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영웅호걸은 술을 즐기고 미색을 탐한다 했거니와, 애초부터 영웅이니 호걸이니 하는 부류엔 끼지도 못하는 나로서는 특히 탐색에 관한 한 언감생심 입에 담을 처지에 있지 않다. 이는 술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두주불사를 자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고작 소주 3병에 혀가 꼬부라지고, 여섯병이면 인사불성 망패의 진흙탕을 허부적 대는 나의 주량이란 실로 가소롭기 그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즐긴다 함이 반드시 그 양의 많음과 수의 잦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소음대취의 졸탱이에 지나지 않는 나로서도 애주의 변이란 것이 없지않아 있다는 것이다. 무릇 같은 술을 마시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이기에 주광꾼들에겐, 한결같이 저마다가 선호하는 이른바 주풍내지 주도라는 것이 있는 법.
본인의 경우를 들라치면 우선 취주(取酒)의 시간은 가리지 않는대신 철마다 그 시간대가 달라지는 것이 상례이니 즉 주락(酒樂)의 시간은 변화폭이 크다는 것이다. 일광이 암흑속에 가라앉은 한밤중 시리게 빛나는 맥주잔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부대찌개 한냄비 나물안주를 얹은 소반을 그림작업용 책상위에 놓고 마주하면 그순간엔 고심의 하루속에서도 그 하루의 피로를 풀수있는 성찬의 빈(賓)이 된다는 것이다.
님과 함께 있을때는 단 둘이라야 좋고 술과 함께 있을땐 여럿일수록 좋다는 선배 주당들의 명언을 나라고 일찌기 듣지 못한건 아니거니와 나는 의외로 독음주를 많이 즐긴. 무엇보다 같이 술자리를 한 사람의 이야기를 신경쓰지 않고 술 자체만을 탐닉할수 있다는 것의 행복을 알았기 때문이랄까. 뭐 독음을 즐긴다 했으나 예전엔 여친-지금은 헤어졌지만-을 데려다 놓고 술을 했으니 예전엔 독음을 하지 않은 셈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로가 함께 연일야폭음에 골몰하는 것으로 오해하겠지만 말이다. 막주 반잔이 최대주량인 최근에 사귀던 여친인지라....그태여 이 여자가 따라주는 술맛이 유별날리도 없는것이고. 뭐 그렇다고 부창부수의 정신에 따라 나의 음주에 음주가무로 화답하는 것 또한 더더욱 아니고,
그럼 뭘 구실로 실없이 이 여자를 옆에 앉혀놓고 술을 마셨던가?
한심하게 들리지도 모르지만....독음을 즐기는 주제에 술을 마시면 외로움을 잘탄다
취하면서 마음이 설렁설렁한게 속으로 찬바람 한줄기까지 휑하게 불어대니 거의 짓눌려 죽을 노릇.
결국 술을 마시면서 나는 누군가를 찾으며 또 그리워 하는 야누스의 쌍면(雙面)을 지니게 되는것이다.
겉으론 아닌척 하는건 남아로 태어난 마지막 같잖은 자존심이란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때로는 소슬 바람인양 또 더러는 갯벌에 밀려드는 조수인 양 마음속에 고이는 한갓 서글픔과 까닭모를 막막함을 맑은 술 한잔에 씻어내며 말 그대로 무념무상에 젖노라면 이윽고 밤또한 나를 따라 적요의 법열에 드는법.
염불삼매니 독서삼매니 뭐 이런말이 있거니와 나같은 얼치기 모주꾼에게 있어 음주삼매야 말로 비록 그것이 한순간에 지나지 못할 망정 곤고한 세상을 살아가는 와중에서 잠시나마 피안의 복락을 엿보는 나름의 선정은 아닐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TO PROVE A POINT. Here's to 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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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대왕고래
2013-03-18 13:06:13
...스승님!! 제발 저에게 글을 하사하소서!!!!
마드리갈
2018-08-17 23:22:33
술이라는 게 다 같은 게 아니죠. 특히 마시는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그러고 보니, 요즘은 술을 잘 안 마시네요. 가장 최근에 마셔본 게 설 연휴 때였나...
다음에는 아마 다음달에 있을 추석 연휴때에나 마셔 보겠죠. 독작도 아니고 여럿이 둘러앉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오빠와 둘이서 조촐하게겠지만...
좋아요. 이렇게 술을 즐기는 마음.
그리고 이제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어 가네요. 가속도를 붙여서.
SiteOwner
2018-10-12 23:38:53
적당히 기분좋게 술을 마시면서 이것저것 말하는 것 좋지요.
ZARD 및 DEEN의 노래 Brand New Love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알코올은 위대한 문학자의 말보다도 멋진 것. 아무리 숨기고 있더라도 취하면 본성이 드러나는 법."
지난 추석 연휴 때에 동생과 술을 마시면서 간만에 세상 일을 잊고 동생과의 삶에 충실해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