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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들어서 접한 가장 충격적인 뉴스라면 역시 독일의 대마 합법화가 있어요.
법과 질서와 합리성의 나라인 독일에서 왜 이렇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반길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요.
2024년 4월 1일부터 독일 내의 성인은 최대 25그램까지 자신이 소비할 대마를 갖고 다닐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대마를 3그루까지 자가재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조대마도 50g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되어요. 단 독일에서의 이런 합법화조치와는 별개로, 행위의 책임을 행위자의 국적에 철저히 귀속시키는 속인주의(属人主義) 법체계를 지닌 국가의 국민이 독일 내에서 대마를 사용한 것을 이유로 자국에서 처벌되는 상황까지 면책되지 않아요. 즉 우리나라는 속인주의를 채택하니까 독일에서 대마를 사용한 대한민국 국적자는 한국법에 따라 처벌되어요.
이미지 출처
Cannabis in Germany: Legalization with limits, 2024년 4월 1일 DW 기사, 영어
베를린(Berlin) 시내의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앞에서 대마 합법화를 자축하는 대마 옹호자들은 웃고 있지만, 그들이 과연 나중에도 웃을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이번의 결정이 특히 심각한 것은 세계적인 모범국가인 독일에서 이런 불합리가 발생한 것만이 아니예요. 미국의 경우는 합법화한 주와 여전히 불법방침을 유지하는 주가 혼재되어 있지만 연방 레벨에서는 여전히 금지라는 점에서 그나마 나아요. 즉 연방기관 종사자가 비록 대마가 합법화된 주 내에 거주하며 대마를 소비하더라도 연방기관으로부터 받는 불이익을 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번의 독일의 사안은 연방 레벨이라는 것에서 끔찍해요. 연방의회(Bundestag)에서 중도좌파연립여당인 독일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 동맹90/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 및 자유민주당(Freie Demokraten, FDP) 일제히 찬성했음은 물론 구 동독공산당 출신자들이 결성한 정당인 좌파당(Die Linke)도 역시 찬성표를 던진 것이었으니까요.
이렇게 2분기의 시작인 4월 1일부터 개인별 소지량 및 재배량에 조건이 붙은 채로 대마가 합법화된 게 전부가 아니예요. 3분기의 시작인 7월 1일부터는 회원수 500명 이내의 사설클럽이 공동 대마농장을 운영하여 생산한 대마를 회원들에게 배부할 수 있는 길도 열려요.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면, 대마 합법화를 실시중인 미국의 연방주들처럼 각급학교, 유치원, 공공유원지, 스포츠시설 근처 및 7시-20시 시간대에서의 도심의 보행자구역 내에서의 대마 소비가 금지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대마가 무해하다면 왜 교육시설이나 스포츠시설이나 대중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안된다는 것일까요? 이런 조치에서 이미 합법화를 밀어붙인 그 자체의 의도가 매우 의심스러워요.
이미 유럽 국가에서는 포르투갈, 스페인, 스위스, 체코, 벨기에 및 네덜란드가 조건부 대마 합법화를 시행했지만 결코 좋은 이야기가 안 나온다는 것 정도는 잘 알려져 있어요. 이 법안을 "악마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벨제붑(Beelzebub)을 앉혀 놓았다" 라고까지 비판하는 의료전문가도 있을 정도. 게다가 대마를 합법화한 태국에서 이미 합법화의 부작용이 극심해지고 있어서 철회의 움직임까지 나타나는 실정인데 과연 독일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요(순탄치 않은 태국의 대마 방임주의노선 폐기 참조)?
2021년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내의 18-25세 연령대의 절반 정도가 이미 대마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다 정부에서도 단속비용 등의 문제로 어느 정도의 관용을 베풀어주는 방식의 비범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경로로 표명하고 있어요. 그리고 의회에서는 범좌파의 연합으로 합법화 찬성화를 강행했고. 밤거리의 치안이 안 좋은 것으로 악명높은 유럽 각국의 밤거리의 문제는 더 심각해질 뿐만 아니라 중부유럽의 독일 또한 예외없이 그렇게 되겠네요. 누구를 위해서 던져진 찬성표일까요.
국내의 이 뉴스보도는 마치 독일이 잘했다는 듯한 논조로 진행되고 있어요.
이것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을지도 묻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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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대왕고래
2024-04-08 22:40:50
태국이라는 좋은 참고사례를 봤으면서도 합법화를 했다면 자신이 있는 것이겠죠.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것이거나...
어느쪽이든 책임은 독일 국민들이 지게 되겠네요, 결정권자들이 아니라...
마드리갈
2024-04-08 22:50:41
저는 후자에 방점을 두고 싶어요. 생각이 없는. 대마 합법화를 추진하는 각종 단체든 제도권정당이든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머리가 텅텅 빈거나 마찬가지예요. 독일의 정권은 계속 바뀌겠지만 국민들은 그대로 남으니까 결국 그 책임은 국민의 몫인데 이미 끔찍한 결과가 일어난 뒤겠죠. 그 과정의 피해는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것일까요?
독일의 자동차 디자이너 클라우스 루테(Claus Luthe, 1932-2008)의 경우, 1990년에 당시 33세의 마약중독자 장남 울리히(Ulrich)와 언쟁을 벌이다 결국 그를 칼로 찔러 죽였어요. 구속되어 재판을 받은 후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그가 몸담던 BMW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고 이후에는 BMW의 외부 컨설턴트로서 활동한 후 76년의 굴곡진 생애를 마쳤어요. 앞으로는 이런 상황이 이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으로 독일 각지에 횡행할 수 있다는 위험은 이제 현실이 되었어요.
Lester
2024-04-09 05:05:43
나치 시절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보면 너무 거창하겠죠? 이유야 어쨌든 이거저거 허용한 끝에 점점 막장을 향해 치닫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마드리갈
2024-04-09 16:21:06
독일이 향정신성약물에 관대한 경향이 있어요. 문화적으로 보자면 각종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묘약 같은 것들도 있는데다 세계적으로 화학과 생물학을 이끌어온 나라였다 보니 아무래도 약물을 접하기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을 듯해요. 나치 시대에 대한 반작용도 이유가 된다면 될 수 있는데, 대략 이럴 수는 있어요. 1960년대의 신좌파 기조에 독일 사회도 많이 휩쓸렸거든요. 특히 20세기 전반이 극우의 시대였으니 그 이후 세대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극좌 성향에 관대해 진 경향도 분명 있기는 할 거예요. 그러나 다른 경향들이 더욱 직접적이라고 보여요.
독일을 여행했거나 거주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들은 게 있어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특히 겨울이면 그게 심해서 의사들이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남쪽 나라로의 여행을 권한다고 하죠. 북부의 킬(Kiel)이나 플렌스부르크(Flensburg) 같은 곳은 겨울이 우울 그 자체이고, 중부의 에어푸르트(Erfurt) 같은 곳도 사정이 월등히 나은 건 아니라고 하죠. 그나마 남부의 뮌헨(München) 같은 곳은 좀 낫다지만 일단 바이에른(Bayern)같은 남부지역은 남고북저(南高北低) 지형인 탓에 일조량도 적고, 그러니 독일에서는 날이 밝으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도 많은데다 자동차 또한 달리는 도중에도 일조량 확보를 위해 컨버터블이 매우 발달해 있고, 좀 나가서는 공공장소에서의 누드 허용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활동가들도 꽤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손쉽게 마약에 손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어요.
독일에서는 이미 성인 10명 중 1명은 마약경험이 있다고 하죠. 이것은 적게 잡은 수치이고, 좀 많이 잡으면 성인 4명에 1명 꼴. 이 상황에서 대마 비범죄화는 제2의 탈리도마이드 쇼크로 이어질 경향이 매우 농후해요. 인간의 뇌는 사실 25세 정도가 되어야 성장이 완성되는데 현재 독일의 18-25세 연령대에서 대마 남용이 급증하고 있다면 뇌기능 손상은 사실상 피할 도리가 없거든요. 이미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는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문제가 심각했는데 그것을 다른 형태로 정말 반복해야 하는 건지, 이대로 가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건 저같은 사람도 아는데 정말 독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모르는 것일까요.
마드리갈
2024-04-17 15:49:23
2024년 4월 17일 업데이트
독일 바이에른주의 주도이자 최대도시인 뮌헨에서 10월에 개최되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에서는 대마 사용이 금지될 방침이 천명되었어요. 연방차원에서 이미 대마가 합법화되었기는 하지만 가톨릭 다수로 보수적인 바이에른주에서는 그러한 조치를 좋게 안 보다 보니 맥주홀, 축제, 레스토랑 테라스 등지에서는 자체적으로 금지시켜 두고 있어요. 또한 옥토버페스트 주최의 총책임자이자 대마 합법화에 반대한 기독사회당(CSU)의 일원이기도 한 클레멘스 바움게르트너(Clemens Baumgärtner) 또한 "옥토버페스트같은 가족축제와 대마가 같이 갈 건 아니다" 라고 선언한 등 독일의 대마 합법화에 대해서는 마냥 사회기조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도 이렇게 드러나고 있어요.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Get drunk, not high at Oktoberfest, Bavaria says, 2024년 4월 17일 DW 기사, 영어
마드리갈
2024-06-26 23:26:48
2024년 6월 26일 업데이트
독일 서부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len) 주에서는 최대 3천개소까지의 카나비스클럽을 허용할 방침이예요. 7월 1일부터 시작하는 이 방침상 클럽 1개당 회원수는 최대 500명으로 공동으로 대마를 경작 및 배부할 수는 있지만 상업판매는 금지되고 클럽 내부에서의 사용 또한 불허되어요.
그런데 아무리 규제를 한다고 한들 제대로 준수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요. 언제는 허용되어서 마약을 했나요. 그리고, 대마는 그 자체는 독성이 낮다고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고, 다른 유독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가는 일종의 디딤돌 역할을 하다 보니 결코 가벼이 볼 수 없어요.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Cannabis Clubs: Up to 3000 Clubs Allowed in NRW, Germany, 2024년 6월 21일 Born2Invest 기사,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