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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그리핀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베로니카는 치히로의 말에 따라 동아리방으로 가기로 하지만, 그러자니 그리핀을 아예 놓쳐 버릴까 봐 불안하다. 또다시 베로니카가 망설이며 발걸음을 다시 돌리려는 그때.
♩♪♬♩♪♬♩♪♬
“응? 누구한테서...”
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얼른 베로니카가 보니, 올리버에게서 온 전화다. 바로 받아본다.
“어? 선배님...”
“뭐 하고 있어. 빨리 안 올라와? 다들 널 기다리고 있잖아.”
“아, 빨리 갈게요.”
올리버는 한층 더 강한 어조로 베로니카보고 오라고 하고 있다. 베로니카는 이제 정말로 발을 돌려 돌아간다. 그러면서도 그리핀을 쫓아가지 못한 데에 대한 아쉬움은 덤이다.
그 시간,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 동아리방. 히어로 동아리와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의 부원들이 마주앉아 있다. 동아리방 한쪽에 있는 조리대에는 각각 그릇과 조리도구 세트가 놓여 있는데, 아직 재료는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요리 재료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잡담을 하고 있는데, 도나텔라는 치히로가 뭔가 이야기를 한 모양인지, 반색하며 들뜬 목소리롤 말하고 있다.
“오, 그래? 너희들, 한번 요리 해 볼래? 너희들이라면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는데?”
도나텔라의 그 말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치히로가 바로 말한다.
“그래. 5명이 다 있어야지 하지. 그런데 아직 1명이 안 왔다고.”
“그게 누군데?”
도나텔라는 되묻지만, 곧 그게 누군지를 알아챈다. 애초에 5명밖에 안 된다는 걸 아는데, 그게 누군지 모를 리가 없다.
“어... 그러네. 요리하는 건 한 번도 못 봤지만 말이지.”
“뭐야, 네가 왜 베로니카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고 있냐?”
도나텔라는 치히로의 그 말에 별말은 하지 않고 그냥 미소만 짓더니, 조금 있다가 그냥 탁 던지듯 한마디 한다.
“친한 후배에 대해서 잘 아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
“어... 그런가?”
“봐, 저기 오네.”
도나텔라가 동아리방 밖의 복도를 가리키자, 어느새 복도 밖에는 베로니카가 붉은 후드를 반쯤 걸쳐 입고서 서성이는 게 보인다. 베로니카는 혹시 시선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까 봐 시선을 자꾸만 다른 데에 두고, 있다. 그걸 본 베로니카가 말한다.?
“빨리 들어와! 안 들어오면 너만 빼고 시작할 테니.”
“어... 저는 요리를 못 하는데요?”
베로니카의 그 어색한 말을 듣자마자, 도나텔라는 살며시 웃지만, 이윽고 문을 활짝 열어 들어오라고 한다. 베로니카가 어색하게 처넌히 들어오자마자, 올리버는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더니, 가만히 귓속말로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했어? 내 친구들 있으니까 그냥 와도 된다고 했잖아?”
“하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제가 가야 할 것 같더라고요.”
“뭐, 그건 이제 그 친구들에게 맡기고, 지금은 이 시간에 온 마음을 다 쏟자고. 알겠지?”
“네...”
베로니카는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던 건지, 김이 좀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도나텔라는 그걸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입을 연다.
“자, 자! 이제 다 왔으니까, 시작해 볼까요? 오늘 해 볼 건 ‘릴레이 요리’입니다. 혹시 어떻게 하는지 아시는 분?”
요리 동아리 부원들은 무슨 말인지 아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히어로 동아리 부원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바라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도나텔라는 다시 말한다.
“자! 저하고 치히로부터 시작해서 5명이 순서대로 요리를 해서 더 나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거죠. 그럼 이제 해 볼까요?”
그리고 이곳은 미린고등학교 건물 3층에 있는 영화부실. 다른 동아리방에 비해 제법 넓은 내부 공간과,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 스크린이 특징이다. 거기에다가 영화관의 좌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의자는 덤이다. 한쪽에는 간식 판매대까지 있어 실제 영화관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실제로 여기서 간식을 팔거나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와, 여기는 무슨 영화관을 축소해놓은 곳인가?”
영화부실에 들어서자마자, 슬레인의 입이 딱 벌어진다. 알렉스가 영화를 좋아하는 줄은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영화부실에 이렇게 직접 가 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리라.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싶지만, 참는다. 슬레인의 힘은 이런 데서 쓸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기 때문이다. 셰릴 역시 선배로서의 위신을 세워야 하니, 속마음은 안 그렇더라도 겉으로는 후배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자동차 연구 모임의 속내가 어떻든, 알렉스는 고르고 고른 영화를 보여주는 이 순간을 고대하고 있다.
“자, 그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자동차 연구 모임 여러분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실까요?”
영화부원들과 자동차 연구 모임 부원들이 다 앉은 걸 확인한 알렉스는 괜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쪽으로 가서 영화를 켠다. 나름대로 꽤 공을 들여 준비했는지, 알렉스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잠시 후, 화면에 <더 카즈>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나타나더니, 이윽고 영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자동차 연구 모임 부원들은 영 표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이건... 내가 기대했던 그런 영화가 아닌데...”
슬레인은 잔뜩 신경질이 난 듯 중얼거린다. 사실 슬레인도 그렇고, 옆에 앉은 준후나 셰릴도 마찬가지지만, 다들 원하는 영화의 장르는 범죄자를 추격하는 멋진 경찰이나 탐정, 아니면 특수부대원의 추격극이다. 실제 하는 일이 어떻든, 취향까지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애초에 잘못된 기대였다.
“왜 처음부터 이렇게 지루한 거야?”
영화 초입부터 나오는 건, 슬레인과 다른 부원들이 원하는 게 아닌, 열광적인 관중들의 응원이 이어지는 서킷 옆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의 분주한 모습이다. 물론 <더 카즈>라는 영화의 내용은 자동차와 관련되어 있는 게 맞기는 하지만, 영 딴판의 내용이 나오니 자동차 연구 모임 부원들은 금세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물론 미리 동아리의 성격을 알고 왔어야 할 자동차 연구 모임이 잘못한 것이기는 하지만, 다들 ‘왜 내가 원하는 영화가 안 나왔나’ 하는 생각 때문인지, 딴짓밖에 하지 않는다.
“음... 이 시점에서 내가 뭔가 좀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알렉스가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막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려는데, 알렉스의 어깨를 누군가가 잡는다. 동급생 영화부원 '수빈'이다.
“다른 영화 틀어줘도 되지 않나...”
“아니, 왜? 도입부만 그렇지, 너도 봐서 알잖아? 뒤로 가면 반전 수준으로 재미있어진다고.”
“그래, 내가 모를 것 같아? 그런데 그걸 봐 줘야 할 애들이 왜 저러고 있냐고.”
“음향 효과를 좀 줘야 하나...”
“음향 효과? 야, 그러면 감상을 더 못 하게 되지! 그냥 이대로 놔두자고.”
“어... 그래야 되나...”
그리고 그 시간,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그리핀은 지도 앱을 켜고서 오늘의 이벤트를 시작할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오늘은 그냥 구청 공원에서 다시 할까? 아니면...”
그리고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리핀의 눈에 띄인다. 그리핀은 그게 누군지 바로 알아본다. 바로 로니다.
“어, 로니? 너냐?”
그리핀의 그 말을 들은 로니는 곧장 그리핀에게 가 본다. 하지만 로니는 귀찮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 로니가 관심있는 건 어디까지나 자기 혼자의 즐거움이지,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고, 또 그럴 심적인 여유도 없다.
“왜 그래. 나 좀 가자.”
“아니, 너를 방해하려는 건 아닌데, 네가 좀 필요한 것 같아서.”
“내가 뭐가 필요하다고? 왜 네 스스로 안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하는 건데?”
그리핀의 초능력은 아직 로니는 모르고 있고, 아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래서 로니는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로니가 하는 것도 그리핀의 마왕성과 별반 다를 건 없지만. 하지만 그리핀에게는 로니의 초능력이 있으면 금상첨화라서, 이렇게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다. 물론 자기가 그 마왕성 능력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 좀 한번 들어 볼래? 네가 빛내 줄 무언가가 있는데...”
“빛내 줄 거라니 무슨 헛소리야. 괜히 더 이상한 소리해서 얼굴 붉히지 말고, 네 갈 길이나 가.”
그러고서, 로니는 더 뭐라고 말하지도 않고 제 갈 길을 가 버린다. 그리핀은 ‘후’ 하고 한숨을 짓더니, 곧이어 또다른 누군가를 찾더니, 곧이어 연락을 시도한다.
“그래... 이 선배님이라면, 혹시?”
한편 그 시간, 만화부실. 가운데에 둘러앉은 사람들 중에는 민을 비롯한 만화부원들 말고도 여기에 처음 온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도 몇 명 끼어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검은 양갈래 머리를 하고서, 언제 갈아입었는지 교복이 아닌 분홍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은, 각종 장식물을 머리와 옷에 덕지덕지 단 여학생, 미아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모양도 다양하고 색도 다양한 여러 종류의 디저트가 놓여 있는데, 주로 카페에서 많이 보는 디저트지만, 가운데에 놓인, 고급 호텔의 뷔페, 아니면 큰 행사의 연회 등지에서 볼 법한 ‘케이크 탑’을 축소한 것도 하나 눈에 띈다. 처음 홈카페 동아리를 본 만화부원들에게는 제법 본격적인 동아리로 보인다.
“오, 홈카페 동아리라고 해서 기대 많이 했는데, ‘역시’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겠어.”
“그렇죠, 선배님?”
윤진의 옆에 앉은 미아는 마치 윤진의 그런 반응을 유도하기라도 하듯, 자신의 앞에 있는 케이크를 마치 먹으라는 듯 내밀며, 자신의 앞에 있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자, 다들 하나씩 먹어 볼래? 충분히 많이 준비했으니까, 부담은 갖지 말고, 더 먹고 싶으면 더 먹고 싶다고 말하면 돼.”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들 미아가 입은 복장을 한번씩 더 보게 된다. 아무래도, 미아의 옷차림이나 행동은, 이쪽에서 최고의 대학상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세라토대 정문 근처 지하철역 출구 근처 데크에 가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부류라서 그렇기도 하다.
“들었지. 저 선배하고 어딘가 많이 비슷한 옷차림이 요즘 좀 많이 보이던데...”
“그리고 어딘가 좀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 애들이고...”
아이란과 마린이 미아의 옷차림을 보고서는 한마디씩 한다. 확실히 지금 미아가 입은 옷차림은 ‘홈카페’라는 분위기 자체에는 어울려 보이겠지만, 동시에 만화라든가 영상물 같은 데에서 많이 본 듯한 복장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아이란은 자기 취향 이야기는 빼놓지 않는다.
“그런 애들 중에는 분명히, 자기들끼리 커플인 애들도 있겠지. 나도 거기 하루 정도 관찰하면 좋은 소설이나 만화를 하나 만들어낼 수 있겠어.”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7-14 17:59:27
여러모로 손발이 안 맞는 이 상황이 많아서 읽다가 왼손으로 목덜미를 만지게 되네요.
학생들의 행사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릴레이 요리를 한다는 상황도 당황스럽고 참관하는 동아리의 성격도 모르고 무작정 참가했다가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여러모로...
쿠로마루 미아의 지뢰녀 패션이 이 세계에서도 주목을 받는군요. 게다가 불안해 보인다는 평판도 꽤 있고.
하지만 그래도 미아는 자기가 할 일은 확실히 하니 인상으로만 평가할 것은 아니죠.
역시 아이란이 작중 최고의 천하태평한 캐릭터네요.
시어하트어택
2023-07-16 23:20:53
아무래도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의 정체성은 '요리'이다 보니까 자기들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마련했을 텐데, 그게 히어로 동아리에는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으니 어색한 건 당연한 거겠죠. 자동차 연구 모임이야 원래 그것을 목적으로 모인 게 아니니 그럴 만하겠고요...
미아는 자기 말로는 겉보기에만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봐야 알 겁니다.
SiteOwner
2023-08-17 23:01:11
저런 동아리 교류행사는 피로감이 정말 걷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리하는 건 좋아하는 편입니다만 혼자 한다든지 동생과 같이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갑자기 급조된 팀으로 릴레이 요리를 한다는 자체가 매우 거부감이 들고 선택권이 없는 데에서 사실 흥미를 붙이기는 불가능에 한없이 가깝습니다. 베로니카가 당황해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능합니다.
그나마 홈카페 동아리의 것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뭔가 나쁜짓을 꾸미는 것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협력하고 그렇지 않으면 갈라서기 마련인데 그리핀은 로니가 필요하지만 로니는 그렇지 않으니 갈 길이 멀겠습니다. 갈 길이 단축되면 그것대로 문제입니다만...
시어하트어택
2023-08-20 20:50:54
분명히 좋은 의도로 시작한 행사가 여러 가지 변수와 사정이 겹쳐 변질되어 버리는 건 드문 일이 아니죠. 작중의 동아리 교류행사는 물론 크게 변형된 건 아닙니다만, 작은 변수가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죠.
아무래도 로니는 작중에서 마이웨이에 가깝고, 그리핀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