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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눈에 갇혀 버린 산장.
지금 밖에 내리는 건 끊임없는 눈, 그리고 길은 이미 눈에 묻혀 없어져 버린 지 오래다. 바깥만 봐서는 시간은 지금 오전인지, 오후인지도 모를 정도이고, 벽에 걸린 시계를 봐야 지금이 오전 8시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지금 산장 안에 있는 사람은 총 3명.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조금은 험한 인상의 여자 1명, 풍채가 꽤 크고 뿔테 안경을 쓴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된 남자 1명, 그리고 40대 중반의 머리를 잘 빗어넘긴, 롱코트를 입은 남자 1명이다.
40대 남자는 온화한 인상의 남자와 차가우면서도 숨기는 게 많은 듯한 인상의 여자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두 사람을 번갈아 향했다.
“흠... 이 둘 중 하나는 혁명당원이지. 그것도 꽤 높은 간부급이 확실한데.”
40대 중반의 남자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에게 있어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는 경찰 수사관으로 잠복근무 중이었다. 국가 전복을 기도하고 활동하는 이른바 ‘혁명당’은, 매우 골치 아픈 존재다. 겉으로는 사회 변혁, 그리고 혁명을 부르짖지만, 마약 거래와 같은 불법 행위가 상당수 확인되었다. 특히 혁명당 간부들은 겉으로 보이는 고고하고 선동가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뒷세계의 각종 범죄에 있어 큰손으로 관여하고 있음도 확인되었다. 그래서 수사는 신중하면서도 속도를 내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각 간부들의 지근거리에 잠입하는 수사가 진행되었는데, 지금 수사관이 이 산장에 온 것도 그 일환이었다.?
바로 어젯밤, 그는 쏟아지는 눈을 피해 이 산장으로 발걸음을 들여놨다. 주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침실 안에 차려져 있었고, 그는 지친 몸을 침대 위에 누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일어나서, 간단히 야식을 먹고 씻은 다음 잠들 생각이었다. 문앞에 놓여 있는 숙박부에는 위장용 이름과 주소를 적어넣었다.
그러던 그에게 얼핏 보인 게 하나 있었으니, 노트 한 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얼른 그는 그것을 주웠다. 남자가 주운 건,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건, 다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혁명당의 조직에 대해 적어 놓은 메모에서부터, 산하 조직에 대한 지시사항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은 메모까지. 생각지도 못한 큰 수확이었다. 거기에다가, 마지막으로 적힌 날짜는 바로 그날이었다. 분명 그 혁명당 간부는, 이곳에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남자가 들어온 시간은 매우 어두운 밤, 그리고 산장의 주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큰 건을 잡은 이상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다음 날에는 승부를 보기로 했다. 어차피 노트를 주운 이상, 그 혁명당원도 그의 존재를 알아챘을 것이기에.
수사관은 다시 털털한 인상의 수염을 기른 남자와 차가운 인상의 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둘 중 하나는 산장 주인, 다른 하나는 혁명당 간부다. 오랜 경험과 수많은 통념에서부터 온 직관은 수염을 기른 남자가 산장 주인임을 알려 주고 있다. 어딘가 안심을 주고, 또 여기서 오래 있었다는 걸 보여 주는 얼굴이다.
“저기...”
수사관은 대뜸 입을 열었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덥다는 시늉을 하는 건 덤이었다. 그리고 그 수염을 기른 남자가 일어났다. 환하게 웃으며 말이다.
“네, 네, 손님! 바로 가져다 드리죠!”
곧바로 수염을 기른 남자가 옆에 보이는 주방으로 가더니, 주전자를 하나 가져왔다. 수사관이 얼핏 보니 여자는 수염을 기른 남자를 매섭게 쏘아보는 게 아닌가. 지금 보이는 것으로만 봐서는, 이 여자가 혁명당원인데 자신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산장 주인을 불만스럽게 쏘아보는 구도였다. 수사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그림은 너무나도 전형적이었다. 그리고 수염 덥수룩한 남자가 수사관의 앞에 주전자를 가져다 놓고 수사관의 앞에서 잠시 떠나지 않았다. 수사관이 물을 마시려는 듯 잔을 입에 가져다 대자, 수염 덥수룩한 남자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수사관은 이윽고 뭔가 확신이 든 듯, 수염 덥수룩한 남자를 불러세웠다.
“잠깐, 이리 좀 와 보시죠.”
“네...?”
수사관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보는 수염 덥수룩한 남자와 불쾌하게 수사관을 보는 여자를 번갈아 보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럴 때 먹으면 좋을 음식을 가지러 가는 길이었습니다만...”
“시치미 떼지 마시지. 이미 정체는 간파했다. 혁명당 최고교육위원!”
난데없는 수사관의 일갈에, 수염 덥수룩한 남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채로,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잠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이곳의 주인으로서 편의를 제공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당신을 죽이려고 했던 혁명당원은, 저 여자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수염 덥수룩한 남자는 품 안에서 공업용 나이프를 뽑으려 했다. 물론, 수사관의 눈에 그것이 안 보일 리가 없었다.
“역시 혁명당답군.”
둔탁한 퍽- 하는 소리가 들리고, 수염 덥수룩한 남자는 수사관의 발차기에 나가떨어졌다. 손에서 나이프를 놓쳐 버린 건 물론이다.
“대의를 외치면서 정작 자신이 위험에 빠지면 남을 팔아먹을 생각이나 하다니.”
“무슨...”
“당신의 얼굴은 누가 봐도 그럴듯하게 생겼어. 예를 들면 어디 식당에 갖다 놓으면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 식당 주인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등대에 갖다 놓으면 등대지기라고 생각하겠지. 당신은 그 얼굴을 무기로, 지금까지 이렇게 용케 피해 왔던 거야.”
“분하다... 내가 어제 그 노트를 떨어뜨리지만 않았어도...!”
수염 덥수룩한 남자의 눈에서는 온화함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살기로 가득한 눈빛이 자리를 잡았다.
“조금 전까지 태연한 척 연기를 한 건 칭찬해 주지. 하지만 도로 썩어빠진 혁명당의 본색을 보이니, 나도 왠지 썩어버린 것 같군.”
그리고 조금 전까지 자신과 그 혁명당원을 불쾌한 표정으로 봤던 여자를 돌아보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주인. 실례가 안 된다면, 저 혁명당원이 묵었던 방을 수색해도 되겠지요?”
“물론이죠...”
산장 주인의 표정은 불쾌함에서 알 수 없을 만큼의 당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주인은 쓰러져 있는 남자를 한번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동정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남자의 변하지 않는 살기 넘치는 눈을 보니, 주인도 그 순간 경멸하는 얼굴을 남자에게 한번 보이고는, 곧바로 남자가 묵던 방으로 달려갔다.
“속이며 살아온 삶은 끝났어. 이제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그 와중에도 남자가 바지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려는 게 보이자, 수사관은 그 손을 걷어차더니, 권총을 남자의 머리 뒤에 겨누었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아니었어. 이제 그 거짓된 가면을 벗겨 주지. 앞으로 아주 외롭지는 않을 거야.”
어느새 산장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산장 주위를 덮었던 눈도 조금씩 녹고 있었다. 햇빛도 피해 가는 수염 덥수룩한 남자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남자를 완전히 제압한 수사관의 등 뒤로 햇빛이 비쳤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1-27 14:10:31
장기간 추적해 왔던 위험인물을 검거하기 직전의 단계인가요. 굉장히 긴박한 상황이네요.
그리고 문제의 수염을 기른 남자는 정말 특징없이 주변의 환경에 잘 녹아드는, 정말 정체를 숨기기에 적합한 사람이지만 결정적인 하나로 결국 저렇게...하긴, 일본적군을 결성하여 세계 각지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해서 한동안 정체를 숨겼던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 1945년생) 또한 특유의 버릇 하나가 큰 단서가 되었다죠. 그 이전에 시게노부 후사코는 두드러진 미모로 인해 쉽게 특정된 게 달랐지만요.
다 읽고 나니 고립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네요.
그렇게 자신을 고립시켜 얻은 대가는 대체 무엇일지...
이 글은 포럼에서 8000번째로 등록되었어요.
8000번째 글 달성에 대해 축하의 말씀을 드릴께요.
시어하트어택
2023-01-29 21:47:52
그 문제의 혁명당원은 자신을 잘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과는 그렇게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되었죠. 차라리 허세라도 부려 가면서 당당하게 잡혀간다면 그 나름대로 이득이었을 테지만 말입니다...
어느새 8000번째 글이군요. 포럼의 역사가 그만큼 깊어졌나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마드리갈
2023-01-30 17:19:36
올해 4월 27일에 포럼이 개장 10주년을 맞게 되니까 벌써 강산이 한 번 바뀐 것이 되죠.
그리고 포럼이 이렇게 좋은 창작공간이 될 수 있어서 운영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SiteOwner
2023-02-12 16:15:18
등잔 밑이 어둡고, 파랑새든 적이든 의외로 먼 데에 있지 않습니다.
산장 주인이 이렇게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것도 꽤나 섬찟하고 수사관의 집념도 정말 굉장합니다. 그리고 그 고립이 이렇게 끝났다는 게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폭설도, 그리고 거짓 속에 자신을 고립시켰던 그 남자의 기만 속 나날도.
윤흥길(尹興吉, 1942년생)의 소설 장마가 같이 생각났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