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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아시는 거 만나지 말라고 해주시지... 얘기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의외로 제 가치관과 자존감이 상당히 공고하고 튼튼한 편이라는 것과, 제 가장 큰 두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게 되는 것인 듯 합니다. 멘탈이 좀 많이 뒤흔들려서 그런지 글이 두서없이 적혔네요. 다름 아니라 포럼에 이렇게 글을 쓴 건, 제가 지금 잘 한건지 확신과 위안이 좀 필요한 거 같습니다... 잘한 거겠죠?
전에 잠깐 만났을 때 주신 책이 제테크 관련 책+다단계로 유명한 모 회사 잡지인데다가 카톡 프로필 사진을 봤을 때부터 뭔가 쎄했지만 (어딘가의 화려한 모임+ 돈 관련 격언...) 어머니랑도 아는 사이고 난 일하고 있는데 설마 그러겠어? 하고 만나 뵈러 갔다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밥 먹은 뒤 커피 마시자고 할 때 돌아갔어야 하는데 말이죠. 자기가 참여해야 할 Zoom 미팅이 있다고 랩탑을 들고오시더군요. 근데 왜 그걸 저한테 보여주세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가 목소리를 높이거나 무례하게 굴 필요 없이 제 가치관이나 경험과 고도의 자기자랑이 자연스럽게 그 분의 주장을 막았다는 겁니다.?
-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돈도 조금 받는 일을 하는게 괜찮은가 -> 저는 이미 제 전공을 극한으로 살린 직종에서 일하고, 인정받고 있는데다 지금 받는 돈의 양도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 일을 돈을 안 받아도 할 것인가? 정말로? -> 제 전공 특성상 돈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대학원을 가도 월급을 줄텐데...
-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변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이제까지의 삶이 그야말로 변수투성이였어서 이것도 딱히... 그리고 공학이라는 전공은 변수를 포착하고 통제해서 목표를 이루어낼 방법을 찾는 학문이니, 변수가 와도 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거라 얘기했습니다.
- 우리가 사는 물건은 원가에 비해 불필요한 비용이 너무 많이 끼어있다. 우리는 질 좋은 제품을 마케팅이나 기타 유통 비용과 마케팅 비 없이 소비자들이 써보고 공급한다 ->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도 엄연한 돈을 낼 만한 요소라고 생각해서, 딱히 불필요한 비용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광고비를 아깝게 생각하다니, 정보가 돈이 되는 시대인데요. 뭐하러 제가 발품을 팔아요. 귀찮아.
- 화장품 좋은거 쓰는거 중요해, 건강 신경써야지 -> 하하하 제가 공대생이어서 그런 거 신경 안써서 소리 많이 들어요! 써야 되는데 말이죠!
- 월급만 받으며 살면 먹고 사는 것만 가능하다, 진짜 원하는 것을 하며 살려면 사업할 필요가 있다 -> 제가 돈을 더럽게 안 쓰는 타입인데다 욕심도 없고, 제가 좋아하는 건 탐구와 사색 쪽이라 돈이 안 드는데다 이미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
- 경피독, 먹는 것보다 피부로 흡수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 이 때 살짝 정색할 뻔 했습니다만 적당히 넘어갔습니다. (피부는 흡수 기관이 아닙니다만...)
-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사회에서 배우는 것보다 시대에 뒤쳐진 것들만 배운다. -> 당연하다. 검증된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니까. 사회나 기업은 새로운 걸 만드는 입장이니 늘 최신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는 지식이 아닌 학습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하니까 네가 좋은 교육을 받아서 그래! 한국에서 배웠다면 아닐 걸? 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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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2-05-13 00:02:09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YANA님의 대응은 교과서적으로 완벽해요!! 이렇게 침착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잘 대응하셨고 책잡힐 여지도 남기시지 않으셨다는 것에 정말 놀랐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예 동석한 자체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 결론부터 바로 찔러 버리거든요. "그래서, 얼마 줄 거지?" 라고. 그리고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면 상당히 잔인하게 밟아 버리는 경향이 강한 터라, YANA님의 대응방식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역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증명되었어요. 그러니 긍지를 가져 주시고, 안심해 주시길 부탁드릴께요.
YANA
2022-05-13 17:06:14
저 분이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했기에 망정이지, 감정적이거나 예의를 빌미삼아 접근했으면 거절하기 정말 버거웠을겁니다(...) 오히려 저는 마드리갈님처럼 단호하게 나올 수 있는 강단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연장자인데다 저희 어머니의 지인(친구 아닙니다. 어머니도 모르셨던건 아닌데, 저랑 만나자마자 바로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제 귀가가 그 분의 자가용에 달렸기 때문에 도저히 껄끄럽게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나름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멘탈만 어떻게 되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전 오늘 점심쯤까지 상당히 동요한 상태였다가, 지금은 진정된 상태입니다. 대응과는 별개로 멘탈이 튼튼했으면 좋겠네요. 왜 이렇게까지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Lester
2022-05-13 20:33:39
다단계와 두 번(하나는 야나님처럼 가입권유, 하나는 직접 가입) 만나본 경험상, 다단계는 그냥 명확하게 싫다고 거절하는 게 답이더군요. 그나마 전자는 그 권유하신 분이 같은 마을기자단 내의 평범하고 소박한 아줌마셔서 별 문제는 없었는데, 후자는 교육업체 취업을 빙자해서 충성과 상품판매를 사실상 강요받는 곳이라는 걸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나마 면접 합격하자마자 공문서 복사해다가 이력서 돌려달라고 하고 받아와서 망정이지... 어쨌든 다단계가 백해무익하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는 걸 두려워한다라... 저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미움받는 게 무서워서 싫은 소리를 대놓고 하지 못하는 측면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단순히 '싫다'는 말 하나를 못하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나 자신만 손해를 입을 바에야, 어느 정도는 미움받을 걸 각오하고 벽을 치는 게 낫더라고요. 뭐 말씀하신 대로 일장일단, 정확히는 정도의 차이죠. 벽을 어느 높이로 쌓을 것인지...
YANA
2022-05-15 00:01:17
와, 아슬아슬했군요. 서류까지 들어갔으면 빠져나가기 어려웠을 듯 한데, 다행입니다. 저 분도 저에게 직접적으로 다단계 할래? 라고 질문을 하셨으면 관심 없다고 얘기했겠지만, 그 질문만은 안 하시더군요.?
저는 음, 이외로 다른 사람에게 싫다고 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는데는 거부감이 없습니다. 제 의견일 뿐이니까요. 다만 그걸 전달하는 방식이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에게 빌미를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다른 모든 것들은 정당화가 되어도 무례만은 합리화시킬 수 없어서 그런걸까요. 강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Lester
2022-05-15 01:18:27
정확히는 필기합격이지 면접까지 통과한 건 아니어서 약간의 유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면접까지 기다리려다가 혹시나 해서 업체명을 검색했더니 대번에 다단계 의혹 및 과거의 사건사고가 딱 뜨더라고요(포럼의 평화를 위해서 직접적인 업체명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포럼에 의견을 구했더니 두 분께서 '이력서를 반환받을 수 있는 법적 사유'가 포함된 법령을 공유해 주셔서 알차게 써먹을 수 있었습니다. 티타임에 짤막하게 기록이 남아 있으니 보셔도 될 것 같네요.
사실 '무례'라는 것 자체가 상대방이 무례하다고 받아들이면 무례한 것이라 굉장히 난감하긴 해요. 하지만 이것도 생판 남 내지 별로 가깝지 않은 사람,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 한해서지 모든 사람이 무례하다고 받아들이는 건 아닐 것입니다. 야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무례하다는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었다고 하시지 않은 것만 봐도, 지금까지 충분히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잘 대응해 오셨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SiteOwner
2022-05-14 21:52:13
우선, 상당히 곤란했을 상황을 지혜롭게 잘 극복하신 점에 축하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YANA님께서 만나셨던 분은 상당히 설득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입니다. 어떻게든 사람의 말문을 막으려는, 소위 가스라이팅에 매우 능한 사람이다 보니 말이지요. 특히 2번째 질문은 정말 훅 찌르고 들어오는 성격의 것이라서 막기 어렵습니다. 저 또한 저런 질문을 받으면 직접적으로는 반박을 할 수 없다 보니 대안적으로 이렇게 준비해둔 것이 있습니다. "저 부자이고, 이 일 취미 겸 소일거리로 합니다. 불만 있습니까?" 라고.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모르시나 본데 저는 7조원 현금부자이고 매달 받는 이자만 해도 200억원은 넘습니다. 귀하께서 얼마나 이익을 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시려면 아마 귀하는 물론이고 대대손손 벌어서 저에게 바치셔도 모자랄 건데요?" 라고 블러핑을 구사했더니 저를 감언이설로 어떻게 해 보려던 사람은 이런 모욕은 처음이라면서 저에게 온갖 욕을 하고 자리를 떠 버렸습니다.
경피독...찾아보니 전형적인 유사과학이군요. 역시 멀리하는 게 상책입니다.
잘 대처하셨습니다. 그리고, YANA님은 바르고 또한 강합니다.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물론 그것에 지나치게 좌우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습니다만, 저는 이유없이 미움받은 적이 많다 보니 일단은 그려러니 합니다. 단 저의 영역에 개입하려 들면 그때는 용서가 없지만요. 예전에 쓴 글인 병원에서 생각났던 1988년 6월과 9월의 어느 날과 대뜸 싸움을 걸던 강철이빨 소녀에도 나오듯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쁘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 같은 건 애초에 필요한 게 아닌 것인가 봅니다.
YANA
2022-05-14 23:38:41
2번째 질문은 어쩌면 살면서 제가 타협을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이 빠른 유형이라 오히려 반박이 더 쉬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보면 대학교 때에 활용했던 능력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대학교 생활의 연장선이라고 제 스스로 인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대학교는 돈을 억만금을 주고도 다니는 곳이니까요. 진정으로 끊임없이 배울 무언가가 주어지는 일이라면, 그리고 숙식이 해결된다면, 피곤하긴 하겠지만, 돈을 안 받고도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애초에 전기/컴퓨터공학계는 자본이 상당히 주목하는 것이기도 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분명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미워할려면 미워할 수 있다고 인지는 하고 있는데, 어딘가에서부터 올라오는 공포감은 어찌할 수가 없네요. 무의식적인 것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왜 유독 이런 경우에서 불안이 치솟는지 솔직히 짐작가는게 없는 건 아닙니다만...... 이걸 어떻게 건드려야 할 지 모르겠네요. 정신의 상태가 어떤지 스스로 단정하면 정말 그렇게 되버릴 수도 있기에, 생각하지 않는게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슬슬 한계가 오는 모양입니다.
살면서 저는 언제나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환경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이었든 실력이었든 지금 저에게 다단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건 변하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