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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봐. 앨런, 무슨 일인데?”
메이링의 그 말에 앨런은 곧바로 말한다.
“저기, 변호사님, 아까 VP재단의 키릴로 실장이 찾더라고요.”
“어? 나한테 바로 전화해도 될 텐데?”
“아니요, 굳이 여기 사무실로 건 이유가 따로 있다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도청당할 위험이 있어서 내일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도청? 도청을 할 만한 녀석들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말하다가,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다.
‘혹시... 파라드 커뮤니케이션즈? 아니면 마리우스를 보냈다는 그 나라인가?’
키릴로가 ‘도청’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 외에는 크게 감을 잡지도 못하겠다.
“알겠어, 앨런. 이제 들어갈 거야. 10분 안에 도착할 거야.”
“네, 변호사님.”
전화를 끊고서 메이링은 주차해 놓은 자기 차에 올라탄다. 그러면서도 중얼거린다.
“대체 키릴로 씨는 왜 전화한 거지. 이거 바로 안 말해주니까 불안하잖아.”
그리고 그 시간, 신시아의 집 근처 빌라촌.
“누가 시켰는지까지는, 말할 수 없어!”
모로는 리암과 신시아, 타마라 앞에서 진땀을 빼며 말한다.
“그걸 말했다가는, 나는! 나는...”
리암이 보니 모로의 얼굴색이 푸른색으로 변했다. 카타인들이 공포심을 느끼거나 하면 피의 색깔 때문에 얼굴이 푸른색으로 변한다는 걸 알고 있는 리암은, 손을 흔든다.
“어, 됐어. 네 입으로는 말 안 해도 돼.”
리암이 그렇게 말한 순간, 타마라와 신시아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는지 거의 동시에 리암을 돌아본다. 리암은 모로가 못 보게 손을 흔들며 조금 기다려 보라는 듯한 손짓을 한다. 그걸 알지 못하는 모로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응? 다들 뭐 없지? 그럼 나는, 이만...”
모로가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하지만, 그건 모로의 희망 사항일 뿐, 어떤 강한 힘이 거기서 슬며시 빠져나가려는 모로를 강하게 붙들어 버린다.
“뭐야?”
“좀 가만히 계실까, 카타인 아저씨?”
신시아의 그 말에 모로는 무언가 억하심정이라도 생겼는지, 푸르게 변했던 얼굴이 다시 초록색으로 돌아온다,
“나 아저씨 아니야! 아직 결혼도 안 했다고!”
곧이어 리암이 모로가 입은 옷을 샅샅이 뒤지며 말한다.
“혹시 아토모는 네가 이러는 거 알고 있냐?”
“모... 몰라. 그런 거 몰라! 아토모가 무슨 상관이야!”
“모르는 건 안 말해도 되니까, 잠깐만...”
“아니, 뭘 하려고 하는 건데? 네가 경찰이야? 아니잖아?”
“우리한테 초능력으로 공격을 하고서 왜 그러실까... 어! 뭐가 있다!”
리암이 모로의 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찾은 모양이다. 그건 손바닥 모양의 수첩과 신용카드 크기의 카드 1장인데, 안쪽 면을 보니 모로의 사진이 있고, 반대쪽에는 모로의 신상정보를 적어 놨다. 그리고 겉면을 보니, 진리성회 로고가 박혀 있고, ‘전도자 카드’라는 제목도 적혀 있다. 그걸 보더니 리암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모로,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 여기 신도였어?”
“......”
모로는 또다시 말이 없다. 리암은 또다시 고개를 흔든다.
“하, 십년 감수했네!”
마리나 센터의 대회장 뒤편 복도. 한 사람이 피티피의 이니셜이 크게 그려진 모자를 벗고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20대 정도의 여자인데, 앞머리는 마치 얼굴을 가리려고 일부러 기른 듯 길고, 두 눈은 퀭한 게, 마치 폐인처럼 보인다. 등에 멘 가방은 축 늘어져 있는데, 가방의 지퍼와 주머니 모두 피티피의 굿즈로 가득 차 있다. 지퍼에 살짝 삐져나온 굿즈 중에는 피티피의 탈까지 있다.
“어떤 녀석이야. 마침 성공할 참이었는데 물을 다 뿌려 놓고!”
그 여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피티피의 응원봉까지 집어던지려다가,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쉰다.
“내가 모를 줄 알고? ‘타미보이’들이 얼마나 독한 녀석들인지, 내가 겪은 게 한두 번인 줄 알아? 아무튼 이 녀석들, 걸리기만 해 봐.”
그렇게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지도 못해 이리저리 화만 내고 있던 그 여자에게, 친구로 보이는 또래의 여자 몇 명이 다가온다.
“야, 괜찮아?”
“밀레나, 왜 그래? 어떻게 된 일인데?”
“......”
밀레나라고 불린 그 여자는 친구들로 보이는 그 또래 여자들의 등장에도 씩씩대는 걸 멈추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밀레나라는 여자와 친구들이 막다른 길에서 만난 원수지간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야, 말을 해! 무슨 타미보이가 어쨌다고?”
“내가 바보지, 내가 바보야! 타미보이들 그 꼴 보기 싫은 것들이 득실득실한 곳인데 내가 뭐하러 갔는지 몰라!”
“밀레나, 네가 하는 말을 당최 알 수가 없는데. 그러면 여기는 뭐하러 온 거야? 여기 피티피 팬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 글쎄, 그래서 내가 일부러 피티피 팬들하고 공동구매를 했다고! 그런데 어떤 타미보이 녀석이 내 눈앞에서 타미 응원봉으로 내 시야를 가렸단 말이야! 생각해 봐, 내가 열이 받겠어, 안 받겠어? 말 좀 해 봐!”
“......”
이번에는 반대로 친구들이 말이 없다. 밀레나가 갑자기 자동차의 시동을 최고 속도로 거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말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듣기에도 그게 조금 많이 황당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야, 밀레나! 피티피가 다시 리드하고 있다는데. 얼른 들어가야지!”
“어? 정말?”
밀레나는 피티피가 다시 이기고 있다는 친구들의 말에, 조금 전까지 화를 내던 건 마치 다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화를 잔뜩 품은 얼굴도 사라져 버리고 다시 들뜬 표정을 하고 친구들을 따라간다.
“잠깐! 나도 같이 가!”
[경기는 이제 종료까지 30초 앞입니다. 피티피 선수에게 조금 뒤처지는 것 같더니, 금세 다시 우위를 점하는군요! 타미 선수, 이대로라면 1승을 가져가게 됩니다!]
밀레나가 들어온 순간, 장내 아나운서의 방송이 대회장 안에 울려 퍼진다. 아나운서의 말을 들은 밀레나가 뭐라고 소리를 내지르지만, 그 소리는 관중들의 환호성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밀레나가 악에 받쳐 뭐라고 하든 말든, 그건 관중들에게도 보이지 않고, 또 보인다고 하더라도 관심사조차 아니다. 심지어 피티피의 팬들조차도 그건 마찬가지다.
“야, 야, 그만 좀 진정하고...”
“하여간 이 망할 타미보이들! 내가 어디 가만두나 봐! 반드시, 내가 이걸 잊지 않고...”
하지만 밀레나의 그 소리는 점점 잦아들더니, 이윽고 그런 소리를 내지를 힘도 없는지, 목에서 캑캑거리는 소리를 내며, 원래 자기가 앉았던 자리로 들어간다.
한편 그 시간, 안젤로는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경기 하나가 끝나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잦아들자, 자신을 괴롭히던 그 이상한 소리가 사라졌음을 비로소 확인한 것이다.
“후, 아까 그 이상한 소리 뭐였지...”
안젤로는 그럼에도 여전히 그 이상한 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듯하다. 이상한 소리를 멈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능력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그래서인지 안젤로는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안젤로, 괜찮냐? 아까 그거, 누가 장난질을 하는 것 같던데...”
예담의 그 말에 안젤로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윽고 입을 연다.
“맞아. 누가 내 귀에 일부러 이상한 소음을 계속 들려주는 것 같았어.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지. 이어폰으로 노이즈캔슬 같은 걸 해도 계속 들리는 거 있지.”
“정말? 어떤 녀석이 그래?”
“나도 몰라. 그런데, 신기한 게 정전기가 딱 흐르고 그때 되니까 그 이상한 소리가 멈추더라.”
“어떤 녀석인지 잡히기만 해 봐라.”
안젤로는 이를 간다. 그리고서 옆에 있는 민과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너희들 혹시...”
“왜?”
“귀신이라든지 괴물이라든지 하는 이상한 소리 못 들었지?”
“어, 전혀.”
안젤로의 말에 민은 모르는 척하며 말한다. 다른 친구들이 뭐라고 민에게 말하려고 하지만, 안젤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그냥 한마디 할 뿐이다.
“너희들이 그런 걸 못 들어서 다행이야. 혹시 이상한 소리 들리거나 하면 나한테 바로 알려 줘.”
안젤로가 다시 경기를 보기 위해 앞을 돌아보자, 민의 친구들이 민에게 소곤거리며 말한다.
“야, 우리가 했다는 걸 왜 말 안 했냐? 했으면 저 형이 얼마나 고맙다고 했겠어?”
“그러게. 나 같으면 말했겠다!”
그렇게 친구들이 말해도, 민은 손을 좌우로 저으며 친구들보고 앉으라는 손짓만 한다.
“아니, 왜!”
“그냥 저거 보기나 하자. 봐봐, 지금 누가 이길 것 같냐?”
그렇게 태연히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 민은 아까 그 공격을 한 장본인이 자신에게 공격을 가한 사람을 찾고 있음을 눈치챈 상황이다. 그리고 더 이상 귀찮아지기는 싫고, 또 행사장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싫다. 민은 옆에 앉은 유를 콕 찌른다.
“아니, 왜?”
민이 옆에 있는 가방을 가리키자, 무슨 뜻인지 알아챈 유는 거기서 봉지 하나를 꺼내든다. 그건 바로 마레가 1개씩 포장된 것들이다.
“얘들아, 이거 하나씩 먹자! 이런 경기 할 때 마레 하나씩 먹으면 좋지!”
“오, 언제 싸 왔냐? 말도 없이 가져오면 어떡하냐고!”
어느새 친구들은 마레를 하나씩 받아들고서 먹느라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저절로 관심이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경기의 분위기가 고조되며 민의 친구들도 바깥의 방해꾼에 대해서는 잠시 잊는다.
한편 예담은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아까와는 달리, 시종일관 타미가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경기의 맵 자체가 타미가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정글 지형이기도 하고, 상대방 피티피 역시도 이런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타미가 피티피의 도전에 매우 잘 대응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역시 이래야지 게임을 보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피티피의 팬들은 또 모르겠지만.”
그러던 중, 예담의 폰에 메시지가 하나 도착한 게 보인다. 그걸 열어 본다. 예담은 거기서 익숙한 이름을 보게 된다. 그건 바로 타마라다.
[내일 혹시 시간 되면 레이시에 같이 가 볼래? 리암도 같이 갈 거야]
“응? 타마라 누나잖아? 웬일이지, 나한테 이렇게 메시지도 다 하고?”
물론 예담은 타마라와 잘 아는 사이이고, 또 리암으로부터 타마라가 리암과 같이 ‘초능력 방범대’ 활동을 한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1:1로 메시지를 받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침 내일은 특별히 할 일도 없다. 저녁에 가족끼리 저녁식사도 할 겸 쇼핑몰에 놀러 가기로 하기는 했지만 그건 한참 저녁 시간대의 일이고, 레이시 역시 예담은 한 번도 안 가본 미지의 세계 같은 곳이니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예담이 고민하던 사이, 메시지 또 하나가 와 있다.
“아니, 또 뭘 보낸 거야?”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4-10-30 23:10:04
이 세계라도 도청을 우려해야 하는군요. 처음부터 공포감이...
문제의 모로는 그 진리성회의 회원이네요. 진짜 뒷목잡는 일의 연속이라서 할 말이 없어지고 있어요. 밀레나는 왜 저렇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저렇게 살 생각은 전혀 없네요. 안젤로가 겪은 문제가 해소된 건 다행이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도 없겠죠.
예담은 정말 어떻게 버텨내나 싶네요. 보통 멘탈이 아닌 듯...
시어하트어택
2024-11-02 23:38:27
마리우스를 보낸 다곤 공화국 또는 파라드 커뮤니케이션즈를 세운 알 수 없는 주체와 연관되다 보니 신중해야 되는 건 사실이죠. 조심해서 나쁠 건 없기도 하고요.
밀레나와 같은 심리를 가지고 저런 행태를 보이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죠. 말레나는 초능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더욱 저게 드러나 보이는 거고요.
SiteOwner
2024-10-30 23:53:03
말할 수 없는 사정은 인물과 사정을 가리는 게 아닌가 봅니다.
도청의 위험이 있으니 이동하여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고, 모로가 문제의 진리성회에 가입한 사정 또한 뭔가 있는데 언급된 인물인 아토모와의 관계상 말하면 진짜 위험한 게 있는 듯하고, 여러모로 답답하군요. 게임실황을 보는 자리도 경계를 해야 하지만 그 구체적인 사정은 아직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타마라가 그렇게 다이렉트메시지를 보낸 건 역시 보통 일은 아니라는 의미로 봐야겠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11-02 23:40:27
모로가 솔직히 답을 해 줄지도, 아토모가 어떤 속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알 수는 없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의외의 곳에서 나올 수도 있는 법입니다. 진리성회라는 큰 집단이 있는 이상은 안 파헤치는 게 이상한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