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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한 적이... 있다고?”
버스 안에서, 눈앞의 라자를 흘끗흘끗 보며 미켈이 되묻자 현애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응, 한 달쯤 전인데 어디 묘지공원 같은 데 지나가다가 좀비가 나온 적이 있어. 지금과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불길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고...”
“야, 너 세라토에 산다고 하지 않았냐? 거기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법한 대도시잖아? 혹시, 동면 전에 어디 판타지 세계에 살았던 것 아니야?”
“아니야... 전혀. 오히려 그 반대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야,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할 건데? 지금 이 상황에 나갈 수 있을 것 같기나...”
미켈이 뭐라고 해 보려고 하지만, 미켈이 한발 늦었다. 이미, 현애는 버스에서 내려서 눈앞의 라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그것도 혼자서.
“훗, 겁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 라자는 오른손을 살짝 올린다. 그러자마자, 거리의 건물들, 그리고 골목길에서 좀비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수는 적게 잡아도 몇백 명에 달하고, 대략 어림잡아 보면 천 명을 족히 넘는다.
“과연 네 녀석이 당해낼 수 있을까? 막아도 못 막아도, 네게 기다리는 건 암흑뿐이다.”
라자가 그렇게 호기롭게 말하고 몇 초가 지나자.
라자의 눈앞에는 어느새 설원이 펼쳐져 있다. 현애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좀비들을, 모두 얼려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몇 초 만에 이렇게 해낸 것이다. 정확히는 무릎 언저리까지 얼려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당장 다가오는 위협을 막아내기에는 충분하다. 현애의 양옆으로 무릎까지 얼어 버린 좀비들은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입을 확 벌리고 공격할 자세를 취하지만, 그것뿐, 아무런 공격도 할 수 없다.
“제법인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좀 오래 버티긴 해 주는군.”
라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현애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저기, 파울리 씨.”
버스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세훈이 미켈을 돌아보며 말한다.
“우리 가 봐야 하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혼자 저렇게 보내기에는 너무 위험한데요...”
“알아. 그래서 지금 나가려고 하잖아. 너는?”
“이미 돕고 있어요. 아니었으면 좀비들이 저 정도로 얼지는 못했을 거라고요!”
세훈이 울상이 될 듯한 얼굴을 하고서 미켈을 보고 말한다.
“저도 저 악마 같은 여자에게 당장이라도 가서 후려패고 싶다고요!”
“그래. 그러면 당장 가자고.”
미켈이 버스를 나서며 말한다.
“하지만 모두 살아서 돌아오는 거야. 약속하마. 너도 그렇지?”
“네, 파울리 씨...”
세훈은 그렇게 말하며 버스에서 내린다. 확신하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서.
“그런데요, 저기, 파울리 씨...”
버스에서 막 내린 세훈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며 미켈을 찾는다. 어느새, 세훈의 주위로는 좀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아까 현애가 얼음으로 무릎 아래를 묶어 놓았던 그 좀비들이다. 분명히 아까 세훈도 봤다. 무릎 아래를 전부 얼린 그 장면을. 단순히 봤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세훈이 돕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얼음을 깨뜨려 내고 저렇게 다시 움직여서, 세훈을 포위하고 위협하는 것이다!
“파울리 씨!”
아무리 불러 봐도, 미켈은 보이지 않는다. 금방 어디론가 가 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설상가상으로, 세훈에게 좀비들이 모여들고 있다. 마치 먹이 냄새를 맡은 새떼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세훈이 한번 주위를 둘러본 그 순간, 세훈은 깨닫는다. 완전히 둘러싸여 버린 것을, 그리고 주위에는 온통 좀비뿐이라는 것을. 그 어디에도, 세훈이 빠져나갈 만한 틈은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둘러싸여 버렸다... 좀비들에게!
“아... 안돼... 파울리 씨!”
한편 그 시간.
“이... 이 자식...!”
현애는 눈앞에 보이는, 자신을 노려보고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라자에게 달려든다. 머리 끝까지 치민 분노 때문인지 있는 힘껏 주먹을 그 얼굴에 날리지만...
푸숙-
기분나쁜 감촉이 주먹에 닿는다. 피부의 감촉이 아니다. 죽은 자의 감촉, 거기에다가 썩어 문드러지는 느낌, 그리고... 거기에까지 생각이 닿은 현애는 순간적으로 눈앞의 라자에게 휘둘렀던 주먹을 거두어들인다. 그러자...
“으... 으아아아앗!”
주먹에, 썩어 문드러지는 시체의 진물이 잔뜩 묻어 있는 게 아닌가! 너무도 놀란 나머지 그것을 막 털어내려는데...
퍽-
다리 쪽에 가해지는 타격. 그리고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충격...
“으... 윽!”
“하, 하하하! 멍청하긴. 내 모습을 못 봐서 그렇지? 너무 잘 속는 것 아닌가?”
“개... 개자식...”
분명히 현애가 주먹을 내질렀던 상대는, 라자였을 것이다. 시체의 냄새를 풍기기는 해도, 분명히 처음에 버스에서 내렸을 때의 자신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웃던 그 자세 그대로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 지금 뒤에서 들린 목소리와 다리를 가격한 발은 도대체...
“상황파악을 못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아무 상관도 없는 녀석을 주먹으로 저렇게 구멍을 내 놓으면 어쩌나, 응? 안 그런가?”
“개자식!”
“호오, 용기는 가상한데, 그래 봤자 바뀌는 건 없어. 왜냐하면, 네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거든. 내게 목숨을 구걸하며 울부짖든가, 아니면 내 시체 군대 중 하나가 되든가!”
그러나, 라자가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
퍽-
라자의 가슴팍에 가해지는 충격. 그것도, 입가가 얼어버리고 심장과 혈관이 얼어붙어 버릴 것 같은 충격이다. 날아가 버린다. 라자의 몸이, 뒤쪽으로.
“윽,,, 이건...”
그 시간, 도르보는 텅 빈 길거리를 따라서 버려진 경찰 스쿠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딱 이쪽이겠군. 파울리 패거리가 고속화 도로를 따라서 호텔까지 진입하려면...”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는 도르보의 옆으로는 버려진 차들, 그리고 이리저리 살길을 찾아 도망가는 시민들이 보인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다 보니...
“호오, 저기 있었군, 녀석들!”
도르보의 눈에 들어온다. 운전대를 꽉 잡고 있는 자라가, 점점 다가오는 자신을 보고는 놀라워하는 표정이. 도르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타고 온 스쿠터를 냅다 집어다가, 그 차를 향해 던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본래라면 쾅- 하는 굉음을 내며 자동차 위든 도로 위든 부딪쳤을 스쿠터가, 공중에 둥둥 떠 있다. 마치 공중에 강력 접착제라도 바른 듯.
“훗...”
도르보는 태연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서서, 잔뜩 질린 얼굴을 한 채 차에서 나오려는 자라를 유심히 본다.
“자라 아티크... 사물을 허공 같은 데에 고정하는 능력... 맞군.”
도르보는 자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스쿠터를 향해 뻗은 손을 조심스럽게 거둔다. 여전히, 스쿠터는 공중에 떠 있다.
“됐다... 네 다음 표정이 기대되는군...!”
한편 편의점 바깥에 있는 거리. 세훈이 완전히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버리고, 막 뭐라고 소리를 질러 보려는 그 찰나.
별안간, 좀비들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마치 진흙탕에 빠진 것같이, 발을 허우적거리더니,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대열이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그중 가운데쯤에 선 좀비의 형태가 흐물거리기 시작하더니, 몇 초 후, 미켈의 형태로 바뀌는 게 아닌가. 얼굴에는 방독면을 썼지만, 입은 옷은 분명 미켈이다.
“파울리 씨! 놀랐잖아요!”
세훈이 방독면 너머로 한숨을 흘리며 말한다.
“꼼짝없이 좀비가 되는 줄 알았다고요.”
“조심해. 일단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그다음이 문제야.”
“다음이라니요...?”
“우리가 한 건 임시방편이야. 좀비들을 없애지는 못한단 말이지. 좀비들이 움직이는 이상 끊임없이 우리에게 공격을 가할 거고.”
“하지만, 저 좀비들은 원래 평범한 시민들이었잖아요? 지금 퍼지는 좀비 바이러스가 누군가의 초능력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능력자를 처치하면 시민들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고, 그렇다는 건...”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미켈이 울상을 지으려는 세훈에게 소리 높여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정말 최악이라고. 이건 마치 시민들을 강제로 자살특공대로 보내는, 옛날의 어떤 나라를 떠올리게 하지. 여기같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게 더 용서받을 수 없는 거고. 그래서...”
미켈이 막 울분에 찬 말을 토해 내던 그때.
“어, 파울리 씨!”
세훈이 뭔가를 보더니, 다시 소리를 높인다.
“저기, 저기 좀비들이, 다시...!”
“뭐야, 좀비?”
미켈이 세훈이 가리킨 방향을 돌아보자, 미켈의 입이 경악한 듯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못한다.
“어... 어?”
한편 번화가의 한 상가 건물.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1층의 사람 없는 편의점 내부로 처박힌다. 진열대에 있는 물건들이 우수수 그의 위로 쏟아진다.
“으극...”
우수수 떨어진 진열품들의 더미를 헤집고서 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몸을 비튼다.
“제법... 하는군. 여태껏 상대한 녀석들 중 이 정도의 파워는 보기 힘들었는데... 거기에다가, 한번 본 적 있는 녀석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더 얕보면 안 되겠어...”
그렇게 그 여자가 중얼거리는데...
“어이, 일어나시지.”
또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편의점 안을 울린다.
“네 녀석이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지, 응?”
자신의 앞에 선 방독면 쓴 여자를 보자마자, 편의점 바닥에 쓰러진 여자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밍기적거리며 완전히 허리를 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봐, 뭘 꾸물거려? 빨리 안 일어나?”
방독면 쓴 여자가 성큼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와서는, 진열품 아래에 파묻혀 일어나려는 여자를 향해 다시 한번 소리 지르는 그때.
“하, 하하하! 별수 없었구만, 너도!”
여자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편의점 안에 울려 퍼지고, 잠시 후...
누군가가 방독면 쓴 여자를 덮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복장을 한 좀비다. 원래의 얼굴 형태는 유지되고 있지만, 눈빛은 이미 산 사람의 눈이 아니고, 머리 역시 풀어 헤쳐져 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다. 그 좀비가 방독면을 쓴 여자의 조악한 방독면을 우악하게 잡아당기자, 방독면은 너무도 쉽게 찢어지고, 부서진다.
그리고 그 시간,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의 특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군.”
투명한 헬멧 모양의 방독면을 쓴 발레리오가 밖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다들 여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는지... 아까는 그래도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확신이 안 서는데...”
“저기, 발레리오 씨.”
발레리오의 뒤에서 메이링이 부른다.
“응? 자네는 왜?”
“거기, 제가 한번 가 보면 안 될까요?”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SiteOwner
2021-12-25 13:42:00
역시 기시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게 생각납니다. 그런데 이건 이전의 상황보다도 더욱 심각한 그야말로 아비규환인 상황. 텍스트에서 실시간으로 썩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무섭습니다.
중과부적인 상황에서 현애의 냉기능력도 한계가 있는데다 현애가 공격한 라자는 다른 데에 있었고 진짜 라자는 방심하였다가 반격당하고, 상가건물에서는 난타전이 벌어지고, 여러모로 예측불허의 상황이 벌어지니 정신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메이링이 움직이면 뭔가 타개책이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만...
과연 메이링의 복안은 무엇일지가 궁금해지고 있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1-12-31 18:55:02
사실 2부에서는 라자가 자기 능력을 살짝만 보여 줬으니 더 그럴 법도 하죠. 지금과 같이 작정하고 능력을 사용하면 보통 사람들은 정말 더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마드리갈
2021-12-25 22:22:22
대규모로 몰려드는 좀비, 진짜 답이 없네요.
몸이 가려워지는 듯한 느낌에 잠시 거울을 보고 왔어요. 피부에 상처는 없지만...
냉기능력으로도 한계, 상대를 잘못 인식한듯한 감각, 압도적인 좀비떼...이걸 타개해 낼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분명 이 이야기가 끝나가는 이야기가 맞죠? 그런데 끝나간다는 느낌이 나지를 않아요.
메이링이 가 보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지...사실 현장을 보면 상황파악이 더 잘 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요.시어하트어택
2021-12-31 18:57:05
라자가 그만큼 앞서 나온 적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적이기 때문이겠죠.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어마무시함이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겨낼 겁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