험(American High School Mathematics Examination, AHSME), 그리고 2000년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는 미국수학시험(American Mathematics Contest, AMC)이 있어요. 단 현행의 것은 12학년(고3) 및 그 이하를 대상으로 한 AMC 12 및 10학년(고1) 및 그 이하를 대상으로 한 AMC 10의 2계통으로 되어 있는데, 풀어보면 결코 객관식문제라고 해서 만만치 않다는 게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기초수학문제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사고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보여요.
참고로 AMC 12 문제를 소개해 둘께요(바로가기, 영어).
그리고, 이번에는 가점형평가 문제.
무엇에 어떻게 가점을 주는가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의 평가기준은 감점보다 더욱 자의성이 개입하기 좋아요.
영작문시험같은 형태의 것을 생각해 볼께요. 여기서 감점을 할 수 있는 요소는 금방 드러나고 있어요. 철자틀림, 문법틀림, 호응불성립 등의 명확한 평가기준을 세우기가 쉬워요. 그런데 가점은 어떻게 할까요? 여기에서 바로 벽에 부딪치게 되어요.
문제를 하나 내 볼께요.
- 다음의 문장을 영어로 옮기시오. 단 문장은 "The international law is ..." 로만 시작할 것.
- 국제법은 주권국가간에 성립하는 불문의 또는 성문의 법이고 구속력이 있다.
이 문제의 쟁점은 4개.
첫째. 붙은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점수를 일절 얻을 수 없다.
둘째. 주권국가의 개념을 알고 풀어쓸 수 있다.
셋째. 불문/성문의 표현을 구사할 수 있다.
넷째. 구속력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이 네 쟁점만 만족하면 20 만점으로 하고 첫째 쟁점을 어기면 100% 감점, 그리고 둘째에서 넷째의 세 쟁점 중 1개를 못 쓸 때마다 5점 감점, 철자틀림은 1점 감점, 문법틀림은 2점, 호응불성립은 3점 감점으로 한다고 기준을 명확하게 세울 수 있어요. 그러면 되는 것을 가점방식으로는 굉장히 일이 어렵게 되어요.
이 문제에 두 해답이 있어요.
- The internation law is any type of laws among sovereign states, either written or customary, with obligations.
- The internation law is a law to be obeyed by sovereign countries, whose form factor is either documented or not.
이 두 해답을 감점형평가 네 쟁점이 모두 만족되고 있으니 감점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가점형평가로는 어떻게 평가하죠? 여기서 바로 막혀버려요.
그러니, 객관식문제도 감점형평가도 마냥 배제대상이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될 거예요.
게다가 학교에서 그런 평가를 하지 않더라도 학교 밖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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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21-05-17 00:27:14
기존 방식이 뭐가 어때서? 라는 생각밖에는 안 들어요.
다른 방식을 취해봤자 그게 더 나을거라는 보장이 없는데, 굳이 적용을 하는 이유가...?
마드리갈
2021-05-17 00:50:38
개혁, 혁신 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 중에 바로 "기존의 부정(Vernichtung)" 이 정답이라는 도그마가 있어요. 그냥 기존의 것을 때려부수기는 쉽지만, 그 기존의 것을 능가하는 대안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요.
사실 이건 프랑스 대혁명의 경우만 봐도 상당히 명백한데, 구체제를 때려부수고 나서 그 뒤에는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 1758-1794) 주도의 공포정치가 이어졌어요. 즉 구체제는 귀족과 성직자가 과도한 증세로 백성들을 쥐어짰는데, 자코뱅 당은 그 차원을 넘어서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반동분자로 몰아서 처형장으로 내몰았고 제재소에서 목재를 썰듯이 사람들의 목을 베어 죽이는 일을 자행했어요. 그 결과 로베스피에르는 쿠데타로 실각후 그 또한 처형장에서 목숨을 잃고 자코뱅 당도 12년 천하로 끝났죠. 물론 그 뒤에는 나폴레옹의 제1제정이라는, 구체제보다 더욱 억압적인 체제가 설립된 거죠.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개혁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한데다 더 나쁜 결과로 이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