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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과 나디아의 입에서 나올 말에 대한 지온의 궁금증이 조금씩 증폭되어 갈 즈음.
“오늘은 말이지...”
지온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민이 입을 연다.
“만화카페 간다고! 그것도 오늘 하루종일 내내 있을 수도 있어!”
“어... 정말?”
민의 그 말에 지온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있어도 되는 데가... 있어?”
“당연하죠, 선배님. 우리 아지트와도 같은 데라고요. 거기에다가, 바로 이 근처라고요!”
나디아도 민을 거들자, 지온은 무릎을 탁 친다. 마치 민과 나디아더러 보라고 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정말...? 나는 왜 그런 데를 이제 알았을까?”
“에이, 이제 알았으니 자주 가야지. 안 그래?”
“어... 그렇기는 한데...”
민의 그 말에 지온은 뭔가를 더 물어보려다가, 문득 주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다. 마치 한 곳에 모였던 비구름이 막 흩어지려는 듯한 움직임이다.
“응... 뭐지? 주위가 왜 웅성거리는 거지...”
지온이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볼 때...
“야! 왜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거야!”
누군가가 지온을 부른다. 돌아보니...
“농구 다 끝났어. 빨리 일어나!”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건가?”
지온이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40분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20분 정도는 남았다. 숨 좀 돌리고 들어갈 정도의 시간은 있는 것이다.
“오, 이 정도면 매점 같은 데 들렀다 들어가도 될 것 같은데?”
지온이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날 때, 어느새 주위에 모였던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음료수를 마시거나, 잡담을 하거나, 경기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하거나 하고 있다. 민과 나디아 역시 뭐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온을 흘끗흘끗 돌아본다. 지온이 딱 봐도 지온을 의식하는 것 같다.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던 지온은 바로 둘을 보며 말한다.
“아... 그래. 우리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선배님? 그러니까, 오늘 만화카페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민과 나디아도 이제 돌아가려는 듯하다. 아직 시간은 다 안 되었는데, 둘 다 서두르는 게 눈에 뻔히 보인다.
“너희들, 벌써 가는 거야? 아직 시간 좀 남았잖아!”
“아니, 지온이 형. 형은 그냥 저기로 가면 그만이잖아. 우리는 여기서 또 걸어야 한다고.”
“아... 그런가? 알았어!”
지온은 둘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이따가 보자고 한다. 그러다가 문득, 지온은 민을 불러세운다.
“자... 잠깐,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왜, 또 뭐 물어보려고?”
그런데 그 순간, 지온의 머릿속에, 민에게 물어보려던 ‘그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노트에다가 연필로 메모를 빼곡이 적어 놨는데 그 한 부분만 지우개로 쓱쓱 지워 버린 것처럼 말이다.
“어... 그러니까...”
“왜 그래?”
“내가 뭘 물어보려고 했더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그 말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아무래도 지금은 안 될 것 같은데...”
나디아가 그렇게 말하자, 민도 시계를 한번 보더니 지온을 다시 보고 말한다.
“형, 이따가 말하자. 지금은 가 봐야 해서.”
“아... 그래...”
민과 나디아가 지온의 시야에서 사라져 갈 즈음, 지온은 잠시 멈춰선다. 질문의 내용이 다시 생각나려고 하지만, 금세 그것은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지온의 앞으로, 그 문제의 니라차라는 여학생이 지나쳐 가다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뭐 해? 거기서 멍하니 서서.”
“어...? 나, 나는...”
지온이 막 머뭇거리는데, 갑자기 뭔가가 지온의 몸을 붙잡고 잡아끌기라도 하는 기분이다. 니라차의 눈과 마주친 직후부터 그렇다. 지온의 두 발도, 저절로 움직이고 있다.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아...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지온은 주위를 돌아보며 ‘도움’을 청해 보려고 하지만, 다들 지온을 멀뚱멀뚱 보거나, 아니면 실실 웃으며 보고 있다. 심지어 현애까지도. 그렇게 지온은 한숨을 쉬며 동급생들이 음료수를 먹고 있는 곳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시간은 오후 2시를 조금 지난 시간.
“오, 위치는 꽤 좋네.”
지온은 지도에서 본 위치로 곧장 걸어가는 중이다. 만화카페의 위치는 미린역 남쪽 카페거리 근처다. 위치도 위치일뿐더러,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괜찮고, 무엇보다도 도서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소장하고 있는 책도 많다.
“내가 왜 이런 데를 여태 몰랐지? 중학교 때부터 매번 지나쳤는데도 왜 몰랐던 거야?”
기대와 놀라움, 그리고 아쉬움이 한데 섞인 한 마디를 내뱉고서, 지온은 발길을 재촉한다. 잠시 홀로그램을 켜서 윤진이 보낸 메시지를 보낸다.
[2시 30분까지, 늦지 마]
윤진이 보낸 그 메시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온은 괜히 조급해진다. 발걸음을 2배, 아니 3배는 빠르게 떼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하나둘씩 메시지창에 뜰 때 더욱 그렇다. 시간은 아직 조금 남기는 했는데...
지온이 그렇게 막 발걸음을 재촉하려던, 바로 그때.
“어, 여기 있었네.”
지온의 뒤에서,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만 듣고 보면 지온과 나이가 같거나 조금 어린 듯하다. 어림잡아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정도.
그렇게 지온이 뒤를 돌아보니... 남학생 한 명이 서 있다. 연한 갈색의 머리에 안경을 쓴, 왜인지 모르게 한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책만 볼 것 같은 인상이다. 보라색 칼라와 넥타이를 보니 고등학생이고, 거기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을 보니 고등학교 1학년생임이 확실하다.
“혹시, 누구더라...?”
얼굴은 본 것 같은데,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많이 본 얼굴은 아니지만, 어쩐지 최근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만화부에 어제 새로 왔지.”
“아... 맞아.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어, 너 어제 일이 혹시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
“어제... 무슨 일?”
“다는 아니더라도 쭉 지켜보고 있었다고. 어제 윤진이 형이 소개해 줘서 왔다고 했잖아.”
“너... 만화부원이었냐?”
그런데... 지온의 머릿속이 갑자기 이상하다. 어제 분명히 부원들 앞에 서서 자기소개를 했을 때는 얼굴을 다 봤을 텐데, 마치 그 기억만 지우개로 지워 버린 듯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그런데, 누구였지? 거기만 마치 누군가가 잡아찢어 버린 것 같은데.”
지온은 시계를 보는 행동을 하며 그 남학생에게 말한다.
“그런 건 조금 있다가 생각해도 될 것 같아. 지금은 빨리 그 만화카페에 가자고. 윤진이 형이 기다리니까.”
그런데...
지온이 발걸음을 떼고 다시 앞으로 가려는데, 순간 앞에 투명한 벽이라도 생긴 건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분명 눈앞을 손으로 저어 보면 아무것도 없고, 발로 휘휘 저어 봐도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뭐야,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음... 한번 맞춰 볼래?”
그 남학생은 오히려 지온을 떠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한껏 분위기가 오른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마치 자신이 여행자 앞에 선 스핑크스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온은 이 남학생과 놀아 줄 여유는 없다. 지온의 앞에 선 이 남학생도 그건 마찬가지일 거다. 얼른 폰을 확인해 본다. 그런데...
“어, 뭐야. 통신 상태... 불량?”
한편 그 시간, 문제의 만화카페. 이름은 ‘토키와’로, 상가 건물의 2개 층을 쓰고 있는 데다가, 내부 가구 배치 덕분에 실제보다 더 넓어 보이기까지 하다. 30명 정도 되는 만화부원을 전부 수용하고도 1/3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어디... 이제 다 온 건가?”
약속했던 시간, 2시 반이 거의 다 되자, 윤진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서더니, 주위를 돌아보며 앉아 있는 부원들을 하나둘씩 센다. 그렇게 세고 난 지 약 1분쯤...
“뭐야, 몇 명이 비는데?”
윤진을 제외한 다른 부원들은 모두 누가 없는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각자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다. 분명히 아까, 미리 못 온다고 이야기했다든가 한 부원은 없다. 다시 세어 보니, 딱 두 명이다.
“뭐야, 얘들은 왜 안 온 거야?”
“어, 누가 안 왔다는 거예요?”
부원 중 한 남학생이 묻자 윤진은 바로 입을 연다.
“지온이하고, ‘토니’가 안 왔어.”
“네...?”
그 부원은 의아했는지 말끝을 올리며 반문한다.
“지온이는 분명 아까 먼저 가 있겠다고 나한테 이렇게 메시지까지 남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메시지도 받을 수 없다고 그러고, 뭐가 문제인 건지 토니도 안 오고 있고...”
윤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곧바로 한 사람을 지목한다.
“어...? 나는 왜...?”
윤진과 눈이 마주친 사람은 민. 한참 열심히 자기가 읽는 책에 집중하고 있던 민은 갑자기 윤진이 자신을 부르니 돌아보고는 멀뚱멀뚱 윤진을 보기만 한다.
“네가 한번 갔다 와 볼래? 멀리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호... 혼자?”
“당연히 아니지.”
윤진은 기다렸다는 듯 말하고는, 다시 입을 연다.
“네가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 한 명 데려가.”
그 시간, 토키와 근처의 주택가에서는 지온과 토니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물론 서로의 목적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지온은 도대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고, 토니는 그런 지온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쥐어짜도 도저히 답을 내놓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지온은 다시 한번 머리를 써 본다.
“야,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수수께끼 놀이나 하고 그러는 거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윤진이 형도 가만히 안 있을 거고. 안 그래?”
“하, 너 아직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구나.”
지온이 실낱같이 걸었던 희망이 깨지는 순간. 토니는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세가 등등해진다.
“너 분명히 나하고 전에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고. 나는 금방 네 이름을 기억해 냈는데, 너는 아니더라. 그게 좀 많이 아쉬웠는데, 다행히도 네가 어제 만화부에 들어갔다는 걸 알고서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 그런데 너는 또 나를 봤는데도 아는 척도 안 하더라.”
“그, 그랬던 거냐...”
지온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런데 어쩌랴, 아무리 해도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그리고, 토니가 다시 입을 연다.
“너, <그린 마스크드 파이터> 요즘 재미있게 보던데, 맞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2-08-09 21:41:51
만화카페라는 곳은 가본 적이 없는데, 도서관보다는 캐주얼한, 그리고 일반적인 카페보다는 만화책 쪽에 힘을 더 쏟은 중간적인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지온과 토니가 대치중이네요. 겪어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게다가 토니라는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삼대 구족이 맞아죽는 상황인지는 몰라도 그의 질문방식은 상당히 불쾌해요. 저런 사람에게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지 볼만하겠어요.
시어하트어택
2022-08-14 23:21:01
저도 만화카페란 곳을 직접 가 본 적은 없습니다만, 상상력을 좀 더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드리갈님 말 그대로 두 곳의 이미지가 혼합된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토니가 지온에게서 뭘 원하는지는 봐야 알 겁니다. 어쩌면 지온보다도 부족해서 채울 게 많을지도 모르죠.
SiteOwner
2022-08-14 21:03:30
기억의 어느 한 부분이 강제로 소거된 것 같은 그런 감각, 정말 싫지요.
정말 그럴 때는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도 없고, 혼자 끙끙 앓던지 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냥 다른 생각없이 잠을 자고 나면 어쩌다 그 기억이 복원되기도 하지만...
꼭 저런 사람 있지요.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자의적으로 정해놓은 답에 타인을 맞추려는 프로크루스테스같은...그런 프로크루스테스가 결국 여행자들을 죽이던 그 수법으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시어하트어택
2022-08-14 23:24:21
그런 경험이 저도 있기에 제 이야기처럼 느끼며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애초에 없었던 일인데 거짓된 기억이 머릿속에 남는 경우도 있고 해서 골치아프죠.
토니가 뭘 원하는 건지는 지금 시점에서는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뭔가 채울 게 많은 캐릭터임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