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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자라, 자라! 좀 진정해!”
미켈이 땅바닥에 주저앉은 자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지만, 자라는 오히려 더욱 큰 탄식을 입에서 흘린다.
“어떡할 거야... 태양석은 이제... 우리는...”
“괜찮아. 태양석은 여기 안 가져왔으니까.”
“어... 어?”
자라뿐만 아니라 바리오, 비앙카도 그 말을 못 믿겠다는 듯 미켈을 돌아본다.
“야,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야?”
“맞아. 그 사람들하고 지금 약속이 다 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우리가 원하던 상황도 아니었잖아? 안 그래?”
“어... 그거야 그런데...”
미켈과 크루들이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실례하겠습니다. 미켈 파울리 씨 되십니까?”
미켈이 돌아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뒤에 서 있다. 미켈은 순간 당황했는지 일어나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아... 예! 저를 찾으셨는지요?”
“그렇습니다. 여기서 만나는 것이었...죠?”
정장 입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당신이 발레리오... 씨?”
“아닙니다. 저는 그 분이 보내서 왔을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상황이 말이 아니겠군요. 태양석은 그럼...”
“무사합니다. 여기 가져왔으면 큰일났겠죠.”
미켈이 그렇게 말하자, 정장 입은 남자는 ‘그럼 그렇지’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미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한편, 쇼핑몰 지하 통로.
“허... 이제 추워진다.”
조제가 그렇게 말하며 몸까지 떨자, 현애가 그걸 보더니 지하통로 전체에 걸어 두었던 냉기 능력을 해제한다. 점점 다시 온도가 올라가더니, 아까의 적당한 온도로 돌아간다.
“쪄 죽거나 얼어 죽거나 둘 중 하나가 되는 줄 알았잖아.”
외제니가 농담조로 말하자, 현애는 바로 맞받아친다.
“그래도 빙하시대로 만들지는 않았잖아. 안 그래?”
“어... 그거야 그렇지.”
그때, 옆의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야, 야! 지금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응? 니라차잖아. 왜 그렇게 뛰어와?”
“다들 왜 그렇게 느긋해! 지금 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나 해?”
“야, 니라차, 진정하고.”
“왜!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데...”
막 얼굴을 붉히는 니라차에게 현애가 말한다.
“상황 종료됐어.”
“아니, 너는 그걸 어떻게 알고 그래?”
“안 뜨겁잖아. 나도 지금 더 이상 내 능력을 쓰고 있지는 않고.”
“어...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그럼 이제 다 끝난 건가?”
“뭐... 적어도 여기는.”
“그럼 이제...”
“뭐긴 뭐겠어. 다시 구경하고 노는 거지, 뭐.”
현애가 그렇게 태연히 말하자, 옆에 있던 세훈도 그 말에 조금 놀랐는지 화들짝 놀라며 말한다.
“야, 너 말을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여기 니라차 부모님이나, 시저 형은 무사한지 안 가 봐도 돼?”
“거기 메시지 봐.”
“으... 응?”
전화를 보니, 불과 30초 전의 사진에서도 니라차의 부모님과 시저는 사진도 찍고, 옷도 사고 즐길 건 다 즐기고 있다. 밖에서 지금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전혀 모르는 듯, 한껏 웃는 표정은 덤이다.
“걱정 안 해도 되지.”
“어... 그러네.”
잠깐 그렇게 몇 초가 흐르다가, 니라차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입을 연다.
“참... 그 털보 아저씨 못 봤지?”
“아니, 나는 쭉 지하에 있었는데 봤을 리가 있겠냐.”
현애는 그렇게 말하더니 ‘그럼 그렇지’ 하는 듯 입을 삐죽 내민다.
“그 털보, 나한테 다시 보이기만 해 봐. 그때는 아주 그냥... 온몸이 얼어 버리는 것에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순간적으로 주위에 일렁이는 찬 기운은 덤이다.
한편 그 시간, 쇼핑몰 근처의 큰 길가. 조나는 사거리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 그리고 여기저기 구겨진 셔츠는 덤이다.
“여보세요? 단장!”
“왜, 조나? 나 지금 바쁜데, 웬일이야?”
전화 너머의 수민이 귀찮다는 듯 말하자...
“하... 실패했어.”
“실패했다니 뭐가?”
“그 파울리하고 부하들이 거래하는 장면까지 좀 미행하면서 보고 가려고 했는데, 녀석들한테 들켜 버렸다고.”
“뭐? 야! 그걸 들켜 버리면 어떡하냐! 더군다나 거기는 좀 규모도 있는 쇼핑몰이었잖아. 그런 데서 들켜 버리면 안 되지!”
전화 너머의 수민은 조나의 예상대로 핀잔을 준다. 수민이 그렇게 나오자 조나도 질 수는 없었는지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어떤 녀석이 쇼핑몰을 다 태워 버리려고 해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 파울리 녀석을 쫓기 이전에 살고는 봐야 할 거 아니야!”
“하, 그랬던 거냐...”
전화 너머의 수민은 조나가 한심한 듯 실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금방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목소리가 다시 평소처럼 바뀐다.
“일단은 뭐, 알겠어. 그럼 여기서 미행은 끝내고, 내 이야기가 있을 때까지는 일단 대기. 알겠지?”
“아, 알았어, 단장. 그건 그렇고, 단장은 지금 어디 있는데?”
“이따가 이야기하지. 지금 우리의 통화 내용을 누군가가 엿들을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그럼 나 끊는다.”
전화를 끊고서 조나는 잠깐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이윽고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어슬렁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그걸 승합차 안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푸른 작업복을 입고 푸른 헬멧을 쓴 네 명의 남자들. 전날 태양석을 인수해 가려다가 저지당한 그들이다.
“저 녀석, 맞지? 슈뢰딩거 그룹의 조나 피츠조지.”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조나를 가리키며, 아니꼬운 표정을 짓는다.
“저 녀석도 분명 쇼핑몰 안에 있었는데, 저렇게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질라니도 실패했군!”
그렇게 말하는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아쉬워하기는커녕 입꼬리까지 올라간다.
“야, 너는 왜 그렇게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특전대원이 실패했으면 여간 심각한 상황이 아니야. 그런데 왜 웃는 거야? 응? 네 녀석은 정신이 있어?”
“아니죠. 제 말을 잘 들어 보라고요.”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질색하자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차분하게 말한다.
“이건 우리가 공을 세울 기회예요. 우리 수령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을 거라고요. 특전대가 못 한 걸 우리가 해내면,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참 너답다. 시키지도 않을 걸 하다가 또 사고 치면 수령님이 참 좋아하시겠다.”
“아니, 지금은 독자 행동이라도 해야 겨우 태양석을 얻을 수 있을 판인데...”
“일단 명령을 기다리자고.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끝났어.”
조수석에 앉은 남자의 말에,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할 수 없다는 듯 등을 시트에 파묻는다. 잠시 후, 승합차가 어디론가 출발한다.
오후 3시, 테르미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한적한 주택지에 있는 한 저택.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다른 저택들보다는 반 층 정도가 높고, 다른 저택에 비해 50m 정도는 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벽돌과 유리를 사용해 지은 건물은 조화롭기는커녕 건축가의 미적 감각이 의심될 정도로 위화감을 풍긴다. 저택에 딸린 정원은 비교적 평범하지만, 기괴하게까지 보이는 저택 때문인지 정원도 그렇게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거기에다가, 여기저기 파헤쳐진 자국까지 보인다. 정원 여기저기에 뭔가를 파묻었다가 서둘러 파헤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게 무엇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호오, 여기인가?”
로만 칼라 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한 남자가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곧바로 저택 안에서 불어온 황량한 공기가 남자의 얼굴을 때린다.
“뭐야, 기척이 없군. 하긴, 녀석이 옮긴 지 3개월 정도 됐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는다. 선글라스 안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다름 아닌 슈뢰딩거 그룹의 단장, 수민의 얼굴이다. 수민은 대뜸 저택의 현관문을 열어 보려고 시도하지만, 예상대로 현관문은 굳게 잠겼다.
“그래도 머리를 안 쓴 건 아니기는 한데... 이중 삼중으로 잠가 두고 창문도 이리저리 막아 놓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수민은 메고 있는 가방에서 바로 뭔가를 꺼낸다. 소형 기폭장치, 그리고 폭약이다. 여기저기 살피던 수민의 눈에, 지하실 입구가 눈에 띈다.
“됐어. 저기 정도면...”
기폭장치와 폭약을 연결해 지하실 입구에 던져넣은 다음 시간을 기다린다. 10초 후면 폭발하는데도 1시간이 지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확히 10초가 지나자...
쿵-
소음기를 달아놔서 귀를 찢을 정도의 폭발음은 나지 않는다. 대신 수민이 딛고 선 지면이 흔들릴 정도는 된다. 그 자리에 가만히 엎드린다. 엎드리고 나서 약 5초 정도가 지난 후...
“흠, 됐나?”
수민은 바로 지하실 입구로 가 본다. 수민의 생각대로, 지하실 입구는 박살나서 벽돌과 철문의 파편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됐네...”
바로 수민은 지하실로 들어간다. 저택 내부는 텅텅 비어 있다. 벽지는 여기저기 뜯긴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바닥에는 유리 파편, 쓰레기 등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다. 불을 켜서 여기저기 살핀다. 여기저기 뜯어낸 흔적이 더욱 선명하다.
“나름대로 보안은 철저했나... 단서 하나라도 좀 찾아야 할 텐데...”
몇몇 구역은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곳은 손전등을 켜고 찾아보는데, 그렇게 해도 수민이 찾는 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봐도.
그렇게 지하실을 뒤지고, 1층에 올라가고, 2층까지 뒤져 봐도, 수민이 원하는 단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 남자가 머물렀을 서재를 뒤져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수민은 허탈한 듯 자리에 주저앉는다.
“이 녀석, 너무 철저히 없애 버렸나... 도대체 어딜 뒤져 봐야 나오냐...”
그러던 수민의 눈에 뭔가 하나 보인다.
오른쪽 구석의 책장 밑에, 조그만 전자기기 하나가 푸른 빛을 발하고 있다. 철저하게 숨겨져 있어서 수민의 자세처럼 쭈그려 앉지 않으면 찾기가 힘든 위치다. 팔을 길게 뻗어 봐도 손은 닿지 않는다.
“호오... 녀석... 이걸 까먹고 갔나 보군.”
마침 옆에 막대기가 하나 보인다. 그걸 휘저어, 빛을 내는 전자기기를 집어든다.
“이걸로 대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석해 볼 필요는 있겠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아. 약 1분 정도면 충분하지...”
수민은 바로 그 전자기기에다가 AI폰을 들이댄다. 그렇게 약 1분이 지난 후...
“어, 알겠다!”
수민의 얼굴이 화 밝아진다.
“이 녀석의 위치야... 지금 있는 곳은!”
AI폰에 정확한 좌표가 나온다. 테르미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 주택가다.
“좋아... 녀석은 이제 내 손바닥 안이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11-12 17:33:47
문제의 태양석은 없군요. 천만다행이예요.
쇼핑몰 지하의 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도 범위가 꽤 제한적인가 보네요. 대체로 어느 정도인가요? 일단 읽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수백 미터 레벨은 못되는 것 같아 보여요. 제한된 범위에서 온도를 올려서 가스관을 유폭시키려는 게 복안이었는지...
이제는 폭약을 사용해서 지하실을 열기까지...정말 과감하네요.
진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게 보이네요, 슈뢰딩거 그룹은.
시어하트어택
2021-11-14 20:29:12
일단 쇼핑몰 전체의 온도를 내릴 수 있기는 한데, 거기에 맞선 질라니의 능력도 꽤나 강력했고, 더군다나 조나가 아니었으면 충분히 가스관 전체를 영향 범위에 둘 수도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면 모두 쇼핑몰 안에서 타죽거나 폭사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남자와 먼저 대면할 사람은, 의외로 다른 사람일 수도 있죠.
SiteOwner
2021-11-22 19:59:48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은 면했군요. 만일 그대로 화염이 폭주했다면...
정말 태양석이 중요한 아이템이니 이렇게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채로 취급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습니다.
위기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데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 갑자기 하반신에 힘이 안 들어가서 주저앉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작에 나왔던 수민이 이렇게 보니 또 다르게 보입니다. 대체 그를 이렇게 만든 건 무엇인지, 그 태양석에의 욕구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의 본성이 그러했는지...시어하트어택
2021-11-28 20:42:17
미켈은 나름대로 속임수를 쓴다든지 하려고 그런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래도 좋게 됐죠. 유실되었으면 거래고 뭐고 없어졌을 테니까요.
수민에게 그 자는 원수 그 이상이죠. 숙적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