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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읏!”
하층부, 도레이가 맡은 작업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납작 엎드린다. 지진파가 온 지하 공간을 흔든다. 지면에 놓인 작업 도구들도 흔들리고, 유물을 쌓아 놓은 상자들 역시 이리저리 요동쳐서 내용물들이 마구 쏟아지려고 한다.
“어떠냐? 땅이 흔들리니까 아주 정신을 못 차리겠지?”
키릴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도레이가 보니, 키릴만이 홀로 흔들리지 않고,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다. 마치 그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도레이! 내가 네 녀석의 머릿속을 한번 묘사해 볼까? 한참 내게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내가 이 땅을 흔들어 버리니 머릿속도 딸기셰이크마냥 아주 휘저어져 버려서 뭐가 뭔지도 생각해 볼 틈도 나지 않지? 안 그래?”
“아윽... 마음대로...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내가 너를 칠 수 없어서 안 치는 것 같아?”
“하, 그 용기 한번 가상하군. 온통 흔들려서 남 생각할 틈도 없는데, 이토록 나를 생각해 주다니. 여기 바리오 녀석도 생각해 주면 더 좋을 텐데!”
“뭐, 바, 바리오?”
“그래.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게 달려든다 하더라도, 그럴 수 없지.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했다 하면, 이 녀석을 어떻게든 만들어 줄 테니!”
키릴이 말을 마치자마자, 바리오의 흙 위로 내민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보인다. 마치 폭풍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풀이나 나뭇가지와도 같이 보인다. 그리고 도레이의 눈에 또 보이는 게 있다. 의식이 있다. 바리오의 의식이. 그것도 희미하지는 않게!
“바, 바리오!”
도레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리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의 안전은 살피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그걸 보자마자, 키릴의 입이 딱 벌어진다.
“기다렸다! 완전히 뒤집어 주마!”
순간 안 그래도 흔들리던 지면이 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아까가 진도 4 정도의 지진이라면, 지금은 진도 7 정도로 느껴진다. 지면과 벽이 갈라지기까지 한다. 땅바닥 위에 더 버티고 설 수 없다! 그래도 도레이는 멈추지 않는다. 몇 초 정도면 키릴과 격돌할 기세로.
“지금은 그렇게 달려들지만,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네 녀석도, 바리오도, 이 지진과 그 여파에 파묻히는 거다!”
“하, 해 보라고. 얼마든지.”
“허세 고맙다! 이제 3초! 2초!”
키릴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지르는데...
“버티지 못하는 건, 네 쪽이라고.”
도레이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뭐... 뭣?”
“그렇게나 땅을 흔들어 댔는데, 땅이 버티겠어?”
과연, 키릴이 딛고 선 땅은 완전히 흐물거려서 밀가루 반죽처럼 되어 버렸다. 키릴 자신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는데, 한순간에 확 물렁거리게 된 것이다.
“네 녀석이 딛고 선 곳의 습도를 확 높여 줬더니, 금세 이렇게 되지 뭐야!”
“이... 이런...”
키릴은 중심을 잡지 못하는지 이리저리 버둥댄다.
“자, 이제 네가 인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적어도 운명을 결정하는 건, 네 녀석이 아니라는 걸!”
“절대... 절대 포기 못하지...”
키릴은 균형을 잃고 버둥거림에도, 오히려 그의 얼굴은 오기 때문인지 더욱 일그러진다.
“태양석도... 너희들의 운명도!”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는걸.”
도레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키릴의 옆에서 들려온다.
“단 이 녀석은 빼고.”
어느새, 바리오가 땅속에서 나와 있다. 분명히 키릴이 바리오를 꽁꽁 묻어 두었을 위치는, 어느새 모래더미로 바뀌었다!
“네 능력으로 아무리 땅을 지배할 수 있다고 쳐도, 습도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뭘 그렇게 믿고 나댄 거야.”
“개... 개자식... 태양석을...”
“얼른 땅속으로 꺼져 버려.”
키릴이 버둥거리는 걸 본 도레이는 얼른 발차기를 한 방 키릴의 얼굴에 먹인다. 키릴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마치 침몰하는 배처럼, 땅속으로 잠기듯 사라져 버린다.
“후...”
도레이는 스르르 깊은숨을 내쉰다. 마치 큰 짐을 덜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야, 도레이! 너 괜찮은 거야?”
“어... 바리오, 너야말로.”
자기 자신도 성치 못한 상황에서 오히려 바리오가 도레이를 걱정하자 도레이는 금세 자리에서 일어선다.
“우선 네 몸 간수나 좀 해. 남 걱정해 주기 전에.”
“그래... 그건 그런데...”
바리오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야, 너 왜 불안한 거야? 리브 녀석은 내가 처치했잖아? 거기에다가 이제 태양석이 나올 때도 다 됐고.”
“근거 없는 불안감이 아니야.”
“그럼 뭔데?”
“리브 녀석, 아직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아니, 아직도? 그럼 땅속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거잖아?”
한편 그 시간. 미켈과 자라가 통로를 걷던 중, 벽면에 미세하게 금이 간 것을 발견한다.
“뭐야, 여기 왜 군데군데 금이 가 있어?”
미켈이 멈춰 서서 군데군데 간 금을 가리킨다.
“어디, 어디?”
“봐봐. 아까 땅이 좀 많이 흔들려서 그런 것 같은데...”
“여기는 지진 날 만한 데 아니잖아.”
“그러게. 또 리브 녀석 짓인가...”
미켈의 입에서 ‘리브’라는 이름이 나온 그때.
“뭐야,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건가!”
다시, 키릴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린다... 조금 전보다 훨씬 음침해진 음색, 그리고 철철 흘러넘치는 오기까지.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찾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래. 다시 내가 돌아왔다!”
“리브...”
선글라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키릴이 선글라스를 통하지 않고 직접 노려본다는 게, 그렇게 섬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미켈은 태연히 말한다.
“자신감이 아주 철철 흘러넘치시나 보군.”
“근거 없이 그러는 건 아니니까. 태양석을 얻으려면, 나는 무슨 수든 쓸 거거든.”
“‘무슨 수든’이라니?”
“몰라서 묻나?”
키릴이 별안간, 통로 위쪽을 가리킨다. 키릴이 가리킨 쪽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위에 뭐가 있는지, 아나?”
“설마!”
미켈은 다시 한번 사원 하층부의 구조를 떠올려 본다. 지금 미켈과 자라가 서 있는 곳, 그 바로 위에는 상층부에서 하층부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이 자식, 당장 그만두지 못해!”
“내가 왜 그만두겠나? 나는 태양석을 얻으려면 무슨 수단이든 쓸 거야. 나뿐만 아니라, 우리 슈뢰딩걱 그룹 모두의 염원이기도 하고. 너희에게 넘겨 줄 수는 없어. 설령 너희들이 그걸 발굴해 낸다고 해도, 너희는 그걸 쉽사리 가져가지는 못할 거다.”
“무슨 뜻이냐, 리브?”
“호오, 자라? 궁금하지? 내가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 답은 멀리 있지 않지. 이 위에 파울리의 손님들이 있다. 현명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파울리의 손님들의 목숨은 보장하지 못한다!”
키릴은 머리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를 내보인다. 특히 그의 웃음은 미켈을 향하고 있다. 대놓고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러셔?”
“어이, 파울리. 무슨 놈이 그렇게 대꾸를 잘 하나? 자기 손님도 버리고 온 주제에.”
“버리다니? 하, 틀렸어.”
미켈이 막 뭐라고 더 말하려던 때. 어느새 키릴은 누군가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있다.
“뭐? 야, 조나. 내가 있는 데로 지금 갈 거라고?”
“콜록, 아니, 내가 가만 있을 수는 없잖아...”
“닥쳐! 거기 그냥 가만히 있어!”
기침을 하며 말하는 조나의 목소리를 듣자 키릴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단장도 너 쉬라고 했잖아! 기침하면서 오면 모양새가 참 잘도 나오겠다. 오지 마. 오면 너도 같이 파울리 패거리하고 땅속에 묻어 버릴 테니까, 네 몸이나 추스르고 있어!”
키릴이 성을 내며 전화를 끊고, 다시 미켈을 돌아본다. 그 사이에 얼굴은 다시 조금 전의 비웃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계속 지껄여 보시지.”
“버리는 게 아니다. 잠시 맡겼을 뿐이지. 내 고객들도 지키고, 태양석도 가져갈 테니까.”
“하하하,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을 텐데? 태양석을 가져가려면 네 손님들은 죽을 것이고, 네 손님들을 살리려면 태양석을 내게 넘겨야 할 거야. 해 보시지?”
미켈이 초능력을 발산하려는 모습이 보이자, 키릴은 곧바로 머리 위로 올린 손가락을 벽에다 갖다 댄다. 곧바로 벽이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하는데...
“하,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네 녀석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거라고.”
“뭐?”
“각오는 되었냐, 키릴!”
키릴의 눈이 확 뜨이는 그 순간...
미켈의 주먹이 키릴의 얼굴을 강타한다. 키릴이 그렇게 나가떨어지나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의 얼굴에서부터, 점차 물렁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는 고무와도 같이, 그의 온몸이 흐물거리고 있다. 사람의 형태는 있지만.
그것을 놓치지 않고, 미켈은 흐물거리는 키릴에게 주먹을 몇 번 더 날린다. 흐물거리는 키릴의 온몸이 더욱더 흐물거리더니, 마침내 판타지에 나오는 슬라임이나 액체덩어리 같이 변한다. 미켈의 주먹질의 여파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건 물론이다... 물론 거기에 당해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에도 미켈을 노려본다.
“역사가 되어 사라져라.”
미켈이 눈짓을 보내자, 자라가 나선다. 조각난 키릴을 허공에 고정시키고는, 그대로 그 조각조각을 모두 땅속으로 파묻어 버린다. 그와 동시에, 조금씩 흔들거리던 진동도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던 미켈은 키릴이 땅속으로 사라진 그 자리를 1분 정도 지킨다.
“왜 그래, 미켈? 이제 가자고. 손님들한테 돌아가야지.”
“아, 참... 그렇지.”
미켈은 영 찜찜했던지, 키릴이 산산조각이 나 사라진 자리를 몇 번이고 돌아본다.
“숨은 끊어졌으려나.”
“더 감지되는 건 없어. 완전히 이 녀석은 끝이라고. 가자.”
그로부터 약 1분 후, 사원 하층부의 발굴 현장. 어느새 일행의 앞에 가던 가브리엘은 다시 미켈로 바뀌었고, 가브리엘은 원래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털끝도 보이지 않는다. 지진 때문에 잠시 엎드렸던 작업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발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뭐야, 지금 여기서 발굴을 쭉 하고 있던 건가?”
조제가 발굴 현장을 처음 보자마자 입을 연다. 한참 발굴을 하고 있다기에는, 사람들이 작업을 하다 만 것 같은 표정에다가, 현장도 조금 어수선하다.
“설마 우리, 세트장에 온 건 아니겠지?”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현애가 옆에서 핀잔을 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트장이라니. 그 말은 조금 아닌 것 같은데. 안 그래?”
“그렇다기에는 여기 사람들 행동이나 발굴 현장에 놓인 물건들이 좀 어색하잖아.”
“자, 자, 여러분!”
미켈이 일부러 조제에게 들으라는 듯 조제를 돌아보며 말한다.
“설명을 좀 드리자면, 방금 여기에서 조금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해서, 그걸 수습하느라 잠시 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 현재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작업 현장 한쪽에서는 자라가 다시 비토리오와 파라를 추궁하고 있다.
“말 안 해? 왜 왔는지 안 밝히면 이 자리에서 당신들...”
자라가 막 둘을 노려보며 엄포를 놓으려는데...
“혹시 책임자나 현장 소장님 계십니까?”
한 작업자가 목청을 높여 관계자를 애타게 찾는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9-26 19:29:41
우선, 운영진 권한으로 문서주소를 변경했음을 알려드려요.
이것은 게시물의 등록시각에 맞추어 데이터베이스를 편집한 것이고, 게시물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관여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니까 양해를 부탁드릴께요.
그럼 이제는 내용에 대한 코멘트.
엄청난 지진이네요. 진도 7은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진짜 경험하면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듯...
키릴은 리브라고 불리는 것을 진짜로 싫어하네요. 그렇게 부르니까 마치 즉시 소환되듯이 나타나는 거로 봐서는. 게다가 인성도 정말 혐오스럽네요. 왜 미켈이 인솔하는 아무 죄없는 관광객들까지 끌어들이려 하는 건지...
지진이 일시적으로 있었긴 했지만, 관광객이 발굴현장을 세트장같이 여기는 데에서 이미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어 보이네요. 과연 그게 뭘지...
시어하트어택
2021-09-26 20:27:54
키릴과의 싸움은 이제 끝났습니다. 꽤 격렬하고 긴 싸움이긴 했죠. 특히 지진까지 일으켰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까지 했으니까요. 어떤 분들은 좀 허무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SiteOwner
2021-10-16 12:15:51
키릴이 지진을 일으킨 것이 자신으로서는 회심의 일격이었을 것인데 그게 역효과가 나 버렸군요.
게다가 자기 성질을 못 죽이니 그 대신 자기 자신이 죽는 이 아이러니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답은 없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려고 그렇게 날뛰었는 것인지...
그리고 다시금 평온한 일상이 찾아왔군요. 그런데 그것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문제의 태양석이 나온 것인지...시어하트어택
2021-10-17 21:14:20
아무리 강력한 능력이라도 쓰는 사람에 달렸죠. 결국 그 능력을 잘 쓴 사람이 승리한 거고요. 키릴의 능력은 분명히 여러 사람을 혼자 능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단지 미켈의 일행이 자신의 능력을 더 잘 이용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