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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줘야겠는데, 셰릴!”
셰릴이 순간 차논의 말에 뜨끔했는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셰릴은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는지, 어떻게든 차논을 떨어뜨릴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셰릴의 답은 오래지 않아 나오기 시작한다.
실시간으로, 셰릴의 방송 대화창에 불만을 나타내는 메시지가 표시되고 있다.
[훼방꾼 하나 왔네. 쫓아버리죠]
[적당히 혼내라]
[셰릴님 밑으로 기어들게 해야]
[파이팅★셰릴★파이팅]
“오, 그래. 이거야. 이거란 말이지...”
셰릴은 시청자들이 응원하는 메시지에 한껏 고무가 된 건지, 이제 목표를 차논으로 바꾼다.
한편 그 상황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뒤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후배들. 특히 슬레인이 더 그렇다.
“야, 선배님 계속 저래도 되는 거냐? 능력에 한계가 있을 텐데 왜 자꾸 저래?”
“저, 선배님! 조용! 저 선배님이 듣는다고요!”
“아, 아는데, 자꾸 이상한 거나 하려고 하잖아. 내가 만약 셰릴 선배님이었으면 그냥 준비한 거만 하고 바로 끝내 버렸을 거라고. 저런 거 있으면 바로바로 화제를 돌려 버리고. 너도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말 알지. 그렇기는 한데...”
그러나 후배들이 뭐라고 중얼거리든 말든, 셰릴은 자기 방송에 완전히 빠져들기라도 한 건지 한껏 고무된 표정을 하고서 차논을 뒤에 있는 이른바 ‘서포터즈’에 끼워 넣을 준비를 한다. 어렵지는 않다. 차논의 머릿속에서 릴리스를 찾으러 온 기억을 빼 버리고 다른 것을 채워 넣으면 된다. 과연 셰릴의 의도대로 차논은 마치 뇌를 들어내 버린 생체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자동차 연구 모임 부원들의 옆으로 가서 선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피켓까지 들고 선 건 덤이다. 그 ‘재미있는’ 광경을 보더니 셰릴은 만족스러운 듯 계속 방송을 진행한다.
“자, 자, 여러분! 다음은 무엇일까요? 여기 주위를 다니는 저의 애청자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마리나센터 쪽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셰릴이 이 상황에서 가장 원하는 그림이다. 물론 마리나센터에서 공원 쪽으로 오는 인파는 셰릴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아니다. 인디밴드 공연이 막 끝난 참에 공원을 거닐다가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셰릴이 생각하기에, 지금 나오는 사람들 중에 셰릴의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도 하나쯤 있을 것이고, 그냥 아무나 골라잡는다고 하더라도 본전은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예상한 상황은 아니기는 하지만, 분명히 셰릴에게는 행운이다.
그리고 그런 셰릴에게, 마침 눈에 딱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딱 봐도 미린중학교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학생 한 명과,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 한 명, 그리고 상당한 캐주얼 스타일의 복장을 한 또 다른 여자 한 명이다. 셋이 붙어서 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친구로 보인다.
“좋았어... 내 후배들이기도 하고, 저 애들도 거절할 명분은 없을 테니!”
그렇게 마음을 먹은 셰릴은 곧장 그 일행을 향해 다가간다. 피켓을 든 후배들에게도 손짓을 해서 따라오도록 한다.
“에이, 또 따라오래...”
“그러게... 그런데...”
피켓을 든 후배들 중, 라시드가 가까이 오는 그 일행 중 한 명의 얼굴을 알아봤는지 목소리가 가라앉더니, 숨이 조금 가빠진다.
“저... 저... 저 애가 저기 왜 있어?”
“응? 누구...”
라시드가 가리킨 곳을 본 루카스 역시, 그 일행 중 한 명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고는 기겁했는지 식은땀을 흘린다. 그 문제의 인물은 히어로 동아리의 베로니카. 나디아, 언주와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고 막 나와서 집으로 향하던 길이다.
당연히, 베로니카 역시도 아는 얼굴이 많이 보이는 걸 알고 나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거기에다가 굉장히 이질적인 광경까지 보고 있으니 그 이상함은 더하다.
“차논 선배는 왜 저기 서 있고... 거기다가 지금 다 뭐 하는 거지? 가운데에는 방송을 하는 사람 같은데...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몰라. 한눈에 보면 그냥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하는 그런 흔한 방송 같은데...”
그렇게 의아함을 느낀 베로니카 역시도 셰릴이 방송을 진행하는 곳으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베로니카는 셰릴과 마주친다. 그리고 여기서, 셰릴은 미리 녹음해 놓기라도 한 듯한 대사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눈앞에 있는 베로니카가 아는 얼굴이라는 건, 셰릴에게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셰릴의 방송이 점점 재미있어진다는 사실이다. 대화방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날뛰고 있다는 문제점이야 있지만, 어차피 팬들의 ‘화력’으로 찍어누를 수 있을 테니, 지금 당장 닥쳐 있는 상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최고의 게임 방송, 최고의 시청자! SRTV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방송의 진행자, 저 셰릴은 방송을 시청하는 누구나 최고의 서비스로 보답드립니다!”
“어... 네... 안녕하세요...”
베로니카는 갑자기 셰릴이 이렇게 들이대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방송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으니 일단은 억지로 웃으며 맞장구를 치며 말한다.
“알고... 있죠! SRTV, 저도 정말 좋아하거든요!”
“하하하! 저야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영광입니다!”
셰릴은 그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이내 자신의 앞에 선 후배들이 누구인지 알아챈다.
‘미린중학교 2학년... 나디아 알타미라노, 베로니카 폴토라츠카야... 그리고 독고언주, 맞지. 너희들, 내 방송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서 거짓말을 그렇게 해. 하지만, 이제 내 방송을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지. 거기에다가 거액의 후원을 매달 주는 후원자로 만들어 버릴 거야. 기대하라고. 얼마 걸리지 않아.’
그렇게 들떠 있던 나머지, 셰릴은 자기 능력은 한 사람씩밖에 쓸 수 없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기로 한다. 아니, 지금의 방송을 할 때, 셰릴에게서 그런 제한은 이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좋아, 이제 시작이야. 내 능력을 주입하면 너희들은 꼼짝없이 내 애청자가 되어 버린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렇게 들뜬 마음에, 셰릴은 자기 딴에는 입담을 넣어 가며 방송을 진행하면서, 나디아와 베로니카, 그리고 언주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자기 능력을 주입할 생각을 한다.
“자, 모두 제 방송의 애청자라고 했죠? 그러면 같이 한번 따라 하는 겁니다. 함께, 제 방송의 구호, 해 볼까요?”
그리고 셰릴이 뒤의 후배들에게 눈치를 주자, 곧바로 후배들이 피켓을 들고 셰릴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다. 슬레인이나 준후를 포함한 모두가 속으로는 끓어오르는 것 같아도 말이다. 후배들이 온 걸 확인한다.
[셰릴님 애청자 +100!]
[올라라 올라라]
[1등까지 Go!]
애청자들의 메시지를 보고 한껏 고무된 셰릴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셰릴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셰릴의 능력은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적용되기 때문에, 그전에 능력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걸린 능력이 해제된 것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오래지 않아 셰릴에게 전해져 온다. 누군가가, 셰릴의 뒤통수를 세게 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힌다.
“너 나한테 조금 전에 뭘 한 거야!”
“어, 누구...”
난데없는 자신을 향한 공격에 놀란 셰릴이 뒤를 돌아보니, 아까 자신이 능력을 걸어서 ‘팬’으로 만들어 놨던 중년 여자가 다시 돌아와 있다. 그것도 아주 화가 난 얼굴을 하고서, 씩씩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뭘 했어, 응? 말해 보라니까?”
“아... 저기, 그건 그게 아니고요...”
셰릴이 막 변명을 하려 하자, 대화창 역시 거기에 맞춰 호응한다.
[혼내줘요]
[셰릴님의 팬이랬으면서 배신하다니!]
[내가 가서 확 한 대 때려줄까 보다]
하지만 대화방이 그러든 말든, 셰릴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네, 방송 중에 조금 소란이 생겨서 죄송합니다! 최고의 방송, SRTV는 시청자 여러분께 최고의 컨텐츠,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다시 방송을 진행하겠...”
셰릴의 말은 이어지지 못하고 거기서 또 끊기고 만다.
“어... 어어어?”
어느새 눈앞에는 릴리스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하고서 셰릴의 앞에 서 있다.
“설명해 볼래요, 선배님?”
“어...?”
“저한테 조금 전에 뭘 한 거죠? 굉장히 기분이 이상하고... 또 불쾌했는데.”
“아, 여러분, 여러분! 지금 있는 돌발상황에...”
“돌발상황은 무슨!”
릴리스가 거칠게 셰릴이 들고 있던 카메라를 빼앗으려 하자, 셰릴은 꽤 많이 이런 상황을 겪은 듯 카메라를 자기 쪽으로 홱 가져오더니, 곧장 릴리스를 쳐서 쓰러뜨린다.
“선배 방송하는데 말이 많다? 그러게 아까 내 말에 좀 순순히 따라 줬으면...”
“웃기시고 있네!”
한편 이 난장판을 컴퓨터 화면의 한쪽에 작게 띄워놓고 보던 민은 절러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원래 방송이란 게 다 저런 건가, 아니면 저 셰릴이라는 선배가 저런 건가...”
그러면서 방송을 끄려는 찰나, 방송이 갑자기 저절로 암전된다. 그 암전된 화면에 문구가 하나 뜬다.
[현재 방송 상태가 원활하지 않습니다. 불편하게 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 그러면 그렇지.”
민은 그렇게 말하며 셰릴의 방송을 끄고는, 한참 하고 있는 다른 채널 게임 방송을 전체화면으로 놓는다. 마침, 점점 상황이 재미있어지는 참이다.
“역시 이런 방송이 재미있다니까. 광고 문자 때문에 들어갔더니만 시간만 버렸잖아.”
그렇게 말하며 계속 그 게임 방송을 본다. 가끔씩 진행자가 입담을 늘어놓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게임 진행 화면만 나오니 집중이 저절로 된다.
“역시 이런 게 아까 보던 방송보다 보기는 좋겠는데. 괜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것보다는 이런 게 낫지.”
그런데 그때, 방송 대화방이 이상한 메시지로 뒤덮이다시피 한다.
[방송 방해자는 각성하라]
[SRTV에 훼방꾼이 난입했습니다. 퍼뜨려주세요]
[누가 셰릴님을 방해했어요]
“에이, 뭐야? 이런 걸 할 거면 자기네 대화방에 하든지, 아니면 신고를 넣든지 하라고! 왜 다른 방에까지 와서 난리야?”
민이 그렇게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방송을 막 나가려는데, 밖에서 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문이 열릴 것을 미리 예견하고는, 문 앞에 나가 있는데, 민의 예상대로, 반디가 문 앞에 서 있다.
“야, 좀 조용히 봐. 나 좀 자자.”
“뭐야, 아직 안 자고 있었어? 8시 정도면 잔다더니...”
반디의 목소리는 고생 때문인지 좀 많이 가라앉았다. 거기에 머리와 배에 손을 대고 있는 건 덤이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SiteOwner
2023-10-27 20:03:54
허위로 쌓아올린 셰릴의 인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군요. 그 시청자들이 셰릴의 실체를 알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될지는 예상이 어렵지 않게 됩니다만, 일단 그 이전 시점까지는 팬들의 마음은 진심인 듯합니다. 이렇게까지 쌓아올린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까요. 보통 저 정도 되면 스트리머가 의심받는 게 보통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자신의 한계를 잊은 셰릴이 벌인 촌극, 역시 그녀가 이상하기에 벌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반디는 여전히 고생하는 중이군요. 역시 식중독이란 무섭습니다.
평소에 많이 조심한 덕분에 많이 겪지는 않았고 지금까지 겪어본 게 아직 한 자리수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매번 무섭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10-29 23:33:19
아마 민낯이 드러났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다시 셰릴의 방송을 챙겨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인터넷 방송 시청자 중에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반디가 저러는 건 제가 생굴을 먹고 고생한 걸 토대로 쓰는 것이라 좀 실감이 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드리갈
2023-10-29 21:58:54
셰릴이 방송을 운영하는지 방송이 셰릴을 운영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네요.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무시한 결과는 결국 이제 방송이 셰릴을 운영하는 역설로...그 초능력이 풀리자마자 벌어지는 꼴을 보니 정말 저렇게라도 방송을 운영해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민이 하는 말처럼 방송이 원래 그런지 아니면 셰릴이라서 그런지...
반디는 여전히 고생하네요.
시어하트어택
2023-10-29 23:38:59
실제로 인터넷 방송인 중에도 저런 사례가 꽤 있습니다. 한창 뜨다가 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을 보면 딱 그런 사람들이죠. 셰릴의 능력이 제한이 없었다면, 크게 사건이 터질 때까지 저런 짓을 하고 다녔을 겁니다 능력에 제한이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인 걸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