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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애와 소니아, 두 사람의 손이 한 곳에 모인다.
“응? 뭐야...”
소니아는 믿을 수 없는지 온몸을 벌벌 떤다.
현애는 주먹, 소니아는 가위. 소니아가 졌다. 반론의 여지도 없이 깔끔하게 승부가 났다.
“뭐냐고... 왜 저 녀석이 주먹을 내는 거냐고!”
“뭐기는.”
마치 금방이라도 온몸을 벌벌 떨며 미쳐 날뛸 것 같은 소니아를 안쓰럽게 보며 현애가 말한다.
“승부가 났잖아. 이제 좀 인정하지 그래.”
“분명 보자기였을 텐데... 분명히!”
“하지만 봐봐. 주먹이잖아.”
소니아가 다시 봐도, 현애가 낸 건 분명한 주먹이다... 현애가 쥔 주먹이 약간 떨리는 것 말고는, 트집잡거나 할 것도 없다.
“그럼 설마...”
소니아는 비앙카를 홱 돌아본다.
“네 녀석 짓이냐!”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현애 양의 오른손 좀 자세히 볼래?”
비앙카의 말에 소니아가 현애가 쥔 오른손 주먹을 자세히 보니...
과연.
주먹을 쥔 손을 이상한 기운이 둘러싸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자식이 속임수를 써...”
“속임수? 그렇게 말하면 섭섭한데, 소니아. 똑바로 말해 줘야지. 이런 건 ‘전략’이라고.”
“우... 우... 웃기지 마라!”
애써 아닌 척하려고 하지만 소니아의 표정, 그리고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다. 비앙카의 자세가 바뀌었다는 걸 알자, 소니아의 두 눈도 떨린다. 뒤의 배경에 보이는 하늘이 점점 우중충해지고, 매우 과장된 형태의 언덕과 구름, 해 역시 형태가 뭉개진다. 거기에 더해서, 쓰러져 있던 미켈 역시 머리를 흔들며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
“다시 한번 대결하면... 너희쯤은 내가...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잘 알아.”
현애가 한 발 앞으로 다가서서 말한다.
“하지만 너는 마음속으로 졌다고 인정했지. 그러니까 이렇게 네 능력이 해제되는 참이고.”
“이... 이... 이런...”
하지만 소니아에게도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어차피 벌어진 건 벌어진 것이니까.
“자, 네게 선택지를 줄게. 한번 골라 봐.”
“선택지라니 무슨...”
“천천히 얼래? 아니면 한번에 확 얼래?”
“하... 한번에 어는 게 낫지 않을까...”
소니아의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현애를 향해 한 번만 봐 달라는 애원읜 눈빛을 보내는 건 물론이다.
“아니, 한 번에는 안 되지. 네가 나를 그래도 걱정해 준 걸 봐서, 정신은 말짱하게 해 줄 거야.”
“정신은 말짱하게 해 준다는 게 대체...”
되물으면서도, 소니아를 둘러싼 공기가 점점 싸해진다는 게 느껴진다. 반사적으로 두 이가 덜덜거리며 부딪치고, 본능적으로 그걸 피하려는 듯 소니아의 온몸이 점점 움츠러든다.
“잘 생각해 볼래? 내가 이제 뭘 하려고 하는지를.”
“서... 설마... 설마...”
소니아의 얼굴이 공포에 질린다.
“좀... 다시 생각해... 보면...”
“아니, 안 돼. 이미 시작했거든.”
순간, 소니아는 땅에 딛고 선 두 발의 감각이 점점 없어져 간다는 걸 깨닫는다. 두 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해도, 발이 땅바닥에 붙어 버려 움직이지도 않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바깥에 뭐라고 도움을 요청해 보려고 해도... 사각이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뿐더러, 고개도 힘겹게 돌려야 겨우 밖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여기... 여기 좀 도와...”
소니아가 소리라도 쳐서 도움을 요청하려 하지만, 그것마저도 되지 않는다.
“좀 가만히 있어.”
바로, 비앙카가 와서 소니아의 입을 봉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시끄러워서 어디다 쓰겠어? 3시간 정도만 있으면 다 괜찮아져.”
“읍... 으으읍...”
“여기서 있던 일을 이야기만 해 봐. 그때는 네 목숨이 남아나지를 않을 테니까. 알겠어?”
“으... 으으읍...”
“자, 가자. 다른 사람들이 너 찾을라.”
머리를 제외한 온몸이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소니아를 놔두고, 현애와 비앙카가 막 방을 나서려는데...
“어우, 너희들... 괜찮았어?”
미켈이 머리를 흔들면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
“큰일 날 뻔했잖아.”
“너야말로.”
비앙카가 머리를 어루만지는 미켈을 보더니 바로 미켈에게 달려간다.
“정말 괜찮은 거야?”
“아, 괜찮지. 내가 무의식에라도 초능력을 쓰거나 할 일은 없었잖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초능력을 쓸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니?”
그 말을 듣자, 미켈은 바로 비앙카의 귀에 입을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으... 으응?”
“왜 그래, 비앙카 씨?”
현애가 뭐라고 더 물으려는 순간, 비앙카는 현애와 미켈더러 얼른 나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렇게 방에서 나와서, 미켈은 모자를 벗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하마터면 내가 미켈이 아니라는 걸 들킬 뻔했다고!”
“뭐... 그럼 너, 가브리엘이야?”
‘가브리엘’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그러면, 미켈은 어디 있는데?”
“쉿!”
가브리엘은 손가락을 입에 댄다.
“지금은 조용히 하고 있어. 여기 손님들한테 그런 말이 들리면 어쩌려고!”
“그래... 네가 미켈 행세를 하고 있으면 되겠는데...”
한편 그 시간, 하층부의 발굴 현장.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너!”
작업에 들어가려는 작업자들 한쪽에서, 자라가 파라를 세우고 묻고 있다.
“아까도 주차장에서 보였고, 지금은 아예 이렇게 작업자 행세까지 하고 있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여기가 네 일하고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건... 뭐냐면...”
파라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린다.
“뭐 때문에 이렇게 헬멧까지 쓰고 여기 있는 건데?”
“......”
“그렇게 말 안 하면, 강제로라도 끌어낼 거다?”
“저기... 소장님, 제가 말씀을 좀 드리자면...”
옆의 비토리오가 뭐라고 해 보려 하지만...
“당신도 마찬가지야! 몰래 들어온 주제에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그러니까요, 설명을 좀...”
“좀 닥쳐! 여기 온 목적을 말하지 않으면, 둘 다 각오하고 있으라고. 응?”
자라가 그 정도로 세게 나오자, 아무리 파라가 담력이 세더라도 안 떨릴 수는 없다.
“야... 야, 자라, 그러지 말고, 말로 좀...”
“지금 말로 하고 있잖아! 그럼 주먹부터 나가는 걸 원하냐?”
자라가 막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응? 방금 뭐지?”
자라가 급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다. 조금 전까지 비토리오와 파라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만 같았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금세 자라의 얼굴에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비토리오와 파라의 것과 같은 불안감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뭐야, 왜 이래?”
자라의 목소리는 벌벌 떨린다.
“땅바닥에 뭐가 있나... 설마... 공격인 건가?”
비토리오와 파라를 놔두고, 그는 급히 자리를 뜬다.
“왜 갑자기 나가는 거죠, 비토리오 씨?”
“지금 제 감이 맞다면... 강력한 초능력자가 근처에 있군요.”
“강력한 초능력자라니요?”
“말하자면... 슈뢰딩거 그룹의 강력한 초능력자요. 그러니까 방금 저 자라라는 사람을 공격하는 거죠.”
그리고...
키릴은 벽에 기대서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여보세요’ 소리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에이!”
키릴은 전화에 대고 열을 내다가,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바닥에 내던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는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아니, 소니아까지 당한 건가? 이럴 리가 없는데...”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자, 키릴의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느긋하게 지켜보던 작업 현장도 도저히 못 지켜보겠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서, 조나가 쉬고 있는 방을 찾아간다.
“야, 조나! 너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콜록... 유물이 나올 것 같았던 제10호 사원은 나오지도 않았고, 제12호 사원은 아직 답보상태지. 내 말이 맞지?”
“리뷰나 하지 말고, 응, 네 전략을 좀 이야기해 보라고!”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일단 네가 파울리 패거리가 작업하는 곳에 가서 적극적으로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거기 어차피 지금 감독하는 사람도 없잖아?”
“그 적극적인 게 뭐냐니까, 도대체...”
잔뜩 열을 내 가며, 키릴은 다시 전화를 건다. 이번에는 수민에게다. 이번에도 키릴은 불안하게 숨을 쉰다. 그래도 다행히, 전화는 한번에 걸린다.
“여보세요?”
“아, 단장. 아무래도 내가 그 파울리 패거리하고 직접 승부를 봐야 할 것 같아.”
“뭐?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키릴이 다짜고짜 말한 것 때문인지 전화 너머의 수민은 적잖이 당황한 목소리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내가 테르미니 퍼스트하고 직접 승부를 보겠다고!”?
“야, 직접 승부를 본다고? 안돼. 내가 네 능력은 잘 알고 있지만, 그 녀석들도 필사적일 거야. 네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고!”
“괜찮아. 그런 것쯤은 각오했어.”
“야, 키릴!”
수민이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확 올라간다.
“네 목숨을 그렇게 쉽게 내놓을 생각이야?”
“이미 아즈탄하고 나오미, 에곤이 당했잖아. 소니아도 지금 소식이 없고. 나라도 뭘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키릴이 꽤나 세게 나오자, 수민도 결국은 키릴의 요청에 동의한다.
“알았어. 대신 네가 무슨 일을 당해도, 나는 책임 못 져.”
전화를 끊자마자, 키릴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작업 현장 밖으로 나선다.
“공기가 심상치 않군. 소니아가 좀 잘 막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키릴이 불안하게 중얼거린다. 숨은 여전히 빠르게 쉬고 있다.
“소니아가 좀 막아 준다면야 다행이겠지만, 만약 소니아가 당했다면... 그건 생각도 하기 싫군... 일단은 우리 작업 구역에나 집중해야겠어. 테르미니 퍼스트 녀석들의 구역을 탈취하는 건 그 다음의 일이고...”
막 작업 구역으로 복귀하려던 그때, 키릴은 뭔가 직감한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키릴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뭐야, 설마... 이 녀석들, 가까이 오고 있는 건가!”
키릴은 침을 꽉 삼킨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래... 시간이 다가왔군. 한 판 붙어야겠어...”
그리고 그 시간, 사원 하층부의 다른 통로.
자라는 자신을 향해 오는 불길한 힘을 찾아 통로를 걷고 있다. 발바닥 밑에서 오는 이 힘, 뭔지는 몰라도 자라를 쫓고 있다...
“불안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고.”
통로를 혼자 걷는 자라 역시 거친 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리브 녀석, 어느 쪽을 먼저 노릴까? 보나마나 나 아니면 도레이겠지... 제발 좀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고 걷는데, 이상하게도 걸음걸이가 점점 느려지는 것만 같다. 아까는 열 걸음이면 갔던 거리를 지금은 열다섯 걸음은 가야 겨우 갈 수 있을 정도다. 거기에다가 이 걸음걸이는 점점 더 느려지고 있다...
“뭐야? 땅바닥이 설마 나를 붙잡고 있는 건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9-08 12:57:38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게 있죠. 용병술은 속이는 데에 있다[兵者詭道也]. 바로 그거네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에서도, 타인의 마음을 읽는 테렌스 다비에 대해서 쿠죠 죠타로가 직접 게임기의 컨트롤러를 조작하지 않고 죠셉 죠스타의 허밋 퍼플로 조작하게 해서 예측 자체를 불가능하게 해버린 게 나오죠. 그게 생각났어요.
쌍둥이인 것이 정말 유용하네요, 미켈과 가브리엘 형제는. 이렇게 궤계를 쓸 수 있는 건 역시 쌍둥이니까 가능한...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못 본다죠[逐鹿者不見山].
키릴이 딱 그 형국. 좋은 결말은 못 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고 있어요.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시어하트어택
2021-09-12 22:11:53
사실 그 에피소드에서 따 온 게 좀 있긴 합니다만, 가위바위보 같은 경우도 제가 어릴 때 보면 잽싸게 바꾸어 놓고 처음부터 그걸 냈다고 우기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거기서 아이디어가 또 떠오른 거죠.
SiteOwner
2021-10-07 19:36:05
속임수와 전략은 실질적인 차이를 논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사실 엄밀히 구별하자면 그러합니다. 내가 당하면 속임수이고 적이 당하면 전략인 것.
어릴 때부터 쌍둥이인 형제자매를 많이 봤다 보니 파울리 형제가 서로 역할교대하는 것도 참 재미있게 보입니다.
그나저나, 땅이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 정말 싫군요. 한때나마 느껴본 적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시어하트어택
2021-10-10 22:39:51
사실 둘 다였죠. 소니아가 독심술을 쓰니까,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속임수였습니다. 그게 전략이고요.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지요.
땅이 붙잡고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오너님이 겪으신 안 좋은 경험이란... 저도 그런 느낌은 생각하면 할수록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