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사용되지 않는 깃발이야 여럿 있습니다만 그 대부분은 제3제국, 나치 독일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이와 별개로 사용되지 않는 또 하나의 국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 바로 흑, 백, 적 삼색의 국기입니다.
이 국기의 기원을 따지자면 오래 전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빌헬름 1세와 오토 폰 비스마르크 재상을 필두로 한 북독일 연방이 이 깃발을 처음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원래 그 전까지, 더 정확히 1815년 독일 연방 시절부터 이미 흑. 적, 황의 삼색기(오늘날까지 독일 깃발로 사용되는 그것!)가 사용되고 있었으나 북독일 연방이 독일을 통일하게 되고 독일 제국이 새로이 성립되면서 독일 제국의 깃발은 흑, 백, 적 삼색의 깃발을 국기로 사용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 깃발은 이후 독일 제국 내에서 철십자 등과 합해져 군기로도 사용되는 등 40년이 넘는 세월을 독일 제국과 함께 해왔습니다만 1918년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독일 제국이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되며 과거 독일 연방 시절에 사용된 흑, 적, 황 삼색기가 다시 채용되면서 흑, 백, 적 삼색기는 국기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국기 자리에서 내려온 깃발이었지만 상선기나 군기로는 여정히 채용되어 왼쪽 상단 구석에 흑, 적, 황 삼색기를 조그맣게 넣는 식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뒤를 이은 국가에서 이 깃발을 채용하면서 흑, 백, 적의 삼색기는 다시 국기의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바이마르 공화국 다음에 있는 국가. 어딘 지 다 아시죠? 모르신다고요?
바로 독일 제3제국, 나치 독일로도 흔히 알려진 바로 그 국가였습니다.
히틀러가 취임한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사용하던 흑, 적, 황 삼색기를 버리고 다시 독일 제국의 국기를 채용한 이유는 아마 1차세계대전 이전의 강력한 독일 제국의 이미지를 통해 국민들을 선동하고 고무하려던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나치 독일 초창기에는 국기 뿐만이 아니라 군기 역시 기존의 독일 제2제국이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했지요.
하지만, 히틀러는 권력을 손에 쥔 후 점차 주변이 안정화 되어 가는 것 같자 야심을 드러내고 이 삼색기를 능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국기를 내버리고 나치당의 깃발을 국기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사실 나치당 깃발의 색조합도 독일 제국의 삼색 조합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기존 독일 제국의 깃발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나치당의 깃발이 올라간 순간부터 삼색기의 생명은 끝이나게 된 것이지요.
나치당의 깃발이 국기의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기존에 걸려있던 독일제국의 군기들도 모두 나치당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가 들어간 군기로 모조리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독일 제국의 상징이었던 독수리는 내려지고 하켄크로이츠 위에 앉아있는 나치당의 독수리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요.
이리하여 흑, 백, 적 삼색기는 영영 독일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춰버리게 됩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나치당의 깃발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은 흑, 적, 황 삼색기였고 군기 등에도 같은 도안의 깃발이 사용되고 독일 내에서 사용되는 주기는 각 주의 고유 깃발이 걸리게 되었지요. 이것은 서독 뿐만이 아니라 동독도 비슷해서 동, 서 모두 흑, 적, 황의 삼색기만이 사용되었고 통일 이후에도 그 어느곳에서도 흑, 백, 적 삼색기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비록 태어난 것은 흑, 적, 황 삼색기보다는 늦었지만 한 때 독일 제국의 상징으로 유럽을 호령했던 삼색기는 그렇게 나사풀린 집단으로 인해 국가와 함께 몰락해 버린 것입니다.
물론 독일 외 국가로 눈을 돌려보면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국가(ex 예멘,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해당 도안을 차용한 것을 볼 순 있습니다. 해당 국가들의 공통점은 같은 색의 도안을 도입하긴 했지만 색 순서는 모두 위아래가 뒤집혀 있어 적, 백, 흑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순수한 형태의 도안은 그 어디에서도 사용되지 않는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이상, 독일 제국의 국기를 다뤄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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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하네카와츠바사
2013-12-10 21:23:33
하켄크로이츠가 독일에서 멸절된 것은 알았지만, 삼색기의 색구성이 달라진 건 몰랐습니다. 관심이 없었던 걸지도...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HNRY
2013-12-10 21:33:07
색구성이 달라졌다기 보단 공존하던 두 개의 깃발 중 하나가 자취를 감춘 셈이지요. 이러나 저러나 둘 다 만들어진 진 오래되었고 본문에도 적었듯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공존한 적도 있으니까요.
마드리갈
2013-12-10 21:45:29
참고로, 현재의 독일 국기의 색상은 1848년에서 1849년 사이에 열린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에서 처음 등장해요. 그 회의장이 되었던 바울 교회(Paulskirche)에는,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였던 필립 바이트가 그린 게르마니아(Germania)라는 여체화된 독일 상징이 걸리게 되어요. 그 게르마니아의 옷에는 쌍두 독수리의 방패가 수놓아져 있고, 왼손에는 지금의 독일 국기와 같은 길다란 깃발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어요.
현재의 삼색기는 그렇게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 바이마르 공화국, 서독을 거쳐 지금의 통일독일의 국기로 이어져 오고 있어요.
SiteOwner
2013-12-12 19:15:15
독일 형법 86a조에는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할 경우 위법행위를 구성하는 휘장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는 원래 나치독일이 사용했던 것뿐만 아니라 반대방향으로 된, 모든 것이 사용금지입니다. 이것 이외에도 원과 십자가가 같이 그려진 켈트십자가, 독일어로 토텐코프(Totenkopf - 죽은 자의 머리)라고 부르는 해골상징, SS 등의 특정 룬문자, 돌격대(Strumabteilung, 약칭 SA)의 표지 등이 있으며, 위의 독일제국 삼색기 중에도 가운데에 쌍두독수리나 철십자가 있는 경우는 과거 독일국방군이 사용했던 상징으로서 역시 규제대상이 됩니다.
HNRY
2013-12-13 01:19:04
음, 백골부대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미 해군이라면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안그럼 VFA-103가 VF-103 시절의 마크를 버리고 통합된 VF-84의 해골마크를 쓰는 모습이 뭔가 부당하게 보일 것 같아요. 애초에 해골 마크는 현대에 나치 보다는 해적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보니;;;;
SiteOwner
2013-12-12 20:09:37
군생활 때 있었던 일을 회상해 보면, 미군들이 한국 내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사찰의 卍 표지였던 게 생각납니다. 한국에는 여전히 나치 추종자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Swastika의 역사적 기원, 하켄크로이츠와는 반대방향 등등을 설명하면서 겨우 납득을 시키기는 했습니다.
독일 형법의 내용을 보면 그 사찰표지조차도 충분히 문제가 되는 거니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2001년에 타임지에 서울 내의 제3제국 테마 카페가 보도된 적도 있다 보니 우려가 됩니다. 그때의 기억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해골표지도 좋은 시선으로만 보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HNRY
2013-12-12 19:56:40
토텐코프 하니 갑자기 궁금해지는 건데 한국 육군 3사단의 마크의 해골을 외국인들이 보면 다들 어찌 생각할 지 궁금해지더군요.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연대비표에만 집어넣던 걸 현재는 사단마크에도 해골을 집어넣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