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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곳은, 고풍스럽게 꾸며진 기차의 객실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어 있었고, 그런 그녀를 맞은 편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막 잠에서 깨 헤롱헤롱한 그녀였지만, 그의 얼굴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어... 서...선배? 유진 선배가 왜 여기에... "
"괜찮아? 오랫동안 자고 있던데... "
"으음... 네...... 그나저나 여긴...... "
객실에는 그녀와 남자 외에 다른 사람들도 몇 명인가 더 있었다. 혼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그녀처럼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는 그녀와 달리, 그는 이 곳이 익숙한 모양인지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괜찮아지면 끝 칸으로 와.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
"아, 네... "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남자는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여전히 잠기운이 남은 몸을 억지로 일으킨 그녀는, 객실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는 한번도 본 적 없었던, 이질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의 좌석들이 보인다. 앉아 있는 의자로 손을 뻗어 가만히 쓸어 보니, 의자는 까만 벨벳으로 덮여져 있었다. 아마, 다른 의자도 다 그런 모양이다. 머리가 닿는 부분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고, 손잡이 역시 벨벳으로 감싼 것 같았다.
객실 안에는 사람들이 몇 명인가 보였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사람도, 혼자 있는 사람도 보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어쨰서일까, 객실을 장식하고 있는 꽃은 하얀 국화꽃이었다. 객실의 뒤에도, 앞에도 하얀 국화꽃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녀가 탔던 곳이 맨 뒷 칸이었던 것인지 뒤로는 문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앞 칸으로 갈 수 있는 문이 보였다. 온통 꽃으로 장식된 열차였지만, 문만은 아무런 장식도 해 두지 않았다. 단지, 문고리가 국화꽃 모양이었던 것만 빼면 평범한 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앞으로 오라고 했었지... '
그녀가 몸을 일으켜 앞 칸으로 가자, 하얀 국화꽃으로 꾸며진 객실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떴던 곳과 달리 좌석은 없었고, 아름다운 드레스와 턱시도가 걸려 있었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거라도? "
옷들이 즐비한 곳 앞에는, 이 칸에 들어선 그녀를 맞는 단정한 차림의 청년이 있었다. 포마드로 모양을 잡아 가르마를 탄 듯, 정갈한 머리에 까만 보타이를 멘, 까만 정장 조끼와 까만 정장 바지를 맞춰 입은 남자였다. 구두는 방금 산 것인 양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보고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여... 여긴 어디인가요? "
"이 곳에서는 당신의 예복을 맡아뒀다가, 옷의 주인이 오면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앞 칸에서 오신 것을 보니, 당신도 이 열차에 타신 손님인가 보군요? 설함이 어떻게 되시죠? "
"어... 저는...... 황보 연이라고 합니다. "
"어디 보자... 황보 연...... 아아, 여기 있네요. "
남자는 옷걸이를 한참동안 뒤젹이더니, 이내 옷걸이에 걸린 검정 드레스를 가져왔다. 화려한 장식이라곤 없는, 평범한 드레스였다. 같이 착용할 검은 모자도 있었다. 드레스는 비닐 커버에 싸여 있었고, 비닐 커버 한 켠에는 가죽으로 만든 라벨로 그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모자는 드레스와 함꼐 비닐 커버 안에 있었고, 망사로 된 리본 장식같은 것이 있었다. 영화에서만 봐 왔던 서양의 장례식 복장 같았다.? 그녀가 건네받은 옷을 살펴 볼 동안, 남자는 드레스와 함꼐 신을 구두도 건네주었다. 구두는 방금 만든 것처럼 광이 나고 있었다.
"옷은 저 쪽에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그럼. "
"아... 감사합니다... "
남자에게서 옷을 건네받은 그녀는 탈의실에서 드레스로 갈아입고 구두를 신었다. 오늘 처음 보는 옷임에도, 드레스며 구두며 그녀의 몸에 딱 맞았다. 탈의실을 나온 그녀는 옷걸이와 비닐 커버, 그리고 열차에 탔을 떄 입고 있었던 옷들을 탈의실 옆에 서 있던 여자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 드레스에 구두를 신고, 모자까지 착용한 그녀는 다음 칸으로 갔다.
다음 칸 역시 하얀 국화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그 곳은 아까 들렀던 곳과는 달랐다. 갖가지 화장 도구가 화장대 위에 있었고, 문간에는 곱게 머리를 빗어 올려묶은 여자가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들어선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곤 자리를 안내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수건을 목에 두르고 큰 천을 그녀의 몸에 두른 그녀는, 곧이어 머리를 정리하는지 드라이기가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특별히 원하시는 머리 모양이 있으신가요? "
"발롱펌으로 부탁드려요. "
"알겠습니다. "
부드럽게 머리를 만져주는 손길에 깜빡 잠들었던 그녀가 잠에서 깼을 때, 그녀의 머리는 자연스럽게 말려 있었다. 마치 원래의 머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어느 새 화장도 되어 있었다. 새로 한 머리에 어울리는 화장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만족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마지막 여행을 즐겨주세요. "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는 다음 칸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다음 칸은 식당칸이었다. 벌써 몇몇 사람들이 식사를 먹고 있는지, 당콤하면서도 맛있는 냄새가 감돌았다. 음식 냄새 사이에는 고기 냄새와 꽃 향기도 섞여 있었다. 식당 칸으로 들어서자마자, 음식을 건네 주던 중년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황보 연이라고 하는데... "
"아아, 예약하셨던 분이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
중년의 남자가 손짓으로 누군가를 부르자, 안쪽에서 젊은 남자가 달려왔다. 젊은 남자는 중년 남자의 지시대로 그녀를 식탕 칸의 좌석으로 안내했다. 테이블에는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하얀 테이블보 위에는 포크와 숟가락, 나이프가 한 쪽에 있었다. 왼편에는 물잔과 물이 있었고, 물잔 밑에는 냅킨도 있었다. 그녀를 자리에 안내해 주고, 젊은 남자는 어느새 가 버렸다.
그녀가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자, 곧 전채 요리가 나왔다. 조개 관자와 살구 크림으로 만든 카르파초에, 양송이 버섯을 넣은 크림 스프였다. 남자는 요리가 코스 요리이며, 다음 요리는 곧 준비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곤 맛있게 드시라는 말과 함꼐 가 버렸다.
'그나저나 유진 선배는... '
그녀는 전채 요리를 먹으면서도, 내심 처음 열차에서 만났던 그를 생각했다. 열차의 끝쪽 칸에서 만나자고는 했지만, 그 말을 건넨 후로는 한 번도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빨리 예뻐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리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고 싶어졌다.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메인 요리로 해시브라운을 곁들인 스테이크가 나왔다. 어떻게 그녀의 취향을 알았는지, 고기는 딱 미디엄 웰던으로 익어 있었다. 거기다가 해시브라운도 바삭하면서 감자 샐러드와 같이 부들부들한 느낌을 제대로 살린 맛이었다. 딱 평소에 그녀가 좋아했던 해시 브라운이었다.
식사를 마친 그녀는 디저트로 나온 커스터드 푸딩을 먹고, 냅킨으로 입을 닦은 다름 다음 칸으로 향했다. 그 곳에도 몇 명의 사람들이 벌써 와 있었다. 그 곳에는, 그녀가 처음 열차에서 눈을 떴을 때 만났던 유진도 있었다. 그는 그녀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연, 여기야! "
"아, 선배! "
유진은 곱게 드레스를 차려 입고 머리까지 매만진 그녀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그는 식사는 맛있게 했는지, 여기까지 오는 데 불편함은 없었는지 물었다.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 했던 자상함이었다. 아니, 평소와 매우 달라 보였다.
"자, 그럼... "
그리고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손을 잡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이제 마지막 칸으로 가자. "
"아...... 네? "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유진은 그녀와 함꼐 다음 칸으로 갔다. 다음 칸은, 이전까지와 달리 붉은 국화꽃으로 치장된 어두운 분위기의 칸이었다. 마치 피로 물들인 듯한 국화꽃이 어째서인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마지막 칸에서 그녀가 마주한 것은, 붉은 머리의 여자였다. 마치 깃털로 만든 듯한 옷을 입은 그녀의 등 뒤에는, 낫이 떠 다니고 있었다. 서류 뭉치를 넘겨보던 그녀는 흘깃,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곤 다시 서류 뭉치로 시선을 가져갔다.
"황보 연, 맞지? "
"아, 네... 제가 황보 연인데요...... "
"어서 와, 무간지옥 타르타로스에. "
"무간...지옥? 그게 무슨 말이예요? 서, 선배, 이게 무슨 말이예요? "
그녀는 유진 쪽을 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까만 정장을 입고 단정한 얼굴로 있었던 유진은, 어느 새 피투성이였다. 그의 옷은 피범벅으로 물들어 있었고, 손에 끼고 있었던 하얀 장갑 역시 붉게 물들었다. 아까와 달리, 그는 그녀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머리의 여자는, 그런 그녀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지 시종일관 표정 없는 눈이었다.
"선...배? "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래, 그 동안 꽃단장은 잘 했지? 밥은 맛있었니? 서비스는, 이래뵈도 꽤 최고의 품질이란다... 왜녀하면, 이런 대접은 이제 최소한 몇 만년동안 못 받을 거라서 말이지. "
"......네? 그게 무슨... "
"너, 이 사람 죽였잖아. 네 손으로 직접...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어 가는 건 우리 저승사자의 영역이지만, 가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한 자가 있어서 문제란 말이지... 그리고 한가지 더 알려줄게. 너는 지금 죽은 거야. 장례식장에서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전에 꽃단장을 한다지? "
"!!"
"참으로 가련한 녀석이구나, 질투에 휩싸여서 신의 영역을 넘보다니... "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럴 리가 없어...... "
뒤돌아서 나가려고 해도, 이미 그녀가 들어왔던 문은 사라지고 없었다. 게다가 그녀를 붙잡은 유진의 손은, 그녀를 이제 놓아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연아... 네가 날 이렇게 좋아해줄 줄 몰랐어... 이젠 내가 널 사랑해줄게... "
"싫어어어어어!!! "
"도망갈 수 없을거야... 이제 멀어지면, 내가 널...... "
"얼른 내리는 게 좋을걸. 네가 여기서 내리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내릴 수 없으니까... 이 방, 1인실이거든. "
"들었지? 얼른 가자... 자, 이제 뭘 할까...? "
그녀가 무간지옥으로 떨어질 무렵... 장례식장에서는 연의 가족들이 그녀를 떠나보내고 유골을 안치한 후였다. 물론, 그들은 연이 좋은 곳에 가길 바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무간지옥에 떨어져 버렸다.
그녀의 사인을 가족들은 살해당한 것으로 대충 둘러댔지만,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몰래 유진을 짝사랑하다가, 그에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그를 죽여버렸다. 그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던 것이다.
"인비디아, 무간지옥에 새로운 녀석이 들어왔어. "
"아, 정말? 하아... 이거 참, 귀찮단 말이지... 이번엔 또 어떤 녀석이야? "
"남자를 너무나도 짝사랑한 나머지 죽여버리고 자살한 여자. 저-기 있네. "
무언가가 가리킨 것은, 유진에게 끌여다니듯이 무간지옥으로 들어 선 연이었다. 까만 드레스는 어느새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눈물 떄문에 화장이 번져버렸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안중에 둘 수도 없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끌려다녀야만 했기 떄문이다. 멈추려고만 하면, 유진이 그녀를 칼로 찔러댔다. 여기는 지옥이라 죽을 수도 없이, 몇만년을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 구나... 그녀는 그제서야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4 댓글
마드리갈
2018-03-03 19:44:45
죽음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고 묘사하죠. 그것이 망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예요. 그리고 객실의 내부 분위기가 생생하게 부각되네요. 검은색과 흰색이 명확히 대조를 이루고, 장례식에서 잘 사용되는 흰 국화가 여기저기에 잘 보이는 광경은, 그림 실력만 충분했다면 그려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고인인 황보 연의 진실은 은폐될 수 없지요. 그리고 그 대가를 면할 수도 없을 것이고. 저지른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 대가와 후회는 영원히.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까 뭐라 할수도 없는 것이고...
혹시 제목을 "꽃으로 치장된 끝" 이라고 쓰려고 하신 거죠? 확인을 부탁드려요.
국내산라이츄
2018-03-07 01:20:34
오...오타가 났었네요...ㄷㄷ?
SiteOwner
2018-03-06 23:53:00
요즘에는 잘은 안 보이지만, 1980년대의 끝자락만 하더라도 동네에서 꽃상여가 나가는 광경이 자주 보였습니다. 꽃상여의 앞에는 온갖 추모의 글을 쓴 만장을 앞세우고, 꽃상여에는 상두꾼이 타서 선창을 하면 상여를 멘 사람들과 유족들은 따라 곡을 하고 그랬었지요. 어린 마음에도 그걸 보고 있으면 복잡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이번 회차는 망자의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불귀의 여행이 묘사된 것이 그때의 기억과 합쳐져서 특히 인상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속죄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더라도 타인을 살해한 죄 자체가 없어지지도 않고 또한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 것인지도 잘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느껴지는 게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세대 전과는 장례문화도 많이 바뀌었군요. 하지만 인간은 그다지 바뀐 것 같지 않습니다.
국내산라이츄
2018-03-07 01:21:23
외할머니 장례식 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꽃상여를 봤습니다. 사실 사진을 찍어두긴 했는데 그게 예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이라...... 배터리가 오리 돼서 사진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