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특히 2010년대부터 제조업 마인드 운운하면서 제조업 자체를 경멸하는 듯한 사고방식이 노골적으로 보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간단히 반문해 보겠습니다.
"너의 의식주를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봐."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있으면 그것 자체로 세계 자체의 속성이 이상하겠지만...
식품류 및 원자재는 자연에서 자원을 채취하는 제1차산업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태를 갖춘 각종 사물은 제2차산업의 소산입니다. 그리고 그 두 산업 위에 제3차산업이 있기 마련입니다. 즉 그 두 산업을 도외시하거나 배제한 담론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요즘 한참 화제인 딥러닝(Deep Learning)이나 생성형 인공지능(AI) 같은 분야도 기존의 하드웨어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 새로이 그 분야에 필요한 반도체를 설계해서 생산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이러고도 제조업 마인드 운운해서 비하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꽤 역사가 긴 미국의 학생사회 유머가 있습니다.
백인이나 흑인 학생들이 동북아시아계에 학생들에 대해서 "Make my 자동차브랜드" 명령문을 이야기하는. 즉 "Make my Toyota" 라면서 토요타 자동차를 만들어내라느니 "Make my Honda" 라면서 혼다 자동차를 만들어내라는 등의 것들이 그러합니다. 이 말은 동북아시아계 학생들에게 "네가 왜 학교에 있냐. 공장에서나 일해서 내가 원하는 것이나 만들면 되는 신분 주제에." 라는 함의를 가진 인종차별 및 제조업 비하의 사고방식이 담긴 것. 미국은 여전히 세계제일의 국가이고 경제규모도 나날이 신장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제조업 수준저하와 만성적이고 해소될 리 없는 무역적자 규모의 확대가 있습니다. 또한 아예 이면일 수도 없는 사안인 각종 원자재 수급문제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조업을 등한시했거나 버려둔 나라들이 신냉전의 도래 이후로 다르게 행동중입니다.
저개발국에 사업장을 이전했거나 아예 아웃소싱(Outsourcing)으로 버텼던 나라들이 자국내로 자국기업을 회귀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채택하는 중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활발한 리쇼어링은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활발하지 않은 듯합니다. 제조업을 경멸하는 기조가 강하니까 제조업도 우리나라를 등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변함없는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상대를 깔보는 자에게는 오늘이 피크(Peak)이고 내일부터는 내리막길만 있습니다. 해외에서 피크 코리아(Peak Korea)라는 말이 드물지 않게 거론되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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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23-10-09 01:04:02
문화사업에서도 '내수부터 챙겨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하물며 실물을 다루는 제조업계에서는 더 말해 무엇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차원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무리 외국에서 공장을 꾸려봤자 그 사람들이 번 돈을 다 자국에서 쓰지 우리나라로 보낼까요? 외국인 노동자도 마찬가지 상황이고요. 결국 기업만 돈 벌고 내수 시장은 침체가 된다는 얘기인데 언제까지 그렇게 무시하면서 기업 죽는다는 소리를 할 것인지... 작정하고 기계나 인공지능을 들여놓지 않는 이상 결국 기업은 '사람'으로 돌아가기 마련일 텐데, 요즘은 기업에서 관리직만 채용하는 건가 싶습니다.
SiteOwner
2023-10-09 17:08:14
20세기 후반의 미국의 산업관과 현실을 보면 사실 답이 다 나옵니다.
1950년대까지는 미국이 세계 최대의 공업국임을 자부함과 동시에 서비스업을 "햄버거 패티나 굽는" 등의 표현으로 경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공업분야에서도 특히 중공업에 대한 긍지는 세계최강인 반면에 경공업을 등한시하여 미국의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 1888-1959)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1950년대에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패전후 한참 전후복구 중인 일본에 대해서 스카프나 손수건 등을 열심히 만들어 수출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대놓고 일본을 경멸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미국 내에는 이런 논리가 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금융업 등의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 중시해서 돈을 많이 벌고 중후장대한 제조업은 신흥공업국인 유럽의 서독 및 이탈리아, 아시아의 일본 및 한국, 미주의 멕시코 및 브라질 등에 아웃소싱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자 미국의 제조업이 박살나고 미국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었던 동부지방은 나날이 퇴락하여 러스트벨트(Rust Belt)라는 오명을 쓸 정도로 생산능력 자체가 크게 낮아졌습니다. 당장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철강 생산만 보더라도 미국의 연간 철강생산량은 늦어도 1980년대가 시작할 즈음부터는 일본에 역전되었고 그 뒤로는 일본은 물론 중국이나 인도에도 뒤지고 있는데다 컴퓨터나 반도체 등의 첨단제품 중 일반소비자용 제품 중 미국기업의 제품은 많아도 Made in U.S.A.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미국에서 설계된 이후 중국이나 대만 등지에서 외주생산한 제품입니다.
게다가 냉전 이후 글로벌화가 되고 있다지만 이제 경제력이 커진 신흥국 중에 못 믿을 나라도 많습니다.
외국에서 공장을 운영할 경우의 이점이 있긴 합니다. 현지시장 공략에 유리하다, 생산원가 절감으로 이윤극대화가 가능하다, 현지시장에서 발생한 수익을 본국으로 송금하면 되는 구조라서 기업경영의 슬림화를 꾀할 수 있다 등의 것인데 못 믿을 나라의 대표격인 중국과 러시아는 결국 생산수단 자체를 뺏는 식으로 국제질서를 어지럽히고 바로 이것에 대해 공급망 재편 및 디커플링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값싸고 효율좋게 해보고 싶다고 한 게 오히려 고비용 저효율을 초래하는 부조리가 이렇게 현실이 있고 그 기저에 제조업 경시사상의 폐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