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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편의점을 간다고?”
안톤이 갑자기 편의점을 가겠다고 하자, 민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반문한다. 다른 친구들 역시 민의 반응에 동의하는 듯하다.
“살 거면 학교 매점 가서 사!”
민이 그렇게 말해도, 안톤은 막무가내다.
“생각났을 때 가서 사야지! 그리고 나 목말라!”
“자기 목마르다고 혼자 불쑥 가서 빠지는 게 어디 있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민은 혼자서 뒤돌아 편의점으로 가는 안톤을 뒤쫓아간다. 편의점은 여기서 별로 멀지 않다. 1분, 아니 30초만 걸으면 닿는 거리다. 왜 그걸 굳이 가겠다고 하는 건지, 어이가 없기는 해도, 그래도 친구가 가는 것이니 따라가 본다.
그리고, 민의 불길한 예감은, 머지 않아 현실로 드러난다.
“응? 편의점이 뭔가 이상한데...”
얼른 뛰어가서, 안톤보다 앞서서 편의점 앞에 다다른다. 그리고 안톤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손짓한다.
“야! 왜 들어가지 말라는 건데! 설마 네가 그 음료수를 나보다 먼저 차지하려고?”
“들어가지 말라면 들어가지 마. 다 이유가 있어.”
한편 그로부터 2분쯤 전.
주위를 살피던 리암의 귀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오린! 시메온! 이 멍청한 녀석들!”
소리가 들린 쪽은 편의점 쪽. 리암이 돌아보니, 자오린, 시메온과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 1명이 음료수를 마시다가 이쪽을 돌아보고 있다. 그 순간, 리암에게 딱 떠오른다. 저 얼굴은 확실히, 어제 타마라가 보여준 그 영상 속의 남학생이다. 그런데, 그 남학생은 리암을 눈치라도 챈 건지, 편의점 안으로 몸을 숨겨 버린다.
“뭐야, 저거 흑막같이 행동하는 녀석 맞나?”
리암이 바로 쫓아가려고 하자, 그사이 일어선 타마라가 리암의 손을 붙잡는다.
“아니, 왜?”
“무언가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조금 조심스럽게...”
하지만, 리암은 타마라의 잡은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다시 그 편의점으로 향할 기세다.
“아니, 리암, 왜 거기로 가냐고?”
리암은 자신을 붙잡으려는 타마라를 돌아보며, 다급히 말한다.
“눈치도 없는 예담이 녀석이 저기로 가고 있다고! 야! 너 왜 네 멋대로 거기로 가!”
“아니, 열 받잖아요! 자기가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 말이야!”
리암의 말대로, 예담이 편의점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걸 본 자오린과 시메온이 급히 예담을 제지하려고 하지만, 한발 늦었다.
“야! 냅다 거기로 들어가 버리면 어떡해!”
“이것들이! 너희들 일부러 위험에 빠뜨리려고 그런 거지!”
리암이 자오린과 시메온을 일으켜서 추궁하자, 시메온은 자신은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아니, 저는 단지, 위험하니까...”
“그럼 아까 득의양양하게 바늘밭을 만든 건 뭔데? 그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했던 건 아니고?”
“어... 그건...”
순간 무언가 뜨끔했는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알 방법은 없지만, 자오린과 시메온은 말을 잃고 마치 혀가 굳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너희들하고 놀아줄 시간 없어!”
뭐라고 더 말하려는 자오린과 시메온을 뒤로 하고, 리암과 타마라는 그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편의점 안에는, 마치 벌집 안에 자리를 잡은 벌의 무리처럼, 머리에 기름칠하고 빗어넘긴 것 같이 보이는 그 문제의 중학생이 팔짱을 낀 채로,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리암과 타마라를 보고 있다.
“훗, 들어오셨어요?”
마치 ‘먹이가 걸렸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 중학생의 말을 듣자, 리암과 타마라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짐작한다. 등 뒤에 무언가 서늘하다. 한번 안을 보니, 편의점 주인, 예담, 그리고 이름 모를 학생들 몇 명까지, 마치 거미줄 같은 것에 걸려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입은 다들 막아 놓았는지, ‘읍읍’ 거리는 소리만 내며 발버둥을 칠 뿐이다.
“여기 들어온 이상, 게임 끝인데? 어쩌나?”
히죽대는 그 중학생의 얼굴을 생각 같아서는 한 대 치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하게 생겼다. 이미 거미줄 같은 것이 두 팔부터 감싸기 시작한다.
“이게 뭔지 아는 아저씨, 아줌마 있어? 아니면,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
타마라는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거미줄을 보더니, 무언가 알 것 같은 건지 리암에게 곁눈질을 준다.
“확실해! 어제 내가 보여줬던 그 중학생 있잖아!”
“어...?”
타마라의 그 말에 리암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제 본 그 영상이 생생하게 다시 재생되는 것 같다. 정확히, 그 얼굴이다.
“아니, 왜 그러니까 하필...”
“호오, 아저씨, 저 한 번 본 적 있지 않아요? 아니, 아줌마인가?”
그 중학생이 다시 한번 도발하자, 거기에서 딱 리암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 맞아! 나도 봤었지. 그러니까... 직접 저 녀석을 보기까지 했다고. 왜 나는 생각이 안 났던 거지?”
“그러니까! 생각 좀 해라!”
채근하는 타마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리암에게 떠오른 건 1개월쯤 전, 다른 사건 때문에 급히 이동하다가 타마라와 막 만났을 때였다. 몇 명의 중학생이 무인 가게를 털려고 작당하던 모습이 보였고, 그는 선제적으로 그 가게의 문을 잠갔고, 막 과장된 동작으로 그 중학생 패거리에게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그냥 도망쳤는데, 그중 한 명이 리암의 얼굴을 빤히 보고 간 모양이다. 그때는 그냥 지나가듯 보고 만 터라 더는 생각은 나지 않았는데, 이런 데서 다시 얼굴이 떠오를 줄은 몰랐다.
“뭐, 뭐야!”
“이렇게 기억력이 떨어져서야 어떻게 히어로 같은 걸 해요?”
“아... 씨, 이럴 데서 떠오를 줄이야!”
그제서야 사라졌던 기억이 다시 돌아온 리암은 머리를 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 그냥 한숨만 푹 쉰다.
“영웅도 악당도 멍청하면 못 하는 거 알죠? 이렇게 멍청해서야, 어떻게 히어로 모임을 한다고!”
그 도발과 자신감이 섞인 말과 동시에, 더욱더 둘을 세게 조여오는 거미줄 같은 줄들이 느껴진다. 승리를 자신한 목소리와 그에 맞게 더 강해진 힘 때문에, 자칫하면 예담과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도 잊힐 판이 되었다.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거기 불청객 녀석? 한 번만 말하면 풀어 줄 수 있는데...”
그 중학생은 이제, 마치 승리를 선언하려고 하기라도 하듯, 웃음기까지 띠며 말한다.
“한번 말해 볼까? 죄송합니다, ‘쇼마’ 님께 복종하겠습니다라고...”
그때, 편의점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몇 명은 더 밖에 있는 것 같은데, 그 중 한 명의 목소리가 유독 도드라져 들린다.
“아- 안톤은 왜 여기로 오자고 해서... 어? 여기 왜 이러냐?”
“어...?”
리암과 타마라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금세 알아챈다. 지금 몸이 허락한다면, 금세 뛰어나가서 말릴 것이다. 하지만 팔다리가 움직여지지 않고, 입도 겨우 움직여지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봐도 좋다. 그리고 거기에 반응하는 건, 그 쇼마라는 이름의 중학생 역시 마찬가지다.
“어, 여기로 알아서 기어들어 오는 멍청한 녀석은 또 누구지?”
쇼마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문제의 인물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편의점 안쪽에서 사로잡혀 있던 예담 역시 경악했는지 몸부림을 치며 거기서 금방이라도 빠져나와 달려갈 기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서 ‘오지 마라, 도망가라’라는 눈짓을 줄 뿐이다.
“헤에... 또 무슨 일이 벌어졌네.”
거기로 들어오는 건, 민. 예상했던 대로다. 마치 여기서 일어난 일은 전혀 신경도 안 쓰는 듯, 여기로 들어와서는 거미줄 같은 것에 온몸이 묶여 버린 점장, 그리고 다른 몇 명의 손님들, 특히 예담이 보인다. 또 리암과 타마라까지. 그리고 지금 이 사건의 장본인, 쇼마가 ‘넌 왜 들어왔냐’는 듯한 눈초리로 민을 돌아보는 것까지.
“얼른 가. 애들이 왜 여기를 와?”
다른 친구들이 말리는 듯한 표정과 손짓, 몸짓을 보이지만, 민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쇼마를 응시한다. 상황은 대략 파악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쇼마는 자신의 이 능력 행사에 방해가 되는 민을 쫓아낼 생각을 한다. 쇼마는 일부러 표정을 험상궂게 하고, 목소리도 내리깔고 말한다. 그래봤자 원래 목소리가 가늘어서, 체격이나 얼굴에 비해 전혀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지만 말이다.
“야, 가라. 애들이 이런 데 알짱대는 거 아니야. 조용히 그냥 가고 모른 척해라. 아니면 너하고 네 친구들, 다 무사하지 못할 테니.”
“에...”
“이 녀석, 들은 거냐, 만 거냐?”
쇼마는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말을 ‘그저 듣기만’ 하고,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표정까지 보이는 민을 보고서 답답함 반, 그리고 짜증 반의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 말한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녀석에게는 별로 선택지가 없다니까?”
“어... 그러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민은 별 감흥이 없이 쇼마의 말을 그냥 흘려넘긴다. 오히려, 마치 쇼마를 밑에 두는 듯한 눈빛과,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를 품은 듯한 표정도 빼놓지 않는다.
“야! 말 좀 들어!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어... 그런데요. 지금 하는 말은, 전혀 위압적이지도 않고, 또...”
“야!!!”
쇼마는 이제 정말 많이 화가 났는지, 편의점 안에 잡아 둔 예담과 리암, 타마라, 편의점주 같은 사람들은 제쳐 두고, 민에게 온 정신이 쏠린다. 자연스럽게 조금씩 그 거미줄들은 느슨해지지만, 아직 편의점 안에서는 쇼마의 힘이 강했던지, 거미줄에 잡힌 사람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
“내 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그렇게 누가 들으면 마치 정의의 사도가 내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지르고 나서, 쇼마는 자신의 그 거미줄을 막 편의점 문을 넘어 들어온 민에게도 뻗기 시작한다. 민의 두 발에도 그 감각이 전해져 온다. 자기 발을 내려다보는 민을 보자, 쇼마는 그 광경이 자기 마음에 들었던 건지, 히죽거리며 말한다.
“내 말이 빈말은 아니라는 걸 알겠지? 그러니까 왜 나한테 대드냐니까?”
“어... 그러니까...”
하지만 그런 쇼마의 말에도, 민은 별로 상관이 없다는 듯한 반응이다. 아니, 애초에 쇼마의 어떠한 말이나 행동에도 큰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연히, 그걸 본 쇼마는 속이 뒤집히지만, 짐짓 아닌 척하고는 다시 입을 연다.
“좋은 말 할 때 들어야겠지? 잘못했습니다, 할래, 안 할래?”
쇼마는 위협적이지 않은 목소리와 얼굴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위협적으로 말하고는 작게 ‘후’ 하고 숨을 내쉰다.
하지만, 쇼마의 기대와는 달리, 민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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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4-08-24 00:12:49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똥개도 자기 집 마당 안에서는 50점은 먹고 들어간다죠. 문제의 편의점이 딱 그 쇼마라는 중학생에게는 자기 집 마당인 듯하네요. 그리고 문제의 거미줄 속박능력을 정말 믿는 것 같은데, 글쎄요. 그런데 그의 도발이 민에게 안 먹히니까 여기서 한자성어 2가지가 생각나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하나는 교병필패(驕兵必敗, 교만한 군인은 반드시 패배한다), 다른 하나는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사슴을 쫒는 자는 산을 못 본다).
쇼마의 입장이 반대가 되면 어떻게 될지 볼만하겠어요. 기대되어요.
시어하트어택
2024-08-25 22:55:26
쇼마의 능력은 편의점뿐만 아니라 특정한 공간 안에 거미줄을 전개해 놓고 그 안에서는 마음대로 상대방을 다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만의 끝은... 아시겠죠.
SiteOwner
2024-08-24 18:36:26
여기에 묘사된 상황은 3년도 더 전에 겪었던 상황인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위험할 뻔 했습니다 제하의 글에 나온 것과는 달리 편의점 밖은 물론 안에도 위험요소가 있는...읽으면서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쇼마라는 이름에서는 일본의 남자 피겨스케이트선수 우노 쇼마(宇野昌磨, 1997년생)가 생각납니다만...
한 장소를 자신의 근거지로 하고 있다는 것은 그 근거지의 밖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그 장소가 의도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답이 없다는 의미도 됩니다. 모르면 고생해야겠지요. 그래서 배울 수 있으면 다행일 겁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08-25 22:58:00
물론 풀네임은 나중에 따로 공개할 겁니다만... 쇼마라는 이름도 일본에서 최근 출생한 아이들 이름 중에 좀 보이고 있죠.
쇼마의 능력은 분명히 괜찮은 능력입니다만, 미미한 초능력을 가지고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강한 초능력을 가지고도 그게 아닌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