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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월요일의 아침. 시계는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세훈은 눈을 비비며 누운 채로 시계를 본다.
“아... 뭐야.”
세훈은 알람을 끄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그로부터 또 10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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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세훈은 또다시 침대에 누운 채로 손을 시계로 뻗어 알람을 끄려고 한다. 그 때...
“일어나세요, 세훈 님. 7시 30분이에요. 학교 가야죠.”
세훈의 인공지능 ‘*나라’의 목소리다.
“아... 알았어, 나라. 으으음...”
“세훈아! 안 일어나고 뭐해!”
곧이어 들리는 다른 목소리. 이건 세훈의 어머니 이진의 목소리다.
“아... 엄마. 일어날게요.”
세훈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계는 7시 31분을 가리키고 있다. 세훈은 그 길로 방을 나와 세수를 간단히 한다. 화장실을 나와 식탁에 앉는다. 테이블에는 토스트가 차려져 있다.
“너 오늘 고등학교 가는 첫날인데 너무 늦는 거 아냐?”
“아... 이 정도쯤이야... 빨리 먹고 가면 되죠!”
“빨리 먹어.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한다.”
“참, 아빠는요?”
“아빠? 오늘 좀 일찍 나갔어.”
“......”
세훈은 토스트를 베어물어 먹으며 TV를 본다. 아침 뉴스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AP 999년 3월 3일, 오늘의 뉴스입니다. 세라토시의 부동산 가격이 1년 연속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국토건설성이 종합 부동산대책을 늦어도 이번 달 10일까지 발표하기로 하였습니다. 아테나 행성이 행성 발견 350주년 기념제를 이번 달 8일에 12개주 공동으로 개최합니다. 성간교통성은 최근 자주 출현이 보고되고 있는 미확인 천체와 관련해, 우주선 운행 회사들에 특정 항성계에서의 주의를 당부하였습니다. 스틸레지드에 있는 제1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뭘 그렇게 넋놓고 있는 거야?”
이진이 또다시 목소리를 높인다.
“빨리 안 가?”
“아, 알았다니까요.”
세훈은 먹는 속도를 높인다. 깊게 맛을 못 보는 게 불만이지만 어쩌랴. 어느덧 식사를 다 한 세훈은 양치질하고 세수를 한 다음 방에 다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시계를 보니 7시 48분. 자신도 모르게 앞에 있는 교복을 한 번 만지작거린다. 대체로 자줏빛 바탕에, 상의에는 금색 단추가 달려 있다. 다른 학교들의 교복들에 비하면 화려하거나 특이하거나 세련되거나 하지는 않고 수수하지만, 그래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다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보니, 앞에 고등학생이 한 명 서 있다. 세훈은 다시 미소를 짓는다. 이제... 진짜 고등학생이구나!
곧이어 세훈은 가방을 챙긴다. 어차피 첫날이라 아무것도 가져갈 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하나 빠진 것 있나 다시 한번 살펴본다. 확인이 끝나자 세훈은 가방을 옆에 끼고 방을 나선다. 이진이 또 한 마디 한다.
“뭐 빠진 거 있어? 또 다시 돌아와서 챙겨가지 말고.”
“없어요. 다 보고 나왔는데.”
“그래도 한 번 다시 봐. 너 항상 보면 빼먹는 것 많잖아.”
“에이! 없다니까요.”
이진은 그래도 영 못미더운 듯한 얼굴로 말한다.
“그럼 알았어. 이따가 전화해.”
“왜... 왜요?”
“그 때 되면 알아. 알았지?”
“다녀오겠습니다!”
세훈은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본다. 창 밖에는 모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보인다. 세훈은 또다시 자기도 모르게 교복을 만지작거린다. 괜히 기분이 좋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42층에서 지하 2층, 마천루가 가득한 풍경에서 지하상가로 바뀌는 건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지하 2층에 도착하자, 가지각색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하철역 쪽으로 가고 있다. 세훈과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여럿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세훈이 아는 얼굴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이 아파트단지에 내가 아는 얼굴이 하나쯤은 있을 텐데... 다들 먼저 가 버렸을지 모른다. 아니면 아직 안 나왔든가. 시계를 보니 지금 시간은 아침 7시 50분이다. 게다가 지금 세훈이 있는 곳은 지하철역 입구 바로 앞이다. 세훈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히 있을 텐데...
세훈은 잠시 서성이다가 지하철역 출입구 안으로 들어선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역시 세훈이 찾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개찰구 안으로 들어간다. 한 계단만 내려가면 승강장이다. 가지각색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정장을 입은 회사원들, 그 외에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세훈이 아는 얼굴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상하다... 분명히 있을 텐데... 세훈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다. 그래도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분명히 있을 텐데... 어느덧 승강장에 발을 디딘다. 주위를 둘러본다. 역시,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잠시 후 미린, 미린 방면으로 가는 급행열차가 도착합니다. 열차에 타고 내리실 때 혼잡하오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잠시 후 열차가 도착한다. 내리는 사람들이 내린 다음, 세훈은 앞에 선 사람들을 따라 열차 안에 탄다. 열차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래도 다행히 팔을 움직일 공간 정도는 있다. 세훈은 출입문 위에 있는 스크린을 본다. 스크린에는 광고가 나오고 있다. 맨 처음에는 RZ백화점 광고가 나온다. 백화점이야 주말이면 친구들과 지겹도록 갔다. 그 다음에 나오는 건 여성용 화장품 광고다. 세훈은 볼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번 8월에 한다는 오디션 광고다. 음... 오디션이라... 노래 실력 하면 나도 좀 할 것 같은데... 아니, 아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야 되는데... 바로 그 때.
“잠시 후 도착할 역은 미린역입니다. 5호선 및 미린 라이트레일로 갈아타실 수 있습니다. 이번 역은 타고 내리는 승객이 많은 편이므로 내리실 때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버... 벌써? 그렇다면... 바로 다음 역인데? 세훈은 주위를 둘러본다. 세훈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큰일이다! 이 대열에서 좀 물러나 있어야 안전한데... 하지만 세훈이 그렇게 생각할 틈도 없이,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일제히 내린다. 세훈은 사람들 틈에 떠밀려 열차 밖까지 밀려 나온다. 그나마 열차 밖으로 나오자마자 재빨리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온 게 다행이다. 세훈은 일단 한숨을 돌리고는 다시 열차에 탄다. 그리고 아까 탔던 만큼보다는 못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탄다. 세훈이 가만히 보니 그중에는 세훈과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들이 좀 있다.
“잠깐...”
세훈이 가방을 들어서 뭔가를 보려는데, 갑자기 열차가 덜컹하더니, 세훈의 몸이 중심을 잃고 옆으로 기운다. 세훈의 등이 누군가에게 닿는다.
“아... 아...”
세훈은 뒤를 돌아본다. 짧은 머리를 한, 보통 사람보다 머리 반 정도는 더 커 보이는 사람이 거기 서 있다. 곧바로 세훈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 죄, 죄송...”
“미안해할 것 없어.”
그 사람이 손을 저으며 말한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세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잠시 후 미린대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내리실 때 발밑을 한 번 더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제 내려야 한다. 세훈은 가방을 꼭 쥔다. 이윽고 문이 열린다. 그 사람은 문이 열리자마자, 세훈이 뭔가 말을 해 보기도 전에, 누구보다도 빨리 뛰어서 계단을 오른다.
“휴...”
세훈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로 열차에서 내린다. 계단을 올라가며 보니 대학생이나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온통 같은 자주색의 교복뿐이다. 혹시나 해 주위를 둘러보지만, 역시 익숙한 얼굴은 안 보인다.
“하... 정말로 이상한데. 이 시간이 사람이 가장 많을 시간일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세훈이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계단 위를 올려다봐도, 개찰구 쪽을 돌아봐도. 역시 없다.
“하는 수 없지.”
계단을 올라가려다가, 세훈은 편의점을 발견한다. 곧장 음료수 코너로 간 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레드 소다’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하나 더 꺼낸다. 아무래도 하나보다는 2개가 낫겠지...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니 점원이 세훈을 불러세운다.
“손님, 잠깐만요!”
“에... 뭐... 뭐 잘못된 거라도...”
“아니, 다름이 아니라, 못 보던 얼굴이라...”
“아, 신입생이거든요.”
“그... 그렇군요. 그럼 또 오세요!”
편의점을 나서자마자, 세훈은 출입구의 계단을 오른다. 방금 전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시간을 보니 8시 10분. 출입구 밖에 나와 보니 큰 도로가 보이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큰 육교도 하나 보인다. 도로 맞은편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고 건물이 몇 채 있는데, 미린대학의 캠퍼스다. 그러고 보니까 세훈이 오늘부터 다니게 될 미린고등학교는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모두 있는 ‘미린 교육재단’ 소속이라고 들었다. 또 미린대 하면 명문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고등학교의 명성도 더불어 높은 편이고, 그래서 학교에 재단이 투자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자주색의 수수한 교복을 보면 얼른 그런 게 연상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어, 세훈이 아냐? 너, 오랜만이다?”
누군가 세훈의 뒤에서 말을 건다. 세훈이 뒤를 돌아보니,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학생 한 명이 있다.
“응...? 너 디아나잖아.”
“그래, 맞아!”
이 여학생의 이름은 디아나 릴리엔탈. 세훈과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얼마 만에 보는 거지?”
“음...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는 다른 데 다녔으니... 한 3년 만인가? 너 어디 다녔지?”
“아, 가족 일 때문에 잠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가, 한 달 전에 다시 근처로 이사를 왔거든.”
“그래? 나는 왜 몰랐지?”
세훈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뭐... 그야 당연한 거잖아.”
디아나가 웃음을 띠며 말한다. 디아나가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세훈의 걸음이 느리다.
“그건 그렇고 왜 그렇게 걸음이 느려? 오늘은 그냥 개학식만 하고 갈 텐데, 왜 이렇게 활기가 없는 거야?”
“아... 다른 건 아니야.”
“왜 그러는 건데? 말 좀 해 봐.”
“찾는 사람이 있어서.”
“찾는 사람? 나 말고도 또 누가 따로 있는 거야?”
세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디아나는 잠시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알았어! 그럼 이따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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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지 1년도 안 된 건데 개정판을 쓰게 됐습니다. 분량 조절, 설정 변경 반영, 일부 대사와 장면의 삭제 및 추가 등이 있을 예정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마 매주 월수금에 올리게 될 듯합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마드리갈
2020-01-03 19:39:18
먼저, 신작의 연재를 축하드려요!!
고교생이 되었다는 것은 10대 때에 여러모로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되죠. 이제 어른의 계단을 하나 더 올랐다는 느낌도 들고. 이번 회차를 읽다 보니까 저의 고등학교 생활이 어땠는지가 생각나면서 살짝 쓴웃음을 짓기도 했어요. 저라면 아예 아는 사람이 없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고, 중학교 때의 생활상이 별로 안 좋았던 터라 학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서 뭐하나 하는 생각부터 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 때에도 실제로 그랬어요. 세훈의 경우가 보통일텐데 저에게는 일상이 아니었으니...
작중의 미린재단같은 형태의 학교법인에서는 일본의 케이오의숙(慶應義塾)이 생각나고 있어요. 그 유명한 케이오대학의 운영주체이기도 하죠. 게다가 케이오의숙 산하의 고등학교 교복 또한 수수한 게 특징이라서 더더욱 그렇게...
SiteOwner
2020-01-04 23:48:40
전작을 개정하여 재구성하시는 것이군요.
프로젝트의 출범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재미있게 관심을 갖고 숙독하겠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속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될 뿐인데 생활권의 여러 요소가 매우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 점을 잘 포착하신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