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민이 옷장 앞에 서니,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이 된다.
“그냥 평소대로 입고 가야 하나, 아니면 잘 차려입고 가야 하나...?”
이럴 때면 인공지능이 꽤 도움이 된다. 조건을 입력하니, 금세 인공지능은 최대한 격식 있게 갖춰입고 가라고 알려준다. 아무래도 부모님과 같이 식사하는 시간이니 조금 갖춰 입고 가야 한다는 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믿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은 민에게 정장을 입고 가라고 거의 강권에 가깝게 추천하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의상 중 하나를 입어 본다. 자주색의 정장에다가 기하학 무늬의 넥타이, 그리고 검은색 양말이다.
“어, 이거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런데 또 정작 그렇게 입고 나니,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거울 앞에 서서 보니 배가 살짝 나온 것 빼고는, 민의 걱정과는 달리 꽤 어울려 보인다. 그게 꽤 마음에 들었는지, 뒷머리를 한데 묶어 본다. 그러니까 더 마음에 들어 보인다. 꽤 괜찮은 그림이 나왔다고 자평하고는,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
그렇게 집을 나서자마자, 민의 눈에 보이는 건 몇 명의 친구들. 다들 가벼운 복장을 하고서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놀러 가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오, 민이냐?”
친구들 중 한 명이 먼저 민을 부른다. 민이 돌아보니 같은 반의 모네다.
“어디를 가길래 그렇게 입었어? 아무리 봐도 네가 평소에 입는 옷이 아닌데?”
“맞아, 평소에 입는 건 아니지. 네가 한눈에 봐도 그렇게 보이잖아?”
민이 그렇게 말하자, 마치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다른 친구들도 민이 입은 그 자주색 정장 차림을 구경하기에 바쁘다.
“야, 왜 그러고 보는데? 무슨 구경거리라도 났어?”
“뭐, 네가 평소에 잘 안 입는 옷이니 구경거리이기는... 하지?”
그래도 자기 복장에 관심을 주는 친구들이 싫지는 않았는지, 민의 어깨가 괜히 으쓱거린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그런데...”
민은 문득 주위의 공기가 이상함을 직감했는지, 가만히 멈춰서서는 잠시 말이 없이 서 있다가, 이윽고 자기 오른쪽을 돌아본다.
“왜 그래? 우리하고 이야기하다 말고...”
“잠깐 가만히 있어 봐.”
민은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돌아본 쪽을 향해 손가락을 2개 펴더니, 마치 거기에 누가 있기라도 한 듯, 짐짓 목소리를 키워서 말한다.
“나오라니까? 숨어 있지만 말고. 뭐가 그렇게 떳떳하지 못해서 숨는 거지?”
하지만 민의 그 말에도, 당연하겠지만, 아무 반응도 없다. 그저 민의 눈앞에 보이는 조경수가 더욱더 살랑이는 게 보일 뿐이다.
“좋아, 그렇게 숨고 싶으면 나도 다 방법이 있는데...”
그 순간, 무언가가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듯하더니, 잠시 후 무언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윽고 민이 의도한 위치에 그 무언가가 다다르자...
“잘 들어, 토오루 선배님이었지? 저기 수도꼭지 이쪽으로 틀어 버린다?”
그래도,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는 듯 보이지만... 살살 무언가가 떨리는 게, 민에게 전달된다. 강력한 초능력으로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런 것 정도도 안 느껴질 리가 없다.
“진짜로 틀어 버리기 전에... 이제 좀 모습을 드러내 줄래?”
“하아...”
그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던 토오루가, 이제 지치기라도 한 건지 한숨을 내쉬며 모습을 드러낸다. 여전히,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채로다.
“이상한 거 하려는 건 아니었다고! 내가 무슨 그런 거 하려고 했다는 증거라도 있어?”
“어... 저기, 토오루 형,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친구들 중 카일이 마치 토오루를 놀리려는 듯 실실 웃으며 말한다.
“왜 그런 데 숨어 있었죠? 아무리 봐도 그런 데 숨어 있는 게 이상해 보이는데...”
“하... 그러니까, 내가 왜 거기 있었냐면...”
하지만, 토오루가 막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
♩♪♬
“에이, 뭐야... 누가 메시지를 보냈는데... 어? 슬레인 선배님?”
토오루는 문자메시지를 보고는 금세 귀찮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곧이어 열이 받은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한다.
“하아, 또 나보고 오라 그러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그러고서, 토오루는 분을 못 참았는지, 애꿎은 풀밭에다 화풀이하며 그곳을 벗어난다.
토오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민이 시계를 우연히 보니, 시간은 11시 20분을 지나고 있다. 부모님과 약속한 시간까지는 앞으로 40분 정도 남았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그리고 이상한 일을 하나 겪고 나니 시간이 순식간에 20분이 흘러간 것이다.
“아, 갈 길이 먼데.”
그러고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거기를 벗어나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시간이 지나, 이곳은 세라토시 중심부에 있는 컨벤션홀. 부모님과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이 포함된 곳으로, 내부에 오락실, 영화관 같은 시설이 있어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또 다양한 패션의 집합소 비슷하게 되어 있기도 해서, 민도 오늘 부모님과 식사가 아니었으면 평소처럼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 이제 지금쯤 전화를 하기로 했는데...”?
시간은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 가고, 민도 조금은 초조해진다. 부모님에게서 와야 할 연락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바보같이 서 있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조금 서 있다 보니...
“어? 너, 민이지?”
익숙한 목소리가 민을 부른다. 돌아보니, 메이링이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있다. 딱 봐도 여기에는 업무차 온 것이지 놀러 오거나 하는 건 아닌 듯해 보인다. 메이링은 민의 옷차림이 조금은 신기한 듯, 이리저리 민이 입은 정장을 훑어본다. 민은 그게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약간 떨떠름하게 말한다.
“저... 그냥 이건 어디 갈 일이 있어서 차려입은 것뿐인데...”
“알아, 알지! 하나만 물어보자.”
“그... 하나라는 게... 뭐죠?”
“그 ‘사진 속 훼방꾼’ 아직 안 잡혔잖아?”
“어... 그렇죠. 잡혔으면 우리 반 대화방도 좀 조용할 테고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무슨 새로운 단서 같은 거라도 들어온 거 있어?”
“아니요... 있을 리가 없죠.”
“그래, 그게 그 로베르토라는 애인지 에밀리오라는 애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잡았으면 좋겠네. 사진 속에서 저러니까 은근히 꽤 짜증이 나는데, 내가 받은 영상과 사진만 봐도 그런 짜증이 저절로 밀려오지. 너도... 그렇겠지?”
“네...”
민의 그 말을 들은 메이링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시계를 본다. 그러고서 옆에 있는 민을 보고 말한다.
“봐봐, 여기도 이상한 짓을 하려던 사람이 하나 있어.”
“이상한 짓을 하려던... 사람이라니요?”
“당연히 네 능력에 비할 바는 못 되지. 그리고 내가 있는 한은 그런 짓을 할 엄두도 못 낼 것이고! 자, 저기를 봐봐.”
민이 메이링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돌아보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당황한 얼굴을 하고서 몸을 숨기려고 하고 있다. 그걸 보라는 듯, 메이링은 민을 돌아보더니, 홀로그램을 하나 켜서 보여주며 말한다.
“저 여자는 내가 예의주시하는 사람이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인플루언서인데, 관심을 너무 받고 싶은가 봐. 그런데 어쩌다가,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능력까지 얻게 됐어. 베라네 같은 거로 얻은 건 아닌 것 같고. 뭐, 그래서 사람들 자주 모이는 곳마다 자신을 저렇게 드러내려고 장난을 치는데, 오늘은 내가 여기 있는 바람에 실패해 버렸네.”
민은 그 뒷모습만 보이는 여자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본다. 그렇게 1분 정도가 더 지나니...
“어, 문자가 왔네...”
민이 금세 메시지창을 켜서 보니, 어머니로부터의 메시지가 와 있다.
[민아, 방금 아빠하고 도착했어]
[누나하고 서언이, 언주도 있으니 빨리 와라]
“응? 오늘 누나 학교 안 갔어?”
옆에서 민의 그 말을 들은 메이링도, 반디가 오늘 학교로 안 갔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는지 혼자서 중얼거린다.
“참 신기하네. 반디는 주말에도 연구실에 매여 지내는 것 같던데, 어떻게 오늘은 뺐대.”
그러고는, 막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민에게 인사를 건넨다.
“또 보자고. 이상한 사람 있으면 연락 줘!”
“네, 또 봐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민은 곧장 부모님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민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지켜본 다음, 메이링도 자신의 약속 장소로 향한다.
“어, 이야기하다가 시간이 다 됐네. 빨리 가야겠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 윤진은 어느 정도 만화책을 읽고는 만족했는지, 만화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꽤 많이 읽었지... 평소 읽는 것의 3배는 족히 읽었어.”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그린 마스크드 파이터>, <5월은 거짓말 코믹스>, <대단한 호텔 지배인> 등 10권은 족히 넘는다. 그리고 또 그 책들을 대충 훑어본 것도 아니고, 한 권 한 권 내용을 꼼꼼히 훑어가며 읽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평소의 3배 분량이 나왔다.
“좋아, 좋아. 이제 내가 뭔가 집에 사 가기로 했는데...”
그런데...
생각이 나지가 않는다. 마치 그 부분만 기억을 잘라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 내가 아까 분명히 엄마하고 뭘 사 오기로 약속을 했었어. 그런데 왜... 왜 생각이 안 나는 거지?”
윤진의 머릿속은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분명히 약속을 한 건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째서냐... 엄마하고 뭘 사 오기로 했던 거지? 분명히 이런 건 내가 잘 잊어버리지 않는데... 왜 생각이 안 나는 거야?”
물론, 그건 윤진이 잊고 싶어서 잊어버린 건 아니다. 누군가가 윤진을 내려보며 장난을 쳐 놨기 때문이다. 물론 윤진은 그런 사실은 알지도 못하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장난을 쳤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초능력을 자신에게 쓴 것 같은 위화감은 들지만, 단지 그것뿐, 그 이상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니, 도대체 뭘 사기로 했던 거지? 분명히 뭔가를 사기로 약속했던 건 맞는데...”
아까 분명히, 윤진은 메모지에다가 어머니가 사 오라고 했던 것들을 적어 놨고, 그 메모지를 바지 주머니에 잘 넣어 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놨다는 기억까지 지워져서 바지 주머니에 무엇을 넣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 기억이 어째서 지워진 건지, 혼란스럽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왜 내가 이런 걸 잊어버리는 거냐고?”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5-03 00:35:39
자주색 정장이라니...이건 아무리 존재를 숨기려고 해도 절대 숨길 수 없는 색깔이네요. 채도를 좀 높이면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주인공 죠르노 죠바나가 입고 다니는 옷같은 감각이겠네요.
그나저나 토오루는 저렇게 숨어 있으면 자기가 투명화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 안 들킬 거라는 확신에서 전혀 못 벗어나네요. 이제는 매번 발각되어서 저렇게 공개적으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정신차릴 생각만큼은 그렇게도 하기가 싫은 걸까요.
메이링이 수상한 인물을 포착했군요? 저렇게까지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자가 초능력까지 얻었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일텐데. 에밀리오인지 로베르토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발생하던 이상한 짓도 무관해 보이지는 않나 보네요.
윤진이 누군가에게 기억조작을 당하는 것 같네요. 범인은 먼 곳에 있지 않아 보이는데, 그렇다 보니 더욱 섬찟하게 여겨져요.
시어하트어택
2023-05-08 23:01:02
사실 자주색 정장이라는 건 아주 안 보이는 복장은 아닐 겁니다. 그게 워낙에 눈에도 잘 띄고 캐릭터성도 확실한 캐릭터들이 좀 많이 입어서 그렇지...
메이링이 포착한 그 문제의 인물은 현재 스토리상에 크게 관련이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만, 가까운 시일 안에 스토리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관심을 구걸하는 성격상 그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SiteOwner
2023-05-05 21:48:16
존재만으로도 의심을 사는 토오루를 보니 정말 저렇게 살고 싶을까 하는 생각만 듭니다. 물론 그의 말대로 그가 뭔가를 꾸민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런 데에서 투명화 능력을 구사하여 잠복해 있을 이유도 없는 것인데 그건 생각도 안하는지, 참으로 부끄러운 선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상한 사람이 도처에 널렸군요. 이번에는 메이링이 예의주시중인 어느 인플루언서의 행동도 수상하고, 혹시 에밀리오나 로베르토와의 혈연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단서도 없다 보니 이것 또한 판단을 유보해야겠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억을 소거당한 것인지는 몰라도 윤진이 정말 괴롭겠습니다. 그리고 그 심정,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기억을 소거당한 것은 아니지만 집단 내에서 저만을 노린 게 있었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5-08 23:05:00
토오루는 기회를 보는 대로 무엇이든 장난을 치고 싶겠습니다만, 지켜보는 눈이 많은 이상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죠. 그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인플루언서는 에밀리오와는 관련없는 인물입니다. 단지 관심을 받고 싶었을 뿐...
제가 저렇게 무언가 기억에서 지워진 듯 잘 찾지 못하는 일이 많다 보니 그런 게 그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초능력에 반영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