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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맞이하여 시작된 폴리포닉 월드 포럼의 프로젝트인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의 네번째는 한 세기 전의 제정러시아의 끝과 소련의 시작을 보여주는 그 첫번째가 되겠어요. 
이번에도 이 지도의 편집에 TheRomangOrc님께서 힘써주셨어요.
이 점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원본 및 편집된 지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원본이 일본어 사용자를 상정한 일본국내의 출판물인만큼 1924년 발행 당시의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보일 수 있도록 원문표현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을 명시해 드릴께요. 해당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주관이 배제되었으니 그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면 원본을 소개할께요.
당시 표기방식은 가로쓰기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예요. 게다가 현대일본어가 아닌 터라 한자 및 히라가나의 용법도 현대일본어와는 차이가 여러모로 두드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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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TheRomangOrc님께서 편집해 주신 한글화 지도를 소개할께요.
이번 회차는 제정러시아 및 소련의 강역이 동서로 길다 보니 편의상 분할하여 이번의 상편에서는 우랄산맥 서쪽의 유럽 러시아 부분과 우랄산맥 동쪽의 중부시베리아까지를 다룰 거예요. 잔여지역은 뒤이은 하편에서 다룰 예정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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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tesy of TheRomangOrc


손글씨로 표기된 것은 자연관련 사항으로 녹색은 국가, 남색은 수면(水面), 청록색은 천연자원, 보라색은 도시 및 주요 지형지물인 반면, 고딕체로 표기된 것은 인간의 활동에 대한 사항이니까 참조해 주시면 좋아요.
원문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이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는 각 지역의 상황, 그리고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는 추가설명이 필요한 각 지역에 대한 표시임에 주목해 주세요.

이 지도는 2분할로 보시면 편리하니까 이 방법대로 읽으실 것을 추천드려요. 지도 가운데의 우랄산맥의 왼쪽인 서쪽은 유럽, 오른쪽인 동쪽은 아시아로 되어 있으니까 이것을 중심으로 보시면 편리해요.
이 지도가 발행된 시점인 1924년은 이미 제정러시아가 멸망하고 소련이 건국되어 있는 시점이지만 이 지도에서는 그 상황이 혼재되어 있어요. 즉 이미 제정러시아에서 독립한 핀란드가 독립국이 아닌 상태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핀란드 독립보다 이후에 발생한 소련시대 초기의 대기근이나 공산주의식으로 개명된 지명이 수록되어 있는 등의 문제가 있으니까 그 점은 반드시 염두에 두셔야 해요. 또한 지명은 당시의 표기를 우선시했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부가설명을 드릴께요.


우선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항목부터. A부터 M까지 13개 항목이 있어요.

A. 극지는 거의 반년이 낮, 반년이 밤이다. 심야에 태양을 보는 기이한 광경도 많다.
극지의 백야(白夜, White Night)와 극야(極夜, Polar Night)에 대한 설명.
이것에 대해서는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그러니 영상을 선보여야 할 듯해요. 

 

핀란드 남부에서 촬영된 극야와 백야의 상황. 백야일 때에는 하루종일 어두워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게 바로 극지방이라는 것. 아직 극지방에 가본 일이 없다 보니 겪어보면 신기하기도 하겠지만 확실히 이상하게도 느껴질 것 같네요.

 

그리고 이번애는 한밤중의 태양.
2019년 6월 15-16일 동안 미국 알래스카에서 촬영된 한밤중 태양의 움직임이 참 기이해요. 낮은 고도로 움직일 뿐 지지는 않는.


B. 오로라(극광)가 아름답게 빛난다. 백야일 땐, 한 밤중에도 희미하게 밝기에 램프가 필요없다.
역시 오로라는 아름답죠. 이것도 역시 영상으로 보여드려야겠네요. 노르웨이 북부의 항구도시 트롬쇠(Tromsø)에서 촬영된 것으로. 


확실히 저 정도로 밝으니까 지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굳이 조명을 휴대하지 않아도 될 정도예요.
사람들의 대화가 들리네요. 어떤 색이 보이냐고 영어로 묻는다든지. 게다가 밝은 시가지나 어항(漁港) 상공에서도 선명히 빛나고 있어요.


C. 적화본부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건국되면서 모스크바강 강변의 대도시인 모스크바(Москва)는 제정러시아의 수도에서 소련의 수도로 변신했고 모스크바는 곧 공산주의의 총본산이 되었어요. 그리고 소련의 국가목표는 전세계의 공산화가 된 것이죠. 그러니 적화본부(赤化本部)라는 말이 명불허전. 그리고 공산주의 운동이 활발한 도시는 모스크바라는 이름이 잘 붙게 되었어요. 광복 직후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런 수식어가 있어서, 대구(大邱)가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한 역사가 있어요. 
저 지도에서는 모스크바가 러시아어 발음이 아닌 영어 발음인 모스코(Moscow)로 표기되어 있어요.


D. 백금 발굴이 성행하여 세계제일 산지가 되다.
우랄산맥은 보물상자로 불릴만큼 광물이 풍부한 곳이고, 백금(白金, Platinum)은 아르헨티나의 라플라타강 유역에서 발견되어 그 지명에서 유래한 이름의 금속이지만, 묘하게도 우랄산맥 지역에서도 대거 발견되었고 1824년에서 1970년에 걸쳐 대략 450톤 정도가 생산되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게다가 1900년대 초에는 우랄산맥 지역의 백금 생산량이 전세계 수요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기까지 했어요.
또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차세대 태양전지 재료로서 각광받는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또한 우랄산맥에서 발견되었어요. 독일의 지질학자 구스타프 로제(Gustav Rose, 1798-1873)가 1839년에 발견한 그 칼슘-티타늄-산소의 화합물에 제정러시아의 광물학자인 레프 알렉세예비치 페로프스키(Лев Алексеевич Перовский, 1792-1856)의 이름을 붙인 것이 광물의 이름의 기원.

이 사진에서도 당시 우랄산맥의 광업개발의 양상을 엿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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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1910년에 우랄산맥의 철광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제정러시아 출신의 화학자이자 현대 칼라사진의 개척자로 제정러시아 붕괴후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Сергей Прокудин-Горский, 1863-1944)가 촬영했어요. 그때의 사진이라고는 믿기 힘든 생생함에서 당시 우랄산맥에서의 광업개발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E.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기념관 야스나야 폴라냐
야스나야 폴라냐(Ясная Поляна)란 밝은 숲 속의 들판이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어구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Лев Толстой, 1828-1910)의 생가이자 그의 역작인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ъ, 1869년작) 및 안나 카레리나(Анна Каренина, 1878년 발표)가 집필된 장소이기도 해요. 그리고 톨스토이의 묘도 이 야스나야 폴라냐에 있어요. 문헌에 따라서는 톨스토이의 이름이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로 표기되는데 슬라브어 기원의 인명인 레프는 사자를 뜻하는 이름이다 보니 영어권에서는 같은 의미의 라틴어인 레오(Leo)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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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야스나야 폴라냐의 건물 일부.
모스크바 남서쪽 200km 가량 떨어진 툴라(Тула) 교외에 있는 이 야스나야 폴라냐는 1921년에 국유화되어 국가기념물 및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지금도 여전히 보존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 야스나야 폴라냐는 톨스토이의 칼라사진이 촬영된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그 사진도 소개해 볼께요. 1908년에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가 촬영한 것으로, 흑백사진을 칼라화한 것이 아닌 처음부터 칼라사진으로서 촬영된 것이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어요. 80세의 톨스토이의 모습은 노익장이라는 말 그 자체. 여기에 전재된 것은 상반신 부분만 나온 것이죠. 전체 사진은 여기서 볼 수 있어요(사이트 바로가기,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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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ow Lev Tolstoy Became Leo Tolstoy, 2015년 3월 11일 Mosaic 기사, 영어

 
F. 19세기말 크림 전쟁이 일어나다.
1853년에서 1856년에 걸친 크림전쟁은 오토만제국-영국-프랑스-사르디니아 연합군이 제정러시아 및 그리스를 상대로 이긴 전쟁으로,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과 북아프리카에 한정된 것과 달리 크림전쟁은 크림반도와 흑해는 물론 발칸반도, 코카서스, 발트해, 백해(白海, Белое море)는 물론 극동에까지 전역(戦域)이 펼쳐진 근대 최초의 세계대전이었어요. 이 전쟁에서 제정러시아는 다뉴브델타(Danube Delta)라고 불리던 다뉴브강 하구의 삼각주지대 및 베사라비아(Bessarabia) 남부를 상실함은 물론 북미의 알래스카(Alaska)에 설치된 러시아령 미주영토(Русская Америка)를 영국에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고조되어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해 버리기도 하죠. 
크림전쟁은 수면 또는 수면하에 설치하여 기뢰(機雷, Naval Mine)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전쟁이기도 하죠. 이 기뢰의 공동설계자에 스웨덴의 발명가 임마뉴엘 노벨(Immanuel Nobel, 1801-1872)이 있었고 그의 아들 중 알프레드가 이후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발명자이자 노벨상(Nobel Prize) 제정자인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1833-1896)이예요. 
그리고 그 전쟁은 근대적인 간호의 개념이 탄생한 계기이기도 했어요. 영국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이 바로 간호의 창시자로 병자나 부상자들의 생사 및 건강을 좌우하는 요소를 파악하고 그 파악한 결과를 통해 크림전쟁에서 부상자들을 소속에 관계없이 간호한 인류애를 실천한 인물이죠.
1세기 뒤의 지금도 크림은 전장이 되어 있어요. 2014년에 주민투표의 형식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시켜 합병시킨 그 크림반도는 2022년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함에 따라 우크라이나도 크림반도를 찾기 위해 공습을 가하고 있어요. 이 새로운 크림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G. 바쿠의 석유갱도
현재의 아제르바이잔(Azərbaycan Respublikası)의 수도인 바쿠(Баку)는 카스피해 서안에 위치한 내륙의 항구도시이자 석유가 최초로 상업적으로 생산된 곳이기도 해요. 석유의 상업적 생산은 1846년부터 이루어졌지만 현대의 석유채굴과는 방법이 꽤 달랐어요. 우물처럼 큰 갱도(坑道)를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석유를 길어 올리는 방식이었거든요. 초기에는 인력으로, 나중에는 동력원이 마련되면서 기계적으로 퍼올리는 방식이 사용되었고, 오늘날처럼 소구경의 드릴로 땅을 정밀하게 뚫어서 석유를 뽑아올리는 방식은 1859년에 미국의 사업가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 1819-1880)가 처음으로 성공시켰어요.


H. 흑해와 카스피해에서 발을 씻는 코카서스의 미인
백인을 흔히 코카서스인종(Caucasians)이라고도 부르죠. 바로 그 코카서스가 소련 남부의 페르시아(현재의 이란)과 가까운 산지로, 현재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및 아제르바이잔이 위치하고 있어요. 흔히 말하는 금발벽안의 백인들이 많은 곳이기도 해서 패션모델 중 흑해 및 카스피해의 연안국 출신이 많기도 하죠. 한때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16세 소녀가 가장 선호되는 여성모델이라는 말도 있었고.
카스피해(Каспийское море)의 한자표기가 "이해(裏海)" 인데, 내륙의 바다라는 의미의 중국어 표현이 당시 일본에서도 쓰이고 있었던 것이 눈에 띄고 있어요. 사실 카스피해는 다른 바다와 이어져 있지 않은 염호(塩湖)이지만 면적 자체는 일본 전체에 근접하는 371,000평방km로 바다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겠죠.
흑해와 이어져 있는 아조프해(Азовское море)는 흑해가 지중해와 이어져 있고 그 지중해가 대서양과 이어져 있다 보니 이건 염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해양이지만요. 요즘은 아조프해를 우크라이나어 방식으로 읽은 아조우해(Азовське море)로도 잘 통하고 있어요.

카스피해의 동부에 있는 아랄해는 1924년 당시에는 멀쩡했어요. 소련시대를 거치면서 결국 황폐해졌지만...


I. 1920년 무렵부터 대기근 발생
1921년부터 발생한 러시아 대기근(Голод в Поволжье)은 적백내전 혼란기에 희대의 한발(旱魃)까지 겹쳐 물도 부족해지자 농업이 황폐화되었는데 그것에 더해 공산주의 정권의 식량정책 또한 악화된 사태를 아예 박살내 버리는 방향으로 갔어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농촌의 잉여농산물을 도시로 보내서 인구가 많은 도시를 부양하자는 것이었는데 잉여농산물이 식량은 물론 화폐경제가 있기는 해도 여전히 물물교환이 성행해서 자산으로서의 기능도 담당했던 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였어요. 즉 제정러시아 말기에 폐지된 농노제를 세계최고의 진보성을 자랑하는 소련 지도부가 부활시킨 역설이 일어난 것이었어요. 이러한 식량독재에 농민반란에 대해 소련의 방침은 철저한 진압이었고 1920년의 볼가강 유역 및 우랄산맥 남부의 지독한 가뭄 및 메뚜기떼 창궐에 대해서는 체카라는 이름으로 약칭되는 비밀경찰인 반혁명 및 사보타주 단속을 위한 전러시아비상위원회(Всероссийская чрезвычайная комиссия по борьбе с контрреволюцией и саботажем)가 상황을 보고했지만 중앙에서는 완전히 무시. 급기야 1921년에는 서부의 항구도시 크론슈타트(Кронштадт)에서는 해군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1920년 하반기의 볼가강 유역 및 우랄산맥 남부의 수확은 거의 전멸. 다음해부터 무서운 일이 연이어 일어났고, 식인행위도 빈발했어요. 이 기근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100만명은 넘는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기근 이전의 인구규모는 1925년 이후에나 겨우 회복되어요. 그러나 이 대기근은 근절되지 않고 이후인 1932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대기근인 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가 발생하여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 전역을 강타해 버렸어요. 
이 대기근의 영향은 현대 러시아에서도 식인범죄를 특히 엄격하게 처벌하는 역사적 근거 중의 하나로서 이어지고 있어요.

이 대기근 관련자료를 찾아보다가 당시 식인관련 사진을 보고 많이 놀라기도 했어요. 여러분들도 자료를 찾아보실 때 조심하시길 부탁드려요.


J. 니콜라이 2세의 묘 예카테린부르크
이 지도가 역시 일본에서 발행된 미디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 니콜라이 2세의 묘.
니콜라이 2세는 황태자였던 1891년에 일본을 공식방문하는데 그해 5월 11일 시가현 오오츠시(滋賀県大津市)에서 경찰관 츠다 산조(津田三蔵, 1855-1891)가 휘두른 칼에 베여 중상을 입고 말았어요. 이것이 그 악명높은 오오츠사건(大津事件). 일본과 제정러시아는 여러모로 분쟁이 잦았던 터라 일본 내의 대러감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황태자의 공식방문에 벌어진 테러사건인만큼 이 사건은 매우 중대했어요. 게다가 일본의 내각에서 대신들이 책임을 지고 대거 사임하는 등의 후폭풍도 있었어요.
여기에는 상당히 씁쓸한 후일담이 있어요.
츠다 산조의 출신지에서는 츠다라는 성씨가 없어졌어요. 국제범죄자와 같은 성을 쓸 수 없다고 개명한 사람들도 있고 그 츠다 산조의 일족으로 오해받아 린치당한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당시의 황태자를 도운 사람들은 제정러시아로부터 훈장과 막대한 포상금을 받았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낸 후로는 그 사람들이 제정러시아의 간첩이나 앞잡이로 몰려서 재산을 뺏기고 박해를 받았다는 등의.

이 니콜라이 황태자는 1894년에 제위에 올랐지만 그를 비롯한 로마노프 왕가의 구성원들은 볼셰비키에 잡혀서 예카테린부르크(Екатеринбург) 모처에 있었던 상인의 저택인 이파티예프 저택(Дом Ипатьева)에 유폐된 이후에 모두 살해되었어요. 그리고 그 예카테린부르크도 1924년에는 스베르들로프스크(Свердловск)로 개칭되었다 1991년에 원래의 이름을 찾게 되어요. 이미 그 이파티예프 저택은 1977년에 헐려서 사라지지만요. 그리고 이후의 일이지만 그 저택에서 피살된 11명의 유해가 정확히 로마노프 왕가의 일원의 것임은 유전자검사를 통해 입증되었어요. 영국의 윈저 왕가가 로마노프 왕가와의 통혼 덕분에 로마노프 왕가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보니 입증이 가능해졌어요.


K. 농산물의 수확 많음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 중남부에 걸친 흑토지대(黒土地帯, 러시아어 체르노젬(Чернозёмы) 및 우크라이나어 초르노젬(Чорнозем))은 세계적인 비옥한 농지로 유명해요. 그렇다 보니 소련의 국토의 절반 가량이 냉대 및 한대지방이라도 인구부양력이 높아서 소련 해체 전에는 인구가 3억명에 육박하기도 했어요. 문제는 그 많은 수확물이 공산주의의 비능률 및 태부족한 교통시스템으로 인해 생산지에서 썩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지만요. 이 지역을 제외하면 농업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곳이 많아서 대기근의 위험도 매우 컸어요.


L. 동방을 적화시키려는 선전이 성행.
소련의 사회주의는 대내적으로는 일국사회주의이자 대외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제도 철폐 및 전세계 공산화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소련의 국가슬로건 또한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의 마지막 문장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Proletarier aller Länder vereinigt Euch)" 의 러시아어 번역문인 프롤레타리이 프쇼흐 스트란, 사예지냐이시치"(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로 정해졌어요. 
이러한 소련의 극적인 변화는 당시의 아시아에도 큰 영향을 주었어요. 당시 독립운동가들 중에도 사회주의 계열이 많았고, 1918년에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한인사회당이 조직되고 1919년의 3.1운동 이후인 1920년에는 한반도 내에서도 사회혁명당이 결성되는가 하면 예의 한인사회당 공동설립자인 이동휘(李東輝, 1873-1935)가 그 해에 중국 상해에서 김만겸(金萬謙, 1866-1929) 대한국민회의 부의장과 함께 한인공산주의그룹 결성을 이루어내고 당대의 사회주의 지식인들을 대거 흡수해요. 그리고 1921년에서는 국제공산주의조직 코민테른(Коминтерн)의 주도로 중국 북경대학(北京大学)에서 중국공산당이 만들어지고 창당멤버 중에 당시 북경대학 도서관의 사서였던 모택동(毛沢東, 1893-1976)도 있었어요. 1922년에는 일본에서 일본공산당(日本共産党)이 창당되는데 이 일본공산당이 지금 존속하는 제도권정당인 그 일본공산당으로 창당 초기에는 위법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패전후 미군정 시대에 합법화되어 현재에도 존속중에 있어요. 
저렇게 붉은 상의를 입고 시베리아철도의 열차를 탄 채 붉은 전단을 뿌리는 공산주의자의 동진(東進)은 이후의 현대사를 크게 바꾸었어요.


M. 큰 숲을 베어 시베리아철도의 열차 연료로 쓰다.
석유의 상업생산이 가장 먼저 시작된 제정러시아에서 의외로 시베리아철도의 운행초기에는 증기기관차의 연료로서 화목을 사용했어요. 방대한 삼림의 침엽수는 수지(樹脂) 성분이 많아서 타기도 쉬운데다 내구성(耐久性)도 높아서 물을 먹어서 썩거나 하는 일이 적어서 장기보존도 가능했으니까요. 그러나 역시 이것도 화력이 더 좋은 석탄이 여러 탄광에서 생산되면서 대체되어 갔어요. 그 석탄을 확보한 방법 중에는 후술하는 굴라그도 있어요.


그 다음은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항목. 1부터 9까지 9개 항목이 있어요.

1. 헬싱포르스
헬싱포르스(Helsingfors)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Helsinki)의 스웨덴어 발음. 핀란드는 스웨덴 및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길다 보니 헬싱키라는 이름이 핀란드어로 알려지기보다는 스웨덴어 발음인 헬싱포르스 또는 당시 러시아어 발음인 겔신그포르스(Гельсингфорс)로 발음되는 경우가 흔했어요. 현대 러시아어로는 헬싱키의 발음은 핀란드의 것과 거의 같아져 있고 키릴문자 표기도 Хельсинки로 달라져 있어요.
이미 핀란드는 1918년의 건국전쟁에서 핀란드내의 공산세력과 소비에트러시아에 승리하여 독립한 상태이지만 저 지도에는 국경선마저 그려져 있지 않고 여전히 도시의 이름도 헬싱포르스라는 스웨덴식 표기로 남아 있어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신생독립국에 대해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렇게 보여요. 


2. 페트로그라드
페트로그라드는 발트해의 동부인 핀란드만에 접한 러시아의 항구도시이자 제2의 도시이자 한때 제정러시아의 수도이기도 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의 당시 이름. 이 도시는 표트르 1세(Пётр I Алексеевич, 1672-1725)의 집권당시인 1703년에 스웨덴의 요새인 녠샨츠(Nyenschantz)가 있던 자리에 설립된 도시로 "성스러운 베드로의 도시" 라는 의미를 지닌 독일식 지명을 지니고 있다가 1914년에 같은 의미의 러시아식 지명인 페트로그라드(Петроград)로 개명되었어요. 이후 이 도시는 볼셰비키혁명의 주도자인 블라디미르 레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 1870-1924) 사후 5일이 지난 1924년 1월 26일에 레닌그라드(Ленинград)로 개칭되어 소련의 붕괴 직전인 1991년에 실시된 주민투표를 통해 오늘날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있어요.
사실 소련 건국의 발단이 되는 10월 혁명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이 페트로그라드이기도 하죠. 1917년 10월 7일(율리우스력 10월 25일) 당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제정러시아의 겨울궁전을 습격한 사건이 바로 10월 혁명의 시작이었어요.


3. 키예프를 중심으로 하는 말라야루스
오늘날에는 말라야루스(Малая Русь)라는 말이 거의 쓰이지 않아요. 직역하면 작은 러시아라는 의미이고 한자표기도 소로(小露)인데,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를 가리키는 용어로 말라야 라씨야(Малая Россия)라는 다른 러시아어 표기가 있는 이외에 우크라이나어로는 말로로시야(Малоросія)라고도 하죠. 이 용어의 기원은 1292년 비잔틴제국의 작가 코디누스가 쓴 표현인 "미크라 로씨야(μικρὰ Ρωσσία)" 로까지 소급되어요. 현대에는 우크라이나 비하의 의미가 짙다 보니 이제는 사실상 사어 내지는 금지어가 되어 있는 형편이죠.
말라야루스 최대의 도시인 키예프(Киев, Kiev) 또한 러시아어 표기. 2022년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세계를 상대로 여론전을 펼쳐 우크라이나어 표기인 키이우(Київ, Kyiv)로 새로이 정착해 있어요.
이미 저 시대에는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일부가 되었지만, 묘하게도 국경선이 그려져 있어요.


4. 티플리스
티플리스(Tiflis)는 현재는 조지아(=사카르트벨로)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에 대한 1936년 이전의 발음이었어요.
이 도시는 코카서스산맥 남부에 위치한 동서양 교통의 요지로 실크로드의 혜택을 많이 입은 도시이기도 한데 이 도시가 특별히 강조된 이유는 사실 다른 데에 있어요. 이미 저 지도의 제작시점에서 소련의 최고권력자가 되어 있었던 이오시프 스탈린(Иосиф Сталин, 1878-1953), 본명 요셉 베사리오니스 제 쥬가슈빌리(Ioseb Besarionis dze Jughashvili)가 1894년부터 신학생으로서 거주했던 도시였으니까요. 성적은 우수했지만 신학에 흥미를 잃은 그는 결국 무신론을 선언하고 1899년에 신학교를 떠난 후 천문대의 기상학자로 취업하면서 이전부터 심취해 온 공산주의 활동을 지속하여 1901년에는 드디어 러시아 사회주의노동당의 티플리스 위원회에 선출되는 등 입지를 다져 나가다가 조지아 각지의 공산주의 운동에 참가하던 끝에 1902년에 체포되고 형무소에 복역했다가 1903년에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져요.


5. 오렌부르크
오렌부르크(Оренбург)는 아시아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팽창중인 제정러시아가 우랄 남부지역의 거점으로서 계획하여 1741년부터 세워진 도시에서 기원하고 있어요. 현재 인구 50만명대의 이 도시는 별다른 게 있나 싶지만...사실은 굉장히 무서운 게 있어요. 흑돌고래 형무소(Чёрный дельфин)라는 통칭으로 잘 알려진 시설이 바로 그곳이고, 정식명 러시아 연방교정청 오렌부르크 오블라스트 소재 제6유형지(Федеральное казённое учреждение «Исправительная колония № 6 Управления Федеральной службы исполнения наказаний по Оренбургской области»)라는 정원 700명 규모의 수퍼맥스 형무소가 이 오렌부르크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니까요.
이 오렌부르크는 1773-1775년의 대사건이었던 푸가쵸프의 반란(Восстание Пугачёва)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코사크의 반란이라고도 알려진 이 반란은 독일 출신의 부군인 표트르 3세(Пётр III Фёдорович, 1728-1762)를 실각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오른 독일 출신으로 이후 예카테리나 대제라고도 불리는 예카테리나 2세(Екатерина II Алексеевна, 1729-1796)가 집권하면서부터 제정러시아 각지에서 벌어진 반란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것이었어요. 퇴역군인인 예멜란 푸가쵸프(Емельян Пугачёв, 1742-1775)가 일으킨 이 반란은 제정러시아 전역에서 횡행하는 자연재해 및 대기근에 따른 사회불만의 고조가 그 배경으로 특히 1771년에는 모스크바의 전염병 창궐로 민심의 동요가 극에 달해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푸가쵸프는 그 상황하에서 러시아 남부 및 우크라이나에 걸쳐 생활하는 유목민 집단인 코사크(Cossack) 및 농노(農奴, Serf)들과 함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고 오렌부르크를 거점으로 1774년 상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었지만 그 이후 제정러시아의 거친 대응은 물론 그 푸가쵸프가 폐위된 표트르 3세임을 참칭하고 다녔던 것도 발각되어 결국 코사크들에게 배신당하고 말았어요. 코사크들은 그를 잡아서 정부에 넘겨 주었고, 결국 1774년 1월 21일에 모스크바에서 푸가쵸프는 참형을 당해서 33년의 짧은 생을 그렇게 마쳤어요.
그 푸가쵸프의 반란이 평정된 이후에 여러 변화가 생겼어요.
코사크 및 농노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졌고, 이미 대부분의 유럽에서 폐지된 농노제(Serfdom)는 더욱 강화되어 거의 1세기 이후에나 폐지될 정도로 농노제 탈각이 늦어졌어요.
또한 오렌부르크 남부에는 이미 1745년 이후부터는 확실히 운영중이었던 감옥이 푸가쵸프의 반란 이후로는 추방된 자 및 강도들을 수용하는 흉악범 수용소로 개편되었고 이것이 오늘날의 흑돌고래 형무소로 이어지고 있어요. 게다가 묘하게 독일과 관련이 꽤 있어요. 일단 오렌부르크라는 지명 자체도 독일어의 조어방식이고, 푸가쵸프의 반란에서 푸가쵸프가 참칭한 표트르 3세도 독일 출신에 그 반란을 진압한 예카테리나 2세. 또한 이후의 일이지만 독일의 배우 겸 가수인 카롤라 네어(Carola Neher, 1900-1942)가 소련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1936년에 시작된 대숙청에서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서 투옥되고 저 흑돌고래 형무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옥사했고 그녀의 시신은 집단매장되어 정확한 묘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6. 옴스크
옴스크(Омск)는 인구 100만명을 넘는 시베리아 남서부의 대도시이지만 의외로 별로 주목받지 못하죠.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굉장한 도시가 바로 이 옴스크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제정러시아 당시에는 옴스크는 서시베리아 총독부 및 이후의 스텝지역 총독부의 소재지로서의 위상이 있었어요. 그리고 1918-1920년의 적백내전 당시에는 반공주의 성향의 단명했던 러시아국(Россійское Государство)의 수도이자 백군(Бѣлая армія, 현대 러시아어 Белая армия)의 근거지로서 제정러시아 황실의 보유한 금을 확보하여 보관해 둔 장소이기도 하죠.
옴스크는 교통의 요지로도 매우 유명해서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주요 연선지역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 R254 연방고속도로가 다녀서 고속도로만으로도 모스크바는 물론 대륙유럽의 어느 도시에도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탁월해요.

이 지도를 보시면 이해가 될 거예요.

Transsib_international.svg.png

빨간색의 시베리아횡단철도, 모스크바-툴라-랴잔-사마라-우파-첼랴빈스크-옴스크를 잇는 파란색의 서부노선, 옴스크-바르나울-노보쿠즈네츠크-아바칸-타이셰트를 잇는 검은색의 시베리아 대안노선 모두 옴스크와 만나죠. 철도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저는 옴스크라는 도시에 대해서 여러모로 관심이 많아요.


7. 크라스노야르스크
붉은 절벽, 또는 아름다운 절벽이라는 의미를 가진 시베리아철도 연선의 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Красноярск)는 후술하는 예니세이강의 상류에 있는 대도시로, 일찌기 러시아의 소설가 안톤 체호프(Антон Чехов, 1860-1904)가 방문하고 시베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찬탄한 적도 있어요. 게다가 지금은 시베리아에서 노보시비르스크(Новосибирск)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인구 100만명대 후반의 대도시이기도 하죠. 게다가 알루미늄 제련업도 발달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큰 성장을 하고 있어서 소련 붕괴후 전국적으로는 러시아의 인구가 줄어드는 데 반해 2020년대부터는 160만명을 넘었어요. 저 시대의 인구가 10만명 전후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 그 자체.
게다가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스탈린 시대 때 굴라그(ГУЛАГ)로 약칭되는 강제수용소가 많이 설치된 지역 중의 하나였어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따라 공산주의 선전이 횡행했던 그 자리에는 역시 공산주의의 선전 정당화를 위해 갇히고 죽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참고로 1923년에서 1967년까지의 소련내 굴라그의 분포를 첨부할께요.

Gulag_Location_Map.svg.png

물론 굴라그는 인구가 많은 서부에 분포한 경우가 가장 많기는 해요. 눈어림으로 봐도 대략 절반 정도로, 수도 모스크바는 물론 핀란드와의 국경지대인 콜라반도(Кольский полуостров)의 무르만스크(Мурманск), 우랄산맥 서부의 카잔(Казань), 페름(Пермь) 및 스베르들로프스크(Свердловск) 등지에도 많았지만 중부에서는 노보시비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및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동부에서는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 및 마가단(Магадан) 등에도 집중적으로 있다는 게 잘 보이죠.


8. 야말반도
어지간해서는 들어볼 일 자체가 없는 지명인 야말반도(Полуостров Ямал)가 1924년 발행의 이 지도에 특별히 기재되어 있다는 것에서 상당히 놀랐어요. 야말로-네네츠 자치구(Ямало-Ненецкий автономный округ)에 속하는 이 반도는 옵만(Обская губа)의 서부 700km 가량 북빙양으로 뻗은 면적 117,410평방km의 이 땅은 휴전선 이남 한반도 면적보다 더 크면서도 인구는 16,000명을 겨우 넘을 정도이고 인구의 다수는 북방원주민인 네네츠족이 7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야말반도가 중요한 이유는 막대한 천연가스 보유량에 있어요. 그리고 유럽국가들, 특히 독일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많이 구매했는데 그 가스의 주요 생산지 중의 하나가 야말반도. 그래서 혹한의 황무지로만 보이지만 실은 러시아의 달러박스예요.
게다가 이 야말반도의 남쪽에 있는 인구 6천명 규모의 작은 마을인 하르프(Харп)가 최근에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러시아의 사회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Алексей Навальный, 1976-2024)가 2023년 하반기부터 이 마을에 위치한 형무소에서 복역중 2024년 2월 16일에 옥사했으니까요. 그 형무소는 북극늑대(Полярный волк)라고도 불리는 IK-3 연방형무소(ФКУ ИК-3)로, 스탈린 시대에 만들어진 굴라그를 유용한 시설이고 위에 첨부된 굴라그 분포 지도에도 대략의 위치가 표현되어 있어요.

과연 지도제작자들은 1세기 후의 야말반도가 어떻게 주목받을지를 예측했던 것일까요?


9. 예니세이강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의 인식은 매우 일천하다 보니 러시아의 하천상황은 더욱 알기 힘들겠죠. 그러니 예니세이강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러시아의 수계(水系)에 대해 간단히 다루어 볼께요.

russia-rivers-map.gif

북쪽만이 대륙과 연결된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달리, 러시아의 하천은 북쪽으로 흐르는 것이 많아요. 물론 동쪽으로 흐르는 아무르(Амур) 및 아나디르(Анадырь), 남쪽으로 흐르는 드네프르(Днепр, 우크라이나어 드니프로(Дніпро)), 돈(Дон) 및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인 볼가(Волга) 등도 있지만 그 외의 강은 대체로 북쪽으로 흘러요. 옵(Обь), 예니세이(Енисей), 레나(Лена), 인디기르카Индигирка(), 콜리마(Колыма) 등의 시베리아의 강은 역시 고지대인 남쪽에서 발원해서 저지대인 북쪽으로 흘러 북빙양(北氷洋)으로 흘러들어가는 게 정석. 특히 예니세이강은 러시아 국토의 한복판을 흐르고 있는데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담수호인 바이칼호(Oзеро Байкал) 또한 예니세이강으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거대한 강이죠.

예니세이강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스틸이미지를 보여드려고 생각했는데, 역시 영상으로 보여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소개된 것은 영어 내레이션이 첨부된 것이니까 시청이 비교적 편리할 거예요.



끝으로, 지도에는 언급되었지만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지역에 대한 부가설명을 추가할께요.
우선, 지도의 위쪽 끝을 봐 주세요.
카닌반도(Канин полуостров)는 백해의 동쪽에 인접한 반도로 경기도 정도의 넓이에 상주인구는 300명 정도의 인구과소지. 그러나 여기는 벨루가(Белуха)로 불리는 흰돌고래를 가장 많이 목격할 수 있는 장소인데다 북극권임에도 불구하고 29종의 나비가 서식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 특이한 자연환경으로도 명성이 높아요.
옵만의 동부에는 타즈강(Таз)이라는 하구인 타즈만이 있어요. 이 타즈만 연안에는 1600년에 코사크들이 설립한 만가제야(Мангазея)라는 정착촌이 있었고 "시베리아의 바그다드" 라고 불릴 정도로 모피 및 바다코끼리의 상아 무역으로 번성했어요. 그리고 고객들은 백해를 거쳐 항해해 온 영국 및 네덜란드의 상선 운용회사. 이렇게 제정러시아와 완전히 별개로 번영을 누린 마가제야의 사정이 알려진 이후 1619년에 쇄국정책이 내려져 외국인에 대한 접근이 금지되고  1678년의 대화재 이후 폐허가 된 만가제야는 버려진 도시가 되었고 그 주민들은 예니세이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남부의 투루한스크(Туруханск)에 정착했어요.

그리고 다음은 지도의 왼쪽 부분.
라도가호(Ладожское озеро) 및 오네가호(Онежское озеро)는 러시아 서부 끝의 큰 담수호(淡水湖). 유럽 전체에서 가장 큰 호수가 이 라도가이고고 2번째가 오네가인 것이죠. 특히 오네가호 내부에는 1,500개 이상의 섬이 있어요.

지도의 오른쪽 부분에는 발카쉬호(Озеро Балхаш)라는 호수가 있어요 이것은 현재는 카자흐스탄의 국내에 있는 거대한 담수호로 면적은 세계 15위.

지도의 맨 아래, 카스피해 인근의 도시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을 붙일께요.
크라스노보드스크(Красноводск)라는 지명은 이제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투르크멘바시(Түркменбашы)로 달라져 있어요. 소련시대에는 "붉은 보드인의 도시" 라는 공산주의 색채가 짙은 이름이었지만 소련 해체후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이 독립하면서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짙어졌어요. 그 크라스노보드스크와 철도로 이어진 부하라(Бухоро)는 우즈베키스탄의 도시인데 우즈베크어보다는 페르시아어의 타지크방언이 잘 통하는 특이점이 있고, 철도로 이어지는 또다른 도시인 메르브(Мерв)는 실크로드의 교역도시 중의 하나로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도시 중의 하나인 역사가 있어요. 현재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도시인 마리(Мары)로 불리고 있어요.




다음 편은 시베리아 동부 및 알래스카를 다루는 제정러시아 및 소련편(하)가 될 거예요.
그러면 후속편도 기대해 주세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Lester

2024-03-17 17:56:41

A&B. 백야와 극야 및 극광은 인생에 한 번쯤은 보러 가고 싶은 장관이기는 하나, 약간의 운이 따른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세상이 좋아져서 고품질 동영상이 많이 있으니, 이제 와서 갈 필요성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D. 사진이 마치 요즘이나 10년 전에 찍은 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생생하네요. 그리고 CMB 박물관 사건목록에서 읽기로는 백금은 옛날엔 녹이지도 못하고 가공하지도 못해서 중세까지만 해도 쓸모없는 물건으로 여겨져서 각광받은 기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언급을 본 것 같습니다.

E. 지도 제작 기간인 1924년으로부터 14년 전이니까 아직 수록될 만하겠군요. 톨스토이 얼굴까지 넣어주면 더 좋았겠지만요.

F. 크림 전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아서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지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바로 옆에 표기된 게 참 복잡한 기분이 드네요.

H. 우리나라에서도 동유럽에 미인이 많다는 얘기를 '우크라이나에서는 김태희가 밭을 간다' 같은 식으로 표현하기도 했죠. 아직도 농사짓고 사느냐는 식으로 약간 얕잡아보는 의미도 있는 것 같지만...

I. 물물교환이 아직 성립하는 시절에 대량의 농산물을 보낸다니... 대놓고 인플레이션이군요. 애초에 자본의 존재를 부정한 시점에서 그런 걸 알 리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J. 제아무리 왕족이라도 치열한 국제정세 앞에서는 답이 없네요. 게다가 도와준 사람들도 영광을 누리다가 순식간에 역적으로 몰리다니... 지금도 크고 작은 조직사회에서 정치가 발생하는 걸 보면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K. 그러니까... I와 묶어서 보면 보내도 지옥 안 보내도 지옥이라는 건가요. 정말 환장할 노릇이네요. 그 시절에 냉동창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L. 그래서 독립운동에 갑자기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자유시 참변처럼 어쩌다 말려들어서(?) 생긴 비극도 있더군요. 하나하나가 큼직하고 해석이 갈리는데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라 자세히 적지는 않겠습니다.


지리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때 이미 포기한 관계로... 역시 코멘트를 생략하겠습니다. 지리라는 과목 자체가 꽤나 난해했던 것 같아요. 뭐든지 배우면 어디든 쓸 데가 있겠지만 지리는 당최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몰랐고.

마드리갈

2024-03-17 21:57:13

북유럽이나 미국 알래스카나 캐나다 북부가 아니라도 요즘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백야, 극야 및 오로라를 다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직접 체험해 보고 싶네요. 추운 지역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는 3원색 촬영기법을 통한 현대 사진술을 정립한 개척자죠. 그의 사진을 보면 정말 놀라운 것들이 많아요. 그리고 톨스토이의 사진 중 유일하게 전해지는 컬러사진 또한 그가 1908년에 찍은 것이고, 1912년에 촬영된 그의 자화상 또한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죠. 그럼 톨스토이의 사진도 소개해 볼께요.

여러모로 크림반도는 복잡하죠. 게다가 세바스토폴은 크림전쟁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격전지였기도 해요.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 탈환을 추진하고 있으니까 19세기,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또 격전지가 될 위험이 높아요. 이번에도 러시아가 패배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김태희가 밭을 갈고 전지현이 시장에서 빵을 파는" 등의 이런 표현은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의 미녀들을 표현할 때 잘 쓰였던 문구였죠. 저도 기억하고 있어요. 물론 비하의 의미 같은 것도 완전히 없다고는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정도로 미인들이 많다는 사실은 어쨌거나 드러나는 것이니 참 묘해요.

니콜라이 2세는 정말 삶과 죽음이 극적이었죠. 황태자로서 세계순방을 나섰을 때, 그리고 그가 차르로 즉위했을 때 어떤 미래가 올 것이었는지 예측은 했을까요. 여러모로 씁쓸하죠. 그리고 조력자들의 운명도 그렇게 되는 것도...


사회주의 정치와 공산주의 경제라는 게 이래서 위험해요. 의사결정은 철저히 정치적이고 경제상황은 늘 잘못된 상황으로 귀결되는.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미국과 같이 연합국 진영에 있었으니까 살아남았지 만일 독일과 계속 추축국 진영에 남아 있었더라면 소련은 보다 더 일찍 종식되었을 수도 있어요.

철도는 문명의 통로. 그리고 그렇게 전파된 것에는 역시 사회주의 사상도 있었어요. 


일반인이 지리를 배워서 쓸 수 있는 분야는 역시 여행이겠죠. 사실 지리라는 것 자체가 거시적인 시각을 요구하다 보니 잘 활용되는 분야가 공공분야나 각종 사업분야 등의 영역이기도 하니 역시 일반인 레벨에서는 여행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DDretriever

2024-03-21 00:02:58

사진이나 영상의 첨부도 늘어나면서 점점 내용의 질도 향상되어가고 있는게 느껴집니다.

이 세계지도의 내용을 전부 번역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을탠데 거기에 이렇게 자세한 설명과 주석까지 곁들일 수 있는건 정말 대단한거에요.

이 시리즈의 원본이 되는 세계지도는 다른 사이트에도 종종 올라오며 널리 퍼져있지만 대부분 한반도 일부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이 되는 정도거든요(타 사이트에도 일어 능력자는 많지만 그런 사람들도 이 지도는 전부 읽지 못하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는 부분만 얘기하기 때문).


지금까지 수준도 대단하지만 나중에 이 시리즈가 전부 완결되고 나면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워할만한 양질의 자료가 되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드리갈

2024-03-21 00:59:51

우선, 엄청난 찬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는 것은 역시 재미있어요. 그래서 만드는 과정이 매우 즐거웠죠. 일본어와 영어는 확실히 자신있게 할 수는 있지만 러시아어 능력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서 러시아어로 된 자료의 검색이라든지 러시아어 표현의 입력이라든지 등의 분야에서는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면서 여러모로 배워 나갈 수 있어서 좋아요. 대학생 때 이 기세로 공부했더라면 전학기에 걸쳐서 장학금을 받았겠지만 하는 후회도 있긴 해요. 5학기간은 받았지만 입학 첫 학기와 도중의 두 학기는 못 받았거든요.


앞으로도 기대해 주세요.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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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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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 2024-01-18 131

Polyphonic World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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