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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토마가 쏟으려던 빗방울이 공중에 둥둥 떠 있을 그 무렵, 토마의 온몸을 뒤집어 놓던 그 느낌도 없어진다. 마치 팽팽 도는 소용돌이 같았던 눈앞도, 다시 원래의 코믹 페스타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자꾸만 한쪽으로 몸이 쏠리던 것도 없어졌다. 그렇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자마자, 토마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오!”
마침 토마가 원래대로 몸의 균형을 되찾은 그때, 부스에 온 손님들이 보인다. 딱 봐도 토마의 또래로 보이는 손님들이다. 그 일행은 모두 3명인데, 2명은 중학생 정도의 남자, 다른 1명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여자아이다.
“뭘 물어보려고 했는데...”
일행이 서로 중얼거리며 말을 주고받자, 민이 얼른 나선다.
“어, 혹시 여기 굿즈 사러 오신 건가요?”
“네, 이거 하나 좀 주세요.”
일행이 배지를 가리키자, 민은 곧바로 일행이 가리킨 배지를 하나씩 준다. 그렇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그 일행이 부스를 떠나기 전, 민에게 묻는다.
“혹시 저 분... 왜 저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는지...”
“아, 회지를 몰래 보고 감동이라도 받았나 보죠.”
“그런가...”
그리고 일행 중 여자아이가 마치 들으라는 듯 한마디 한다.
“그런데 여기, 어쩐지 좀 습하지 않아, 오빠들?”
“어, 그런가?”
“사람들 많으니까 그렇겠지.”
다른 2명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지, 한마디씩 하며 만화부 부스를 나선다. 1명은 살짝 손부채질을 하지만, 이내 다른 일행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그 시간, 토마는 몸을 부르르 떨며,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다. 천식 때문에 기침을 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듯, 애써 심호흡을 하고 있다. 물론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는 주위의 수증기는 덤으로, 또다시 부스 안에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고생했으면 좀 뭔가 깨달아야 할 텐데, 아직도 포기를 못 하다니,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데.”
마린이 샌드위치 하나를 토마에게 주며 말한다. 토마는 괴로운 표정을 하면서, 마린을 불편하다는 듯 돌아보면서도 그 샌드위치를 받는다. 시간은 이제 10시 정각이다. 점심시간은커녕 브런치 같은 걸 먹을 시간조차도 아니다.
“고마워요, 선배님.”
“내가 그날 이후로 처음 초능력을 쓰게 만들었으니, 그것도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
하지만 토마의 머리에는 딴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아니, 딴생각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다. 토마는 애초에 이 ‘즐거운’ 일을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쳇!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어디 그만두거나 할 것 같아? 그러면 그럴수록 오기만 더 생긴다고! 어디 해 보라면 해 보시지!’
한편 윤진은 조금 시간이 생겨서 몇몇 부원들을 데리고 연희가 있는 도컬트 팝업스토어 부스에 놀러 왔다. 일찍 온다던 요시노 감독이 교통편 문제로 조금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 주에 우리 도컬트에서 유령의 집 탐방을 갈 건데 갈 사람 혹시 있어?”
연희의 말에도, 다수의 만화부원들은 말이 없다. 아니, 몇 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어... 정말이지? 안 오면 후회할 텐데.”
그래도 다들 반응이 없다.
“에이, 뭐, 좋아. 여기 손님들 오면 더 즐거울까 했는데, 아쉽네.”
연희가 막 아쉬움을 표하며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던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든다. 연희가 보니, 만화부원들 중 현애만이 손을 들고 있다.
“어? 뭐야, 너 가겠다고 손 든 거야, 설마?”
“그럼!”
“오, 네가 만약에 우리 학교 학생이었으면 널 바로 도컬트에 넣어 줬을 텐데, 아쉽네!”
연희의 얼굴이, 바로 활짝 펴진다.
“그럼, 내가 연락하면 바로 오는 거다, 알겠지?”
현애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는, 윤진은 혼자 중얼거린다.
“어쩌면 저렇게 무모한 건지 모르겠네... 만화부에 처음 들어올 때도 대뜸 나한테 오더니 들어가고 싶다고 그러고. 저렇게 무모한 것도 캐릭터인가...”
그런데, 윤진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진다.
“응?”
머리를 만져 보니, 웬 물방울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손을 들어 만져 보니, 축축하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위를 보니, 웬 구름이 천장에 생겼다. 그것도 비 오는 날에나 볼만한 짙은 먹구름이다.
“아니, 구름이 왜 저렇게 크지? 설마...”
윤진의 생각이 어딘가에 미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구름은 이벤트실에까지 닿아 있다.
“안되는데... 저기까지 가면...”
윤진은 곧바로 이벤트실로 향하기 시작한다.
“하... 하아...”
그 시간, 만화부 부스. 토마는 연거푸 콜록거리는 기침을 내뱉으며, 옆에 있는 부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지금까지 한 건 모두 옆에 있는 민, 아이란, 마린에게 걸려 버렸으니, 적당히 기회를 봤다가 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토마는 표면상으로는 그냥 부스에 앉아서 이따금씩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적절히 반응을 살핀다든가, 물건을 팔 때는 그냥 적절히 상대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은밀히 모으는 수증기는 잊지 않는다.
“그래... 부스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겠지. 하지만 천장에는 지금 상당히 많이 모아 놨거든?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리면...”
그 시간, 지온은 계속 구경하며 다른 일행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다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미약한 천둥소리를 듣는다. 분명히 이곳은 실내, 거기에다가 구름 같은 게 낄 만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고 보니, 분명 대전시장 안은 조명을 환하게 켜 둘 텐데, 조금 어두운 것 같다. 위를 올려다보니...
“뭐야, 웬 구름이야? 그것도, 먹구름이라니?”
조금 전, 일기예보는 분명 맑다고 되어 있었는데 비가 추적추적 온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분명 실내인데 구름이 껴 있다. 거기에다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건 덤이다. 아니, 벌써 이미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아니, 왜 비가 오는 거야?”
“어, 뭐야...”
부스 안에 있는 토마는 조금 당황했는지,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서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다. 마치 인물상이 눈만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내가 하려고 하지도 않은 건데, 왜 비가 오는 건데?’
토마는 어떻게든 지금 내리는 비를 다시 멈춰 보려고 한다. 일단 비는 내려도 수증기가 모여 만들어진 구름은 천장에 있을 것이다. 그걸 다시 모으면, 토마가 원하는 비, 그리고 회오리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제발... 왜 내가 내리지도 않은 비가 내리는 거냐... 제발 좀 멈춰라, 비야...’
하지만, 토마의 의지대로 비는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계속 내리자, 무시하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더는 모른 척할 수는 없었는지, 하나둘씩 멈춰선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본다.
‘아니, 왜 멈추지를 않는 거야... 분명 나는 비를 멈추려고 했을 텐데...’
토마가 막 뭔가 해 보려고 구름이 낀 대전시장 천장을 살짝 올려다보려는 바로 그때, 누군가가 토마의 뒤에서 손을 짚는다.
“어... 어?”
돌아보니, 민이 어깨에 손을 짚고 있다. 그것도, 웃음기가 많이 없어진 얼굴을 하고서.
“뭐야, 너? 무슨 일인데?”
“모르는 척하지 말라니까. 일부러 내가 하는 거라고.”
“뭐야... 네가 어떻게 비를 내려? 네 능력은 그거 아니잖아?”
민은 토마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한번 웃어 보이더니, 다시 입을 연다.
“응용만 잘 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야. 염동력을 조금만 응용하면 구름 안에 있는 수증기를 뭉쳐서 조그만 빗방울을 만드는 건 가능하거든.”
“너...!”
토마의 얼굴색이 확 변한다. 금방이라도 눈앞에 있는 민에게 비를 내리거나 회오리에 휘말리게 하겠다는 듯 말이다.
“콜록... 비는 왜 일부러 내린 거야. 콜록... 그러면 내가 하려는 게 어그러져 버린다고!”
그렇게 얼굴이 붉어지며, 기침도 약간 섞인 격한 말을 쏟아낸 토마가 제풀에 지쳐 씩씩거려도, 민은 얼굴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로 계속 말한다.
“바로 그것 때문이야.”
“왜... 어째서!”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소나기를 맞는다든가 회오리에 휘말린다든가 하면 많이 놀랄 수도 있고 그렇잖아? 그래서 미리 알려 주려는 거였지. 알아서 나쁠 건 없어.”
“콜록... 콜록... 으...”
“내가 생각 같아서는 구름을 대전시장 밖으로 빼내서 없애 버리고 싶거든? 그런데 그러면 사람들 눈에도 띄게 되고, 또 그런 건 내가 싫어하는 거잖아? 그래서 일단 이 정도로 해 놓은 거야.”
그러고서 민이 또 토마를 보니, 토마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주체하지를 못하겠다는 듯, 자꾸만 씩씩거리는 가쁜 숨을 내뱉고, 거기에다가 콜록거리는 기침이 잦아진 건 덤이다. 저러다가 호흡곤란으로 정말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야, 그런데 토마, 진정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너는 몰라! 내가 얼마나 다른 애들 눈도 못 마주치고 그러는지 네가 알아?”
“어... 그러니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이란이 한마디 한다.
“그건 네 마음 먹기에 달렸는데. 맨날 혼자 음침하게 있으면서 구름이나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 곤혹스러워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해? 차라리 그 시간에 브로맨스 만화 한 편을 더 보고 팬코믹을 하나 더 그리겠네.”
“선배님, 선배님이 알아요?”
그 순간, 아이란에게도 보인다. 토마의 살기 넘치는 눈빛이 말이다. 그리고 급격히 올라가는 습기도, 함께 느껴진다. 거기에 토마가 뭐라고 한 마디 더 해 보려는 바로 그때,
“뭐야...”
토마는 갑자기 울리는 천둥 소리에 말을 잃는다.
“왜 천둥번개까지 치려고 하냐고...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오, 알고 싶은 거야?”
그때, 또다른 목소리가 부스 바로 앞에서 들린다.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손님처럼 보이는데, 실은 아니다. 그 손님의 얼굴을 알아본 아이란이 바로 반응한다.
“응? 지온 선배는 왜?”
“왜냐고? 이것도 일부러 한 거거든.”
지온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한다. 그리고 마치 자신에게 초능력이라도 있다는 듯한 말투는 덤이다. 그 말투 때문에 다들 의아했는지 한번씩 지온을 돌아보는 건 덤이다.
“제가 알기로, 지온 선배님은 초능력이 없을 텐데요? 설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초능력이라도 발현한 건... 아니겠죠?”
토마가 지온에게 묻자, 지온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물론 아니지! 나는 번개를 만든다든가 하는 건 할 수도 없어. 하다못해 초능력은 발현하지도 않았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능력과는 별 관련없이 살았는걸.”
“그럼 선배님이 어떻게 알고요?”
“이 애는 할 수 있거든.”
지온이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를 가리킨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1-03 14:21:09
토마의 사념은 그야말로 똥고집 자체네요. 그렇게 혼쭐이 나고도 정신을 차리긴커녕 이제는 도리어 있는 오기 없는 오기를 다 부린다고...아이란이 한 말이 정답이죠. 늘 저렇게 음침하게 있고 이상한 짓을 꾸미는 자를 좋아해 줄 사람은 있는 게 이상하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정성을 쏟아도 부족한 게 인생이고 게다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가기 마련인데 말이죠.
지온이 가리키는 그 문제의 능력자란 과연 누구일지...
시어하트어택
2023-01-08 20:55:17
웬만하면 저 단계 전에서 포기하기 마련인데, 저쯤 되면 토마의 집념도 보통은 아니죠. 제가 어린 시절 봤던 악동들 중에 한두 명 될까말까 할 정도니까요... 포기하면 편할 텐데 말입니다.
SiteOwner
2023-02-12 14:57:36
저 정도 고생하면 달라질 여지도 있어야 하는데, 토마는 요지부동이군요.
국민학생 때 봤던 늘 이상한 소리나 하던 그 아이는 교사에게 욕을 했다가 크게 혼난 이후로 졸업 때까지 학교에서 단 한 마디도 안 하게 되었습니다만, 토마는 그 사례를 아주 능가하고 있으니, 더더욱 난감합니다. 감당해야 할 대가가 더 커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자신의 결정이니까.
현실세계보다 발달된 미래상이라도 역시 교통문제는 어쩔 수가 없군요. 역시 물리적인 이동이라서 그런 것인지...시어하트어택
2023-02-12 22:22:30
그렇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겠습니다만,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일은 더 벌이고 싶은 게 문제겠죠. 토마는 누군가가 브레이크가 꼭 필요하겠습니다. 안 그러면 더 사고를 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