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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는 붉은 탄환 2발을 들고 육교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 한구석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자꾸만 후드티 주름을 만지작거린다. 방금 또, 자신이 보낸 두 사람이 당한 것을 보고서, 더욱 불안해진다. 어찌해야 하나? 지금 이 자리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 하나? 아니면, 일단은 후퇴하고서, ‘선물’을 줄 상대를 다시 골라야 하나? 남은 건 2발. 잘 골라야 한다... 손바닥에 땀이 차오른다. 그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숨도 고르지 않고, 점점 불규칙해진다.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생수병 속에 든 물이, 점점 찰랑거린다.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잠시간의 고민 끝에, 이윽고, 앙드레는 결심한다. 일단은 물러나서 때를 살피기로. 시간이야 많다. 꼭 지금 해야만 현애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시 한번, 그는 확실히 한다. 이것은 후퇴가 아니다. 전략 중 하나다!
메고 있던 가방을 열고, 탄환을 모두 넣고...
후드티를 막 만지려는...
그때...
“너 이 자식, 딱 걸렸어!”
한 남자의 성난 목소리가 들린다!
앙드레는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본다.
도대체 누가, 저토록 성을 낸단 말인가? 가까이에 있을 텐데, 보이지 않는다...
뭐지? 그리고 어디 있지?
“앙드레 블레즈! 이리 나와!”
또 그 목소리다! 성난 남자의 목소리! 앙드레는 황급히 후드를 뒤집어쓴다. 어찌나 급히 뒤집어썼던지, 끈이 옷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머리는 헝클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뜰 생각만 한다. 검은 가방까지 다 메고 막 발을 떼려는데...
“어딜 도망가!”
또 다른 목소리. 이번에는 여자의 목소리다. 그리고 방금 들린 그 남자의 목소리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들려온다.
“이런...”
이제는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빨리... 빨리...
뛰자... 뛰자... 뛰자...
“서!”
“에... 엣...”
“거기 서라고!”
이번에는 옆쪽...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다! 거기에, 눈앞에는 펜스가 쳐진 도로다! 도망갈 방향... 도망갈 방향이 없다! 앙드레의 머릿속이 온통 하얘진다. 이대로... 이대로 끝나는 건가? 어쩔 줄 몰라, 앙드레는 그저 두리번거릴 뿐이다.
“거기 멈춰, 앙드레 블레즈.”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확연히 가까워진 목소리가. 앙드레는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있다. 겨우 정신줄을 잡고, 생수병을 든 손에 정신을 집중해 보지만... 안된다. 할 수 없다! 마치 누군가 수도꼭지를 잠가 버린 것과도 같이, 에너지가 방출되지 않는다!
몇 초 되지 않아,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드디어 잡았다.”
처음 성난 목소리로 외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앙드레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돌아본다.
금발에 가까운 갈색 머리에, 안경을 낀, 정장 조끼 차림의 남자가 앙드레의 어깨에 손을 짚고 있다. 다름 아닌, 자비에다. 앙드레의 앞에는 빨간 별이 그려진 흰 티셔츠와 핫팬츠를 입은 여자, 그리고 체크무늬 남방셔츠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각각 메이링, 앨런이다.
“말해.”
메이링이 앙드레를 똑바로 노려보고 말한다.
“누구한테서 사주를 받은 것이고, 왜 그 사람을 노리고 있는 건지 말이야.”
“그... 그건...”
앙드레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숨을 불규칙하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고, 생수병을 만지작거린다.
“허튼짓하지 마. 혹시나 몰라서, 네 능력은 내가 봉인했으니까, 우리가 묻는 말에나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뭐... 뭐라고요!”
“시치미 떼지 마. 다 알고 온 거니까...”
“이보세요. 아저씨 아줌마는 도대체 누군데요!”
앙드레가 자신을 둘러싼 메이링, 앨런, 자비에를 보며 버럭 소리 지른다. 메이링은 탄식 섞인 한숨을 내쉰다. 올해로 27살. 고작해야 20대 중후반인데, 아줌마라니? 거기에다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20대 초반의 외모라고 평하는데, 아줌마라니... 일찍 결혼한 친구들도 아줌마 소리는 안 듣는데...
가슴 속은 확 끓어오르지만, 메이링은 애써 태연한 얼굴을 하고서, 바지 주머니 속을 뒤지더니, AI폰을 꺼내 전자 신분증을 보여준다.
“자, 봐. 나는, 법률사무소 스텔라 대표변호사 무룽메이링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 부하직원들이지.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는 VP재단 조사요원이기도 해.”
“그래서 어쩌라고요.”
앙드레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당신들한테 볼일은 없어요.”
“그래? 과연 볼일이 없을까?”
이번에는 앨런이 앙드레를 노려보며 말한다.
“하나 묻자. 미린고등학교 1학년 G반, 남궁현애랑 너, 같은 반이지.”
“네, 맞는데요.”
“너하고 현애는 별다른 원한 같은 것도 없잖아? 그런데 왜 계속 집적거리는 거지?”
“아, 글쎄, 안 집적댄다니까요.”
앙드레는 짜증 섞인 투로 말한다.
“제가 그 애랑 엮일 일이 뭐가 있어요. 그냥 단순히 인사 주고받고 그런 사이인데. 별로 친하거나 하지도 않아요.”
“호오, 그래?”
이번에는 자비에서, 주머니에서 AI폰을 꺼내며 말한다.
“그런 일, 분명히 없단 말이지?”
“네.”
“그러면, 여기 있는 수많은 증거는 도대체 뭐지? 다 네 주변인들한테서 녹취한 음성자료와 네 모습이 찍힌 사진과 동영상인데.”
“......”
자비에가 AI폰에 나타난 영상, 음성, 사진 목록을 보여 줘도, 앙드레는 말이 없다. 오히려 시선을 피하며 도로 쪽만 바라볼 뿐이다. 자비에는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잡아떼려는 것 같은데, 인제 와서 잡아떼 봤자 소용없어. 지금 여기서 모든 사실을 당당히 밝히든지, 아니면 재단 요원들과 어디론가 가든지. 선택은 네 몫이야.”
“......”
앙드레는 여전히 말없이 도로 쪽만 곁눈질로 볼 뿐이다.
“어디로 피하려고? 피할 데는 없다니까?”
앨런이 자꾸 곁눈질하는 앙드레를 노려보며 한마디 하는데...
“아무렴요, 피할 데는 있죠.”
순간, 앙드레의 눈에 버스정류장에 가까워지는 하늘색 버스가 들어온다. 즉시 잽싸게 내달린다. 메이링의 옆을 비집고, 빠져나간다. 그리고 내달린다!
“뭐... 뭐야!”
앙드레가 빠져나가자마자, 메이링이 내달리기 시작한다.
“치라유! 아냐! 빨리 저 녀석 좀 잡아!”
순간, 버스정류장 옆 건물 안에 있던 치라유와 아냐도, 버스를 향해 달리는 앙드레를 보고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앙드레가 한발 빨랐다. 기다리는 사람 없는 버스에, 유유히 들어간다. 앙드레가 버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버스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한다.
“이런...”
정류장을 떠나는 버스를 보며, 메이링이 탄식 섞인 한숨을 내쉰다.
“아까워요, 변호사님. 다 잡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앨런과 자비에도 한마디씩 하며 한숨을 내쉰다.
“아니야, 다들 미안할 건 없어. 자기 일을 한 거잖아.”
메이링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AI폰을 꺼낸다.
“일단은 현애하고, 세훈이, 주리한테 알려야겠어. 앙드레에 대한 정보를 말이지. 자비에, 혹시 보냈어?”
“네, 이미 보냈어요.”
“그래, 다행이네.”
그날 저녁 6시, 미린중앙공원 미린호 호반 데크.
데크 위를 걷는 사람들은, 생김새나 옷차림 같은 건 달라도, 대부분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호수 데크 산책을 즐기고 있다. 단 두 사람, 미린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발걸음이 무겁고 얼굴도 무거운 두 사람을 빼고는.
“휴... 전학 와서부터 나한테 계속 집적거린 그 녀석이, 우리 반의 앙드레였다니.”
현애가 평소와는 달리 웃음기 하나 없이 매우 진지한 눈을 하고 말한다.
“내일 그 녀석 보는 대로, 가서 따져야겠어. 어떤 녀석이 시켰길래 나한테 계속 이런 건지.”
“야, 좀 진정해.”
그렇게는 말하지만, 세훈 또한 웃음기가 하나도 없다.
“일단 누군지 밝혀졌으니까 내일 가서 생각하자고.”
“하... 네 말도 맞는데, 동면에서 깨어나고 나서 이렇게 심란한 적은 처음이잖아.”
그 말대로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어 왔지만, 이 정도의 충격은 처음이다. 마치 슬레지 해머로 온 힘을 다해 머리를 가격당한 것 같고, 머리 자체가 거대한 동종이 되어서 한번 우렁차게 울린 상태가 된 것만 같다.
“아무튼, 내일 만나기만 해봐. 내가 아주 가만 안 둘 테니까.”
“좀 진정해. 진정하라니까.”
세훈이 콜라캔 하나를 건네준다. 현애가 콜라캔을 받아드는 그 순간, 세훈은 시원하다고 느낀다. 추운 게 아니라. 확실히, 조금 차기는 해도, 그 정도로 춥지는 않다.
그렇게 세훈과도 헤어지고, 어느덧 아파트 단지 초입이다.
“하, 앙드레 그 녀석. 안 그렇게 보였는데.”
현애의 얼굴에는 웃음기는 하나도 없고, 온통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아까 처음 앙드레의 정보를 받고 나서부터, 세훈과 공원을 쭉 걸어오는 그 시간 동안, 불안감은 더욱 커져 왔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이러다 잠 못 드는 건 아닌가’ 할 정도로, 앙드레만 생각하면 온몸이 밧줄에 꽁꽁 묶여 버린 것만 같다.
“이 자식, 정말 내일 만나기만 하면...”
현애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그때.
“날 찾은 건가.”
뒤에서 톤이 조금 높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본다.
가로등 아래, 초록색 후드를 쓴 누군가가 서 있다.
보자마자, 현애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두 눈에서 불이 이글거린다. 처음 전학 온 그날 저녁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가, 후드를 천천히 벗는다.
그리고 현애의 눈에, 드러난다. 후드티를 입은, 금발의 남학생, 앙드레의 얼굴이.
그 태연해 보이는 얼굴을 보는 순간, 빙하지대처럼 차가운 화기가 확 올라온다. 한 대 후려패고 싶지만, 참는다. 화를 억누르고서, 입을 연다.
“앙드레 블레즈.”
“왜 그러지? 남궁현애.”
“여기까지 납셔 주다니, 영광이야.”
“하하하하하, 별말을.”
앙드레는 뭔가를 더 숨기고 있는지, 별 행동 없이 웃기만 할 뿐이다.
“나도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니, 영광 아니겠어.”
“자, 그럼 말해 주실까.”
현애의 목소리가, 굵어진다.
“네가 나한테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말이야.”
“아, 내가 너한테 원하는 것 말이지?”
앙드레의 목소리가 음흉해지고, 차가워진다.
“네가 전학 온 첫날, 내가 말한 것 있잖아.”
그렇다... 현애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다. 그날 바로 이 근처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와, 그 웃음소리 말이다.
“내가, 잠재적으로 방해가 될 ‘경쟁자’라고 했지. 그래서 숙청해야 한다고 했고.”
“물론, 내게 능력을 주신 ‘그분’께서 너를 딱 집어 말한 것도 있기야 하지.”
“‘그분’이란, 도대체 누구야.”
“그건 알 것 없고, 아무튼, 지금껏 너를 쭉 보면서, 내가 품어 왔던 그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지. 너 역시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강력한 경쟁자’라는 걸 잘 보여 줬고 말이야. 좀더 간을 볼 생각이었지만, 안 되겠어. 바로 너를 직접 상대해야겠는데.”
“그것 또한 고맙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현애는 이제 눈에 불을 잔뜩 켠다. 앙드레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튼, 나는 더 강해져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를 숙청하고, 넘어야겠어. 그리고...”
앙드레가 결의에 찬 눈을 하고는 뭔가 더 말하려는 그때.
“이... 이건...”
앙드레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진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08-22 20:27:17
앙드레 블레즈가 여러모로 자기 무덤을 파네요.
크게는 문제의 후드 쓴 남자의 수족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그렇고, 작게는 그를 추적하고 있는 메이링과 앨런에게 잡히자 메이링에게 아줌마, 앨런에게 아저씨 운운한 것. 꽤 오래전의 일이 생각나네요. 예전에 저에게 과외교습을 받았던 여자아이를 길에서 만났는데, 그 여자아이의 친구가 저를 보고 아줌마 운운했던 것이...분명 예의 표현들은 멸칭은 아닌데 이상하게 듣기가 그렇단 말이죠...
"강력한 경쟁자" 라는 표현이 나왔네요. 그래서 숙청하겠다...
만일 타인이 그 후드 쓴 남자의 수족이 되어 앙드레에게 그 표현을 썼다면 "예, 그렇군요. 저는 숙청당하겠습니다." 라고 순순히 동의할지는 기대불가지만요.
시어하트어택
2020-08-23 23:01:45
저도 그럴 겁니다.
저를 해치러 왔다는데 싸워야지 않겠습니까.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다면, 앙드레는 후드쓴 남자 "본인"이죠...
SiteOwner
2020-08-24 19:23:06
상대에게 신원을 특정당한 채로 잡히고, 게다가 이제는 잡아떼도 늦은...
끝났군요. 그리고 지금까지 저지른 일이 많은 앙드레 블레즈에게는 당분간 좋은 날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설마 죠죠의 기묘한 모험 4부의 오토이시 아키라처럼 죄수 신분으로 교정시설에 수용되어 있을 운명인 것인지...
앙드레 블레즈가 왜 대리인을 찾았는지 이제야 이유가 좀 보이는 듯합니다.
그나저나 숙청이라는 말, 참으로 기묘하지요.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원래의 의미보다는,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한다는 의미로 더 많이 통용되다 보니 원래의 뜻은 거의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누구를 죽이거나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추잡한 공작이 맑고 깨끗할 리가 없으니 그렇게 어의전성이 일어나는 것 또한 필연 같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8-24 23:30:48
어떻게 되든,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겠죠. 이제 그 파국으로 향하는 과정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