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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라는 한숨을 쉬고 싶지만, 그러기는 힘들다. 자칫 그랬다가는 교수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타마라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교수는 다시 앞을 보더니,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 한마디 한다.
“어... 내가 자네들이 왜 이러는지 이해는 하고 있지. 지금 이 교수가 쓰는 건 기초적인 공식이지만,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려워. 이상한 건 아니야. 그래도 오늘 확실히 알아 놓으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되니, 수업에 집중해 주면 감사하겠네. 그럼, 다시...”
교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는 건지, 탁상을 한번 손으로 치고는, 계속 수업을 진행한다. 타마라 역시도 머리가 아픈 걸 어떻게든 참고서 수업을 계속 들으려고 하지만, 미칠 노릇이다. 거기에다가, 하필이면 이럴 때, 교수와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한번은 그냥 지나갔지만, 두 번째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교수가 무언가를 많이 숨긴 미소를 짓는다.
“어...”
“파슈키에비츠 양인가? 그래. 언제나 이 교수를 잘 따라와 줘서 고맙네. 지금부터 하는 건 필기가 좀 많이 들어가는 과정인데, 여기서 보조를 좀 해 주면 어떻겠나? 그저 이 교수가 필기하는 데서 좀 멀어지면 지워 주기만 하면 되네.”
타마라의 이름까지 알고서 부르니 피할 도리도 없다. 이럴 때는 어디론가 숨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교수가 시키는 것이니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온다. 이럴 때 눈도장을 잘 찍어 놓으면 좋으니 말이다. 사탕을 한번 물고서 나오고 싶지만, 그러자니 앞에 있는 학생들이 볼까 봐 그런 것도 하기 힘들다.
나와서 보니, 주변의 몇 사람이 끙끙대는 게 보이는데, 유독 한 사람이 머리를 들고 꼿꼿이 의자에 기대앉아서 수업을 듣는 게 보인다. 타마라가 아까부터 주목하고 있었던, 바로 그 남자다.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저렇게 학구열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니 더 주목받게 된다.
그 남학생은 아까 리암이 마크해 놓은, 바로 그 남자다. 캐릭터가 그려진 검은 티셔츠를 보니 확실하다. 거기에다가, 다른 학생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시선을 보니, 더 확신이 든다.
“알았어...”
타마라는 아픈 머리를 참아가며, 그 남학생이 눈치채지 않도록 적당히 흘끗흘끗 본다. 행여 눈이 마주칠세라, 몸의 방향 역시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한편 그 시간, 미린초등학교 매점.
“무슨 소리냐? 매점 안에 그런 게 어디 있다고?”
니키타가 사라진 지 1분도 채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민의 동급생들과 3, 4학년 동생들, 6학년 형, 누나들은 갖가지 억측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있다.
“나도 모르지. 어제부터 매점이 좀 서늘했었다니까? 그러면 진짜로 안에 무슨 거미가 편의점의 과자를 먹고 커져서, 니키타를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아냐, 아냐! 잘 들어 보라고.”
민의 친구도 아니고, 거기 있지도 않았던, 민소매의 파란색 상의를 입은 6학년생 여학생 1명이 손뼉을 치고는 말한다.
“왜 너희들도 며칠 전에 들었지? 요즘 가끔 공원 바닥 같은 데 웜홀 같은 게 생겨서 이상한 데로 가는 통로가 생긴다고.”
“어... 누나, 그게 맞아요?”
“글쎄, 언니 말은 뭐가 좀 바로 와 닿지 않는데...”
“그러니까 잘 들으라니까! 봐봐, 그 구멍이 매점 바닥에 생긴 거야! 그래서 그 구멍으로 누군가가 들어와서 과자나 음료수를 전부 쓸어가 버린 거고, 덤으로 니키타까지 데려가 버린 거고! 그게 뭘까? 내기 보기에는 외계인들의 비밀결사 같아!”
“파린 누나, 그게 말이 돼?”
듣고 있던 민이 좀 아니다 싶었는지, ‘파린’이라고 불린 그 6학년생의 말을 제지한다.
“어떤 외계인들이 할 짓이 없어서 그러냐?”
“아니, 너는 이런 것도 안 봤어?”
그런데 파린이 보여준 건 그냥 어느 스트리머가 하는 음모론과 사이비 종교스러운 내용을 듬뿍 섞은 영상의 클립이다. 그냥 훑어보니 구독자가 조금 되기는 하는 모양인데, 하는 말은 그다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 친구들과 게임을 하던 도중 본 영상이 문득 떠오른다. 투명화를 했든, 아니면 배경에 자신을 완전히 동화했든, 어떤 것이든 간에, 무언가 본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어쩌면...?’
물론 그러든 말든, 파린은 여전히 그 출처 모를 영상을 무조건 신뢰하는 건지, 자꾸만 민의 옆에서 귀찮은 말을 쏟아낸다.
“뭐 하냐? 내 말이 맞는다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 그만 하라니까? 자, 여기 다들 내 말 반박해 볼래?”
그런데, 그 순간, 보인다. 어제 영상에서 본 것과 거의 비슷한, 그 윤곽선이 말이다. 사람의 윤곽선이고, 키는 140cm 정도. 어제 본 그 영상의 주인공이, 맞는 것 같다.
그 순간, 민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이기 시작한다. 지금 앞에 있는 무언가를 이쪽으로 꺼내놓으면, 니키타 역시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지금 시간이라면 혹시 구멍을 뚫어 놓았다고 해도,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상황이 일어나든 혼자서 떠들어대기만 하는 파린은 그냥 무시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민은,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민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매점 안에 있다고 추정되는 그 누군가를 공중에 띄우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걸 어쩐다...”
잠시 민은 고민하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뒤를 돌아본다.
마침 민의 뒤에는 토마가 와서 구경하던 중이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 모양인지, ‘누구냐’,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하고 있다. 그걸 보자마자, 민은 토마를 잡아끈다. 거의 낚아채는 것에 가깝기는 하지만.
“야, 토마, 너도 와서 붙어.”
“내가 왜?”
말은 일단 그렇게 하지만, 다음 순간 토마는 따지기를 멈추고, 일단 민의 옆에 붙는다. 민의 말을 안 들으면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는 토마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전에 민에게 장난을 쳤다가 된통 당했던 적이 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라고?”
“어... 그러니까...”
민은 잠시 말이 없다가, 어느새 토마의 주위에 모인 수증기 덩어리를 보고는,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기라도 한 듯, 토마를 돌아보고는 매점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너, 빨리 저기다가 비를 좀 쏟아. 좀 많이! 저기 있는 누군가를 꺼내야지!”
“그러니까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하라고!”
민이 그렇게 마치 자신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 성을 내자, 토마는 한숨을 푹 쉬면서도 민의 말에 따라 매점 안에 구름을 만들고는, 거기에다가 비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오, 잠깐, 저거 누구지...?”
토마가 비를 쏟아내는 그 자리에, 누군가의 윤곽이 보인다. 한 사람의 윤곽인데, 투명한 그 자리에 비를 맞으니 윤곽이 보일 수밖에 없다. 그 이름 모를 누군가는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이내 끄집어내어지고 만다. 당황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능력을 해제한 모양이다. 온몸이 젖어 버리고 머리가 마치 왁스를 진하게 칠한 듯 달라붙어 버린 모양새가 누가 봐도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한다.
“어...”
민도 웃고 싶긴 하지만 그걸 참고 자신의 앞에 있는 그 문제의 주인공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그 문제의 인물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인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니키타다.
“뭐야, 자작극이었어?”
예상외의 정체 때문인지, 민과 친구들은 잠시 웃음을 참고 니키타를 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 중에 안톤이 앞으로 나와 말한다.
“야, 니키타! 말해 봐. 왜 자작극을 하냐?”
“자작극?”
별안간, 니키타의 목소리가 확 올라간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한 대 쳐 버리기라도 할 듯, 안톤의 바로 앞에 서서 말한다.
“내가 안 했어! 누가 나를 잡아끌고 들어갔다고!”
그러면서, 니키타는 입에 머금은 물을 ‘퉤’ 하고 뱉고는, 머리를 한 번 털어낸다. 앞에 선 안톤은 순간 물을 맞아 버려서, 안경에 온통 물이 맺혀 버린다. 니키타는 분이 안 풀리기라도 했는지, 금방이라도 안톤에게 자기가 뒤집어쓴 물을 죄다 뒤집어씌울 생각인 모양이다. 그걸 보던 민이 나서서 말한다.
“야, 야! 엉뚱한 애한테 이러지 말고. 어떻게 네가 안 했다는 건데?”
“몰라! 매점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무언가 알 수 없는 것 때문에 빨려 들어갔어! 그리고 갑자기 나한테 비가 막 쏟아지더니, 나를 여기 던져 버렸고! 나는 그것밖에 모른다고!”
“그걸 어떻게...”
민이 그렇게 말하려는데, 마침 니키타의 눈에 무언가가 띄인 모양이다.
“여기! 발자국 같은데...”
“응?”
니키타의 말대로다. 누군가의 물이 묻은 발자국이 매점 너머 운동장까지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봐봐! 내 말이 맞지?”
니키타는 그 상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건지, 몸서리를 친다. 그리고 그 마르지 않은 발자국과, 당황한 파린, 그리고 이 상황을 재미있게 여기는 다른 친구들을 번갈아 본다. 안경에 묻은 물을 떨어낸 안톤이 니키타의 옷에 그걸 다시 닦으며 말한다.
“어, 니키타! 아까는 음료수 마시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지금은 좀 어때?”
“하... 됐어. 안 마셔.”
니키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단호하다. 아니, 확실하다.
한편 공학관에서의 강의가 다 끝나고, 타마라는 강의실에서 다른 학생들의 틈에 끼어 빠져나오는 참이다. 어려운 공식에다가 두통까지 합쳐서,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원래는 먼저 슬며시 빠져나오는 게 타마라의 주된 행동이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그 의심이 가는 남자를 조용히 따라나설 요량이다. 목표를 한번 정했으면, 그 목표와는 결판을 보고 만다는 게 타마라의 일종의 원칙이다. 그건 리암도 크게 다르지 않긴 하지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타마라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그 자리에 선다.
“아... 뭐야?”
또다시, 타마라의 머리가 지끈거린다. 분명히, 타마라는 최근 감기라든가 독감 같은 어떠한 병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또다시 아까와 같은 두통이 시작된 것이다. 타마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변에 보이는 다른 학생들 역시 멀쩡히 잘 가다가 의자에 주저앉는다든지, 벽에 기댄다든지, 아니면 지나다니는 청소 로봇에 풀석 하고 앉는다든지 하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아... 또 시작했어!”
하지만 타마라가 그걸 깨달았을 때는, 그 문제의 인물은 벌써 또 멀리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분명히 다 잡았다고 생각했건만, 의도한 건지, 아니면 의도하지는 않았던 건지, 또다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고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타마라가 중얼거린다.
“이제 점심 시간인데...”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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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4-09-03 13:39:29
리암이 마크해 두었고 타마라가 수업시간중에 예의주시중인 문제의 그 남자는 모범생같은 모습이 도리어 눈에 확 띄는 참 특이한 경우네요. 하긴 이미지는 상대적이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그 남자는 뭔가 전자전(電子戦, Electronic Warfare) 능력이라도 갖춘 것일까요. 미국과 쿠바의 외교관계 복원 이후 쿠바 주재의 미국 외교공관 근무자들이 이상한 병에 만성적으로 시달린 아바나 신드롬(Havana Syndrome)과 매우 비슷하게 보이기도 해요.
토마의 강우능력이 이럴 때 또 도움이 되네요. 역시 맹상군 휘하 3천 식객 중 대단찮은 인물도 결정적인 순간에 위력을 발휘한 계명구도(鶏鳴狗盗)는 먼 옛날만의 일이 절대로 아니었어요. 게다가 니키타의 자작극으로 보였던 것의 실체가 의외로 드러났으니 토마의 능력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입증되었어요.
시어하트어택
2024-09-07 23:55:21
리암과 타마라가 예의주시하는 그 남자는 정신계 능력자라고 해야겠지요.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좀더 자세히 나올 겁니다.
토마는 아무래도 딱 이 시점에 유용하니 민에게 잘 쓰인 겁니다. 어차피 이 시점에서는 장난을 치려는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고 말이죠.
SiteOwner
2024-09-08 19:33:50
예전에 학원강사로 일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는 10여명 규모의 소규모 반도 진행해봤고 3자리수의 학생들을 상대로 대형강의실에서 강의한 적도 있었는데 어느 경우든간에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입니다. 학생들이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라고 물었을 때 불러내서 "여기서 전체를 보면 다 보인다." 라고 직접 알게 해 준 적도 있습니다. 교수가 문제의 그 남자와 타마라의 이상한 모습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을 것 같아서 여기에 대해 언급해 봤습니다.
니키타가 누명을 쓸 뻔 했군요. 범인은 민준이라는 다른 인물이고, 토마의 강우능력은 이럴 때 숨은 범인의 위치를 특정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고, 이전같은 성향이 발현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문제의 남자의 악영향은 정말 끔찍하군요. 전염병같이.
시어하트어택
2024-09-15 18:16:22
사실 민준 나름대로는 머리를 써서 니키타를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만, 발자국이 남아 버렸죠. 저 상태에서는 추적당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과연 민준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