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제목과 같은 상황이 잇달아 발생해서 그런지 꽤나 침울해졌습니다. 사실 뭐 심각한 사안들은 아닌데, 하나씩 곱씹어보면 워낙 착잡한 부분들이 많아서 말이죠.
시간순으로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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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턴을 쉬겠습니다
수도권으로 올라오면서 보드게임이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다만 보드게임 자체가 꽤나 다양한 만큼 그것에 얼마나 빠져드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보니, 같이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판'의 분위기가 급변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현재 참석해서 활동하는 오프라인 모임도 비슷한 상태입니다. 회비가 (기존 가정집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모임에 비해 3천원 증가한) 8천원이라는 건 고사하더라도, 파티룸 같은 공간을 빌려서 진행하는만큼 사람도 은근히 많고 또 다양한 게임을 진행하는지라 재미는 많았습니다. 특히나 마작에 제대로 맛을 들이는 바람에 보드게임보단 마작만 하려고 들르는 꼴이 되어버렸죠. 결국 이전 리그전에서 NPC[리그전 비참석자]로 워낙 흐름을 (싼 역으로 금방금방) 끊는 바람에, (주최자가 다르긴 해도) 이번 리그전부터는 'NPC 금지법(?)'이 발동되어 강제 리그 참석이 되었지만요. 당연히 초보자인 만큼 리그전 꼴등.
뭐 여기까지는 상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임 유지가 워낙 만만찮은 것인지 회비를 1만원으로 올린다고 하더군요. 더구나 '(실현 가능성은 둘째치고) 조합 같은 걸 만들어 시청에서 문화사업 같은 걸 따다가 여기 열성적인 유저들이 보드게임 강사로 활동하면서 모임 유지에 보태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물론 '불로소득은 어쩔 것이냐'라는 반대 때문인지 일단 묻히긴 했지만, 모임장의 됨됨이 같은 걸 토대로 유추해 보면 머지 않아 그렇게 진행할 것 같긴 합니다.
저로서는 살짝 애매합니다. 일단 게임번역 때문에 꽤나 지친 저로서는 보드게임 한국어판 발매 같은 번역도 (모임장의 인맥을 토대로) 따낼 수 있으면 좋으니까요. (물론 국내 단가가 싼 것을 감안해서 크게 기대하진 않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살짝 모임이 (친목질까지는 아니지만) 특정 열성회원들 위주로 진행되는 분위기가 엿보이는데, 여기서 회비까지 올려 받는다고 하니 모임이 점점 고착화되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안 그래도 '회비를 더 낮추고 인원을 많이 받는 게 좋지 않느냐'라는 주장이 나왔으나, '시설 보안 및 기타 문제 때문에 아무나 받는 건 힘들다'는 반론 때문에 막힌 상태입니다.
이 갑론을박하는 회원들이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목소리만 높이는 게 아니라 진짜 애정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이라 더 논란이 뜨거운데... 저는 그냥 들락날락하는 일반회원이라 애매합니다. 뭐 개인적으로 참석 시간이 애매한데도 회비는 칼같이 받아먹고, 어려운 전략게임에 머릿수 채우려고 이용당하는 느낌이라 불만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요. 모임 운영 회의에 나가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단톡방이나 수뇌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중재가 안 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저야 내추럴 본 중립(?)이니 중재자 역할을 맡을 수도 있겠지만 (회비도 비싼데다) 양쪽에서 총을 맞기 십상이라, 일단은 보고만 있으려고 합니다. 아니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는 말이 있으니만큼 이 즈음에서 하선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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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3년의 공백
일전에 GTA 관련 팬픽을 시작으로 글쓰기에 막 입문하여 지속적으로 활동하던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또한 해당 커뮤니티는 저에게 현재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인 '(게임)번역'이라는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찾은 곳이기도 합니다. (기회를 받았다기보단 제가 만든 것이지만요) 그리고 글쓰기를 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특성상 닉네임 외엔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꽤나 친절하고 다양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죠. 특히나 과거 학생 시절에 친구도 별로 없이 외롭게 지내왔던 저에게는 아주 좋은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제가 지어준 이름으로 닉네임을 바꾸거나(결국 나중에 '(나쁜 의도는 없었다지만) 닉네임 바꿔가며 다른 사람인 척하는 거 아니냐'라는 지적을 받아서 자수) 하는 식으로 저에게 큰 관심을 보내주던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제 작품 활동을 대단한 것처럼 포장(?)한 후 커뮤니티 채팅방에서 인터뷰(??)했던 내용과 합쳐서 (당시 인기 있었던 TV 프로그램인) 무릎팍 도사와 비슷한 포맷으로 헌정(????) 만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제 성격상 이모티콘이나 비문은 쓰지 않(았고 지금도 쓰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 사람도 거기에 호응해 줘서인지 전혀 장난스럽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놀라운 일이죠. 제가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인 작품들인데 무슨 헐리우드 명감독 모시듯이 했으니. 게다가 (어쩌다 보니그 중에서는 제가 최연장자라) 다른 친한 '동생'들이 인터뷰와 별개로 좋은 말들을 첨언해줘서 신빙성(?)을 높여줬습니다. 게다가 해당 게시글에 대해 뜨거운(??)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고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말 안타깝게도 그 당시의 저는 그 정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최연장자로서 (나중에는 어느 게시판의 책임자로서) 떠받들려지는 그 느낌에 취했는지도 모르죠. 아니면 (결과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필력 면에서 천하무쌍이라는 느낌에 취했을지도. 어느 쪽이든 꽤나 교만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생을 넘어 사회인이 되어 부모님의 허락을 일일이 받지 않고도 다른 지방에 드나들 수 있었을 때 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서 밥이라도 한 끼 사줬어야 했는데, 그 기회를 놓쳤으니까요. 무려 13년이나 넘어서 말입니다.
결국 그 사람은 2010년을 마지막으로 휴면회원이 되었고, 저는 이후에 (최근 포함해서) 몇 번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습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심정으로 고객센터에도 문의했지만 '휴면회원에 대한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제 블로그(현 티스토리)에 그 사람이 찾아와서 댓글을 남겨 연락이 닿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제가 무진장 유명해져 공개방송에서 영상편지라도 띄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요.
기회를 놓치니 후회만 남고, 후회가 남으니 슬픔으로 변하네요.
그는 다시 한번 나를 위하여 배따라기를 불렀다. 아아, 그 속에 잠겨 있는 삭이지 못할 뉘우침, 바다에 대한 애처로운 그리움. 노래를 끝낸 다음에 그는 일어서서 시뻘건 저녁 해를 잔뜩 등으로 받고, 을밀대로 향하여 더벅더벅 걸어간다. 나는 그를 말릴 힘이 없어서, 멀거니 그의 등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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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배따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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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그런가 하면 순전히 제 의지로 자유롭게 끊은 인연도 있습니다. 고전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학생 시절에는 이런저런 고전게임 관련 사이트나 블로그 등지를 드나들며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영어를 못하다보니 에뮬레이터나 롬파일을 원문(영어)으로 직접 검색해서 구한다는 생각을 못했고, 한국계 사이트에 널린 자료를 찾는 게 고작이었네요.
당시로서는 피파 온라인 등의 멀티플레이 게임이 이미 제대로 뿌리를 박은 PC방을 타고 퍼졌기 때문에 고전게임 자료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면서 널리 알려진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으니까요. 학교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시기라 컴퓨터를 자주 쓰기도 힘들었고, 구글이나 유튜브란 게 있었는지 몰랐기도 했고. 그래서 고전게임 자료 및 정보들은 많이 가서 익숙해진 사이트 위주로 확인했고, 후술할 어느 블로그(현재 폐업)에서는 식객처럼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그 블로그는 주력 컨텐츠로 어느 고전게임 시리즈를 중점적으로 다루기도 했지만, 기타 유명한 고전게임 및 그 후속작들에 대해서도 자료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그 당시엔 몰랐지만) 블로그 주인장의 '정신력(소위 멘탈)', 혹은 판단력이 영 좋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개인 사이트니까 별 문제는 없지만 특정 시리즈의 후속작이 만족스럽지 않자 '오늘부로 해당 시리즈 언급 금지' 명령을 내린다거나, 주력 컨텐츠에 대해 모종의 사유로 불만이 생기자 '더 이상은 취급 금지(요즘 말로 탈덕)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죠. 저야 뭐 사정이 있다면 최대한 존중하는 주의라 딱히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주인장이 오랜만(벌써 5년도 더 됐습니다)에 제 블로그에 와서 비로그인 댓글을 남기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 주인장은 문제의 주력 컨텐츠 건으로 이미 다른 사람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자기가 (신상 노출 혹은 비슷한) 인신공격을 당했다면서 "혹시 당신이 맞느냐,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맞으면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이 블로그 접은 지 약 4년(혹은 그 이상)이 지난 뒤라 가물가물한 터였는데, 오랜만에 찾아와서 한다는 얘기가 그런 식이라 황당하기도 하고 꽤나 불쾌했습니다.
물론 제가 무슨 근거로 의심하는 거냐,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더니 바로 사과하더군요. 그러면서 문제의 추궁이 비로그인 댓글인데다 또 책잡힐 거리는 남기고 싶지 않았는지 저에게 (블로그 주인으로서 권한이 있으니까) 지워달라고 하지 뭡니까. 하지만 과거 블로그 운영할 때의 독선적인 행실도 그렇고 대뜸 의심당하는 것도 기분이 나빠서 (여기서 하는 얘기지만) 비밀댓글로 돌려놓고 남겨뒀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말이죠. 뭐 그것도 티스토리로 (강제) 이전되면서 다 날아갔지만요.
한편 그 의심 사건과 티스토리 강제이전 사이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웹툰 작가로 새출발해보려 한다, 갓 시작한 작품이니만큼 인기와 추천이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연락이 온 바 있습니다. 의리상 작품을 읽긴 했지만 그림체나 내용이 딱히 끌리지 않았던데다, 저번 의심댓글 사건으로 안 좋은 인상이 제대로 박혀서인지 '필요할 때만 연락하지 마라'라고 답변하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뭐, 지금 이후로는 어떻게 됐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같이 보낸 시간들 중에서 제가 주로 피해 혹은 손해를 많이 본 쪽이었던 건 확실합니다. 맞춰달란 거 다 맞춰줬더니 끝까지 이용하려는 게 보이는데 계속 당할 순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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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별 것 아닌 일도 있고 진짜 슬픈 일도 있고 그런데... 이게 짧은 기간에 연달아 발생하니까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가 힘드네요. 안 그래도 일 때문에 과부하 걸린데다 오늘 아침에는 입술에 또 포진이 생기는 등... 진짜 미치겠습니다. 정신과도 다시 한 번 다녀와야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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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3-02-03 15:22:43
다른 의미로서의 사회적 거리두기...이 제목에 얽힌 일련의 사정은 역시 그 무게가 꽤나 크네요.
사실 어떤 모임을 만드는 그 자체가 비용의 지출을 수반하죠. 그리고 비용의 부담을 어떻게 하는가도 큰 문제일 수밖에 없어요. 포럼의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도메인 유지비 및 호스팅비의 지출액이 연 30만원 이내로 억제되고 그 이외의 다른 유료솔루션은 사용하지 않는데다 상당부분은 제 운영기량으로 커버하는 것으로 추가비용을 억제하고 있어요. 웹사이트도 이런데 실제의 장소를 빌려서 수행하는 모임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주도하는 입장 측에서는 늘 비용편익분석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주도하지 않는 참가자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그 모임의 주최자측 입장도 레스터님의 입장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요. 각자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것이니까요.
오래전에 끊어진 인연의 복원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다...
소중했던 것은 그게 사라진 다음에야 알게 된다는 말이 이렇게 아프게 느껴진 건 이전에 없었어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숙연해졌어요.
정신과에 다녀오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예요.
그리고 힘드셨을텐데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신 점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려요.
Lester
2023-02-03 20:54:01
1. 저 개인적으로는 회비 인상이 보드게임 모임에 대해 관심과 메리트가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한편으론 해당 모임도 매번 나왔던 사람들만 나오는 게 (이전 보드게임 가정집 모임처럼) 자연소멸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뭐 부자도 망하면 3년은 간다고, 워낙 대규모 모임이라 당장 끝나진 않겠지만요. 하지만 영 취향에도 안 맞는 전략 게임을 하면서 어울려줘야 하는데 거기다 비싼 회비까지 내야 한다니 달갑잖긴 합니다. 그렇다고 탈퇴하자니 기나긴 고독을 해소할 수단이 없어서 앞뒤로 막힌 느낌입니다.
2. 없습니다. 없어요. 고객센터에서 개인정보를 순순히 까발릴 이유도 없지만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관심을 줬던 사람이 돌아서면 '뭐 그럴 팔자였나 보지'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저한테 관심을 줬던 사람이 돌아서는 것만큼 쓰라린 것도 없는 것 같네요. 좋은 시절이었는데... 창작에 대한 제 열정도 그 사람과 같이 날아가버린 듯해서 공허합니다.
SiteOwner
2023-02-11 17:48:25
우선, 여러 힘든 상황에 직면하신 점에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즐기기 위해서 결성하는 모임이고 즐거움이 없으면 그 모임의 효용은 이미 없어져 있는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제 경우는 참가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내쳐진 경우도 있었다 보니 미리 상황을 판단하고 나오신 Lester님께서 현명하게 처신하셨다고 봅니다.
오래 전에 끊긴 인연을 복원하려고 했는데 그게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도 참 속쓰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진 것도 아픈 것임에 틀림없겠지요. 이렇게 읽다 보니 저도 예전 생각이 많이 납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음악 한 곡을 소개해 드립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작곡가 존 다울랜드(John Dowland, 1563-1626)의 노래인 If my complaints could passions move. 카운터테너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 1912-1979)가 노래하고 로버트 스펜서(Robert Spencer, 1932-1997)가 류트를 연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