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잠시 소녀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요?
작년에 겨울왕국이 크게 인기를 끌 무렵에, 일상생활에서 겨울왕국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곳곳에 울려퍼지는 'Let It Go'였고, 또 하나는 겨울왕국의 등장인물 '엘사'처럼 옷을 입은 여자아이들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주님'이라는 건 여자아이들의 중요한 로망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화려한 궁전에서, 반짝반짝 예쁜 드레스를 입고, 멋진 왕자님과 춤을 추는 건 많은 여자아이들이 꿈꾸는 판타지이죠. 마치 많은 남자아이들이 로봇물 또는 히어로물을 보고 모방하며, 자기도 그런 힘을 가지고 멋지게 싸우는 모습을 꿈꾸듯이요.
그리고 애석하게도, 나이를 먹고 점차 어른이 되어가며, 그리고 세상을 배워가며 그러한 꿈은 빛을 잃게 됩니다. 예전에 비해 더 자신을 잘 꾸밀 수 있게 되었고, 그 때에 비하면 교양도 더 쌓았을 거고, 춤이라고 해도 어렸을 때 아무렇게나 몸을 흔드는 게 아니라 지금은 좀 더 예쁘게 춘다는 게 뭔지는 알게 되었죠. 그치만, 자신은 동화속 주인공이 아니고, 신데렐라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요정 할머니가 나타나서 예쁜 유리구두를 신겨 주지도 않고, 날 이끌어줄 왕자님이 무도회를 열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어렸을 때 싫어했던 씁쓸한 커피를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홀짝이는 나이가 되었죠. 아니, 애초에 그 유리구두가 사실은 가죽 구두가 와전되었을 뿐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결국 공주 이야기라는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죠.
그렇게 어른이 된 과거의 공주님이, 지금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이것저것을 보다가, 2015년에 와서야 신데렐라가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잿빛이 된 나의 눈앞에, 이 잿순이(실제로 영화에 그렇게 나옵니다. 원래 이름이 '엘라'였는데, 일하다가 몸이 재투성이 돼서 잿가루를 뜻하는 Cinder가 붙어서 '신데렐라'가 돼요)는 나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까요? 작년에 그렇게 재밌게 본 겨울왕국의 후속 단편 5분 보려고 정말 내가 극장에 가서 이걸 봐야 할까요?
그렇게, 단편 5분만 보고 나면 그냥 자버릴까 하는 마음으로 극장 좌석에 앉은 어른에게, 영화는 나지막히 속삭여 줍니다.
"왜 그러고 있어? 공주, 좋잖아?"
영화 자체는 신데렐라의 이야기에서 크게 변화된 게 없습니다. 매우 정석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아무런 반전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게 아니에요. 생각해 보세요. 디즈니는 예전에 백설공주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공주 이야기를 만들어 왔고, 전세계 여자애들의 마음에 공주를 심어놓는 걸로 장사를 해왔습니다. 그런 디즈니가 현대에 만드는 공주 영화는 대체 어떨까요? 믿으세요, 디즈니는 공주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최고예요. 특히 무도회 장면, 이건 정말 공주의 로망의 집약체예요.
당연히 여자애들은 그 화려한 드레스와 궁전, 무도회에 넋이 나갈 거고, 어른까지도 똑같이 취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내가 좋아하던 그 공주를,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화려하게 꾸며놓은 게 이 영화고, 마음 속이 잿빛이 된 어른은, 그 속에서 아직 빛나던 유리 구두를 다시 한 번 집어들어서 쓰다듬어 보게 됩니다.
"그러게... 예전엔 이런 거 좋아했는데."
영화를 본지 한참이나 되었고, 이미 극장에서 다 내려간 지금이지만, 신데렐라 영화의 여운은 아직 남아서 이렇게 평가를 쓰게 됩니다. 제목에 [스포無?]라고 쓴 건, 사실 이 영화가 신데렐라 원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겁니다. 이미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인데 그걸 언급 안 한다고 해도 어차피 다들 아실 내용이라...
이번 주면 디즈니에서 이제 남자 아이들의 로망을 공략할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개봉하겠네요. 그것도 보고 나면 평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강당과 티타임, 아트홀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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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5-04-20 22:39:37
간만에 뵈었네요.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져요.
신데렐라가 영화로 나왔었군요. 어벤져스는 휴가나올 제 동생과 같이 보기로 했고 사실 그래서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는 그거만 주목하고 있었는데, 또 하나 주목할 작품이 생겼네요. 추억대로의 이야기지만 오히려 그것때문에 좋은, 그런 영화로군요. 좋은 리뷰 감사드리요.
그리고 글 쓰시는 게 매우 고급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흘러가듯 읽히면서도 글이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프레지스티
2015-04-21 02:34:09
언제나 어린 시절의 꿈을 자극해주는건 좋은 일이죠.
그 꿈이 환상이였던 현실적이던 다시 바라볼때마다 느끼는게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