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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뜻밖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만난 만화부의 선배. 지온은 서언의 다음에 이어질 말이 다분히 신경 쓰인다. 이윽고, 서언이 입을 연다.
“미린대 만화동아리는 아닌데, 밴드 동아리 중 하나가 요즘 갑자기 초능력자가 많이 늘어났거든. 당연히 거기서 크고 작은 일도 많이 일어나고, 그래서 ‘그 재단’의 주 감시 대상이야. 어제는 불 능력자가 동아리실 옆 창고를 홀라당 태워 먹었고.”
“어... 정말요?”
“그것뿐인 줄 알아? 그 동아리의 또 다른 능력자는 캠퍼스 곳곳에 함정을 설치해 놓고 그걸 즐기다가 걸렸지 뭐야. 그것 때문에 그 밴드 동아리는 요주의 대상이 되었고, 감시의 눈길이 그 동아리를 떠나지 않게 됐지.”
“어... 정말요?”
“거기도 이제 하나 그런 녀석이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
지온은 대충 알 것 같다. 아직 얼굴은 알지도 못하고, 또 그게 누구인지조차 짐작이 되지 않지만, 분명히 있기는 한 것 같다. 만화부에 온 첫날도 분명히, 지온은 그 능력자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린대 캠퍼스에도 이상한 구름이 떠서 비를 뿌려 놨더라.”
그리고 서언이 보여 준 영상에는, 미린대 정문 쪽에만 구름이 떠서 비를 뿌리는 바람에, 난데없는 일을 당한 학생들과 교수들이 서둘러 뛰어서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담겼다. 그리고 약 10분 정도 지나자 그 이상하게 생긴 구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우산이나 우의 같은 건 챙겨 놓고 다니는 게 좋아. 언제 어디서 비를 맞거나 할지 모르니까.”
“네... 네.”
“참, 그리고 윤진이한테 좀 전해 줘. 내가 조만간 한번 만나고 싶다고 말이야.”
“어? 그걸 왜 굳이 저한테...”
“아, 그럴 일이 있어.”
그리고 어느새, 전철은 지온이 내릴 역에 도착했다.
“또 보자. 내가 조심하라는 거, 잊지 말고!”
지온은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시계를 본다. 아직 3시도 안 됐다. 요 근래 하교한 시간 중 가장 빠른 시간이다.
“오, 다른 애들이 웬일이냐고 할 시간인데? 얼른 가야지...”
그렇게 지온이 기대감을 가득 품고서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출입구로 나오는데...
“어, 뭐야?”
난데없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짙은 구름이 출구 위에 떠 있는데, 이상하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구름 같은데?”
구름의 형태도 그렇고, 쏟아내는 비도 그렇고, 묘하게 어디서 본 것 같은 구름이다. 그리고 지온이 그것을 떠올리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거, 아까 그 선배가 말했던 그건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니, 지온 말고는 딱히 주위를 오가는 사람도 없다. 편의점을 검색해 보니 나오기는 하지만, 지금 비가 오고 있는 거리를 가로질러 가야 나온다. 거기에다가, 다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보니, 구내의 편의점은 문을 닫았다.
“아, 이거 진짜!”
지온에게는 초능력도 없고, 우산도 없고, 우비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발을 있는 힘껏 내딛는다. 머리에는 가방을 올리고서.
“아으, 돌아 버리겠네!”
지온의 머리는 어느새 빨리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이곳을 피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거리를 뛰어간다. 그렇게 비를 맞아 가며 뛰어가다 보니, 이상하다. 분명히 비는 무섭게 쏟아지는데, 인도 너머의 차도는 물 한 방울 젖은 것 없이 말라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마치 칼로 베어 버린 듯, 경계가 비교적 명확하다.
“어...?”
지온의 머리가 순간 돌아간다. 그렇다고 한다면, 혹시 살짝 차도 쪽으로 가면 비를 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지온은 차도로 몸을 돌려 뛴다. 마침 차도 별로 지나지 않고,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안 지나다닌다. 됐다... 이제 저 비를 안 맞아도 되겠다...
그렇게 지온이 생각했는데...
“뭐, 뭐야?”
어느새, 비가 지온의 머리 위에 내리고 있다. 그것도 마치 지온을 대놓고 물에 적셔 버리겠다고 선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게다가, 지온이 조금 전까지 빗속을 파고들며 뛰었던 인도에는 비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그리고 비는 지온이 달리고 있는 그 차도에만 오고 있고, 차선 너머에는 오고 있지 않다!
“아니, 이거 뭐야... 왜 이러냐고!”
어쩔 수 없이, 지온은 다시 인도로 올라가서 뛴다.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위에 뜬 구름은 여전히 굵은 빗방울을 뿌리지만, 그렇다고 더 사나워지지도 않고, 그냥 이 상태를 유지한다. 이대로면 집까지 뛰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지온이 그렇게 무사히 비를 뚫고 집에 도착하자, 어느새 시간은 3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리고 현관문을 열기 전에 한번 보니, 온몸이 젖어 있다. 가방까지도. 다행히 가방 안의 내용물까지 젖는다든가 하지는 않았지만.
“다녀왔습니다-”
지온의 말에 나온 사람은 지온의 어머니.
“응, 지온아... 어, 너 왜 그렇게 젖은 거야?”
“아, 비를 맞고 오느라...”
“비? 비라니?”
어머니는 지온의 온몸이 젖어 버린 모습을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비가 왔었어?”
“네. 방금 전까지 비를 막 뚫고 온 건데...”
“이상하네.”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의외다.
“비는 하나도 안 왔는데. 오히려 해가 아주 쨍쨍거린다고.”
“네... 네?”
지온이 어머니의 말을 믿지 못하겠는지 되묻자, 어머니는 그 반응이 더 이상하게 생각된 건지 머리를 다시 좌우로 흔든다.
“정말이야. 비 온다는 예보도 없었고, 엄마 눈에 비 온 게 보이지도 않았어. 설마 어디서 물놀이라도 하다 온 거야?”
“아니요, 제가 그런 걸 하고 올 리가 없잖아요. 분수 근처에도 안 갔고요.”
“어, 그래...?”
어머니는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을 하지만, 거기서 더 묻지 않기로 한 듯, 지온이 메고 있는 가방을 들어 주며 말한다.
“그래...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는 데 수고했어. 씻고.”
“네.”
한편, 민이 집에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다. 이런 일이 흔하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겪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민은 이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지 잘 알고 있다.
“엄마는 오늘도 조금 늦게 들어올 테고...”
거실을 돌아보던 민의 눈이 빛난다. 그리고 약 5분 정도가 지나자, 고풍스러운 가구로 장식된 거실의 한쪽 벽면은 거대한 스크린이 채우고 있다. 그리고 거실 곳곳에는 목재 탁자도 놓였고, 게임기도 구비되어 있다. 누나는 좀 일찍 온다고 했지만 상관없다.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어서 잘 알고 있으니까.
“친구들 눈이 또 얼마나 휘둥그레지려나.”
곧바로 민은 메신저를 켜더니 친구들이 있는 대화방에 메시지를 하나 남긴다.
[지금 우리 집에 오라면 올 사람?]
그리고 약 15분 정도가 지나자...
“오, 또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너희 엄마하고 아빠한테 걸리면 또 혼나는 거 아니야?”
친구들 몇 명이 모인 민의 집 거실은 마치 오락실이라도 되는 듯하다.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거실 한쪽의 스크린, 게임기들이 좀처럼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민의 의도대로 친구들과 즐길 만한 공간이 마련됐다.
“어디 보자... 신주, 유, 리카, 카일, 코니..”
민이 친구들을 보니,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토마도 왔다. 사실 이건 민이 토마를 설득하면서 조금씩 이런 곳에 나와 보면 어떠냐고 해서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어, 토마 너도 온 거야?”
“맞아... 네가 오라고 하니까 안 올 수가 없었지.”
“그래, 토마. 앞으로도 이렇게 하는 거야! 알았지?”
토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친구들의 옆에 끼어 앉는다. 확실히 전보다는 자연스러워진 모습이지만, 여전히 어딘가 어색해 보이고 물 위에 떠서 쉽게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민의 집에 모인 친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게임기 앞에 앉아서 게임기를 켠다. 금세 거실 안은 오락실로 바뀐다. 그것도 꽤 그럴듯한.
“다들 트리플 버스터 로그인해서 방에 접속했지?”
“어느 방?”
“그러니까... 이름이... ‘POTG_MIN’이고... 비밀번호는...”
민의 말에 따라 친구들이 다들 방에 들어가자 곧바로 게임이 시작된다. 그러자 와글거리던 분위기는 어느새 게임 배경음과 효과음만 들리고, 간간이 ‘아’ 하는 탄식 소리, ‘이야’ 하는 감탄사만 나는 차분한 분위기로 바뀐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정도 지나자...
“어, 뭐야, 비 오는데?”
리카가 창밖을 보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한다. 그 소리에 다른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된다.
“비...? 비라니?”
그럴 리는 없다. 아까 민도 분명히 날씨는 확인했다. 흐리다고만 했지 비가 온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비가 오는 건가?
“야, 저기 봐봐.”
다른 친구가 창밖을 가리킨다. 제법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다. 다들, 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어... 너희들...”
그건 둘째치고, 민은 친구들부터가 걱정된다.
“혹시 우산이나 그런 거 가져왔어?”
“아니, 전혀.”
토마가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다른 친구들도 토마에게 묵시적으로 동의한 듯, 다들 얼굴빛이 흔들리고 있다.
“아, 그럼 어떡하지...”
리카가 울상이 된 얼굴을 한다.
“분명히 온몸이 젖어 가지고 오면 엄마나 아빠가 가만히 안 있을 텐데... 거기에다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 볼 게 뻔하잖아.”
“야,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해. 비가 오면 그냥 비가 왔다고 하면 될 텐데...”
하지만 민도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상황은 부모님이 보시기에는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누가 봐도 가구가 멀쩡히 있던 거실을 오락실로 개조해서 거기서 친구들까지 불러와서 놀고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좋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방을 금방 치워 버린다면 친구들의 원성이 높아질 것임은 뻔하다. 거기에다가 방을 함부로 없애 버리면 벌점으로 게임 내 승점도 깎여 버린다. 어떤 걸 하든, 민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선택지뿐이다. 거기에다가 지금 있는 친구들 중에 저 비를 흩어 버린다든가 할 만한 초능력을 가진 친구는 딱히 없다.
“맞아! 누나가 오늘 일찍 온다고 했는데...”
바로 그때, 민은 반디가 오늘 집에 일찍 온다고 한 걸 생각해 낸다. 하지만 민이 아는 한, 반디는 그런 비를 그치게 하거나 할 만한 능력은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비를 멈출 방법은 과연 없는 건가...
“그런데, 누나 혼자 오는 거면 여기 올 때 비를 다 맞고 올 거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민이 먼저 나가서 뭐라도 좀 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2-11-02 15:22:42
결국 초능력자 급증이 이상한 사건의 원인인 거네요.
게다가 문제의 이상한 구름 또한 역시 초능력자 급증과 무관하지는 않겠네요.
이런 생각까지 같이 들어요. 만일 누군가가 초능력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일부러 특정인을 괴롭힐 목적으로 그렇게 상황을 만드는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보면서 능력을 발휘중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 이 추론이 맞다면 그것 자체로도 기분나쁜 상황인데 틀리면 또 그것대로 문제이기도 하고...
반디가 일찍 귀가할 예정이라는 상황은 그 문제의 초능력자가 상정범위에 넣고 있으려나요.
시어하트어택
2022-11-06 23:42:20
어쩌다 초능력자가 급증하게 된 건지는 전작의 시점과 비슷하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본작에서도 간단한 묘사는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문제의 구름을 만드는 초능력자가 왜 그러는지는, 조금 더 작품이 진행되면 백주대낮에 드러나겠죠.
SiteOwner
2022-11-27 16:19:38
역시 요주의대상이었군요, 문제의 만화부를 비롯하여 초능력자들이 많이 모인 곳은. 그 재단이라면 전작에 등장한 VP재단이겠지요? 게다가 화재사고 같은 것들을 일으켰다면 이것은 당장 실정법 위반이니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질 것은 분명하겠습니다. 기상상황을 조작하는 자는 기상상황이 실정법의 판단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상황을 알고 악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예의 화재사건이나 함정사건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해야 할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간혹 의도치 않게 대형사고를 치는 동기도 잘 묘사되어 있군요.
저는 저런 경험까지는 없었습니다만, 국민학생 때 주변에서는 꽤 봤습니다. 확실히 남자아이들이 압도적으로 잘 그렇지요. 저는 여자아이같은 성격인데다 실제로 전학 이전에는 여자아이들과 같이 노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당시 동네에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여자아이들 뿐이었고 당시 남자아이는 저밖에 없었다 보니 그러합니다.시어하트어택
2022-12-04 22:28:48
아마도 그 초능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대학 같은 곳에서 저랬다면 뉴스 같은 걸 탔을 겁니다. VP재단이 손을 써서 적당히 묻어 버릴 수도 있겠죠. 아무튼 VP재단이 있어서 그나마 제어가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그렇다면 무법천지가 되어 버렸을 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