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사이트오너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전반에 걸친 대학생활로 청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그 때의 대학가, 사회기풍, 유행 등을 돌아보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뇌리에는 남아 있는 그 세기의 끝과 시작의 역사를 이 자리를 통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회원 여러분들에게 이 기획특집이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르겠지만, 대전환기였던 그 시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어느 해에, 저는 고향을 떠나서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청운의 꿈을 품고 진학한 저의 눈에 비친 대학 내의 풍경에서 저는 이 한 마디를 떠올렸습니다.
"모든 가치관은 뒤집혔다"
대학가 내에서는 학생들은 무단횡단을 어떤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동차들이 수십대가 달려오든 말든간에 그냥 길을 잽싸게 건너면 되었고, 횡단보도에만은 유독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대학 구내의 쓰레기통 주변은 유독 더러웠습니다.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그리고 근처에 그냥 쓰레기를 대충 던져놓으면 모든 책임은 거기에서 끝납니다.
캠퍼스의 어느 공간이든 소음공해는 상식이었습니다.
어디선가는 풍물패의 타악기 연습 소리, 그리고 다른 어디선가는 시위에서 잘 들릴만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고, 근현대사의 사건이 있는 날을 전후해서는 도서관 앞에 대형 무대장치를 해 놓고 연설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밤낮을 메웠습니다.
화장실 내에는 더러운 낙서가 있었습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곳에서 발견된 화장실 낙서는, 어떤 여학생과 성관계를 했는데 몸매가 형편없어서 짜증난다는 욕설과 추잡한 표현 등이 난무하는 것이었습니다.
학문의 기준은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이었습니다.
학문의 자유와 다양성은 이들에의 의심없는 찬양을 의미했고, 대학은 모든 사상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뒤에 편리하게 숨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에의 의문은 사문난적, 반지성적 행태 등으로 매도당했습니다. 또한 애국의 다른 방법을 제도권의 수구냉전논리로 욕해서는 안된다는 비난도 이어졌습니다.
지역감정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광주는 혁명의 성지, 대구는 반역의 고장이라는 폭력적인 담론에 의심을 제기하면 그는 자동으로 신군부 옹호자가 됩니다.
민주와 진보의 뜻은 달랐습니다.
민주의 이름으로는 학생회 선거결과를 조작해도, 교내에서 방화, 강도, 살인 등을 저질러도 모든 것이 정당화되었습니다.
진보의 가치는 가장 반문명적인 행태를 옹호하더라도 제도권을 적대할 수만 있으면 좋은 가치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였습니다.
정치 담론이 있으면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세운 친미 반동국가이고,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될 체제라는 전제가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완의 혁명인 4.19와 5.18을 이어서 계급혁명을 성공시키고, 외세와 완전히 독립된 인민공화국을 건설하여야 한다고 외쳐야 지성인 대접을 듣고 애국하는 방법이 달랐다는 칭송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동생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세기말의 대혼란을 겪고 난 대학가에서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과거의 유산이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말은 저의 그 예측을 틀렸다고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김정일 분향소 설치사건을 접하고 나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세기의 끝과 시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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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댓글
하네카와츠바사
2013-07-14 20:51:01
비슷한 일은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에 캠퍼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데모를 해야 한다고 하던 전학련(일본의 과격 좌파 학생 집단 중 하나)이 1960년대를 다룬 애니메이션 '언덕길의 아폴론'에서도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꽤나 이상했던 게 생각납니다.
가치의 전도는 대한민국 전반에서 또한 일어나는 현상처럼 보입니다. 현재 교육 관련 업종에서 종사하는 저로서는, 당장에 아이들과 학부모를 지배하는 비뚤어진 사회의 모습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아파옴을 느낍니다.
앞으로 나올 내용도 기대하겠습니다.
SiteOwner
2013-07-17 20:28:57
저도 일본에서 그런 자들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그저 상황논리에나 기대는 뿌리없는 소리를 일삼다 자기모순을 일삼기에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한소리 해줄까 하다가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놔두기도 했습니다.
교육관련업종에 종사하시는군요. 앞으로, 생각하는 것은 부족하고 그냥 무비판적으로 들은 것은 많아서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고객들을 상대하시는 데에 유의하셔야 할 겁니다. 예전에 학원강사 생활을 했을 때 많이 상대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필요하면 조언도 해 드리겠습니다.
제 글에의 관심과 기대에 감사드립니다.
처진방망이
2013-07-14 21:07:17
손바닥만 보지 말고 손등도 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군요.
지난번에 제가 제기한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해외의 평가가 대체적으로 비웃음과 조롱으로 점철되었는지에 대한 이유 중 하나를 알았습니다.
저는 " 민주주의는 어느 틀이 존재해야 존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틀이 존재하기 않는 민주주의는 한낱 방종에 불과하니까요.
SiteOwner
2013-07-17 20:35:06
요즘 민주화라는 말이 더러운 의미로 쓰여서 문제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기원은 마냥 요즘의 혼탁한 인터넷 문화만을 탓할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 대학가에서 횡행했던, 민주, 진보, 평화 뒤에 숨은 무책임한 자들의,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끌어들이거나 욕하고 책임은 사회에 떠넘기는 행태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맹목적인 반대로 일관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히틀러 집권을 허락한, 민주주의의 자살이란 오점을 남긴 바이마르 공화국인가 봅니다.
대왕고래
2013-07-14 21:12:18
이건 갖가지 일이 있었었네요...
왠지 극으로 간 것 같은 사상, 제대로 되어먹지 않은 행동들... 뭐라 할 말이 없었어요.
SiteOwner
2013-07-17 20:41:05
그들은 그저 반대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선량하게 법과 상식을 잘 지키고 살아온 사람들을 정권에 타협한 독재부역자로 매도하는 일도 다반사였고, 유죄판결을 받은 경력을 마치 훈장삼던 자들도 흔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있어서 안 될 나라의 법 따위는 지켜서 무엇하나 하는 논리도 팽배했습니다. 심지어는 ROTC 과정에 있는 자들조차 주적은 미국이라는 소리를 공공연히 하고 있었던 것이 1990년대의 대학가였습니다.
호랑이
2013-08-02 20:14:18
진보라는 탈을 쓰고 투쟁이라는 무기로 군사적인 폭력이 가해지던 시대였을까요.
지금도 가끔 그 흔적이 보이는거 같습니다
SiteOwner
2013-08-02 20:24:29
그렇게 투쟁에만 익숙해진 채 살다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내부에서조차 적을 만들고 끊임없이 뺄셈의 정치를 펴는 것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남의 탓 운운하는 사고방식은 그 이념의 기저가 무엇이든간에 건강할 수가 없으니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 혁명에 참가하지 않는 반동분자들이라고 욕하고, 새벽에 도서관이 개장해서 열람실에 가 보게 되면 책상에 선전물을 자리마다 깔아놓고 읽기를 강요하는 그 폭력에는 정말 진저리났습니다.
HNRY
2013-08-02 21:21:30
이건……일본의 전공투만의 문제는 아니었군요. 사실 이들의 문제가 부각되지 않은 건 독재라는 그늘 속에 이들의 폐해가 뭍히고 정당화 되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나 싶네요.
SiteOwner
2013-08-02 22:09:49
물론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에 면죄부를 주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명백했습니다. 운동권들은 그 대안이 절대 될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의 운동권들도 일본의 전공투 등에 영향을 받은 면이 꽤 있다 보니 그들의 오류도 그대로 답습해 버린 것 같습니다. 독일의 RAF, 즉 적군전선 같은 경우를 봐도 결국은 테러조직으로 전락하였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소련의 붕괴, 동구권의 민주화 등으로 과거 공산권의 치부가 드러나면서 치명타를 입자 마지막으로 저항을 했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