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일본에서 이런 것이 있었죠.
일본의 형법에서 사형으로 규정된 방법은 사형수의 목을 밧줄로 묶어서 낙하시켜 그 충격으로 경추를 골절시키고 경동맥을 막아서 그 사형수를 죽게 만드는 교수형(絞首刑, Execution by hanging). 이것에 대해 오사카구치소에 수감중인 사형수 3명이 11월 29일에 국가에 대해 사형집행정지 및 3300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기했어요. 대리인인 변호사는 "일본의 사형제도의 현주소를 다시금 묻는다" 라고 소송의 취지를 밝혔어요.
관련보도는 이것.
「絞首刑は国際法違反」 死刑囚3人が執行差し止め求め提訴 大阪
("교수형은 국제법위반" 사형수 3명이 집행정지를 구하여 제소 오사카, 2022년 11월 29일 마이니치신문 기사, 일본어)
원고 3명은 모두 최소 10년 전에 사형확정된 사형수로 2명은 형사재판의 재심를 청구하고 있어요. 그들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공개된 정보로 대체로 누구인지는 추정할 수는 있어요. 오사카구치소에 수감된 사형수들의 죄목은 폭행살인, 여성들에 대한 연쇄강도살인, 독극물혼입 카레 사건,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 부부살해, 우익단체 간부 등을 습격하여 살해한 사건, 애견가들을 노린 연쇄살인, 연쇄강도살인 등이 있으니 이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수감중인 것만큼은 틀림없어요.
원고측의 주장은 이러해요. 일본은 국제인권규약을 비준한 나라로 비인도적인 형벌이나 자의적인 생명박탈을 금지하고 있는데 잔학한 형벌이나 고문을 금지한 일본국헌법 제36조에 교수형이 위배된다는 것이죠. 교수형은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게 하여 사형수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과거의 법의학 감정서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시하며 의학적으로 잘못되어 있다고 하며 호주의 법의학자의 소견을 인용하고 있기도 해요.
현재 사형을 유지하는 국가는 전세계에 55개국이 있고 그 중 대표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게다가 실질적 사형폐지국은 144개국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제목에서 썼듯이, "당신들은 법을 지켜서 사람을 죽였나?" 라는 의문이 안 들 수가 없는 것이죠.
그렇게 국제법과 국내법을 원용하며 자신의 생명을 지킬려는 사람들이, 범죄 당시에는 그런 것이고 뭐고 없이 그냥 사람을 죽였죠. 그렇게 법을 어긴 무법자들이 이제 와서 법에 호소하며 법의 보호를 입에 담는다는 것이 참 기괴하지만, 그것 또한 법의 정신(L'esprit de lois)이겠죠.
그리고, 이렇게 입증된 게 있네요.
사람은 자신이 당하지 않은 입장에 있으면 쉽게 행동하죠. 그러나 자신이 당하는 상황에 대해서까지 반드시 그러리라고는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이 소송의 의의를 굳이 찾는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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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22-12-14 23:09:29
"교도관 나오키"라는, 일본 형무소(우리나라의 교도소?) 중 사형수들과 그 교도관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만화가 있습니다 해당 작품에서는 사형수 구획이 대체로 어떻게 관리되고 사형수들의 생태는 또 어떤지에 대해 자세하게 풀어내면서도 사형수들의 사연을 통해 '사형이란 정말 필요한가'에 대해 다루는데, 결과적으로 '어쨌든 살인은 잘못이며 (억울한) 슬픔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사형당하는 게 맞다는 씁쓸한 결론을 내리죠.
다만 해당 작품에서는 교도관들을 굴리거나 인면수심을 지닌 못된 사형수들이 등장하긴 해도 답이 없다 싶은 애들은 (죄를 받아들이고 덤덤하게 죽은 다른 사형수들과 달리 바둥거리다 억지로 죽는) 통쾌한 최후를 맞이하긴 합니다만, 묘사된 사형수들 중에 소위 사상범은 없다는 게 좀 의외였습니다. 물론 사형의 당위성을 논하는 데에 자기들만의 논리로 무장한 사상범을 '사연 있는 사형수'로 보기는 힘들겠지만요.
어쨌든 평화로운 세상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는 망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실제로는 사법체제에 의해 치안이 잘 유지되고 있어서 그런 망상도 가능하다는 뜻이건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설친 결과 사형이라는 죄값을 '자초'하는 걸 보면 사필귀정이라는 게 아직 통하긴 하나 봅니다.
마드리갈
2022-12-15 00:31:29
저는 사형존치론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형제도 자체를 좋아해서 사형존치론을 지지하는 건 아니예요. 사형으로 다스려야 할만큼 중대하고 극악무도한 범죄가 완전히 없어지고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조차 완벽히 소멸된다면 그때는 사형제도가 존치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사형제도가 존재해서도 안되겠지만요. 그리고 피살된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것으로 속죄가 가능한 경우라도 역시 사형제도는 설 자리가 없겠지만 예의 두 경우가 얼마나 존재할까요? 사형폐지론은 이 두 맹점을 극복해야 생명력이 있는 법이죠.
교도관 나오키라는 만화에 대해서 찾아봤어요.
역시 사형수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이 있어서 일률적으로 사형수니까 백번 천번 죽어 마땅하다고는 매도할 수 없겠죠. 그와 동시에 그들이 정당하기만 한 것도 아니기도 하고. 상당히 심도있는 고찰을 한 것이 돋보여요. 문제는 그 만화의 작가의 행적이지만...
몇 가지 보충설명을 덧붙일께요.
우리나라에서의 교정시설은 교도소로 불리고 있어요. 일본에서 만들어진 형무소보다는 수형자의 교화에 중점을 보인다는 것이 보이고 일본식 한자어를 배제해온 경향도 있다 보니 일본의 형무소에 해당되는 교정시설은 교도소가 맞아요.
사형수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미결수라서 원칙적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지만 예외적으로 형무소에 수감되는 경우도 있어요. 사형장이 있는 일본의 형무소는 삿포로형무소와 미야기형무소. 그 2개 형무소는 구내에 구치지소를 두고 있어서 사형수는 형무소 구내의 구치지소에 수감되어요. 작중의 나니와형무소는 가공의 시설이니까 역시 현실세계의 방식을 엄격하게까지 따라야 할 의무는 없지만요.
대왕고래
2022-12-19 23:46:19
변호사를 잘 골랐네요. 저런 변론으로 사형을 취소시키려고 하기까지 하고.
그런데 마드리갈님의 비판처럼, 자기한테는 적용되지 않는 어거지 논리라는 게 바로 보이기까지 하네요.... 변호사를 잘못 쓴 거 같은데요? 자충수네요, 저거.
마드리갈
2022-12-20 00:09:06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들이 사형으로 귀결되는 살인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죠. 로마법에서 말하는 불능의 조건으로 흔히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로 번역되는 conditio sine qua non 원칙처럼. 그들은 살인범죄라는 형태로 법을 어겼고 그것의 결과가 법이 그들을 벌한 것이지 다른 것 없어요. 참 편리한 사고방식이예요. 하지만 그 사고방식이 순순히 통할 거라고 하면 세상을 잘못 보고 인생을 잘못 산 것이지만요.
전후 일본의 시민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도 있어요.
사실 이건 시민운동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 꽤나 이상한 시민운동도 있거든요. 그래서 신좌익이라고 부르는 극렬 극좌테러리즘이 횡행하기도 했고 국가기관이 그냥 망하든 말든 아무 행동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런 사형수들의 변호사들이 어떤 사람들이지는 정보가 없으니 단언은 힘들지만 그런 계통의 사람들을 변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어요.
마드리갈
2024-08-13 23:00:20
2024년 8월 13일 업데이트
사형제도의 형해화 시도를 분쇄하는 판결이 나왔어요. 이 판결은 본문에서 제기된 소송에 대한 것이 아님에 주의!!
사형집행의 당일공지가 위헌이어서 그 집행을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형수 2명이 낸 소송에 대해 오사카지방재판소의 요코타 노리코(横田典子, 1969년생) 재판장은 "확정된 형사판결의 결과를 실질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들 것을 청구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라는 취지로 사형수측의 주장을 기각했어요.
예의 사형수들은 이런 말을 잘도 했네요. "사형확정자의 인권이 국가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 라고. 흉악범죄의 희생자는 그럼 누구에게 또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인권을 짓밟힌 것일까요?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刑事判決を実質無意味にする」 死刑囚2人の訴え、大阪地裁が退ける 当日告知巡る訴訟
("형사재판을 실질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든다" 사형수 2명의 소송, 오사카지방재판소가 기각 당일고지를 둘러싼 소송, 2024년 4월 15일 산케이신문 기사,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