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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돈귀신
구독자 'ultramarine'님께서 투고하신 글입니다.
저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친가 친척들이 전부 죽은 줄 알았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부모님은 저에게 친가 친척들이 있다는 사실을 숨겨왔었고, 그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에 꼽는 재벌만큼은 아니지만, 친가 친척들은 꽤 부유한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상가 건물만 네다섯채에 넓은 땅도 하나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 형제자매들은 전부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같은 누구나 타고는 싶어하지만 주머니 사정때문에 포기하게 되는 비싼 차를 한 집에 적어도 두 대씩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친척들이 사는 지역은 서울이랑 좀 떨어져었지만, 거기서 작은 사업을 시작했던 게 크게 성장해서 그 지역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도 부유한 가정환경 덕분에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보고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했지만, 친가쪽에서 하는 사업은 적성에 안 맞다며 서울로 상경해서 지금의 어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전부 과거형이지만요.
할머니 댁에는 검은 항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 항아리는 어릴적부터 할머니 방 한켠에 고이 놓여져 있었고, 안에는 쌀과 돈 몇 푼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그 항아리는 돈귀신을 모셔다 놓은 항아리인데, 항아리에 든 돈귀신 덕분에 집이 잘 살게 된 거라면서 할머니는 그 항아리를 신줏단지 모시듯 아끼셨다고 합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성주상 옆에 돈귀신을 위한 제삿상도 따로 차릴 정도로 정성이셨다고 들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어릴 적 라면이 먹고 싶어서 그 항아리에 든 돈을 슬쩍해서 라면을 사먹었습니다. 당시 라면은 지금처럼 슈퍼에 가서 흔히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대단히 비쌌는데, 아마도 큰아버지가 사달라고 해도 할머니가 사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 돈을 슬쩍했던 모양입니다. 항아리에 있는 돈을 슬쩍해서 라면을 사 먹은 날, 큰아버지는 가위에 눌리셨습니다. 귓가에서 찰그락거리면서 돈을 세는 소리가 들렸고, 눈을 떠 보면 웬 여자가 앉아서 큰아버지를 노려보셨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할머니한테도 말한건지, 큰아버지는 돈귀신 항아리에서 돈을 훔친 걸 들켜서 크게 혼났습니다. 그 뒤로 라면을 사느라 쓴 돈만큼 큰아버지 용돈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 제가 왜 친가 친척들의 존재를 몰랐는지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친가쪽 집안에서는 태어날 아이가 남자아이면 등에 점이 찍혀있는지를 본다고 합니다. 등에 다섯 개의 점이 일직선으로 찍혀있으면 돈귀신의 신랑이 될 표식이라고 해서, 성인이 되는 해에 돈귀신 항아리와 결혼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 뒤로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지만, 부모님께서 제 존재를 숨겼던 걸 보면 아마도 좋은 결말은 아닐 듯 합니다.
지금은 점을 제거해서 없지만, 제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제 등에 난 다섯개의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어떻게 해야 할 지 상의를 하신 끝에 이참에 친가와는 절연하고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는 단지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어머니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친가 친척들과는 거의 연락을 안 하고 지낸데다가, 할머니가 결혼식에 오시지도 않았으면서 계속해서 아이는 언제 태어나는지 닦달하는 통에 이골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가 친척들에게는 제가 엄마 뱃속에서 죽었다고 말하고, 이참에 친가 친척들과 연락을 끊은겁니다.
저는 그래서 명절에도 외갓집에만 갔습니다. 아버지는 친구분들을 통해서 가끔 건너건너 친가 친척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저에게는 말씀하신 적 없었고요. 할머니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냥 돌아가셨다고만 했습니다. 가끔 아버지 혼자서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오긴 했지만, 따로 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아서 할아버지 역시 저의 존재는 모르고 계신 듯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임종 직전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만나러 갔을 때,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제가 당신의 손주라는 사실과 돈귀신의 신랑이라는 걸 알고 부모님께서 유산한 걸로 하고 저를 숨기셨다는 걸 알게 되셨습니다. 전말을 모두 들은 할아버지는 저에게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친가쪽에 저랑 같은 항렬중 남자는 저 하나였는데, 제가 엄마 뱃속에서 유산을 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그 대에 돈귀신의 신랑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친가 친척을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계셨습니다. 제가 살아있다면 그대로 데려가서 돈귀신의 신랑으로 삼고, 제가 정말로 죽었다면 부모님을 닦달하던가 씨받이를 들이던가 해서 돈귀신의 신랑이 될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정말 믿을만한 친구 외에는 어떠한 친구들에게도 우리 집이 어디인지 알려주시지 않았고, 친구와 만날 때도 항상 집에서 먼 장소에서 만났기때문에 친가 친척들이 저희가 사는 집을 알아내서 들이닥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모든 얘기를 했을 때, 아버지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아시게 된 건지 물었습니다. 돈귀신을 모시는 할머니를 탐탁치 않아하셨던 할아버지는 돈귀신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얻은 돈은 쉽게 날린다면서, 피땀흘려 번 돈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새겨들고 있었던 건 아버지뿐이었는지, 아버지는 큰아버지나 고모와는 달리 용돈을 받아도 허투루 쓰지 않고 공책 하나를 사서 용돈기입장처럼 쓰고 계셨습니다. 대학 등록금은 집에서 내줬지만 용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서 쓰셨고요. 그런 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당신이 쓰시던 일기장을 유품으로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유품으로 남겨주신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기장에는 당연히 돈귀신에 대한 것도 적혀있었습니다.
돈귀신의 신랑이 된다는 건 성인이 되는 해에 돈귀신 항아리와 결혼을 마치고 그날 밤 죽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위에는 돌아가신 큰아버지 한 분이 더 계셨는데, 그 분도 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돈귀신의 신랑이 되어서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식을 올리고 신랑으로 바쳐졌다고 합니다. 굳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돈귀신과 결혼하려면 영혼 결혼식 비슷한 걸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피칠갑을 한 신랑을 반길 리 없었기때문에, 멀쩡한 상태로 죽이기 위해 술에 집에서 기르는 협죽도 잎을 넣어서 먹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집안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아무리 절름발이라고는 해도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을 쉽게 귀신의 신랑으로 바쳐버리는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를 몇 번이나 만류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돈귀신의 신랑으로 바치겠다고 했을 때 어느 무당의 꾀임에 넘어간거냐면서 노발대발하셨던 할아버지는, 큰아버지가 돈귀신의 신랑이 되어 돌아가신 날 할머니와 이혼하셨습니다. 이혼하실 때 자기 아들을 독살한 것에 대해 언질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재산을 5:5로 나눴다고 들었는데, 그 재산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께서 고스란히 물러받으셨습니다. 돈귀신의 힘이 정말 엄청났던 모양인지 할아버지가 남은 평생동안 쓰고 남은 돈이 몇십억은 족히 됐다고 하더군요.
친가 친척들은 신랑이 없어 분노한 돈귀신에 의해 가산을 탕진했습니다. 다급해진 할머니는 돈귀신에게 빌고 또 빌었지만, 신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돈귀신은 그 동안 몇 대에 걸쳐 쌓았던 부를 전부 앗아가버렸다고 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무도 찾지 않는 가운데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홀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변호사를 통해서 유산 상속 관해서 연락이 왔었는데, 이미 집에 빚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셨던 아버지는 유산 상속을 포기하셨습니다.
친가 소유의 건물과 땅은 이미 팔아버린 지 오래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싼 외제차는 물론이고 온 몸을 휘감은 명품들도 이미 팔아버린 지 오래였고, 고래등만하던 집도 팔고 현재는 큰아버지네나 고모들 모두 반지하 월셋방에서 산다고 합니다. 개중에는 도박에 미쳐서 돈을 탕진한 사람도 있고, 사치에 빠져서 빚을 잔뜩 진 사람도 있고, 주식 투자를 했다가 날려먹거나, 코인에 투자했다가 날려먹은 사람도 있고, 사기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크게 사기를 당해서 그 충격으로 치매가 왔다고 하더군요.
친가 친척들을 못 만나서 아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안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분 다 돌아가셨지만 친할머니의 빈 자리를 그만큼의 사랑으로 채워주셨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계셨고, 친가 친척들에게 예쁨받더라도 그렇게 좋은 의도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친가 친척들의 말로를 들어보면, 역시 돈귀신에 의존하지 말라는 할아버지 말씀이 옳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는 피땀흘려 버신 돈으로 번듯한 가정을 일궈냈는데, 다른 친척들은 돈귀신의 힘으로 얻은 일확천금을 돈귀신의 분노를 사서 날려버렸으니까요.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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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SiteOwner
2024-06-09 13:20:31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나간다...글쎄요. 그건 그렇게 얻어진 재물이 그런 속성을 지녀서가 아니라 그런 재물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헛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어렵게 얻은 것이 쉽게 나간다든지 쉽게 얻은 것이 쉽게 나가지 않는 사례도 봤고, 아예 얻지 못한 건 나가지도 못하다 보니 말이지요.
아무튼 확실한 건 재물을 보는 시각이 잘못되면 그 재물이 사람을 쓰는 결과가 온다는 것이겠지요.
국내산라이츄
2024-06-10 23:21:47
사연자의 친가와 친할머니는 돈귀신이 제물(신랑)만 바치면 돈을 척척 주니, 돈이 벌기 힘들다는 것도 모른 채 사치를 부렸을겁니다. 그렇게 돈귀신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쉽게 돈을 얻었기때문에 돈귀신의 분노를 샀을 때에도 그 때의 씀씀이를 못 버리고(+돈을 조리있게 쓰는 법을 몰라서) 파산하게 된 것이고요. 반면 똑같이 돈귀신이 준 돈을 허투루 쓰지 않은 사연자의 아버지는 돈귀신의 분노와 상관없이 오히려 잘 된 것을 보면 Easy come, Easy Go라는 말도 사람에 따라서는 반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드리갈
2024-06-18 22:19:20
어떠한 사안을 이해하는 방법 중에 인격화가 있지요.
결국 돈귀신이라는 것도 그런 인격화이고, 그 과정에 기여한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되는 것이겠죠. 결국은 돈귀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문제인데 그걸 귀신 운운하는 게...
자신이 지닌 혐오스러운 속성을 타인에게 전가해서 저러는 심리, 동서고금에 넘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