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부 졸업했지만, 초,중,고등학교마다 신학기가 되면 이런걸 꼭 했었죠.
설문지에 가족과의 관계는... 주소는.... 특징은... 집안 사정은... 이런 거였는데, 거기에 꼭 진로에 대한 것도 있었지요. 찾았냐는 거였어요.
4가지였는데,
1. 확고히 찾음
2. 찾긴 했는데 자주 바뀜
3. 어렴풋이 원하는 것은 있지만 아직 찾진 못 함
4. 못 찾음
아마 나중에 1:1로 면담을 할 때마다 저 것에 따라서 3,4번인 아이들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1,2번이면 그렇구나 하고 조언을 주는 식으로만 할려는 그런거였겠죠.
그런데 전, 진짜 2번도 아주 극단적인 2번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로 희망이 1년마다 바뀌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의사를 꿈꿨는데, 유치원적부터 중1까지 꿈꿨었어요. 정말 엄~~청난 규모의 병원을 제가 지어버려서 심지어는 의사 수련생도 거기서 수련을 해서 그 곳에서 시험을 봐서 의사 자격증을 따는(??????) 그런 엄~~청난 병원을 차리고 싶었죠
(아니 그런데 그럼 굳이 의사가 아니라 그냥 돈만 많이 벌어서 건물주가 되어도 상관 없는데)
아마 어릴적부터 (초등학교때라 무의미한거지만)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놓치는 일이 드물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그 때 돈 많이 벌고 뭔가 상냥해 보이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어서 동경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중1때 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저의 인생은 완벽히 바뀌어져버립니다.
마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전후의 프랑스 같이, 사고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져버립니다.
으아아아.... 원소가 지구에서 하나하나 사라져나가서, 그 원소를 찾기 위해 평행세계로 가서 QEX라는 동물들과 싸우며 원소에 대한 설명을 한다... 처음에는 과학만화라길래 생각없이 봐본 것일 뿐인데, 왜 중독된 건진 알 수가 없는데 하여튼 중독되었습니다. 그 뒤 전 화학을 정말정말 사랑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중2-고1까지는 과학자(연구원)를 꿈꿨어요. 그 과학의 분야도 참 다양해서 화학->유기화학->분자생물학->광학->수水학->고생물학->지질학 이렇게 아주 현란한 루트를 탔는데, 고1 겨울방학때 또 다시 변화가 찾아옵니다. 당연히 이과를 지원했는데, 이과 애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는데, 다들 공대를 가려고 했다고 하지, 순수과학은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아서, 대중감정에 휩쓸려서 공학 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화학공학이겠군? 아닙니다. 손해사정사를 꿈꿨어요. 건물 무너지고 사고 터지고 하면 수리금 얼마나 날지 그런거 조사하는 사람인데, 왜 이런걸 꿈꿨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 이후로도 바뀌어서, 변리사가 되다가, 고3 수능을 망쳐놓고 나서 재수를 시작하게 되어서는 갑자기 소설가를 하겠다고 설쳤습니다. 고졸 소설가(...)로써요. 그러다가 갑자기 검사가 되고 싶다 하다가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뭘 원하는지는 잘 알 것 같아요.
[ 조사하는 직업 ]
의사는 아니고, 그 이후의 직업은 전부 다 무언가를 조사하고 그걸 토대로 작업을 해야 하는 직업들입니다.
연구원도, 손해사정사...변리사... 등등 전부 무언가를 조사해놔야 되는 직업들이죠. 알고 나니 한결 후련해지더군요.
정확히는, 어릴 적부터 해왔던 무의미해보이고 무질서해보이던 일련의 행위들이 사실은 무의식중에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더군요.
저는 사실 조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현상이나 이런거에 대해 방법론적으로 그에 대해 추측하는 것도 좋지만,
저는 " 수치 " 를 계속 조사한 뒤 그걸 계속 표로 짜서 나타내고
그리고 또 개인적인 " 견해 " 를 표현한 뒤 그 수치를 계속 앞으로 어떻게 조절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연구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일단 지금 가장 떠오르는 직업은 게임 회사인데, 어릴 적부터 게임 분석하는걸 정말 좋아하기도 했고, 게임 만드는 것도 흥미가 가요.
그러나 이 것 말고도 다른 더 좋은 직업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천문학자나 핵물리학같은 쪽도 수치와 견해가 다수 들어가긴 하고, 실제 핵물리학은 좋아하지만, 생업으로 삼기엔 좀 힘든(...) 직업이구요. 박사학위까지 따기엔 제가 좀 기량이 부족할 듯 하네요(...)
하여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연 저런 식의 직업 중, 딱히 좋다 싶은 직업이 있으시다면, 부디 알려주세요.
혹여 나중에 제가 제 스스로 좋은 직업을 찾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 속의 궁금증이 얽히고 얽히게 되네요.
또한 게임 회사는 정확히 기획자로 입사해야 할텐데, 정확히 어느 학과를 입학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하하) 이에 대해서도 아시는 분 있으시다면 모쪼록 달아주시길 바랍니다.
조명이 좀 더 비싼 것으로 대체된다고 해서 그늘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8 댓글
하루유키
2015-04-24 09:28:58
저도 이래봬도 왕년의 과학소년이라 어릴때부터 과학 학습만화 같은거 보면서 나이를 먹으면 과학자가 되겠어! 라고 꿈을 품었던 시절도 있었죠. 제 깡통같은 머리로는 과학을 이해한다는게 불가능하다는걸 깨달았지만...... 지금은 꿈이고 진로고 장래고 뭐고 다 그만두고 케세라세라로 살고있네요.
프레지스티
2015-04-24 10:11:30
저도 비슷해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그 때까지 참고 대학원이고 뭐고 갈고닦는데 걸리는 시간은....
진로가 꼭 필요한건 아니지요. 그냥 휴대폰에 달려있는 스트랩 끈 처럼 있으면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고 만족스럽긴 하지만 없어도 사실 큰 불편은 없을거에요(하하)
대왕고래
2015-04-24 17:16:10
저같은 경우는, 대학에 가서야 "아, 내가 이 직종이 맞구나!"하고 깨달은 케이스라서요.
그것도 그 대학을 노리고 간 게 아니라 성적 맞춰 간 거였죠.
...사실 이제 준비중인 단계라서, 그냥 목표만 겨우 찾은 경우입니다만;;;
그래도, 목표가 저절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두시고,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여러가지로 노력하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프레지스티
2015-04-24 20:34:54
아, 대학에 가서 깨달으면 느낌이 어떨까요. 지금 하고 있는 과랑 맞지 않으면 편입같은걸 해야 해서 조금은 불편하셨을텐데.
그래도, 대왕고래님 조언처럼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선택의 폭을 넓히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너무 이것저것 바뀌는 것 같지만)
조커
2015-04-24 17:20:25
저도 작년까진 제 진로에 맞게 대학도 나오고 장학금도 받고 일도 하면서 10년을 넘게 그리 살았습니다만....제가 일하는 진로에 대한 환멸감(딱 하나만 꼬집어 말하자면 창의적인 발상이 중요시 되는 직업에서까지 사장님이 시키니까 사장님이 좋다고 하시니 이렇게 해 하는것에 대한 거...말이죠)덕에 지금은 다른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일하고 있습니다만...
이상하게 꿈꿔왔던 진로라는건 자석과도 같은거 같네요. 그렇게 환멸감 느끼고 등을 졌는데도 다시 언젠간 돌아가리라 라는 것을 마음속에 내내 염두해 두고 있다니 말이죠.
어찌보면 우습다고 할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프레지스티
2015-04-24 20:36:05
역시 사람도 귀소본능이 있는 생명체인걸까요... 언젠가는 조커님이 행복한 노동을 할 수 있으리라 기원합니다.
SiteOwner
2015-05-01 13:43:44
글을 읽다가, 역시 제대로 된 진로지도 시스템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로지도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데, 실제로 이것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면 답이 없어집니다.
학생들은 그 인구수만큼이나 각기 다른 꿈과 소질을 갖고 있고, 또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성장하듯 역시 그 꿈과 소질도 성장합니다. 즉 어릴 때의 것이 고정되는 경우는 없고, 처음의 것을 큰 틀에서 유지하더라도 내용이 충실해지고 세련되는 등의 변화를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현장에서 이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담당인력 또한 전문성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교원의 행동범위는 소속된 각급학교에 제한되어 있고, 그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사실상 문외한입니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 성적이 좋으니 넌 이과, 어학 과목이 좋으니 넌 문과, 요즘 취업이 잘 되니 이런 전공이 좋겠다 정도의 조언밖에 주지 못하고, 그것도 학생을 위해서가 아닌 진학실적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기 마련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각 업계의 사람들과의 만남, 현장체험, 교원의 선발경로 다각화, 입시위주 교육의 재개편 등의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한데, 입시제도만 만지작거리면 모든 교육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매년 뒤엎고 새로 만들고를 반복하니 속수무책입니다.
마드리갈
2015-05-08 22:46:37
조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으신 거군요.
저도 그런 일에 관심이 많고, 지금 가사와 병행하는 일도 그런 쪽의 것이예요.
아직은 이러한 분야에 대한 인지도 및 비중이 높지 않다는 것이 항상 IT 강국 운운하는 국내의 현실과 대조해볼수록 참 미묘해져요. 각종 형태도로 존재하는 각종 정보도 결국은 조사, 수집, 분석, 가공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데, 그냥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리면 저절로 튀어나오는 것인 줄 알아요.