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구상에 30분, 쓰는 데 2시간(...) 걸린 작품입니다.
가볍게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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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수님의 비밀을 알게 된 건 며칠 전, 대학 근처 카페에서 같은 과 동기들과 이야기할 때였다.
"얘들아... 그거 알아?"
"뭔데, 뭔데?"
"있잖아... 그 동영상 봤어?"
"무슨 동영상?"
"왜... 그 '텔레브'에 올라왔는데 이틀 만에 조회수 천만 넘게 찍은 거 있잖아."
맨 처음 이야기를 꺼낸 건 헬렌 앤더슨이라는 친구. 동기들 중에서도 수다쟁이로 유명한 친구였다.
"아... 그 초능력자가 자동차를 만지기만 했는데 고쳐진 거?"
"그래, 그래! 그거 봤지?"
텔레브에 올려진 그 동영상이라면... 일주일쯤 전에 누군가가 찍어서 올린 동영상이다. 동영상에 나온,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중년의 남성이 자기 초능력을 써서 망가진 자동차를 순식간에 고쳐내는 그 장면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동영상 조회수는 순식간에 천만이 넘었다. 지금은 한 5천만 정도는 될 거다.
"그런데... 내가 오늘 놀라운 사실을 알아낸 거야! 여기 봐봐!"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 시마즈 유나가 AI폰의 홀로그램 모드를 켜서 화면을 보여주었다.
[충격] 물리학자가 초능력자라니?
- 동영상의 주인공은 미린대 물리학과 빅토르 미하일로프스키 교수로 밝혀져
나는 그 기사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미하일로프스키 교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과학적 회의주의에 충실하신 분이시고, 이제껏 해 온 연구와 강연에서도 그런 모습이 강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그런 분이 초능력자라니? 내게는 마치 '무신론자가 점을 친다'라는 말을 듣는 것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내가 미하일로프스키 교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건 그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바로 다음 날, 수업이 끝나고였다.
"저... 교수님."
"아... 사공현 학생이로군."
"네... 네."
교수님께 말할 그 때, 내 목소리가 왜 그렇게 가늘게 떨렸는지 모르겠다.
"뭐 질문 같은 거라도 있나?"
"아니, 저는... 그런 건 아니고..."
교수님은 내 얼굴을 한 번 훑어보더니, 얼굴에 뭔지 모를 미소를 짓고는 말씀하셨다.
"자네가 뭘 말하려는지 알고 있네. 내 연구실로 따라오게."
잠시 후, 교수님의 연구실에 나와 교수님 단둘이 앉고 나서, 교수님은 조용히 말씀을 꺼내셨다.
"자네, 그 동영상은 봤겠지?"
"네... 봤지요."
"그 동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
"솔직히 말하면... 혼란스러웠어요, 교수님은 그 어떤 연구자들보다도 '과학적인 연구방법론'을 철저하게 지켜 오신 분이고, 또 저희한테도 그런 연구자의 마음가짐을 항상 강조해 오시던 분이신데... 교수님이 그런 초능력자였다니, 한편으로는 제 마음 속에서 뭔가 배신감 같은 게 들기도 했고...내가 알던 교수님이 이런 분이셨나 하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음... 자네는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아무래도... 초능력이라고 하면... 비과학적이라는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잖아요. 그래서..."
"내 말을 잘 들어 주게."
"네... 네?"
그 때, 교수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러웠지만, 평소에 교수님의 목소리로부터 느끼게 되는 그 부드러운 느낌은 결코 들지 않았다. 그 부드러움은 강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초능력자라는 게 뭐 어쨌단 말인가? 내가 초능력자라는 것과, 내가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충실한 학자라는 것은 전혀 관계가 없네. 이렇게 비유하면 되지. 조각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축구나 농구 같은 걸 잘 한다고 해서, 그가 조각가의 자격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
"......"
"마찬가지일세. 나는 대학에 다니기 전부터 초능력이 있었지만, 내가 물리학도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네. 그리고 그걸 의심할 필요도 없고, 신경쓸 필요도 없지 않은가. 어떤가, 이제 의문이 좀 풀린 것 같나?"
"네... 확실히 교수님의 말을 직접 들으니까, 머릿속에 있던 먹구름이 싹 걷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능력이, 대학 다니기 전부터 있었다고요?"
"맞아... 중학교 3학년 때쯤, 집안에 에어컨이 고장이 났지. 그런데 내가 손을 대고 에어컨이 고쳐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에어컨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거야. 집안에서는 그걸 보고 기계 수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나는 물리 법칙을 탐구하는 게 더 좋더군.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듣고 보니 대단하네요. 다들 염동력이 대단하다, 시간을 조작하는 게 대단하다, 이러는데, 저는 솔직히 그런 것들보다도, 교수님이 더 놀라운 것 같아요."
"별로 놀라울 것도 없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걸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다음 날. 집에 와서 TV를 보니 교수님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TV 속 교수님은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표정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초능력자 교수'라는 수식어를 붙여 말할 텐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그런 수식어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결국 마음가짐인 거죠. 저는 저 스스로를 여전히 물리학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0년 후에도, 아니 100년 후에도, 제 이름은 '물리학자'로서 기억될 겁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 인터뷰를 보고 나니, 괜히 교수님께 의심을 품었던 내가 다 부끄러워졌고... 또 내가 교수님의 제자라는 게 자랑스러워졌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던 적도 없고, 또 그렇게 누군가에 대해서 진심으로 동감했던 적도 없었다. 나는 언젠가, 자신있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미하일로프스키 교수님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자랑스럽다고 말이다.
?- End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3 댓글
마드리갈
2019-03-19 13:05:41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이 가진 속성 중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죠.
그리고 그것을 외부인이 볼 때 혼란스러워할 것 또한 충분히 예측되네요. 그 혼란의 크기가 본인에게는 정말 크겠지만, 물리학자이자 또한 초능력자인 미하일로프스키 교수는 그 문제를 아주 훌륭하게 극복했고, 그것을 "나는 물리학자이다" 라는 소신으로서 관철하고 있어서 존경스럽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런 교육자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일생일대의 큰 행운이겠다는 생각 또한 들고 있어요.
가볍게 읽히면서도 깊이있게 생각해 볼만 사안을 담백하게 잘 담아내셨어요. 추운 봄이지만 따스함이 느껴지네요.
SiteOwner
2019-03-20 22:11:13
정말 30분만에 구상한 게 맞습니까...
상당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를 명쾌하게, 그리고 읽고서 느끼는 게 많을만큼 잘 다루어 주셨습니다.
지켜야 할 소신, 그리고 다른 속성을 가진 사람에 대한 태도는 현실세계에서도 중요하지만, 우주 스케일로 커지고 구성원 또한 다양한 미래세계에서는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마키
2019-03-20 23:51:58
깔끔하면서도 담백하네요.
저도 이렇게 깔끔담백한 글을 써보고는 싶은데 마음가는데로 잘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