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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겸 작가수업(현실성이라는 이름의 굴레)

Lester, 2022-12-10 23:59:15

조회 수
218

1-1. 일단 조용한 겨울을 즐기자는 계획은 샌드록의 추가번역 때문에 산산조각났고, 그마저도 BQM의 신규번역(그러니까 기존 번역이 쓰레기라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고생하는 상황입니다. 그 스트레스 탓인지 계속 앉아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께쯤(목요일)에는 진짜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등 위쪽이 눈물나게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대다 병원 문 닫기 이전에 들어가서 물리치료와 주사 맞았네요. 평상시에도 전주에서 올라올 때 챙겨온 효자손으로 등을 두들기는데 이번에는 이것도 아무 효과가 없어서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1-2. 그나마 BQM은 단어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금방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몸이 아파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근래 2주일 동안 일 자체를 하기 싫어서 딴짓으로 시간을 허비한 경우가 많았네요. 일 해야겠다고 큰 마음 먹고 컴퓨터를 켰는데 위키질과 다른 걸로 서너시간을 소모하고 피곤해서 다시 잔다든가...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게임이라면 인게임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흥미를 붙일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두 게임 모두 현재로서는 딱히 끌리는 구석이 없습니다. BQM은 던전 만들기 및 공유 게임인데 시뮬레이터 특유의 스토리 없는 구성이 재미있을 리가 없고, 샌드록은 그래픽이 별로인 것도 있거니와 중국어-영어-다국어 체제라서 중언부언하는 느낌도 큽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분량이 압도적(대충 추산해봐도 내년 초 혹은 내년 여름까지 계속해야 할 판)이라 지긋지긋해요. 그래서 백업 요원을 한 명 영입하긴 했지만 실력을 떠나서 곧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다 이미 작은 일감을 붙들고 있어서 도와줄 수 없다고 하니... 프리랜서로서 바쁜 건 좋은 일이지만 이러다가 언제쯤 작정하고 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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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작가수업치고는 창작을 쉰 지가 꽤 돼서 할 얘기도 별로 없습니다만... 현재 틈틈이 설정 짜는 동안에 생기는 문제라면 역시 '불필요하게 현실성을 추구'하는 게 있겠네요. 특히 이건 제가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된 GTA 시리즈하고도 살짝 연관이 있습니다. GTA 시리즈가 분명 현실 미국을 일부러 범죄소굴로 만들어 패러디하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배경 자체만을 미국과 비슷하게 연출했을 뿐 그것이 스토리에 특별히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냥 '미국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데에 그치죠. 이는 다른 범죄게임은 물론 고유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게임 외에 다른 창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창조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2-2. 그런데 저는 어째서인지 "응? 이래도 되나?"하는 필터가 계속 걸립니다. 저는 작품 세계관의 시간대는 별로 따지지 않는 편인데, 이건 기술의 진보를 작품에 반영할수록 생각해야 될 게 많아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현실의 치안 문제 등을 계속 연구 및 반영할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영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장 할리우드 영화만 봐도 세계최강 미국이 걸핏하면 터져나가는 게 다반사니까요. 그런데 저는 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성 탓인지, 그럭저럭 경험치가 쌓인 탓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성격 탓인지 계속 "이래도 되나" 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실제로는 그대로 전개해도 아무 문제 없는 내용들이고 설령 실수였다고 한들 그것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고쳐나가면 될 일입니다만, 뭔가를 구상할 때마다 이렇게 브레이크가 걸리니 체력과 정신력 소모가 커서 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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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그래서 요즘은 1번과 2번이 합쳐져서 그런지 그냥 '지긋지긋하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일은 일대로 답답하고 창작은 창작대로 답보 상태이니 남은 것은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게임일지도... 특히나 올해 내내 스톤샤드다 뭐다 하면서 나름대로 빡빡하게 달려와서 그런지 더더욱 막막합니다. BQM은 그렇다쳐도 샌드록은 최신 배치(9th)까지 작업해야 하는데, 분량을 생각해보면 진짜 앞이 안 보이네요.


3-2. 그나마 개발사인 중국이 코로나 때문에 답보상태인 걸 감안하면 더 이상의 업데이트는 없겠다 싶으니 느긋하게 따라잡으면 되기도 하고, 한국어 번역 자체가 다른 언어권보다 시작이 늦었으니 진행률이 느린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디시의 스톤샤드 갤러리에 비하면 샌드록 공식 카페는 순수 팬들만 모여서인지 번역이 구리니 어쩌니 하고 구설수가 없다는 것도 위안을 주는 한 가지 요소입니다. (그러고 보니 스톤샤드 번역은 우선순위 문제로 인해 사실상 당분간 방치상태라서, 차마 갤러리 반응을 확인할 엄두가 안 나네요)


3-3. 답답하고 불안한 것 때문에 정신과 약을 타러 가자니 오랜만에 왔다고 심리검사다 뭐다 해서 돈을 뜯어낼까봐 걱정되네요. 그냥 약만 타오면 좋겠는데 이전과 비교해야 한다고 늘 똑같은 검사지를 내밀고 거기에 또 답변을 해야 하는 게 귀찮습니다. 그래서 일이 안 풀린다 싶으면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는 걸로 마음을 달래고 있으나... 모든 작업이 끝나기 전까진 진심으로 쉴 수 없을까봐 계속 걱정입니다. 걱정이 끝이 없네요. 쉬고 싶은데...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6 댓글

마드리갈

2022-12-12 00:16:44

묘사된 근황이 많이 힘들었던 나날의 연속이었군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저는 금요일 오후부터 어지러움이 심했다가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이전 상태로 회복하는 데에 성공했어요. 게다가 오늘은 올해 중 월과 일이 같은 수인 날이다 보니 특히 더욱 조심하려구요. 저희집의 경우 이상하게 이런 날에 불상사가 많이 터지는 터라...


현실성 추구는 무시할 필요도 없고 그것을 이유로 본말을 전도시킬 필요도 없고 그러해요.

즉 필요한 목적에 맞으면 그만이고 창작물의 제작자가 그렇게 정한 것에 누가 토를 달겠어요. 작중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지니면 그것으로 충분하죠. 그리고 창작물의 목적은 향유(享有)니까 그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꼭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더 짧게 요약해 드릴께요.

"그래도 되나?"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제 대답은 이거예요. 당연히 되죠.

Lester

2022-12-13 22:38:07

어제 새벽에 BQM을 끝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12시간을 푹 잤더니 한결 나아졌네요. 아니면 핫식스 덕분일지도. 이런 카페인을 자주 먹으면 중독돼서 우울감 같은 게 증폭된다고 하는데, 마셔도 불안하고 안 마셔도 불안해서 죽겠습니다. 그냥 계속 신경이 곤두서네요.


그 '합리적'이라는 게 사람에 따라서는 '현실성'과 동의어처럼 느껴져서 꺼림칙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상황에 안 맞는 예시 같긴 하지만 예전에 제 세계관에서 교복 색깔을 보라색으로 한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보라색은 신체의 형태를 뭉뚱그린다고 하셨던가 혹은 일상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인가 하는 답변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즉 비합리적인 색이니 현실성이 없다는 말과 어느 정도 맥락이 같아지는 거죠.


물론 창작물 내에서만 사용할 것이니만큼 현실성을 논할 필요가 없긴 합니다. 합리적이라는 말 자체를 제가 지금 곡해해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아니면 오히려... 차라리 관두고 싶어서 포기할 이유를 찾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머리 터질 것 같아서 죽겠네요.

마드리갈

2022-12-14 19:09:35

카페인 과량섭취는 좋지 않아요. 카페인이 양날의 칼인데 과량 섭취하면 부작용이 상당히 심각하거든요. 그러니 불안하더라도 안 마시고 불안한 편이 나아요.


전에 올려주셨던 그 글(바로가기)에 대해서 답변을 드리자면...

창작자 본인이 어떻게 설정하는가와 창작자가 아닌 사람이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죠. 저는 레스터님의 창작물을 외부인의 시각에서 평가할 뿐이고 그 시각은 레스터님의 시각과도 작중에 통용되는 가치관과도 다른 것이니 그렇게 저의 생각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약간 다르게 평가하면, 동일한 사안이라도 그것이 독자적인 창작의 영역에 있는가 평가의 영역에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필연이니까요. 그러니 제 평가가 어떻든 간에 그건 어디까지나 제 의견일 따름이고 레스터님께서 이것에 영향받아야 할 당위성은 없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Lester

2022-12-15 06:47:35

새벽에 집중하고 3시간 연속 일하느라 이 쪽 코멘트를 다는 걸 깜박했네요. 카페인은 아니지만 게임을 한 2시간 연달아 하다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배신(?)을 철저하게 당해서인지 놀 생각이 싹 사라지더군요. 과정이야 어쨌든 작업에 몰입할 계기가 생겨서 다행입니다. 또 소위 '노동요'를 (게임 배경이 사막이니만큼) 웅장한 웨스턴epic western으로 바꿨더니 일하면서 신바람이 나기도 했고.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어느 의미로는 본문에도 썼듯이 차라리 퇴짜맞기를 바라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있지 않았나 싶네요. 이렇게 거절당하니까 안 하고, 저렇게 기각당하니까 안 하는... 저 자신이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창작에 한해서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게 중요하건만 이제는 그런 자신감(혹은 뻔뻔함)마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 자신감은 어떻게 해야 생기려는지... 또 막막해지니 이 즈음에서 고민을 억지로 끊어야겠네요.

SiteOwner

2022-12-29 16:05:00

여러모로 고생 많이 하시는군요. 그래도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무리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체력이라는 게 한계도 있고 그래서 결국 필요한 것은 완급조절을 잘 하는 것이더군요. 그리고 그게 결과적으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복잡한 생각은 포럼에서 나누어 주시면 아무래도 덜어지지 않겠습니까. 여기는 그렇게 쉬어가는 공간이기도 하니까 마음 편하게 포럼을 이용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실성은 추구해도 되고 추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이 만드는 세계인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리고, 세계라는 것이 정말 넓습니다. 우주공간 전체에 비해서는 얼마 안된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생각이 있는 법이고 그리고 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횡적으로 또한 앞서 산 사람들의 생각과 종적으로 엮여서 수많은 것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폴리포닉 월드 프로젝트에서 창안한 여러가지가 당시에는 시대를 많이 앞서거나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착착 현실세계의 사안이 되는 것을 보더라도 현실성에 대해서는 자신을 속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소룡의 명언 중에 이게 있습니다. 이것으로 제 생각을 대변할까 합니다.

Liberate yourself from classical Karate.

Lester

2022-12-30 12:25:41

조언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저도 마음에 쌓인 이야기를 마음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다보니 계속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가만 보면 저는 현실성과 개연성, 핍진성을 계속 혼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비현실적이어도 작중 줄거리상 맥락만 맞다면 충분히 성립 가능한데 구태여 '현실에선 이런데?' 하고 자기검열을 반복하니... 좀 더 알찬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한편으론 디테일에 너무 충실해서 작품 자체가 성립하는 걸 해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차피 어딘가에 돈 받고 연재하는 것도 아니니 최대한 담대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걸 중시하도록 노력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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