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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운걸. 이렇게 순식간에 무력화될 줄이야!”
여자는 자기 앞에 쓰러져서 점점 자신을 향해 끌려오는 수영과 파비안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어때, 시작조차 못 해보고 싱겁게 져 버린 소감은?”
“아니, 시작은 아직 안 했지.”
점점 여자에게 끌려가던 수영이 여자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이렇게 내게 끌려오고 있는데!”
“헛소리? 좀 알아나 보고 말하셔.”
여자가 수영에게 뭐라고 대꾸해 보려는 그 찰나...
뭔가가 여자를 짓누르는 듯하다.
“이게 도대체...”
이번에는 반대로 그 여자가 점점 끌어당겨지고 있다. 그래도 수영과 파비안이 당한 것같이 일어설 수도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왜, 좀 베껴서 써 봤는데, 불만이라도 있나?”
수영은 몸을 털고 조금씩 몸을 일으켜세우며 말한다.
“베끼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지. 네 능력을 좀 베껴서 쓸 수 있다고. 아시겠어?”
“그래... 그런 임기응변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군.”
여자는 수영을 올려다보며 이죽거린다.
“하지만 알아 두라고. 내 능력은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걸!”
그 순간.
수영의 눈에 보인다.
책 몇 권이 공중에 떠 있다. 그것도 두툼한 전문서적, 논문집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수영은 또 알 것 같다. 책들 자체가 의지를 품고 있는 건 물론 아니지만, 마치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다. 곧바로 수영을 향해서, 날아들 것만 같이!
수영이 얼른 피해야겠다고 생각한 그 다음 순간...
퍽-
“으윽...”
뭔가가 어깨를 강하게 때렸다! 수영은 갑작스러운 타격에 어깨를 부여잡고 여자를 노려본다. 몸이 잠깐 휘청거릴 정도로 타격이 컸다.
“수영 씨!”
“아... 저는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 파비안 씨나 신경쓰세요.”
“아니, 수영 씨, 안 괜찮아 보이는데...”
바로 또 그때...
퍽-
“컥!”
이번에는 파비안 쪽이다.
“파비안 씨!”
수영이 어깨를 부여잡은 채로 돌아보니, 파비안이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를 악물고, 정강이를 부여잡고 있다. 파비안의 앞에는 양장본 책 한 권이 널브러져 있다!
“윽... 수영 씨... 일어서지...”
“파비안 씨! 파비안 씨!”
일어서지 못하는 파비안을 보고 수영이 막 파비안에게 다가가려는데...
휭-
뭔가가 날아오는 듯하더니...
퍽-
이번에는...
이번에는 등이다!
“크... 헉...”
수영의 등을 책이 강타하자마자, 수영은 바닥에 엎드려지고 만다. 또다시, 조금 전과 같은 무게가 수영을 짓누르며, 여자를 향해 끌어당긴다!
그 시간, 장 박사의 사무실 밖의 복도.
“보안요원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네.”
메이링이 복도 양옆을 돌아보며 초조하게 말한다.
“저기, 미레이 씨.”
한창 능력을 사용할 태세를 취하던 레아가 뒤돌아보며 말한다.
“싸우기 적합하지 않은 능력이라고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좀 뭐라도 해 볼래요?”
“그래, 알았어.”
문앞에 서 있던 메이링도 레아와 호렌의 옆에 선다.
“왔네요.”
호렌이 말하는 순간, 보인다.
일행이 아닌, 엉뚱한 곳을 둘러싼 보안요원들이.
메이링, 레아, 호렌의 환각을 둘러싼 보안요원들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셋의 환각을 노려본다. 셋의 환각은 덜덜 떨고 있다. 역시나!
“환각이 역시 효과가 있군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지, 호렌.”
환각의 효과는 꽤 강력하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보안요원들이 어느새, 메이링, 레아, 호렌을 돌아보고 있다. 속았다는 듯, 분한 얼굴을 하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쩔 수 없네요. 환각의 실체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
몇 초 안 걸릴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때, 레아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보안요원들이 하나같이 권총을 차고 있고, 통신용으로 보이는 장비들을 귀에 끼고 있는 모습이. 저것들은 분명 쇠붙이들일 터!
“과연, 저 보안요원들의 쇠붙이는 쓸 만하려나.”
레아가 중얼거리는 다음 순간.
붙어 버렸다.
일행을 향해 다가오려던 보안요원들이, 서로 붙어 버린 것이다.
정확히는 권총, 통신장비들끼리 자력 때문에 서로 붙어 버려서 그것 때문에 옴짝달싹도 못 하게 되어 버린 것이기는 하지만.
“됐어... 이쪽 상황은 대충 정리됐네.”
“미레이 씨, 또 뒷짐만 지다가 숟가락만 얻는 건 아니죠?”
“아니지, 그런 건.”
메이링은 곧바로 와서 요원 중 한 명의 통신장비를 잡는다. 통신장비를 벗기려고 하자, 그 보안요원이 메이링의 팔을 거칠게 잡는다. 하지만 그런 저항도 잠시, 요원의 통신장비는 손쉽게 벗겨진다. 메이링은 곧바로 그 통신장비를 귀에 껴 본다.
그런데...
“뭐... 뭐야, 이거!”
메이링이 들고 있던 통신장비를 황급히 내던진다. 잠깐이었지만, 얼굴이 확 일그러졌을 정도다.
“어? 왜 그래요?”
메이링은 대답하는 대신, 레아와 호렌 앞에 그 통신장비를 내던진다.
“이게 왜요?”
“한번... 한번 껴 보면 알 거야...”
메이링이 던진 통신장비를 호렌이 껴 보자...
“아... 아니... 이건 도대체..”
호렌도, 그 통신장비를 귀에 끼자마자 바로 그걸 내던져 버린다.
“왜 그래, 호렌?”
“레아 님, 저 장치에서 계속 명령을 내리고 있어요. 입에 담지도 못할 끔찍한 말로요.”
“일단... 일단 저 통신장비를 증거로 수집해야겠어.”
메이링이 호렌이 내던진 통신장비를 가리키며 몸을 떤다.
“안에서 나오는 명령도 녹음할 수 있으면 좋을 테고.”
“괜찮아요?”
레아가 메이링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며 말한다.
“아,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은데...”
“우리도 우리지만, 사무실 안에 들어가 봐야 하지 않나요?”
“호렌 씨 말도 맞아요. 한번 들어가 보는 게 좋겠네요.”
메이링은 주머니에서 AI폰을 꺼내고 발레리오가 준 마스터키를 다시 켠다.
“하지만 일단 들어가기 전에, 이 녀석들부터 확실히 해결해 놓는 게 좋겠어요.”
“네...”
“알겠어요, 미레이 씨.”
메이링이 레아와 호렌에게 케이블타이를 나누어 준다. 이어 세 사람은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기에 앞서, 케이블타이로 보안요원들의 손목을 묶기 시작한다.
장 박사의 사무실 안.
“자, 어때, 잔꾀만 부리다가 또다시 당한 거지?”
얼룩무늬 재킷을 입은 짧은 머리의 그 여자는 또다시 바닥에 엎드러진 수영과 파비안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너희들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나 한 명을 이기지 못한다는 건 이렇게 잘 확인했을 거야!”
“......”
수영과 파비안은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그 짧은 머리의 여자를 올려다볼 뿐이다.
“이름 모를 산발한 양반, 그리고...”
시선을 다른 곳에 두며 말하던 그 여자가 파비안을 홱 내려다본다.
“너, 배신자 녀석.”
“자꾸 아까부터 그러는데, 배신자, 배신자 할래?”
파비안이 ‘배신자’라는 말을 듣자 목소리가 확 올라간다.
“말했지, 나는 누군가를 배신하거나 한 적이 없다고!”
“아닌데. 너는 내게 새로운 생명을 준 그분을 배신했거든. 맞지 않나?”
“치잇...”
파비안은 당치도 않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내가 한 게 배신이면, 그 장 박사라는 녀석이 한 건 대역죄다.”
“넋두리는 잘 들었어. 이제는 내가 마무리를 할 시간이겠지?”
또다시, 수영과 파비안에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곳으로부터 오는 느낌이 아니다. 다름아닌, 머리 위에서도!
수영과 파비안이 위를 올려다보니...
책! 책 두 권이...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다!
“파비안 씨! 피해요!”
“아니... 저는 걱정 마시고, 수영 씨나 피하세요... 저는 그래도 좀 여유롭게 피할 수 있잖아요!”
“저야 저 녀석의 능력을 베껴서 뭐라도 할 수 있긴 한데 파비안 씨는 여기서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호오. 그것참 감동적인 대화인걸?”
수영과 파비안을 내려다보던 여자가 여유롭게 말한다.
“그럼 이제 내가 문제를 하나 내지. 대답해 보겠나?”
“뭐... 뭐냐?”
“내가 이 책들을, 누구한테 먼저 떨어뜨릴지 한번 맞혀 보라고?”
“말할 것 같으냐...”
“그래? 좋아. 말하지 않으면, 나한테 너희의 목숨을 맡기겠다는 이야기겠네?”
“착각하지 말라고! 누가 너한테 목숨을 맡긴다고 했냐?”
“그래? 그러면...”
여자가 말을 하려다 말고 뒤를 돌아본다.
“훗, 흐흐흐, 흐흐흐흐...”
“왜 웃는 거지?”
“산발한 양반, 너의 생각은 읽혔다고.”
“뭐가 읽혔다는 거지?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 다리 뒤쪽에서 나온, 이것들은 뭐지? 이건 내 능력으로 여기 놓은 게 아니야.”
말을 마친 순간, 여자가 수영과 파비안의 눈앞에 뭔가를 집어던진다.
그건 책장에 꽂혀 있던 논문집 2권.
“나한테 이런저런 말을 걸고 나서 때를 봐서 내 뒤를 노릴 생각이었나 본데, 어림도 없지. 술수가 밝혀진 이상, 나도 더 이상 너희들과 노닥거리지는 않을 거다. 이 자리에서 너희들을 처리해 주겠다!”
순간, 수영과 파비안의 머리카락이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몸은 더욱 아래로 눌러져, 움직일 수 없다!
“이봐, 이봐! 나는 아직 너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고! 이렇게 끝낼 수는...”
“닥쳐라, 배신자!”
뭐라고 말해 보려는 파비안에게 여자가 호통친다.
“그런 건 저승에 가서 알면 된단 말이다!”
“잠깐, 좀 들어 봐!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파비안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는 공중에 고정해 두었던 책들에 걸린 능력을 해제할 준비가 되었다...
그 시간, 미린고등학교.
부 활동까지 다 끝난 현애, 세훈, 주리가 교문 앞에 서 있다.
“그래서, 메이링 씨하고, 레아가 거기 VP재단 본부로 갔다고?”
“아... 맞아. 아까 내가 말해 주려고 했는데.”
현애가 AI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여주며 말한다.
“이것저것 알아낼 게 많을 것 같다더라. 이따가 오면 말해 주겠대.”
“정말? 뭘 알아내려고 그러는 거지?”
“내 생각에는 아마 장 박사하고 엘더 박사님에 대해서 정보를 좀 얻어내려는 것 같은데. 너는 안 그렇게 생각해, 세훈아?”
주리의 말에 세훈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사실, 요즘 상황이 워낙에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예상은 어느 정도 하기는 했다.
“그거 왠지 중요한 거 같은데 우리도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가기에는 너무 늦었지!”
현애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주리가 곧바로 말한다.
“그저 우리는 메이링 씨하고 레아가 잘...”
주리가 막 뭔가 말하려던 그때.
“너희들, 여기 있었네.”
어느새, 누군가가 셋에게 말을 건다.
돌아보니 교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앨런이다.
“어, 앨런 씨는 왜 여기에 오신...”
“너희들한테 전해 줄 말이 있어서. 일단은 블랙 실드 카페로 가 볼래?”
“블랙 실드 카페요? 좋아요.”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2-28 21:20:24
역시 예상대로네요. 수영이 상대방의 능력을 열화카피라도 어느 정도 모방이 가능한 게 힘이 되네요.
수영과 파비안을 끌고 가는 여자가 최소한 그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게 되었어요. 단 그들도 수난을 겪고 있지만...
대체 통신장비에서 나오는 명령하는 목소리가 무슨 말로 되어 있길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네요. 오늘은 노상전도를 시도하려는 사람도 있어서 특히 불쾌했다 보니 안 좋은 기분이 배증하는 듯...
시어하트어택
2020-12-30 23:47:22
정확한 명령어 같은 건 아직 설정은 안 해 봤지만, 적개심과 증오심을 불어넣는 말들을 있는 대로 상상하며 저 장면을 만들어 봤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보이는 저런 표현들도 모아 놓고 보면 정말 끔찍한 말들이 많거든요.
SiteOwner
2021-02-11 15:35:17
어설퍼도 대략 흉내낼 수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꽤나 도움이 된다는 게 증명되는군요.
수영이 이럴 때에는 의외로 활약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무리 초능력 운운해도 역시 물리적인 구속이 최고인 법이지요. 케이블 타이같은 것은 정말 풀기 어렵다 보니. 그러고 보니 미국 영화에도 그게 자주 나오길래, 저는 그것을 한때 플라스틱 수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말로 내려지는 명령...
저를 포섭하려고 했던 자들이 쓰던 말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2-11 23:29:12
케이블타이는 가지고 다니기도 쉽고, 풀기도 어렵습니다. 언제 한번 그걸 제 작품에 넣어 볼까 했는데, 이렇게 쓰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