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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윤진에게 그 초능력을 걸어 버린 장본인은 인근 건물 옥상에 있는 한 카페의 루프탑에서 유유자적 초코 스무디를 마시며 윤진을 관찰하고 있다. 꽤 흥미가 있다는 듯한 표정은 덤이다. 그 사람은 체크무늬의 재킷을 입고 속에는 여러 가지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는데, 전형적인 SNS 속 인플루언서들을 따라하기라도 하려는 듯하다. 머리 모양도 마찬가지로, 양갈래로 묶었는데,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을 한 게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다.
“무슨 능력인지는 알고 있지. 자신이 남에게 초능력으로 무언가 피해를 받게 되면 그걸 다시그 상대방에게 되돌려 주는 거잖아? 그런데, 그 상대방이 누구인지 인지를 아예 못 하면 그걸 되돌려 줄 수도 없나 봐? 이거야 원... 이렇게 구멍이 있어서야 좋은 능력이라고 할 수는 없지.”
그리고서 스무디를 한번 빨아먹고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윤진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윤진을 지켜보며 중얼거린다.
“그거, 내 능력이 걸려 있는 이상은 아무리 생각해 보려고 해도 안 떠오를 텐데? 하긴, 누군가 말해 주지 않는 이상은 모를 테고, 내가 직접 내려가거나 할 일은 없지만.”
한편 이곳은 민의 가족들이 모여서 점심을 먹는 레스토랑.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번 주도 바쁘셨죠?”
언주가 마주앉은 민의 부모님을 보고 살갑게 웃으며 말한다. 그런 언주를 보자 민의 어머니는 아주 전형적인 ‘할머니의 미소’를 언주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그래. 할머니뿐만 아니라 너희 삼촌도 얼마나 바빴는지 모르겠구나.”
“응, 삼촌?”
민의 어머니의 말에서 그 말이 나오자, 언주는 장난기 섞인 표정을 하고서 민을 돌아본다. 물론 그 ‘삼촌’이라는 사람은, 민의 다른 형이다.
하지만 민은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지는 못할 것 같다.
‘에이... 또 왔어!’
어제 봤던 로니가, 또 이 레스토랑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어제 봤던 로니의 가족들도 함께 있다.
“뭐야, 도대체. 왜 어제도 보이고 오늘도 보이는 거지?”
민이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지, 옆에 앉아 있는 언주가 곧바로 조그맣게 말한다.
“왜 그러는데. 또 어제 그 녀석이야?”
하지만 언주의 그 말을 들었는지, 민의 부모님이 민과 언주를 보며 주의를 준다.
“너희들, 식사할 때는 조용히 해야겠지?”
“네...”
민의 부모님이 그렇게 말하자, 즉시 언주는 민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낸다.
[또 우리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 같은 걸 춤추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
언주로부터 메시지가 오자, 민은 바로 답장을 보낸다.
[우리가 앉은 곳은 아직 못 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고 있는 것 같아]
문자는 그렇게 보냈지만, 민은 불안해진다. 혹시 이번에는 로니가 무슨 장난을 벌이려는 건가, 궁금하면서도 불안해진다. 민의 말대로, 로니는 열심히 자신에게 걸려들 만한 대상을 물색하는 중이다. 지금 민과 가족이 자기 근처에 있다는 건 인지하지 못하는 채로 말이다. 로니의 시선은 주위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민이 딱 봐도 기회를 노렸다가 적당한 대상을 찾아서 무언가 하려는 것임은 분명하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민은 고민스럽다. 물론 민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로니를 제압할 수 있고, 또 로니의 능력으로는 민의 강한 염동력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걸 한번 썼다가는, 이 레스토랑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것이고, 그것은 즉 민이 가장 꺼리는 상황인, 모두의 시선과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이다.
“에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대로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나서기도 그렇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민이 그렇게 고민하는 걸 반디나 서언도 모를 리가 없다. 최대한 민의 부모님이 모르도록 할 방법이 필요할 터이다. 그 방법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서언이 얼른 반디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혹시 예전에도 이거하고 비슷한 일 있지 않았어요?]
[응, 있었지. 그때도 일은 잘 해결되었고]
[오, 그럼 이번에도 보여주는 건가요?]
[민이가 나서기를 안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해야지, 뭐 어떡하겠냐]
그렇게 메시지가 몇 번 오가는 중, 식사가 테이블 위에 차려진다. 닭고기에 특제 소스를 올린 요리와 각종 과일을 올린 샐러드 등 꽤 먹음직스럽게 생긴 음식들이 가득 차려지고, 각자의 앞에는 필라프와 수프도 놓인다. 역시 이런 건 민에게 놓칠 수가 없다. 평소라면 곧바로 음식에 손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또 어제 저녁에 식사한 곳과 비슷한 고급 레스토랑이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민이 평소에 경박하게 먹는다든가 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메뉴 역시 평소에는 많이 못 보는 구성이라서, 민은 여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잠시 그렇게 식사를 하다가, 문득 로니가 다시 생각이 났는지, 문득 로니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불안한 시선을 하고서 돌아본다.
그런데...
로니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게 보인다. 마치 넋이 나가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로니는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눈만 멀뚱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조부모로 보이는 노부부가 로니에게 다가가서 로니를 이리저리 흔들자, 로니는 환각 같은 것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듯, 머리를 흔들더니, 그 멍한 상태의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앞에 있는 음식을 먹는데, 입으로 삼키는 것도 씹는 것도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응, 누나가 설마 자기 능력을 쓴 건가...”
로니의 시점에서 보면 이렇다.
로니는 막 자기 능력을 사용할 대상을 찾은 참이었다. 약 20m 정도 떨어진 어느 가족이 앉은 테이블이었는데, 로니는 그 테이블에 있는 음식들 자체를 움직이게 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로니가 미처 그렇게 하기도 전, 무언가가 마치 로니의 머리를 확 비틀어서 자고 휘저어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은 2분 전, 로니가 목표로 삼은 그 가족의 테이블 위에 음식이 나오기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방금 자신에게 일어난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잠시 당황했지만, 그러면 좀 더 빨리 행동하면 되리라 생각하고는 좀 더 빨리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로니의 능력을 사용하려는 그 시점에서, 시간이 계속 돌아갔다. 마치 의도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그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며 어찌할 줄 몰라하던 로니를 정신 차리게 해 준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지만, 그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2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음에도, 로니는 마치 넋이 나가 버리기라도 한 듯, 제대로 밥을 먹지도 못하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서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뭐였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로니는 그 혼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는지, 머리를 흔들고 거친 숨을 내쉬기만 하고 있다. 자신이 어떻게 그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 건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뭐야... 정말 무슨 상황이었던 거지... 정말, 정말 나는 뭘 하려고 했었던 거지..”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보니, 조금 전에 로니의 목표였던 그 가족은, 이미 식사를 다 마치고 없다. 그걸 보자, 로니는 더욱 혼란스럽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상황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인가... 그런 생각을 어렵게 해내며, 로니는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 이제는 자신이 무슨 장난을 치려고 했는지조차 잊은 채로 말이다.
[저렇게 놔둬도 괜찮겠어?]
식사를 하던 중, 민은 그래도 로니가 걱정스럽기는 했던 건지, 식사를 한창 하는 중인 반디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약 1분 정도 지나자, 반디로부터의 답장이 온다.
[그냥 저렇게 놔둬. 어차피 저런 애들은 이런 기회가 되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기도 어렵고. 물론 저런다고 해서 정신을 차린다거나 하면, 그 애가 대단한 거겠지]
반디의 그 답장을 보자, 민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식사를 한다. 오늘 나온 코스 요리는 눈에도 보기 좋고, ‘내가 이런 걸 먹어도 되나’ 할 정도로, 그 맛이 너무나도 좋다. 부모님도 그 맛이 좋은 건지, 다들 식사에 여념이 없다. 그걸 보고서 민은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정말 조금 전에 지나간 그 상황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서도 일단 별 말을 안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한편 이곳은 윤진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카페거리의 산책로. 윤진은 여전히 머릿속에서 지워져서 생각이 나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리고 구원군은 때마침 나타난다.
“어, 윤진이 형, 뭐 하길래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요?”
때맞춰 윤진의 옆을 지나가던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지온. 지온은 산책을 하고서 막 집에 들어가려던 길이다.
“뭐 잃어버린 거라도 있어요? 왜 거기서 그렇게 서성여요?”
“야, 지온아, 너 마침 잘 왔다. 내가 뭐가 생각이 안 나서 그런데, 혹시 내가 말해 주면 알 수 있겠냐?”
“아니, 윤진이 형! 생각이 안 나는 걸 제가 어떻게 알고요?”
“좀 잘 들어봐. 지금 나한테 누가 장난을 치는 상황이라고!”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생각이 안 나는 게 다 누구 장난인가요?”
하지만 지온이 막 그렇게 말하던 그때, 지온도 알 것 같다.
‘뭐야, 이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흐르고 있잖아.’
하지만 그것뿐, 그 이상한 기운이 어디로부터 오고 그 능력의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지온의 표정이 심란하게 바뀌는 걸 확인하자, 윤진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너도 봤지?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것만큼은 알겠지? 그러면 좀 도와줄 수 있겠어?”
“뭐, 불가능한 거야 아니죠..”
지온은 좀 알 것 같다는 듯 말한다.
“만화부에서도 봤잖아요. 그런 거 있으면 형 매일 메모해서 다니지 않나요?”
“그랬지...”
“형이 갖고 있는 가방이라든지, 바지 주머니라든지, 아니면 신발 속이라든지, 어디든 있겠죠.”
“그래, 맞아. 내가 왜 그게 생각이 안 났지?”
마치 거짓말처럼, 지온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윤진은 어렴풋이 기억해 낸다. 자신이 애타게 찾던 그 메모지가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그 위치가 생각난 순간, 윤진의 얼굴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일순간에 확 걷힌다.
“그래... 바지주머니... 바지주머니에 있나?”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SiteOwner
2023-05-05 21:52:59
역시 윤진이 겪은 그 현상은 타인의 초능력이 일으킨 것이었군요. 그리고 매우 가까이에서 그를 보면서.
로니의 재등장을 본 민은 속이 뒤틀릴 것 같겠습니다. 뭐랄까,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번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와 있으니 자칫 일을 벌였다가는 일이 오중십중으로 꼬일 게 분명하니 이건 이것대로 또 어려워 보입니다. 다행인지 그가 장난을 치지는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능력을 피드백당한 것 같군요. 윤진의 기억을 조작한 그의 초능력이 그에게도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메모의 힘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군요. 다행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5-08 23:29:09
그 장본인도 조만간 모습을 드러내겠죠. 하지만 의외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면 준후처럼 선량하고 모범적인 학생의 모습을 연구한다든가 말이죠.
로니가 저렇게 된 과정은 자신이 원인은 아닐지라도 결국에는 제가 제 발등을 찍은 것과도 마찬가지로 봐야겠죠.
마드리갈
2023-05-07 22:23:44
피드백 능력의 맹점이 이렇게도 나타나는군요...
윤진의 그 약점을 간파했다는 건 그 자가 윤진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죠. 섬찟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로니를 본 민도 정말 답이 없겠어요. 로니가 그 이상한 장난질을 친다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파악한 영역에 국한되고 저 상황에서 로니에게 뭐라고 하면 이건 민과 로니의 문제가 아니라 로니의 가족 전체에 대한 도발이 되니...저 상황에서 로니의 부모가 "예, 그렇습니다. 제 자식이 잘못했습니다." 라고 민의 입장을 수긍하는 것보다는 1년 내도록 홍수나는 사막을 찾는 게 빠르겠죠.
지온이 윤진의 습관을 잘 파악한 게 여기서 이렇게 도움이 되네요.
시어하트어택
2023-05-08 23:34:21
아무래도 그 능력자는 윤진을 잘 아는 사람으로 보아, 윤진과도 가까운 사람이겠죠. 하지만 철저히 그 능력을 숨긴다든가 해서 윤진은 그 사람을 알지라도 그 능력은 모를 가능성이 크죠.
가지고 있는 초능력이 강해도 문제인 게,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벌인다면 해결이야 금방 되겠습니다만, 그만큼 이목도 너무 쉽게 끌어버리죠. 그것 때문에라도 민은 자기 능력을 되도록이면 쓰고 싶지 않은 것일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