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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POLITAN] #2 - Love Thy Neighbor (3) (211222 수정)

Lester, 2019-05-26 21:40:58

조회 수
225

Love Thy Neighbor - 네 이웃을 사랑하라



레스터가 도자기가 든 상자를 들고 모퉁이를 돌자 중국식 음식점인 남해찬청이 나왔다. 해가 진작에 지기도 했고 밥 먹을 때도 지나서인지 남해찬청도 일찌감치 문을 닫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레스터가 상자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가게 앞의 장식물들을 정리하던 동양인 아줌마가 말했다.

"장사 끝났어요."

"배달입니다."

아줌마는 청소하느라 고개를 숙여서인지 살짝 등이 굽어서 왜소해 보였지만, 레스터가 든 상자를 보자 곧장 허리를 폈다.

"어머, 그래요! 들어와요, 들어와!"

역시 자세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태도 탓인지 당당해진 아줌마가 레스터를 가게 안으로 안내했다. 레스터는 아줌마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들어가며 가게 안을 살폈다. 1층과 2층이 계단으로 연결된 복층 구조, 벽을 제외하고 커튼과 기둥부터 등잔과 융단에 이르기까지 넘쳐나는 빨간색, 먹으로 어딘지 모를 도원경을 그리거나 사전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한자들을 흘려쓴 두루마리... 크지는 않았지만 옛날 홍콩 영화 속으로 들어간 느낌을 주기엔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현실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한쪽 벽에 영어 메뉴판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보나마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 아니 '현지인'들을 위해서이리라. 여기 미국에 사는 이상 모두가 현지인 아니냐는 사소한 의문이 잠깐 들긴 했지만, 레스터는 복잡한 얘기는 접어두기로 했다. 아줌마가 탁자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여기에 두고 가면 되겠네. 수고했어요!"

"포장 뜯고 놔 드릴까요? 생각보다 별로 안 무거운데."

"아뇨, 무슨 말씀을! 들고 온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얼마죠?"

아줌마가 요란하게 손사래를 치고는 돈을 주려 하자, 레스터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어? 돈은 이미 내셨다고 들었는데요."

"아니아니, 날라다 준 것에 대한 답례에요. 원래는 우리가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 남편은 바쁘고 나는 허리가 안 좋아서 말이야."

"됐어요. 통 영감님한테 거기까지는 못 들었-"

"주면 주는 대로 받아, 빼지 말고!"

레스터와 아줌마는 새된 목소리가 들려오는 위층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려 보이는 얼굴과 미묘하게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관능적인 치파오를 입은 여자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환영회 때부터 술을 권해서 안 좋은 인상을 남긴 키아라 토Kiarra To였다. 레스터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사이 아줌마는 아줌마대로 화를 냈다.

"손님한테 말버릇이 뭐니, 키아라!"

"쟤 손님 아니야, 내 친구거든!"

레스터가 반박할 틈도 없이 모녀간에 말싸움이 격해졌다.

"친구라면 소개를 해야지, 다짜고짜 그게 뭐야!"

"아, 몰라! 엄마 배려해서 공짜로 항아리 진열해 준다는데! 그 정도의 친절에 돈을 주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자... 잠깐..."

"대가 없이 주고받기만 하면 나중에 중요할 때 흐지부지된다고, 너희 아빠가 몇 번 말했어?"

"거기서 아빠가 왜 나와!"

"저기요!"

제3자 앞에서 느닷없이 가정사 폭로전이 벌어질 듯하자 레스터도 부득이하게 언성을 높였다. 재밌으니 더 해보라는 식으로 구경하다가 놀림거리를 챙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끼리 치부를 자랑하듯이 드러내는 건 좋은 일이 아닌데다, 그걸 보고만 있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키아라와 키아라의 어머니 토 부인Mrs. To이 넌 누구 편이냐고 물어볼까봐 레스터가 얼른 정론으로 입을 막았다.

"아직 가게 문도 안 닫은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언성을 높이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이 요강-아니, 도자기부터 얼른 놔두기로 하죠. 어디다 두면 되겠습니까?"

"그래요~? 그럼 그 도자기, 여기다 놔 주실래요?"

레스터가 완곡하게 '빠지고 싶다'고 말하자, 토 부인도 알아듣고 키아라를 놀리는 듯한 말투로 레스터에게 살갑게 대했다. 키아라는 은근히 무시당하자 샐쭉해져서 홱 돌아섰지만,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고 말았다.

"친구라면서? 이렇게 돌려보내려고?"


토 부인이 자기 딸은 물론 처음 보는 레스터까지 노련하게 휘어잡는 바람에, 둘은 거절하지 못하고 회랑의 빈 탁자에 마주 앉았다. 게다가 얼른 일어나지 말라고 갓 마련한 자오쯔?子를 내오는 바람에 영락없이 저녁을 얻어먹는 상황이 됐다. 레스터야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에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으니 상관 없었지만, 복장만 봐도 몸매 관리를 하는 게 느껴지는 키아라는 죽을 상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키아라도 겨우 젓가락을 들었다. 토 부인도 키아라의 친구라는 사람 앞에서 키아라를 꾸짖은 게 마음에 걸렸던지, '젊은 애들 이야기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레스터가 자오쯔를 간장에 적시다시피 담갔다가 삼키면서 슬쩍 보니, 키아라도 엄마에게 죄송한지 묵묵히 먹기만 했다. 어찌저찌 저녁을 마치고 젊은이 취향(?)에 맞게 차 대신 탄산음료로 입가심을 하는데 키아라가 입을 열었다.

"얘기해 봤어?"

"뭘?"

"내가 전에 얘기했던 거."

레스터는 순식간에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아까 엄마랑 말싸움하는 것도 그렇고, 키아라 성격상 잊어버렸다고 하면 군소리를 왕창 해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키아라가 부탁할 거라곤 하나밖에 없었던지라 바로 기억이 났다.

"그거잖아.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그래! 내가 존한테 물어봤는데 귓등으로 듣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부탁한 거야. 네 얘기면 들을 것 같아서. 사이 좋잖아, 너희들? 같이 살면서, 침대도 같이 쓰고-"

"아니, 침대는 따로 쓰지."

키아라가 농담이라도 위험천만한 표현을 거리낌없이 하자 레스터가 식겁했지만 키아라는 큭큭 웃었다.

"난 그래서 네가 좋더라. 괜한 소리를 안 해서. 우리 부모님 봐봐, 맨날 하는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렇게 생각이 꽉 막혀 있으니까..."

"말이 좀 심하네."

"맞는 말인데 뭐. 평생 음식점만 하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잖아. 나까지 식당 종업원만 하다가 늙어 죽을 순 없어. 기왕 돈을 벌 거면 재밌게 벌어야지."

"그건 그렇지."

"그렇잖아. 그래서 존이랑 너한테 정보원 얘기를 했던 거야. 나도 이것저것 주워들을 수 있어. 특히 우리 가게에 껄렁해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거든."

키아라가 자랑하듯 떠들었지만 레스터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나도 조심할 줄은 알아. 대놓고 엿들을 순 없으니까, 다른 테이블에 음식 가져다 주느라 지나칠 때마다 듣는 거지. 계속 듣는 게 아니라서 비효율적이긴 해도."

"그 전에 목숨이 위험할 것 같은데."

"그래? 걔네들이랑 눈 마주쳐도, 돌아서서 엉덩이 좀 흔들어주면 다 헬렐레하던데 뭐."

"정말 그렇다면 말이지."

"뭐야? 그럼 내가 못생겼단 얘기야?"

"아니, 그게 아니라..."

키아라의 태도를 보니 레스터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한숨을 쉬었다. 존이 괜히 그녀와 정식으로 '업무 제휴'를 맺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정보원이라는 건 어디서든 듣고 어디서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역할인 만큼 눈에 띄어선 안 되는 역할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혼잡한 사거리의 보도블럭 정도가 좋으리라. 그러니 키아라가 정보원으로서 적합한지는 존까지 갈 것도 없이 레스터의 기준에서도 무조건 탈락이었다. 그렇기에 존은 키아라가 공짜로 넘겨주는 정보조차도 받지 않고 철저히 무시했다. 무슨 반응을 보이건 그 쪽으로 난리를 칠 게 뻔했으니까. 그렇다고 레스터까지 입을 다물자니 키아라가 조바심 때문에 무슨 짓을 저지를까봐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레스터는 키아라가 정보원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그리고 나도 궁금한 게 있어. 왜 정보원이 되려고 하는 거야?"

"어..."

말문이 막힌 것만 봐도 꽉 막힌 집안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라는 게 드러났지만, 레스터는 기다려 주기로 했다. 맞는 말이라도 일방적으로 떠들면 반감만 살 뿐이니까. 방금 전에 키아라와 토 부인이 싸우는 걸 통해 입증이 되기도 했다. 키아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대답하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이 답답한 집구석을 벗어나고 싶어. 그거 알아? 난 원래 여기가 아니라 홍콩에서 태어났어. 그래서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사하겠다고 했을 땐 정말 신났지. 홍콩도 나쁘진 않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미국은 그야말로 꿈과 희망의 나라였으니까. 그런데 이게 뭐야, 여기까지 왔는데도 별 차이 없고!"

키아라는 얘기하다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나만의 인생을 살 거야! 언젠가는!"

"그렇다고 정보원 노릇을 하는 건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

"하지만-"

레스터는 자랑스레 할 얘기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내가 존이랑 같이 살아서 잘 알아. 얘기했던가? 잡지사에 마피아가 총을 쏴대며 쳐들어왔는데 존 덕분에 살았다고."

"...처음 들었어."

레스터는 환영회에서 술만 권했으니까 알 리가 없지, 라고 쏴주려다가 키아라가 정말로 놀란 모습을 보고 참았다.

"너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 게다가 가게에 껄렁한 놈들이 온다며? 그 놈들이 흔한 양아치인지, 정말로 무슨 후이會나 통堂('집단'을 나타내는 한자 및 중국어로, 삼합회 조직 이름에 붙기도 한다. '통'의 경우 본래 이민자들을 위한 집단에서 유래했으나 삼합회 용어로 변질되기도 했다)에 속한 녀석들인지 어떻게 알겠어?"

"...그건 그렇지."

"아니, 혹시 모르지. 엉덩이도 자주 흔들었다고 하니까, 음험한 손길이 기다릴지도-"

"알았어,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입 다물어!"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지는 것 같아서 레스터가 일부러 음담패설로 마무리하자 키아라가 물수건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질색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가벼워졌지만 레스터가 확인을 위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정보원 같은 건 안 하는 게 나아."

"그렇다고 이 갑갑한 생활은 하기 싫어! 미쳐서 죽을지도 몰라!"

"뭐,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겠지."

"널 두들겨 팬다든가."

"미친 소리."

키아라도 다소 기분이 풀렸는지 정신나간 농담을 하자 레스터도 단칼에 받아쳤다. 키아라가 잠시 묵묵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정보원까진 아니어도, 다른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위험한 일은 존 같은 녀석들이 전문이잖아. 아니면 너라든가."

"난 좀 빼줘. 난 살고 싶다고."

"네네, 그러셔요. 아무튼 요점은, 내가 위험해지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키아라는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듯이 다가앉았다.

"내가 그 불량한 사람들 말고,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너희들한테 주면 되지 않아?"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데?"

"차이가 있지. 너희들도 일거리 찾으러 돌아다니기는 귀찮을 거 아냐. 그러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사건 같은 게 있으면, 듣고 정리한 뒤에 너희들한테 알려주면 되잖아. 왜 그, 알잖아? 추리만화 같은 거에 나오는 애들처럼."

"아하."

키아라가 말한 건 연락책 혹은 중개자contact라 불리는 역할이었다. 키아라의 설명대로 그들의 역할은 일거리를 물어오는 게 전부였다. 얼핏 보면 엄청 편해 보이고 실제로도 편하긴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돈이 될 만한' 일거리를 알아보는 판별력이 중요했다. 어차피 존 같은 '현장직'들에게 퇴짜를 맞을 정도의 일거리라면 본인의 선에서 미리 퇴짜를 놓는 게 서로 번거롭지 않기 때문이다. 중개자가 그렇게 현장직들에게 적합한 일거리를 '편리하게' 정리해 준다는데, 현장직이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실제 프리랜서와 에이전시들의 방식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키아라가 여기에 적합할지는 별도의 문제였다. 본인의 적성 문제라기보단 토 부부와 통 영감님 등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스터는 만약을 위해 재우쳐 물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또 껄렁한 애들이랑 어울리는 거 아냐?"

"내가 왜! 아까도 말했잖아, 내가 위험해지는 건 싫다고! 그냥 주변 사람들 얘기 듣고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친구 많은가 봐?"

"너 같은 답답이보다는 많지. 학교라든가 동네라든가. 참, 내 친구가 그러는데..."

키아라가 말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며 몇몇 사진을 보여줬다.

"저녁이 되면 자기가 사는 동네에 껄렁한 애들이 하나둘씩 돌아다닌다고 하더라고. 특히 집 앞이라서 더욱 수상하고 불안하대. 가끔 편의점에 물건 사러 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성질 같아선 내가 푸주칼 들고 썰어버리고 싶은데-"

"어이구야."

"농담 아니니까 끝까지 들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구니까 더더욱 열이 나는 거야. 하지만 네 말대로 어떤 놈들인지 모르니, 그 친구한테 명확하게 도움을 줄 수가 없어서 애가 타잖아. 그래서... 네가 처리해 주면 좋을 것 같아."

"처리? 죽이라고? 내가?"

레스터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모르지, 그건! 어쨌거나 이건 의뢰야. 의-뢰. 알겠어? 의뢰비는 우리 엄마가 만드신 이걸로 치고."

"의뢰비 문제가 아니잖아."

"어떻게 해, 그럼! 솔직히 이건 의뢰가 아니라 부탁이야. 난 어떻게든 해결해서 도움을 주고 싶어. 친구 간에 그 정도도 못 해?"

"나더러 뭘 어쩌라고.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

"존 말이야. 네 친구 존한테 얘기해 달라는 거야."

친구라... 레스터는 문득 궁금해졌다. 존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 걸까? 존이 레스터랑 같이 사는 것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만큼 레스터를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죽음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등을 거리낌없이 내보인다는 말이니까. 반대로 엄청나게 허섭스럽게 보여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레스터는 존에게 도움을 청하더라도 흔쾌히 들어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도 있는 법.

"일단 얘기는 해 볼게."

레스터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가게를 나서며 핸드폰을 꺼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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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3일 재수정 - 후반부 내용 살짝 교체)


이런저런 일로 소설 개편을 미루다가 드디어 2-3을 개편했습니다. 대략적인 틀은 이미 잡아둔 상태라서, 일단 쓰잘데없는 택시 장면을 통으로 날리고 남해찬청의 내부 묘사와 인자한 아줌마를 넣어서 개편된 앞내용의 훈훈한 분위기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다만 준비한 개편안 중에 '키아라의 부모님과 레스터가 첫 대면에서 충돌하는 장면'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난감해지더군요. 정말로 충돌한다기보다는 키아라의 캐릭터성을 드러내기 위한 상황 설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개편된 앞 내용이 훈훈한데 여기서 갑자기 날을 세워야 하나, 싶어서 고민이 많이 됐죠.


그래서 참고자료(라고 말합니다만, 실제론 그냥 만화입니다)를 보며 다른 작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했는데,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인정이 넘치는 드라마의 표본 중 하나라 그런지, '서로 화내긴 해도 실제로는 속으로 서로를 생각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제 소설에서도 면전에서는 가치관이 충돌하여 언성이 높아졌다가 어머니의 요리로 화해하는 걸로 표현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미 써놓은 뒷내용에 맞추느라 좀 더 부각시킬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요. (그런 만큼 키아라 모녀, 혹은 부녀간의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의 에피소드를 할애해서 다룰 생각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2-4는 2-3을 포함해 이 에피소드의 앞내용과 굉장히 동떨어지는 이야기라 전반적인 구조를 남길지 아니면 아예 새로 쓸지 걱정입니다. 일단 이미 써둔 2-4의 '불량배 제압'에 맞춰야겠다 싶어 이번 내용도 그렇게 마무리짓긴 했는데, 어떻게 변경하느냐에 따라 이 쪽 내용도 또 바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개편을 통해 시간대가 바뀌는 바람에 존과 만난 지 얼마 안 된 걸로 변경됐는데, 이걸 또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관건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동네의 이웃들이 서로 돕는 장면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서 동네 청년들(이자 존의 추종자들)이 도와주러 오는 기존 구도를 유지할 생각입니다. 키아라에 대한 존의 태도를 좀 더 누그러뜨리고, 이미 등장한 스가타&소노카와 콤비도 존보다는 리틀 아시아에 대한 애착이 큰 걸로 바꿔 봐야겠네요.


아마 2-4가 개편되면 3-1을 살짝 다듬고 새로운 에피소드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2-4는 구도 자체는 그대로인 만큼 변경하기 쉬우니 해를 넘기기 전에 써 봐야겠습니다.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10 댓글

마드리갈

2019-05-26 23:31:00

이렇게 이야기의 무대는 남해찬청으로 옮겨졌고, 레스터 리는 키아라 토와 만나게 된 거네요.

뭐랄까, 얼음판 위에 발을 디뎠는데, 미미하게 나는 소리가 얼음판이 갈라지는 소리인지, 얼음판 위의 신발부터 얼어붙어가는 소리인지 모를 상황이 일상화된 것 같기도 하네요. 주변환경이 저렇다면 저라면 다른 안전한 곳으로 떠나겠지만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한다는 일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 같은데, 그건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Lester

2019-05-27 14:52:37

'얼음판 위에 발을 디뎠는데~'라는 비유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어쨌든 아무래도 기획 초안의 잔재가 남아 있다보니 사건의 이면이 굉장히 무섭게(?) 표현되어 있습니다만, 현재로서 방향은 그냥 적당히 유쾌하게 지지고 볶고 하는 거라서 그렇게까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키아라의 성격이나 입장상 분명히 무슨 트러블에 말려들 것은 명약관화합니다만, 그래야 주인공 콤비가 활약할 부분이 많아지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죠. 뭣보다 존은 물론이고 레스터도 '어쩌다 보니 이 바닥'에 뛰어든지라, 상황을 타개하려면 계속 그 길을 가는 수밖에 없고.

마드리갈

2019-05-27 15:09:40

예의 비유는 현재의 상태가 언제든지 깨질 수 있고, 그것에 대비할 여유조차 없는데다 설령 있다고 한들 방법을 찾기 막막하기 짝없어서 그날의 운에 맡겨야 하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태생적으로 불안하고 상황이 변환다면 급작스럽게 전개될 것이 확실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어요.

Lester

2019-05-27 17:53:31

확실히 키아라의 입장은 그렇긴 하죠. 문자 그대로 어린애가 불장난을 하는 상황이니. 그래서 위기에 빠지는 것은 확실한지라 일단 깡패가 어슬렁거린다는 불안요소를 깔아뒀는데, 나중에 크게 한 번 데이게 할 생각입니다. 문제는 그 때 해당 캐릭터를 완전히 죽여버릴지 말지 고민이라는 거죠. 템플릿의 예시로 만든 캐릭터라 제법 완성된 구석이 있어서 아쉽긴 한데, 처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SiteOwner

2019-06-17 19:33:16

버디무비에서 잘 보이는 투닥대는 악우 관계같은 것들이 생생히 보여서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저렇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내는 사람이 없는 터라 더욱 이채롭게 보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냥 저런 생활 속의 소소한 재미의 기저에는 위험한 요소가 상당부분 잔존해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지금의 생활이 살짝 무미건조하긴 해도 딱히 위험요소가 없으니 더 나은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에서 접한 대사가 기억납니다.

"소속이 없으면 양쪽이 쏘는 총을 맞는다."

Lester

2019-06-19 09:15:11

아무래도 창작물이니 실질적인 안전은 적당히 넘어가는 경향이 있죠. 당연히 현실에선 즐거움보다 안전이 최우선이고요. 롤러코스터나 번지점프처럼 안전장비가 확실하지 않고서야...


그런 대사가 있었군요. 가만히 있는 것도 죄가 되는 그런 극한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일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세계관이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니니까요;;;

마드리갈

2021-12-25 22:23:32

개편된 이 회차는 "여기, 역시 이런 식당은 도시의 골목 어딘가에는 꼭 있어야겠지!!" 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사람 사는 냄새가 많이 나네요. 한편으로 키아라 토가 얼마나 돋보이는 캐릭터인지, 그리고 정보원으로서는 그렇게 두드러져 보이는 캐릭터가 양날의 칼이라는 점이 잘 나와서 영상물로 만들어진다면 굉장히 강렬하게 인상이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키아라 토가 철부지같긴 해도 의외로 마냥 철부지같지 않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도 많다는 게 잘 느껴져요. 게다가 임기응변 능력도 괜찮은 편이고. 이런 사람이라면 태생적인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이런 분야에 발을 들일만하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이렇게 개편된 게 확실히 자연스럽게 잘 읽혀요.

Lester

2021-12-26 00:47:27

남해찬청의 내부는 최근에 플레이한,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잠입수사관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 게임 "슬리핑 독스"에 나오는 골든 코이(황금 잉어) 식당과 카부키쵸를 패러디한 야쿠자물인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요코하마에 있다는 설정인 중국집 취련루를 바탕으로 구상했습니다. 2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고 화려하다는 점은 후자를 기반으로 삼되, 전자를 통해서 최대한 서민적인 느낌을 살리려고 했네요. 골목이라고 말씀하신 걸 보니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유명한 식당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게 잘 구상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키아라는 돋보인다...기보다는 앞뒤를 잘 가리지 못한다고 봐야겠죠. 정확히는 개편 이전에 정보원이라는 위험부담을 자초하면서 막상 신변의 위협을 두려워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생각해보니까 위험했던 초기 목표를 자기에게 맞게 하향조정하는 등 나름대로 생각할 줄 아는 모습'으로 고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의도한 대로 정확히 봐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SiteOwner

2022-01-09 15:41:15

남해찬청의 묘사를 읽다 보니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이소룡 주연의 1972년작 영화 맹룡과강(猛龍過江, The Way of the Dragon)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수상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에서도 맹룡과강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인 마피아 조직원들이 식당에 나타나서 행패를 부리려고 폼잡는 게 연상됩니다. 구체적인 실상은 좀 다르겠지만, 그래도 상상이 잘 되어서 몰입이 되는군요.

예전에 서울에 있을 때 종종 갔던 코리아나호텔 대상해같은 고급 중식당도 아니고 청와대 근처의 가봉루같은 식당의 분위기와도 다르겠지만, 남해찬청은 꽤 역사가 있으면서 지역민들이 인정하는 그런 식당같은 분위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실재한다면 거기서 여유있게 맛있는 요리를 즐겨 보고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광화문 인근에 신문각이라는 중식당이 있어서 그 쪽에 일이 있으면 거기도 잘 찾고 그랬는데 그 신문각에 남해찬청의 묘사를 겹쳐 보기도 합니다. 이제는 없어진 듯 한데...


레스터와 키아라의 재회를 보니 악우관계가 이성간에 성립하면 이런 형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꽤나 힘들겠습니다. 제 경우는 특정분야에서의 애호가든지 아니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경우라면 딱히 서로를 이성으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OK입니다만 저렇게 투닥대는 것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터라...그래도 둘 다 서로에 대해서 안 멀어진다는 게 기적같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접점이 없지는 않을 게 보이는군요.


키아라의 돋보이는 모습이 레스터의 걱정대로 정보원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역으로 많은 남성들이 미모의 젊은 여성에게 경계심을 쉽게 푸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게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키아라 토는 현상을 타파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자신의 강력한 무기가 뭔지를 잘 아니까 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진 것 같기도 합니다.

Lester

2022-01-11 04:23:36

1. 사실 하급 조폭들이 동네 가게에 와서 보호세니 뭐니 하고 깽판을 치는 건 영화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많았던 일이죠. 아마 치안이 안 좋은 동네에서는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이런 '일상 속의 범죄'들 때문에 무서운 동네처럼 묘사될 수 있겠습니다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인정 넘치는 액션활극'이기 때문에 권선징악적 결론이 나리란 점을 염두에 두시면 읽을 떄 한결 편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위험하고 무서워 보인다'는 평이 종종 있어서 보충설명을 붙여봤습니다.)


2. 1층짜리 동네 중국집으로 퉁치고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잠재적 히로인(?)의 거점이라면 좀 공을 들여야겠다 싶어서 풍부하게 바꿔봤습니다. 설령 나중에 남해찬청에 찾아오는 일이 드물다 하더라도, 시각적 매체를 보듯이 한 공간을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요하다 싶은 장소들은 이렇게 세부묘사를 더해볼 생각입니다.


3. 첫날에 안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곧장 맺어지는 게 다소 어색하긴 하죠. 그래서 개편안에서도 키아라를 의도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통 영감님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갔다가 키아라네 어머니에 의해 붙잡히는 걸로 바꿨습니다. 그러니까 살짝 미묘한 사이의 동네 친구라고 보시면 될 듯 하네요. 말씀하신 대로 접점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겁니다.


4. 개편 이전에는 약간 심약하고 의지하는 구석이 많은 캐릭터였는데 개편 이후로 당차게 보이게 됐다니 다소 놀랍기도 하네요. 계획대로라면 계획대로라고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이후에 키아라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거의 확정이 되어 있지만, 구상대로 등장시키고 퇴장시킬지 계속 남겨둘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좀 더 남겨두고 다른 여캐릭터를 등장시켜서 로맨스를 펼쳐볼까 하는 구석도 있는데, 소설 내용이 산으로 갈까봐 걱정되기도 하네요. 뭐 여캐릭터 별로 각각 추가 에피소드를 하나둘씩 달아주면 될 것 같기도 한데, 다른 여캐릭터는 구상조차 하지 않았으니 먼 미래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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