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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태양석을 꺼낸 모양이로군? 유감스럽지만 그건 네 것이 아니야. 원래부터 그것은 내게 속했어야 했을 것...”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의 목소리가. 조나의 눈과 귀를 온통 덮어 버리는 듯하다.
“그려진다! 완벽한 새로운 천국이. 그리고 기다려 왔다! 이 순간만을!”
알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휘저어지는 것이. 이 주위의 시간과 공간이, 남자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것이.
다음 순간, 태양석을 막 손에 쥔 조나가, 남자의 앞에 와 있다.
태양석이 든 상자를 막 열려던 그 자세 그대로,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다. 하얗게 겁에 질린 얼굴은 산발한 머리와 수염에도 전혀 가려지지 않고 오히려 질린 얼굴이 더 잘 드러나 보인다. 굳게 다문 입이 덜덜 떨리는 것까지 보인다.
“여기서 만났군, 조나 피츠조지.”
“너... 너 이 자식, 우리 단장... 단장을 어떻게 죽였어!”
조나는 덜덜 떨면서도 어떻게든 자신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똑바로 보려고 한다. 그게 잘 되지 않는 건 그도 알지만, 최대한 눈을 부릅뜨고 보려고 한다.
“궁금한가? 궁금하면 그걸 네가 알아서 내게 주면 좋겠는데. 애초에 네 녀석과 척진 녀석들은 이 주위에 보이는 녀석들이잖나?”
“.......”
조나만 보이는 게 아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주위에는 조금 전까지 조나와 실랑이를 벌이던 비앙카와 도레이도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우리는 방금 조나 녀석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태양석이 든 상자를 들고 있는 조나의 두 손이 덜덜 떨린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도저히 이건 그대로 넘길 수가 없다.
“당신은... 우리 단장... 우리 단장을...”
“자, 자, 왜 그러나? 두려워할 건 없어. 안심하고. 그걸 이리로, 이리로...”
찰나의 순간 조나의 앞에 있는 공간이 통째로 지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남자가 손바닥을 폈을 뿐인데, 어느새, 남자의 손이 상자의 코앞까지 왔다!
“아, 안돼, 안돼, 안돼...”
“안심하라니까?”
“안된다고, 안된다고...”
조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상자를 지키려고 하며, 막 빼앗으려는 남자의 손을 홱 뿌리친다. 하지만 어느 새인가, 다시 조나가 든 상자는 남자의 바로 앞으로 돌아와 있다. 조나가 팔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절대 못 준다. 네 녀석에게는...”
하지만 그러건 말건, 남자의 손은 조나를 향해 온다. 다시, 조나가 상자를 빼앗기려고 하는 바로 그때...
별안간, 공기 전체에 뭔가 환영이 씌인 듯하다. 마치 필름이라도 하나 씌운 것처럼.
“뭐, 뭐야, 어떤 녀석이...”
남자의 손이 순간적으로 흐물흐물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손 전체가 연체생물에게 잠식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훗... 그럼 그렇지.”
남자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 흐물거리는 현상은 잠시 일어나고 만다. 태양석이 이제 완전히 그의 손에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나나 비앙카, 도레이는 아니다. 이제 그에게 방해가 될 건, 아무것도 없다. 주위를 본다. 그렇게 자신에게 맹렬히 저항하던 현애도, 발레리오도, 비토리오도, 이제는 체념했는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다. 태양석이 든 상자를 들고 있는 조나 역시 가만히 고개를 푹 떨구고 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태양석은 내 손 안에 들어온다. 새로운 세계가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떨군 조나가 가만히 들고 있는 태양석을 손에 쥔다. 그렇게도 원하던 태양석. 손에 넣기만 하면 신의 힘을 휘두를 수 있는 태양석이다.
그런데...
그런데...
“뭐야...”
분명히 태양석을 손에 쥐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분명히 그가 알기로는, 태양석을 가진 자는 세상의 법칙을 바꾸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생명과 물질, 천체의 창조도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남자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이레시아인들이 만든 수없이 많은 베라네에 관련된 문헌들을 탐독하고 관련된 유적지들을 답사한 결과로 알아낸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이레시아인들도 겨우 하나 만들고는, 두려움에 휩싸인 나머지 스스로 봉인해 버린 태양석이다. 그것을 지금, 그가 지금 처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상태인데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니?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이건, 손에 쥐자마자 효력이 생긴다고 알고 있는데... 이걸 얻기 위해 수없는 자들이 싸움을 벌였고, 마침내 내 손에 들어갔어. 그렇다면 이건, 분명한 태양석이 맞는데...”
남자는 한 번 더 그 손에 쥔 태양석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비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손에 쥔 태양석이 남자를 거부하기라도 하는 듯.
“뭐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건 태양석이 맞잖아!”
분명히 옛 문헌과 연구자료에 적힌 대로, 손에 들고 있으면 가공할 만한 힘이 생겨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분명하다... 이 태양석의 주인은 나야. 그렇게 역사가 말해주고 있고, 또 그렇게 역사는 흘러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왜 나를 거부하는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는 분명히, 없을 텐데...”
문득, 남자는 이 주위가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다. 남자의 손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 조금씩 일그러져 보인다. 또다시, 아까처럼 태양석을 쥔 손가락이 일그러져 보인다.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보이는 이것들은. 도대체,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바로 그때, 남자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먼 곳으로부터,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늦지 않았군요.”
한 남자의 목소리. 돌아보니 품이 넓은 흰 옷을 입은 이레시아인이다.?
“우리 조상들이 애써 봉인해 놓은 태양석을 쉽게 저 녀석의 손에 들어가게 놔둘 수는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레아 님?”
“어느 녀석이...”
남자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다. 2년 전에 들었던 목소리지만, 한참을 잊고 있었던 목소리다. 매우 기분나쁜 기억이? 하지만 듣자마자, 그 기억은 마치 집게로 쏙 뽑아올린 듯 금세 살아난다.
“호렌 아레안 레노... 잊지 않았지. 너도 그 김수민 녀석처럼 죽으러 왔군.”
“뭐... 뭐라고...?”
남자를 향해 달려들던 호렌은 순간 주춤한다. 그로서는 몇 번 들어도 믿지 못할 말을, 눈앞에 있는 자가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아닐 텐데... 그 녀석은, 쉽게 죽거나 굴복할 녀석은 아닌데!’
“호렌, 왜 그래?”
“잠시만요, 레아 님...”
호렌은 남자를 똑바로 노려본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분노에 눈이 먼 나머지 귀가 먹어버린 건가? 나는 분명 말했다. 네가 들은 그대로야.”
남자의 말을 들은 순간, 호렌은 상황을 파악한다. 발레리오와 비토리오는 쓰러져 있다. 세훈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듯한 현애도 무릎을 땅에서 굽힌 채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잠시 멈춰섰던 호렌은, 이내 다시 달려든다.
“너하고는 내가 반드시 결판을...”
하지만 호렌의 외침은 얼마 가지 못한다. 어느 새인가, 남자의 몸이 호렌 쪽으로 홱 돌려지더니, 이윽고...
“물러터졌구나! 2년 전에 비해서 아무것도 발전한 게 없어!”
“이 자식이...”
날아들고 있다. 남자의 발길질이. 호렌이 피할 사이도 없이!
퍽-
“아... 아윽...”
남자의 날아차기에 맞은 레아와 호렌이 뒤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위풍당당했던 기세치고는 허무하게 당해 버린 것이다.
“하, 하하하... 너무도 가소로워서 이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군. 2년 동안 네 녀석은 도대체 뭘 한 거냐? 슬픈 나머지 눈물밖에 흘리지 않은 거냐? 너 같은 녀석은 뭐... 상대조차 할 가치가 없다!”
그리고서 남자는 다시 조나를 돌아본다. 조나는 그새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도망갈 준비를 한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이때다’ 싶었는지 재빠르게 발을 내딛는다...
라고 생각했건만, 무슨 일인지 조나는 다시 남자의 바로 앞에 서 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비앙카와 도레이의 표정이, 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네 딴에는 머리를 써서 어디로든 도망을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겠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지. 무슨 생각을 했든, 너는 다시 내 앞에 왔다. 이것은 운명이다. 그렇게 일어나기로 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아... 안돼... 너는, 결코 이걸, 가질 수...”
조나가 뭐라고 하려고 하지만, 남자는 바로 조나의 말을 막는다.
“천만에, 가질 수 있다. 아니, 가진다. 그렇게 되어 있었던 일이다!”
남자가 손을 뻗어, 조나가 손에 잡은 금속제 상자를 다시 빼앗으려고 한다. 필사적으로 저항해 보지만, 어느새 상자는 조나의 손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들려 있다. 남자의 손에.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이것이 운명의 흐름이다.”
담담하게 말하던 남자는, 무슨 예감이 든 건지 오른쪽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예감이 아니다. 한쪽 무릎이 성치 않은 현애가 절뚝거리면서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너... 너...”
“흥, 뭐냐, 또?”
남자는 태연히 말하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현애와, 그 뒤에 또 막 일어서려고 하는 세훈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자마자, 현애와 세훈이 보이지 않는 충격파에라도 맞은 건지 뒤쪽으로 굴러간다. 마치 종이로 만들어진 인형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일 텐데. 그리고 그렇게 아등바등해 봤자 너희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가볍게 현애와 세훈을 날려보낸 남자는 잠시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본다. 이제 방해꾼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조나도, 쓰러져 있는 현애와 세훈도, 아직 일어서지 못하는 발레리오와 비토리오도. 심지어는 비앙카와 도레이도.
드디어, 상자가 열리고, 붉은빛을 내는 태양석이 그의 눈에 온전히 들어온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른 끝에, 이 태양석은 진정한 주인에게로 왔다.”
그렇게 말하자 그의 눈앞에 보이는 태양석이 더욱 빛나 보인다. 자신에게 대항하던 자들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저항의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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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02-28 12:46:08
최근에 꾼 꿈 중에 시공간의 왜곡이 일어나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상황이 나온 게 있었어요. 그게 생각나서 조나가 느끼는 공포, 그리고 비앙카와 도레이가 느끼는 황당함을 더욱 여실히 느끼고 있어요. 오늘은 참 따뜻한데 이 공포로 인해 갑자기 한기가 들기도 하고...
그런데 문제의 그 태양석이 아무 반응이 없네요. 태산명동서일필(大山鳴動鼠一匹)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제 곧 그 태양석이 파디샤의 수중에...시어하트어택
2022-03-06 23:14:16
시간과 공간이 한데 섞여 왜곡되어 버렸으니 감각마저 혼란스럽게 되어 버리는 것이죠. 마치 그 자가 모든 것을 틀어쥐고 지배하는 것 같은 기분, 안 들 수가 없겠죠.
SiteOwner
2022-04-11 22:55:12
그렇게 기대했던 태양석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확실히 당황스러운 상황이겠지요. 그런데도 신을 자처하는 파디샤는 얼마 전에 김수민을 죽일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이 주도해서 자신의 뜻에 반하는 모두를 죽일 수 있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 믿음이 흔들림없이 강하고 결국 태양석이 미니어처화된 태양같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데에서 그의 믿음은 가치를 증명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그게 끝까지 정답이었을지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나오는 성궤를 열었을 때처럼 될 것이라는 생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2-04-17 22:49:09
그의 기대와 바람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신이 될 수 있는 힘을 넣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파디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힘일지는 알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