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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 줘?”
자신을 둘러싼 실로 이루어진 포위망이 눈으로 훤히 보임에도, 현애는 오히려 샘에게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큰소리치며 말한다.
“너, 뭔가 잘못 먹은 거 아니야?”
샘은 어이없어하는 얼굴, 그러면서도 눈은 경계를 풀지 않는다.
“너를 둘러싼 이 실들은, 보통의 실보다 10배는 넘게 튼튼하단 말이야! 얼리는 거로는 어림도 없다고!”
“그래. 네 실은 매우 튼튼해.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샘은 그 순간, 느낀다. 점점 발밑에서 찬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서서히, 그 찬 기운이 강해진다. 마치 얼어 버린 호수에서 올라오는 것과 같은 찬 기운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뭐야... 어느새, 이 녀석이!”
그렇다. 샘의 발밑까지, 어느새, 빙판이 생겼다!
“무슨 수작을...”
현애는 어느새 빙판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뭐, 이 실을 내가 파괴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오기 한결 수월하단 말이지!”
얼어붙은 실들 밑에 손을 넣고, 올린다.
들어올려진다. 손이 좀 차갑기는 하지만, 약 20cm 정도 높이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순간에...
빠져나온다.
마치, 썰매를 탄 채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듯 말이다.
약 5초도 안되는 시간 만에...
바로 눈앞에 서 있다.
샘의 눈앞에, 현애가.
“너... 너...”
“왜, 속임수를 썼냐고 하려고 그랬지?”
“그... 그... 그건...”
샘의 입에서는 나와야 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고작 나온다고 해도, 첫 한두 마디만 나오고 막힌다.
“말해 봐. 어떤 녀석이 시킨 건지.”
샘은 그 순간, 약 한 달치 정도나 되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말을 하는 대신, 잽싸게 왔던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냥, 그냥 무작정 달리는 것이다.
“어? 야! 거기 서! 안 서?”
현애가 재빠르게 내달리는 샘을 쫓아가 보려 하지만, 뛰면 뛸수록,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진다. 하지만, 방법이 다 있다.
바로 며칠 전, 현애가 외제니를 상대하면서 봤던 게 있다. 바닥을 철판으로 만들고 자신을 쫓아왔던 외제니의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주리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게 그 정도의 속도였던 것 같다.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발밑을 차갑게 한다.
약 5초 만에, 현애의 주위와 전방에, 빙판이 생겨난다. 신발 바닥에도 마찬가지로, 얼음판이 생겨났다. 자세를 잡는다. 상체를 굽히고,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왼쪽 다리를 최대한 뒤로, 왼팔을 앞으로, 오른팔을 최대한 뒤로. 그리고 정면을 본다. 왼발을 앞으로, 달린다!
그 시간, 미린고등학교 운동장. 농구대 앞에서, 1학년 A반 3명과 G반 3명이 모여 농구를 하고 있고, 그 주위에 동급생들과 선배들이 둘러앉아 구경하고 있다. 앙드레가 패스하고, 세훈이 잡은 공을 나타샤가 빼앗아 몇 번 드리블한 다음 골대로 던지려는 순간.
“잡았다!”
번쩍 뛰어올라 공을 잡은 사람은 니라차. 다른 친구들에 비해 키가 그렇게까지 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뛰어오를 수 있는지, 보는 사람들이 신기해할 정도다. 그대로 니라차가 공을 잡고, 다시 뛰어올라 공을 골대로 넣는다. 그물이 출렁인다. G반의 점수가 21점을 찍는다. G반의 승리다.
“야! 이제 쉬자!”
세훈, 앙드레, 나타샤, 니라차를 비롯한 6명은 자리로 들어가서 친구들이 준비한 음료수를 하나씩 집어 든다. 세훈이 집어든 건 콜라. 캔을 따고 마시자,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을 수 없다!
“그건 그렇고 니라차 너 말이야, 점프를 뭐 그렇게 잘 하냐?”
“아, 나? 뭐 따로 훈련하거나 한 건 없는데...”
“정말? 경기에 나가봐도 될 실력인데?”
“에이, 그 정도까지야.”
니라차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응?”
휭-
뭔가가 지나갔다. 그것도, 마치 고속열차가 통과하는 것 같은 속도로, 1초도 안 되는 순간, 순식간에 말이다.
“방금 뭔가 지나가지 않았냐?”
경기를 지켜보던 알렉스가 어리둥절해하며 말한다.
“마치 영화 <데저트 체이서>에서 본 추격전 씬을 보는 것 같은데...”
“야, 넌 뭐 그렇게 영화를 술술 기억해 내냐? 나는 하고 싶어도 못 하겠더만...”
앙드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한다.
“뭐가 빠르게 지나갔다고?”
이번에는 나타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어느 쪽으로 지나갔는데?”
“저기, 저기 있잖아.”
알렉스가 농구장 뒤쪽 산책길을 가리킨다. 나타샤는 뭔가 감을 잡은 건지, 세훈과 니라차를 손짓으로 부른다.
“왜 우리를 부르는 건데?”
“와 보라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산책길이다. 하지만 분명 여기로, 뭔가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지나간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타샤는 세훈과 니라차를 뒤에 세우고, 산책길 바닥에 손을 대 본다.
잠시 후.
“알겠어. 아직도 여기 미약한 찬 기운이 남아 있는데...”
“찬 기운이라면?”
찬 기운이라... 냉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훈이 아는 사람 중에는 한 명밖에 없다. 특히 여기 세훈과 니라차 둘은, 그 ‘찬 기운’을 직접 몸으로 느껴 보기도 했으니 잘 안다.
“그 찬 기운은 말이지...”
나타샤가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저쪽 학교건물 뒤쪽 산책길로부터, 저기 보이는 학교 정문까지 이어져 있어!”
“그렇다면, 바로 전까지 찬 기운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는 건...”
“설마, 여기에 빙판길을 만들었단 말이야?”
“빙고.”
세훈과 니라차의 말에 나타샤가 오른손 검지를 들어 보이며 말한다.
“일단 여기까지는 확실해. 남궁현애는, 산책길을 따라 빙판길을 만들고, 그 빙판길로 해서 순식간에 움직였어.”
나타샤는 또다시 허리를 숙이고 산책길에 손을 대 본다.
“그리고 또 뭔가를 알 수 있는데...”
“뭔데?”
“누군가가 이리로 뛰어갔어. 속도는 보통 남자 고등학생 정도의 속도고, 이 빙판길이 만들어진 것보다 조금 전이야.”
“그렇다면, 결국 현애가 그 남학생을 뒤쫓아갔다는 이야기잖아? 그러면 어떻게 된 거지?”
“걱정을 안 해 볼 수 없잖아. 냉기 능력까지 사용하면서 쫓아갔다는 건...”
세훈의 생각은, 곧바로 어딘가에 미친다.
“야, 니라차. 너는 여기 있어. 나하고 나타샤 둘만 가 볼 테니까.”
“아... 알았어.”
세훈과 나타샤는 산책길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쏜살같은’ 속도다.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도 모자라, 마치 형형색색의 빛으로 이루어진 줄의 연속체처럼 보일 정도다. 어느 순간, 학교 운동장 옆 산책길을 지나고, 코너를 돌아, 교문을 빠져나온다.
“분명 어느 쪽으로든 나왔을 텐데... 어느 쪽이지?”
주위를 둘러봐도, 샘이 도망친 방향은 어디인지 모르겠다.
잠시 주위를 돌아본 현애는, 방향을 잡는다.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주택가 근린공원이 있는 방향이다. 전에 세훈이 두 번이나 그곳에서 싸웠다니까, 아마도 그쪽으로 갔을 거라는 추측만 하면서.?
어느새, 도착했다. 주택가 근린공원에.
“후...”
한숨을 돌리고서, 주위를 본다.
안 보인다. 바로 앞에 보이는 분수대와 장미 정원에도, 주위의 산책길에도. 어디에서도 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어디로든 도망갔을 텐데...
좀 더 찾아보자. 좀 더 가 보자. 현애는 방향을 돌린다. 미린역 남쪽의 카페거리 쪽으로. 또다시 발밑에 냉기를 주입시켜 빙판을 만들고, 신발 바닥 밑에 얼음을 두른다. 다시, 빙판이 만들어졌다. 곧바로 내달린다. 미린역 남쪽 카페거리를 향해.
어느덧, 미린역 남쪽 카페거리에 다다랐다. 바로 옆에는 쉼터, 그리고 전방 오른쪽으로 카페 쿠쿠스 가든이 보인다.
“뭐야.”
현애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숨어버렸단 말인가?
“에이, 저기 수변공원으로 가 버렸나...”
속도를 다시 올린다. 발에 냉기를 더욱 주입하려는...
바로 그때...
“엇?”
걸렸다!
뭔가에!
현애의 몸이 기우뚱하며 공중에 붕 떠버린다.
“아차!”
급히 땅에 착지를 하려고 했지만...
몸의 균형이 심하게 망가졌다!
설상가상으로, 정신력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땅바닥에 만들었던 빙판도 거의 사라졌다!
“위, 위험해...”
급히 손에 냉기를 둘러 본다. 그리고 손이 닿을 땅바닥에도.
다행이다... 손은 그런대로 땅에 닿았건만...
쿵-
“크윽...”
두 무릎이, 벽돌로 된 땅바닥에 정통으로 박았다!
뼛속까지 전해져 오는 이 아득한 기분. 큰일 났다. 딱 무릎을 꿇은 모양새인데다가, 움직이기도 힘들다. 겨우 한쪽 무릎을 굽혀 일어서 본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두 무릎이 온통 까지고 피가 나고 난리도 아니다...
“흐흐흐흐흐흐흐... 멍청하기는!”
이 목소리, 이 목소리는...
“샘 나이트냐?”
“그래, 나다.”
샘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거리 바깥으로 나온다. 현애에게 막 쫓기려던 조금 전과는 달리, 자세도, 얼굴도, 한껏 여유롭다.
“아까 산책길에서 순순히 항복했으면 이런 고통은 안 겪었을 텐데 말이야. 그렇지?”
“하... 이제는 묻기도 싫네.”
“왜 내가 원하는 말은 안 해주는 거야, 응?”
현애는 말하는 대신, 또다시 냉기를 온몸에 두른다. 그리고 까진 무릎에 손을 댄다. 이제 어느 정도 낫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응?”
“몰라서 그래?”
“하지만, 내 실은 이미 준비되어 있거든!”
순간, 현애의 발끝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든다. 재빨리 거기서 발을 뺀다. 동시에, 주위의 온도를 더욱더 내린다.
“또 아까처럼 서리를 맺히게 해서 실의 위치를 알아낼 셈이지?”
샘은 마치 자신이 승기를 잡고 놓지 않겠다는 듯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가며 말한다.
“그래 봤자 소용없어! 실은 계속 만들어내면 그만이니까!”
과연, 샘의 말대로, 샘의 손에서 계속 뭔가가 나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실이다! 현애는 말없이, 그저 실들을 피해 움직일 뿐이다. 샘이 새로 만든 실이 자신을 향해 날아올 때마다, 주변의 온도를 낮춰, 서리를 끼게 하면,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이렇게 반복하게 된다면 시간 끌기밖에는 되지 못하지만...
“제법인걸? 제법이야.”
샘은 갑자기 실 만들기를 멈추고는,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친다.
“하지만 너는 이걸 생각 못 했지!”
샘이 말을 마치자마자, 뭔가가 팽팽해지려는 것이 현애의 발밑에서 느껴진다. 현애는 급히 자리를 피해, 샘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곳저곳 옆으로 뛴다. 실이 움직이는 방향, 그 옆으로!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너를 둘러싼 덫은 점점 더 조여질 뿐이지. 그리고!”
샘이 주먹을 꽉 쥐더니, 자신 쪽으로 힘껏 당긴다.
착-
투명한 실이 감싼다. 현애의 온몸을. 그리고 꽁꽁 붙들어 맨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이... 이건...”
“자, 어떠냐? 울부짖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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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부터는 격주 월요알, 매주 수금 업로드됩니다. 31화는 7월 20일 업로드 예정입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07-17 12:54:38
이전 회차에서 현애가 냉기 능력을 이용하여 샘 나이트가 생성한 그 실을 경화시켜 취성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이렇게 외제니의 금속화 능력같이 표면을 빙판으로 만들어서 마찰력을 최소화하여 고속이동을 가능케 하다니, 응용력이 정말 가공할 레벨...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놀랍게 여겨지고 있어요!!
읽다가 으악 했어요. 지면에 무릎을 박다니, 게다가 고속으로 이동중에...
겨울이라면 스타킹 등을 신고 있겠지만 작중의 계절은 5월...
정말 짧은 기간 내에 잘 쓰시네요. 대단해요. 저의 아이언 드래곤 걸 ?腕火龍小姐의 경우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연재주기가 꽤 길어져 있지만요. 건필을 기원하고 있어요.시어하트어택
2020-07-17 23:16:21
뭐... 스토리의 전개를 위해서는 금방 끝나면 안되니, 저런 식으로 긴장감 같은 걸 부여하는 것도 필요하죠.
마드리갈님도 순간 무릎이 아프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나요? 그럼 제가 잘 썼군요.
뭐... 제가 쓰는 건 짧은 기간이라고 할 수도 없죠. 매일 1회차씩 쓰고, 거기에다가 연참까지 하는 굇수(?)분들도 계시니까요. 연재 주기가 약간이나마 짧아진 건, 타 연재 사이트들에서 연재하는 속도와 맞춰가기 위함입니다. 응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SiteOwner
2020-07-19 14:23:24
현애가 정말 놀라운 상황판단력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자신의 능력을 역이용했는데, 도중에 불상사가...
예전에 계단을 헛디뎌서 무릎을 박은 적이 있었다 보니 그 묘사에서 갑자기 속이 울렁거립니다. 저야 항상 긴 바지를 입고 있는데다 출혈 등은 없었습니다만 한동안 후유증에 고생하기도 했던 게 생각납니다. 벌써 이것도 4년 전의 이야기...
샘은 정말 강적이군요.
게다가 섬유 단위로는 참 약한 것이, 모여서 실이 되면 놀라운 것이 된다는 게 이렇게 실감나고 있습니다.
내일 31화가 올라오는군요. 그러면 다음 회차를 곧 읽을 수 있겠군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7-19 22:34:28
저 장면은 제가 예전에 발을 접질렸을 때를 생각하며 써 봤습니다. 물론 경우는 많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그 아픔의 크기는 능히 잘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좀더 실감나게 썼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