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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마케팅의 패착 - 한 페미니스트 카페의 폐업

마드리갈, 2022-07-18 17:57:36

조회 수
164

디마케팅(Demarketing)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이것은 마케팅(Marketing)과는 정반대에 있는 개념으로, 의도적으로 고객층을 줄이는 전략이죠. 사실 이런 디마케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이윤극대화를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이런 것이죠. 일정 자산규모 이상의 고객에 대해 금융회사가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제공한다든지, 항공사에서 비즈니스 클래스의 승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한다든지 하는 등의 것이 대표적인 디마케팅.

그런데 디마케팅이 성공하려면 확실한 전제가 있어야 해요.
간단히 정리하면 부등식 하나로 정리되죠.
(선택과 집중으로 창출되는 이윤) >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할 때 창출되는 이윤)

이 부등식을 만족하지 못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오래 가지 못해요. 손해를 내서 되도록 비참하게 파산하는 게 목적이 아닌 이상 그 사업을 존속해야 할 메리트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러면 이제, 잘못 설계된 비즈니스 모델이 어떻게 망해 버렸는지를 한번 볼께요.
2017년 여름에 호주 시드니에서 창업한 비건 레즈비언 고객을 겨냥했던 핸섬허(Handsome Her)라는 카페. 이 카페는 2019년 4월 28일에 폐업했어요. 즉 2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은 것.
자세한 것은 아래의 기사에 있으니까 참조를 부탁드릴께요.

저 카페가 개업 초기부터 논란을 몰고 온 이유는 표방한 규칙 중 여성이 좌석에 우선권을 가진다는 것과 남성에게는 호주에서의 2016년 기준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에 따라 18%를 추가로 징수한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그것만 논란인 것은 아니었어요. 카페의 입지 및 직원의 위생문제, 제공하는 상품의 높은 가격 및 떨어지는 품질, 남성고객에 대해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다른 모든 여성고객보다 서비스가 후순위로 설정된 노골적인 차별 등이 극도로 비우호적인 여론을 자초한 것이죠.
결국 가부장제에 맞서고 가부장제를 혁파하겠다는 그 카페의 의도는 시장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자진폐업으로 결론이 난 것이죠. 그것도 고객부족으로 경영난에 빠졌으니까요.

사실 이 카페의 패착을 아주 깊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돈에는 성별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적게 지불하는 사람이 공간을 오래 점유하고 있으면 회전율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런 점을 몰랐는지 알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 디마케팅은 자멸로 이어진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어느 치기어린 자들의 무모한 패착이라고만 보기에는 더욱 우려스러운 것이 있어요.
한때 프랑스의 부유층이 타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하게 된 부유세 논란이라든지, 국내에서 추진이 검토중인 감세정책에 대해서 "부자감세" 운운하여 반대하는 논리 등. 호주의 페미니스트 카페와 프랑스의 부유세 논란은 과거의 것이지만, 국내의 사안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대왕고래

2022-07-18 23:35:45

어디서 본 적 있네요. 유머글로 올라온 거 본 거 같아요. 누가 말하기를 "차라리 여자한테 돈을 덜 받는쪽으로 마케팅을 했으면 망할 일이 없었겠다"라고 했었나...
애초에 저런 목적으로 마케팅을 한 이유는 페미니즘은 핑계고, 그냥 돈을 더 벌고 싶은데 그럴 명목이 페미니즘 말고는 안 떠올랐던 거겠죠. 마치 비오는 날에 우산을 비싸게 팔면 돈을 벌겠지? 하는 생각과 비슷하네요. 실제로는 비싸게 안 파는 곳에 가서 우산을 하고, 비싸게 파는 사람은 망하겠죠.

마드리갈

2022-07-19 15:23:52

무능한데 욕심만 많으면 저 패착이 나는 거예요.

하지만 여성할인이라고 마케팅을 했더라도 저 카페는 망했다고 봐요. 비건(Vegan)이라는 채식주의 중에서도 가장 협의의 부류를 대상으로 하는데 고객 자체가 매우 좁을 수밖에 없고 카페의 특성상 대량소비도 불가능해요. 거기에다 그 비건이라는 전제하에서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데다 남성고객 차별이니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3중으로 차단한 것이죠. 성별 임금격차에 따라서 요금을 받는 발상도 어이없지만, 설령 그게 맞다고 하더라도 지불능력이 더 큰 고객을 쫓아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발상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어요.


프라이빗 뱅킹의 경우 100억원을 예치한 고객 1명은 1억원을 예치한 고객 100명만큼의 가치가 있고 게다가 그 자산예치금액이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일신전속적이니까 우대받는 게 당연하지만, 임금격차는 일신전속적이지도 않아요. 저소득자 남성이 있는 반면 고소득자 여성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런 무리한 성역할 고정이 결국은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게 지극히 당연해요.


사실, 놀랍게도 저 카페보다도 더욱 성공적으로 여성고객을 우대하는 영업장은 정말 많이 찾을 수 있어요. 여성전용 디저트바이킹이라든지, 여성전용 체육관이라든지, 백화점에서 남성복 층은 1개 층인데 여성복 층은 여러 층이라든지.

Lester

2022-07-20 01:47:47

막상 읽어보면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하지만, 국내 게임업계가 (마드리갈님이 말씀하신 '100억원을 예치한 고객 1명' 같은) 고래유저들을 어떻게 휘어잡는지를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섭고 장사라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해당 게임들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아예 무관한 사람들은 '돈낭비'라고 비웃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이니까요. 그 합리적이라는 것도 당사자들이 '만족'하는, 즉 '개개인마다 기준치가 다른 형체 없는 무언가'여서 더더욱 말이 안 통하기도 하고...


비슷한 논리가 만화 "라면요리왕"에 나오는데, 흔히 괴상한 조리법이나 일반인들에게는 딱히 차이 없는 맛으로 승부가 나는 다른 요리만화들에 비해 이 작품은 똑같이 맛있지만 '상품'으로서 성립하는가가 승부의 포인트가 됩니다. 즉 '사시사철 판매할 수 있는 재료인가?', '점포 구조상 회전율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가?', '손님에 대한 배려는 확실한가?' 등을 따지는 것이죠. (그래서 이 작품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요식업 창업 가이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예전에 지인에게 '사농공상에서 왜 상(商)이 맨 끝에 있는가. 가장 천해서가 아니라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당시 대화 주제에 맞춰 어거지를 부린 적이 있는데, 정말로 그래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저 한자는 보통 '장사'를 뜻하지만 '헤아리다'라는 뜻도 있는데, 그 대상을 '돈'이 아니라 '고객의 심정'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기묘합니다.

마드리갈

2022-07-20 14:28:02

비즈니스(Business)가 왜 비즈니스인지 정말 곱씹어보게 되어요. 매번의 판단과 결정에 바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위해서는 합리성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검증해야 하니까요. 문제의 합리성이 고객마다 모두 다르기도 하고 말이죠.

라면요리왕에서 말하는 것이 확실히 현실적이네요. 사실 특정분야가 산업이기 위해서는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규격화가 가능하고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어야죠. 위의 비건 페미니스트 카페의 경우는 최소한 수익성에서는 철저히 실패했어요.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그 중 페미니스트이면서 비건일 확률, 그리고 그 전제를 모두 만족하는 고객이 호주의 시드니에 거주하면서 그 카페의 이용객이 될 확률을 곱하면 확률은 한없이 낮아지고 결국 고객층이 지극히 제한적이거든요. 게다가 그 이용객이 리피터일 확률까지 곱하면...


말씀하신 사농공상 담론, 확실히 공감되어요.

그러고 보니 사농공상 한자숙어에서 유래한 캐릭터의 이름도 생각나고 있어요.

농림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인 나카자와 미노리(中沢農)는 4자매 중의 1명인데 언니가 츠카사(士), 큰여동생이 타쿠미(工), 작은여동생이 아키나(商). 4자매의 이름의 한자가 모두 사농공상에서 유래하죠. 게다가 츠카사는 총괄, 미노리는 수확, 타쿠미는 가공, 아키나는 거래의 의미를 가지고 상품이 상품이기 위해서는 최종단계인 거래를 거쳐야 결국은 총괄이 만족되는 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상업의 일본어 고유어인 아키나이(商い)는 "질리지 않음" 의 일본어 어휘인 아키나이(飽きない)와 발음이 같죠. 즉 상업이라는 것은 업자도 질리지 않아야 하고 고객도 질리지 않아야 하는 것. 이런 것도 성립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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