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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거냐고!”
미아의 목소리는 확 굵어졌다. 이번에도 다른 인격이 빙의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다시 한번, 만화부실의 공기가 확 내려가는 게 피부에 와닿는다. 그걸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은 토니다. 조금 전에 한번 미아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그 공포감은 누구보다도 토니가 더 잘 안다. 마치 온몸을 칼로 베어내고, 어느 변두리 행성에 사는 괴물 100마리가 일제히 달려드는 것 같은 이 공포감, 토니는 또 한 번 온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마치 전속력을 다하듯 달려드는 이 속도감.
“너희들...”
그건, 바로 앞에서 다가오는 걸 보는 민과 친구들, 특히 토마에게도 피부로 와닿는다. 그 공포감은 토니보다도 더할 것이다. 토니는 그나마도 자신이 직접 한 건 아니다 보니 그나마 뭐라고 변명할 여지도 있긴 하겠지만, 토마는 지금 자신이 한 것 때문에 미아가 이러는 게 확실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머리를 싸매고 있다. 마침 그걸 본 다른 만화부원들도 하던 걸 멈추고 일제히 미아를 돌아본다. 크리스와 아냐는 마레를 한 입씩 베어 물어 먹으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는데, 그걸 멈추고 돌아보느라 하마터면 마레가 목에 걸려버릴 뻔했다. 아이란은 또다시 앞에 놓인 디저트들을 가지고 뭔가 자신이 특별히 잘 아는 소꿉놀이 같은 걸 하길래 그걸 못마땅하게 보던 나디아가 막 일어서며 뭐라고 하려고 하는 판인데, 갑자기 미아가 그런 움직임을 보이니, 나디아는 원래 자신이 하려던 것도 멈추고, 미아 쪽을 돌아본다.
“저... 저기, 선배님! 저는 그러려던 게 아니라, 단지...”
토마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아를 보고 겁을 어지간히도 먹었는지, 음료수가 든 잔을 휘젓던 스푼도 내려놓고, 마치 혼탁한 물처럼 되어 버린 음료수에서도 시선을 뗀 채로, 그 자리에서 급히 일어서서 막 뭐라고 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미아는 그걸 듣지도 않겠다는 듯, 요지부동도 하지 않는다.
그 상황을 보던 윤진은 막 뭐라고 해 보려고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입에서 말이 얼른 나오지 않는다. 워낙에 당황한 탓에, 입에서 목소리가 마음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뭐라도 해 보려고,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홈카페 동아리 부원들을 보고 미아를 좀 막아 보라고 손짓을 한다. 하지만 홈카페 동아리 부원들 역시도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라서 뭘 어떻게 해 볼 엄두도 나지 않는 듯하다. 그나마도 입을 여는 한나는 덜덜 떨면서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다 할 법한 몇 마디만 한다.
“그건... 선배님이 선배님이니까.. 뭐라도 해 보시는 게...”
그 말을 듣자, 윤진은 무언가 깨달은 거라도 있었던 건지, 재빨리 미아에게 가서 뭐라도 손을 써 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윤진이 무슨 조치를 하기에는 많이 늦었다. 미아는 이미 토마의 바로 앞에까지 섰다. 그리고 토마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민에게도 보인다. 미아에게서 초능력의 아우라 같은 게 보인다.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건 확실하다. 이 상황에서, 민도 뭔가 해 보려고 자리에서 막 일어서 보려는 참이다.
“이 상황에서는 내가 나서야 하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기는 해도, 막상 미아의 그 기세를 보고 대처하는 건 민에게도 또다른 문제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이곳은 도서관. 창문 밖으로는 운동장에서 스케이팅의 오스카가 격투기 동아리 부원들에게 자기 보드 실력을 보여주고, 격투기 동아리 부원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도서관 안은 정적 정도는 아니어도 도서부원들과 MI스터리 부원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가 오가는 풍경이다.
“좀 더 그럴듯한 괴담 없냐?”
“어...?”
리하르트의 시큰둥한 반응이 섞인 말을 듣자, 차논은 당황했는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다. 차논이 자신이 준비해 온 이야기를 다 마쳤는데도, 도서부원들은 별로 유의미한 반응은 보이지 않고, 다들 시큰둥하게 듣고 있을 뿐이다. 도서부원들 중에서 세훈이 특히 그런 반응을 보인다.
“에이, 선배님, 그게 무슨 괴담이에요. 저 학기 초에 그것보다 더한 일을 한꺼번에 겪은 건, 모르는 건 아니겠죠?”
“어... 그랬지, 아마?”
차논도 들어서 알고는 있다. 차논과 같은 반 친구인 ‘빈센트’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세훈에게 꽤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물론 그 관심이라는 건 긍정적인 의미의 관심이 아닌, 기선제압이라는 성격이 더 강했고, 자기 뜻대로 안 되니 자기 패거리를 동원해서 세훈을 무릎 꿇리려고 이것저것 다 해 보려다가 결국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빈센트 녀석,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네.”
“뭐, 알겠어요. 어쨌든, 그것보다는, 차라리 좀 고전적인 괴담들, 이를테면 ‘원숭이 꼬리’라든가 ‘외계 문명이 남긴 저주’ 같은 게 훨씬 낫겠어요.”
세훈의 그 말을 들은 다른 도서부원들도 그 말이 꽤나 그럴듯했는지 다들 강한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셀림은 세훈의 말에 격하게 공감이라도 한 건지, 손뼉을 치는 시늉까지 하며, MI스터리 부원들을 보고 말한다.
“그러니까요, 선배님들, 이번에는 좀 그런 괴담 같은 걸로 좀 부탁할게요.”
“그래...”
차논은 그렇게 마치 자신이 있다는 듯 말하지만, 쉽사리 입은 떼지 못한다. 왜냐하면, 차논 그 자신도 야심 차게 준비한 괴담이 이렇게 반응이 없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다음에 할 이야기는 이 이야기의 반응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여야 하겠는데, 그런 이야기는 차논은 미처 준비해 오지 않았다. 차논이 막 한숨을 내쉬며 한탄을 하려고 할 즈음...
“저기, 선배님?”
지우가 마침 그걸 보고 있다가, 딱 자신이 차논을 구해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앞으로 나선다. 차논이 지우에게 무언의 동의를 보내자, 지우는 기다렸다는 듯 도서부원들에게 마치 자신이 유명한 강사라도 되는 것처럼 손뼉을 쳐서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이윽고 입을 연다.
“도서부 여러분, 그럼 다음 괴담 들어갑니다.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주의깊게 듣지 않다가는 놓쳐버리고, 후회할 수도 있어요!”
“뭐야, 저건 그냥 평범한 동기부여 강사들이 하는 멘트 아닌가?”
하지만 지우는 그런 세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말을 시작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마치 그런 건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 온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조그만 항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우는 자기 말을 계속한다. 거기에 다른 MI스터리 부원들을 시켜서, 도서부원들과 MI스터리 부원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쪽의 조명을 끄는 건 덤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지우는 곧이어 준비해 온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 시작합니다! 귀 쫑긋 세우고 잘 들어 주세요.”
그리고 그 시간,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 동아리방.
“오... 어떻게 되기는 했는데...”
도나텔라는 요리가 다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숨을 몰아내쉬며, 프라이팬에 담겨 있는 무언가를 그릇에 쏟아낸다. 자신의 힘을 거진 그 요리에 집중한 탓인지, 아니면 버너와 프라이팬의 온도가 원체 높은 탓인지, 베로니카의 이마에서는 땀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다. 옆에서 같이 한 요리 동아리 부원 조나단의 이마에는 겨우 한두 방울 맺혔을 뿐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어디, 둘 다 잘 만들었을까...”
도나텔라는 방금 막 만들어진 음식들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앞에는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계란말이 하나와, 버섯과 베이컨을 얹은 리소토가 하나씩 놓여 있다. 도나텔라는 곧이어 한쪽에 있는 수저통에서 수저를 한 움큼씩 꺼내 들고는 다들 들으라는 듯 말한다.
“자, 누구라도 좋으니, 여기 차려진 음식을 먹고 평가해 줄 사람?”
“어...”
요리 동아리 부원들 중 몇 명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이윽고 카즈가 맨 먼저 손을 들고는 앞으로 나온다. 곧바로 도나텔라가 카즈를 지목하자, 카즈는 도나텔라에게서 숟가락과 포크를 받아들고 한 점씩 먹어보기로 한다.
“제가... 먹어볼까요?”
“어, 카즈냐? 그래, 먹어 봐. 그릇을 먹을 걸로 만든다든가 하지는 말고.”
“에이, 안 그래요. 그릇을 어떻게 먹어요.”
그러고서 카즈는 한 입씩 먹어본다. 그리고서 입을 연다.
“계란말이, 꽤 괜찮은데요.”
“계란말이?”
그 말을 듣자 치히로를 포함, 히어로 동아리 부원들의 표정이 꽤나 밝아진다.
“이거, 우리가 무슨 악당을 구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런... 가요? 그러면 좋은 거겠죠?”
올리버와 라일라가 거의 동시에 맞장구를 쳐 주자, 치히로 역시도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는지, 계란말이와 리소토를 조금씩 먹어 본다. 도나텔라도 마찬가지로 먹어보고는, 입을 우물거리더니 이윽고 입을 연다.
“좋아, 역시 다같이 만드니까 더 좋은 음식이 나오는데.”
“저.. 정말이지?”
“그럼. 그런데... 마지막이 좀 짠데. 간을 치는 걸 실패한 건... 아니겠지?”
베로니카는 도나텔라의 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숨길 것도 없다. 마지막에 간을 베로니카가 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았어. 너희들, 이렇게 악당을 이긴 기분을 내면 되잖아?”
“뭐... 그렇기는 하지...”
치히로는 더듬더듬 말하면서도, 곧 자신이 아는 무언가가 있었던 건지, 뒤이어 한마디 한다.
“실제로 그런 음식맛을 이상하게 하는 빌런하고 싸우고 이기면 이런 기분인 건가.”
“뭐야, 그런 초능력자도 있었어?”
도나텔라가 치히로의 그 말에 믿기지 않았는지 되묻자, 치히로는 자신이 말을 해 놓고도 말이 씨가 된다고 생각했던 건지, 어색하게 말을 잇는다.
“아니, 아니지. 설마 그런 빌런이... 있으려나.”
“없었으면 좋겠네... 아니, 이미 있나.”
그리고 그 시간, 방송실.
“후... 이겼다. 내가.”
방송실 내부에 쭉 깔린 트랙에서 RC카 2대가 막 멈춰서 있고, 막 경기를 끝낸 아멜리와 해진은 방송실 한쪽에 주저앉아서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다. 해진은 여태까지 이렇게 내기를 받아들이고 한 내기에 대해서는, 모두 이겼다. 당연히 이번에 아멜리와 하는 내기 역시 자신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고,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이 패배는 처음으로 겪는 것이다.
“자, 약속은 약속이야. 무슨 말인지, 알고는 있곘지?”
“네... 알고 있죠.”
아멜리의 말에 해진은 무겁게 대답한다. 마치 땅이 꺼질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7-20 16:06:40
제대로 화난 사람은 그 자체로도 무섭죠. 거기에 대해 모종의 초능력까지 있다면 그건 정말 무슨 일어날지 모르니 더욱 무서울 수밖에...윤진의 대응이 늦은 게 어쩌면 그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르겠어요.
미아가 저러는 건 과하게 보이지는 않네요. 저도 저런 성향이 있어서 드물게 터지는 경우도 있다 보니...
역시 회심의 컨텐츠라도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오히려 그 준비한 보람이 없죠.
카즈가 이상한 짓을 안 한 건 다행이지만, 치히로의 말이 걸리네요. 음식 맛을 이상하게 만드는 빌런...없다고는 말은 못하겠지만요. 현실세계에도 똑같은 재료와 도구를 쓰고도 음식을 진짜 탄수화물 때로는 단백질 폐기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할 거예요.
해진의 좌절, 확실히 크네요. 그리고 그 대가는...
시어하트어택
2023-07-23 10:05:12
미아가 무엇 때문에 저렇게 화났는지는 이제 봐야지 알겠지만, 미아에게는 확실히 진지한 상황이다 보니 저렇게 반응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죠.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이제 봐야 알겠지만요...
음식 맛을 이상하게 만드는 빌런은 시간이 된다면 한번 만들어 볼 계획도 있습니다. 큰 사고를 치는 빌런보다는 현실에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크고, 주위에 쉽게 숨어들 수도 있으니까요.
SiteOwner
2023-08-18 21:43:53
동아리 교류행사의 6일째가 이제 마무리되려고 하는군요.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토마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걸 본 미아가 저렇게 화를 낸 이상은 상당히 수습하기 힘들겠습니다. 차논은 모처럼 준비한 괴담이 반응이 시원찮아서 당황해 하고, 해진은 처음 겪는 패배와 그에 따른 이행의무로 인해 좌절해 하지만...
그래도 릴레이 요리는 괜찮게 끝난 것 같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8-20 21:04:22
아무래도 미아가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아의 초능력도 그것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요.
야심차게 준비한 무언가가 별 호응을 못 받으면 준비한 사람은 속이 타들어가죠. 반대로 별로 생각을 많이 하고 준비한 게 아니더라도 결과는 괜찮게 나올 수 있습니다. 릴레이 요리가 바로 그런 예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