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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4: 변할 시간. Episode 13

Papillon, 2020-10-12 01:22:01

조회 수
166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막상 설명하려고 하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오드리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 순간 내 입에 자물쇠라도 채워진 것처럼 말하고자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사도야행은 알려져선 안 된다.
어제만 해도 거리에서 대놓고 학살이 벌어졌건만, 시민 중 누구도 이에 대해 떠들지 않는다. 단지 연금술사 거리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들릴 뿐.
그런데 만약 오드리가 이를 알게 된다면?

‘위험해.’

사도인 나나 4대 가문의 일원인 에스텔이라면 괜찮지만, 단순히 평민 연금술사인 오드리는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좋게 생각하면 4대 가문 소속 정보원들이 돈으로 입막음을 시도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오드리는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된다.’

어쩌면 이골로냑의 사도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악독한 사도가 나설지 모르니까.

‘빌어먹을.’

부들부들.
사도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다시 손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눈앞에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이미 녀석에 대한 두려움이 몸에 각인되었는지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괜찮아요.”

그런 내 행동을 알아차린 것일까??
갑자기 따스한 감촉이 내 손을 감쌌다.

“제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따스한 목소리와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드리의 미소. 그 미소에 담긴 따스한 감정이, 마치 햇살이 빙벽을 녹이듯 내 말을 가로막던 장벽을 치워버렸다,

“...내가 받은 의뢰가 뭐였는지 알고 있어?”

결국,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했다.
처음에 그 무겁던 입은 어디 간 걸까?
막상 시작하고 나니 둑이 무너진 것처럼 모든 것이 너무 쉽게 흘러나왔다.?
내가 배달한 물건이 신기라는 사실과, 그 본래 주인이 에스텔이라는 것. 이 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과 사도라는 초월적 존재. 그리고 내가 에스텔을 버리고 도망친 겁쟁이라는 사실까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격받을 법한 이야기지만, 오드리는 그저 묵묵히 내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된 거다.”

결국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내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듯 침묵을 지켰다.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그 잠시간의 시간이 끝나고 돌아온 답변은 불신.

‘역시 믿기 힘들겠지.’

내가 볼 때도 지나치게 거짓 같은 이야기인 만큼 믿어줄 리 없,

“하지만 믿을게요. 오랜만에 선배가 털어놓은 진심이니까.”
“진심?”
“제가 몇 년 동안 선배를 봐왔는데요. 선배가 말하는 게 진심인지 아닌지 정도는 그냥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어요.”

확실히 내가 거짓말할 때마다 귀신처럼 알아채긴 했지…….
조금 섬뜩했지만, 사랑스러운 후배의 뿌듯한 표정을 보니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다.
정말 이럴 때만 어린애 같아 보인다니까.
괜히 고민하는 내가 오히려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 선배가 한 말이 진실이라는 전제로 이야기할게요.”

정작 그렇게 말해 놓고 오드리는 침묵을 지켰다.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모양이다.?

‘분명 좋은 말은 아니겠지.’

솔직히 내 행보는 정당화할 수 없다.
우유부단한 태도로 처음 위기에 빠졌을 때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탐욕에 눈이 멀어 에스텔에게 신기를 돌려줄 기회가 왔음에도 이드라를 탓하며 사도의 힘을 가지고자 했다.
정작 그 힘으로 싸워야 할 상대가 눈앞에 나타나자 겁에 질려서 나를 위해 싸우던 에스텔을 버리고 도망쳤다.

‘나는 쓰레기다.’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리자마자 오드리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올라오는 것은 그녀의 자그마한 손.
때리려는 건가?
솔직히 한 대 맞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다가올 아픔에 대비했다.
하지만,
쓱.
머리에서 느껴진 것은 충격이 아닌,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

“오드리?”

그 예상외의 감각에 눈꺼풀을 살며시 열자,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후배의 모습이 보였다.

“이게 무슨……?”
“고생하셨어요, 선배.”
“뭐?”

갑자기 이게 무슨?

“말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정리가 잘 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행동으로 보여드린 거예요.”
“……나는 그냥 무섭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이 위험해질 것 같아서 그러셨죠?”
“힘에 눈이 멀어서 에스텔에게 신기를 돌려주지 않았어.”
“완전한 계약을 맺지 않으신 건 그 죄책감 때문이고요.”
“마지막에 에스텔을 돕지 않고 도망쳤어.”
“네, 그건 잘못된 짓이에요. 하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오드리의 얼굴이 굉장히 가깝게 다가왔다. 이를 눈치챈 순간 거리를 벌리고자 했지만, 어느새 손을 움직였는지 그녀의 양손이 내 머리를 잡고 내가 회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선배.”

숨결이 콧잔등에 다가올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내 얼굴이 불이 난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오드리의 표정은 여전히 침착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그녀의 두 눈동자.

‘예쁘다.’

갈색이라는 평범한 색이건만, 미혹 한 점 없는 밝은 눈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랑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세요?”

처음 만났을 때?

‘그건 분명 학창 시절…….’
“선배가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그걸 도왔다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내 입가에 쓴 웃음이 맴돌았다.
그 당시 괴롭힘당하던 오드리를 돕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면 항상 먼저 뛰어갔고, 그리고,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지.’

둔갑술사인 이상 마도기사나 전투마법사도 섞여 있는 패거리를 상대로 이길 가능성 따위는 없었다. 그저 폭력의 방향을 오드리가 아닌 나를 향해 돌렸을 뿐.
뭐, 나중에 따로 보복하긴 했지만…….

“엄청 꼴사나웠지.”
“아뇨, 전혀.”
“그렇게 위로하질 않아도……,”
“진짜예요. 그때 선배는 지금보다 훨씬 멋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오드리는 마치 무언가 그리운 것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배는 분명 졌어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포기하지 않고 저를 도와주셨죠?”
“그러긴 했지만,”
“그 덕에 저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선배가 아니라면 이미 목숨을 끊었을 테니까.”
“오드리…….”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선배.”
“난…….”
“힘든 건 알고 있어요. 어쩌면 에스텔 씨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이 이야기 때문에 제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죠. 그렇지만 선배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을 잃지 않을 거예요. 저도, 그리고 에스텔 씨도.”
“넌 에스텔을 모르잖아?”
“그렇다고 해도 알 수 있어요.”

‘여자의 감이랍니다.’라고 덧붙이며 오드리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어찌 되었든, 선배. 학창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세요.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 때문에 제가 선배를…….”

나를 어쨌다는 거지?
끝없이 이어지던 열변이 갑작스럽게 끊기자 나는 당황해 오드리의 기색을 살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 전까지 평온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후배의 얼굴.

“괜찮아?”
“괜찮아요! 음,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면 안 되는 내용까지 나올 뻔해서 조금 당황한 거예요.”

정말 괜찮나?
당장 머리에 김이라도 날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내 생각을 끊기라도 할 모양인지 오드리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커졌다.

“변할 시간이에요, 선배.”

그렇게 말하는 오드리의 눈동자는 여전히 맑고 아름다웠다.


*** ***


그것은 그녀가 잊고 싶은 악몽 속에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희망. 오드리라는 한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게 해준 아름다운 추억.

“어째서 절 도운 거죠?”

그날 오드리는 여전히 쌀쌀맞은 태도로 그레고르를 대했다. 머리로는 그가 자신을 돕는 걸 이해했지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그를 신뢰할 순 없었다.

‘어째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녀는 평민. 귀족 자제들과는 달리 그레고르에게 어떠한 이득도 주지 못한다. 돈 역시 마찬가지. 장학금 덕에 마법을 배울 수 있을 뿐, 그녀의 경제 사정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그렇다고 순순한 호의를 믿기에는 그녀가 여태까지 겪어온 괴롭힘이 지나칠 정도로 가혹했다.

‘뭘 원하는 걸까?’

그렇기에 그녀는 그레고르의 대답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만약에 그가 원하는 것이 자신이 제공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그 역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응?”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 그레고르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고,.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해?”

약간 멍청해 보일 정도로 순진해 보이는 표정이 돌아왔다.

“바보 같아.”

그 모습을 보며 오드리는 겉으로 비웃었지만, 그 작은 기억이 그녀의 마음속 구원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로도 그레고르의 도움은 이어졌고,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남았다. 어느새 괴롭히던 이들 역시 사라졌고, 오드리는 그레고르를 선배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그 이후 오드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한 가지 소망.
그 소망을 연료 삼아 그레고르가 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다시 만날 날을 그리며 최선을 다했다. 뛰어난 성적으로 연금술 학부를 졸업했음에도, 남들의 만류를 무시한 채 심부름꾼 길드의 문을 두드렸다.
거기에 선배가 있으니까.
비록 변한 그의 모습에 실망하긴 했지만, 언젠가 그가 돌아올 것을 믿으며 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오늘, 오드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그레고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괜찮은 걸까?’

그녀의 마지막 말에 그레고르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 선배를 기운 차리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긴 했지만, 솔직히 자신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 선배의 그림자는 너무나도 거대했지만, 선배에게 있어서 그녀는 그저 한 사람의 후배에 불과할 테니.

‘그래서 더 대담하게 행동하긴 했지만,’

선배가 생각에 빠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조용히 선배의 양 뺨을 감싼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떠올리니 다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것 같았지만 억지로 이를 참았다.

‘설마 들키진 않았겠죠?’

마지막에 감정이 지나치게 앞서는 바람에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와서 당황하긴 했지만, 목소리를 키워서 다음 화제로 강제로 넘어갔다. 솔직히 인제 와서 들킨다고 해도 나빠질 것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그녀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거기에 그런 건 좀 더 로맨틱한 분위기가 좋고.’
“고마워, 오드리.”

다행히 그녀의 사고가 원치 않던 방향으로 매몰되기 이전에 그레고르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 표정에는 조금 전과 같은 불안정한 모습은 오간 데 없이 확고한 신념만이 남아있었다. 마치, 그녀가 기억하던 학창 시절의 모습처럼.

“이제 도망치지 않을 거야. 상대가 누구든 에스텔을 구할 거야. 이미 늦었다면……최소한 복수라도 해주겠어.”
“선배…….”
“그리고 네가 위험에 빠져도 내가 반드시 지켜낼 테니까.”
“고마워요.”

중간에 에스텔이라는 다른 여성의 이름이 들어가서 조금 김이 새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을 지켜준다는 말에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선배는 이상한 데서 기습을 하신단 말이에요.”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놀라서 다시 한번 언성이 커져 버렸지만, 다행히도 그레고르는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 무언가 다른 의도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선배, 아침 먹는 도중에 습격당했다 했죠?”
“응, 그랬지.”
“시장하지 않으세요?”
“배?”

꼬르륵.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그레고르의 배꼽시계. 그 모습을 보며 오드리는 잠시 쿡쿡 소리를 내면서 웃어 보이곤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응? 아무래도 길드에 두고 온 모양이네요.”
“뭔데?”
“오늘 만든 쿠키인데, 선배한테도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꼭이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오드리는 길드 건물로 향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찾았다.”

길드 사무실에 있는 본인 책상 위에 놓여있는 쿠키 봉지를 보며 오드리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직 미완성이라고 생각해서 그레고르에게 줄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주지 않는 것도 이상하리라.

“자, 그러면 돌아갈……,”

그렇게 오드리는 기쁜 표정으로 쿠키 봉지를 손에 들었지만,

“찾.았.다.”

그 미소를 부정하듯, 짙은 어둠이 드리운 사무실 구석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0-16 22:49:18

읽으면서, 만일 캐릭터들에게 성우를 배정하면 누가 어울릴까를 상상하기도 했어요.

주인공 그레고르는 오노 유우키, 오드리는 토야마 나오, 에스텔은 사와시로 미유키. 모두 그랑블루 판타지에 나오는 성우예요. 오노 유우키는 그랑, 토야마 나오는 루리아, 사와시로 미유키는 카타리나의 성우. 특히 토야마 나오는 여친, 빌리겠습니다! 의 사라시나 루카의 성우를 담당했는데 그 사라시나 루카가 보여주는 의외의 통찰력과 심장이 뛰는 것에의 묘사가 연상되었어요.


자신의 인식범위 밖의 일을 이렇게 듣고 수용할 수 있는 이런 마음, 결코 쉽지 않죠. 오드리는 정말 대단해요.

그런데 그 오드리에게도 수상한 존재가 접근하다니...

Papillon

2020-10-17 01:10:00

오드리는 확실히 좋은 후배죠. 사실 원안에서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였지만요.

SiteOwner

2020-11-05 00:29:27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된다" 라는 구절이 정말 섬찟하게 느껴집니다.

핵전쟁의 공포를 묘사하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상황" 이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하긴 이 세계의 사람들이 엄청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하는 것이 현실세계의 핵전쟁에 품는 공포와 다를 이유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오드리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저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행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위기는 꼭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Papillon

2020-11-06 01:08:26

오드리는 굉장히 좋은 후배죠. 사실 어느 정도 의도를 가지고 좋은 사람으로 만든 캐릭터입니다. 결국 그 의도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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